소설리스트

343화 (342/535)

343화

한세연은 나와 몇 가지 근황 이야기를 나눈 뒤에 사라졌다.

‘자기는 언제나 내 편이니 도움이 나 고민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라는 말과 함께.

평소 그녀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지만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게 느 껴 졌다.

단순한 기분 탓일까?

어찌 됐든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그녀를 위해 몇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방 안에 어질러진 그레텔의 ‘나뭇 가지’와 ‘나뭇잎’이었다.

이게 어떤 효과나 특별함이 있지는 않을 듯 보이지만, 한세연이 연구하 고 싶다고 하니 일단 차곡차곡 모아 서 선물로 보냈다.

—우물우물.

그리고 이틀 뒤 아침.

그레텔은 평소와 같이 소시지를 입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소시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반 소시지와는 조 금 다르다.

영약 먹는 것을 자꾸 거부해서 안 에 영약을 갈아서 만든 가루를 안에 듬뿍 담았거든.

“그레텔〜 많이 먹어.”

“응애.”

그것을 모르는 그레텔은 소시지를 입에 야금야금 맛있게 먹고 있다.

맛이 조금 다를 텐데 눈치채지 못 한 걸 보면 미각이 그렇게 예민한 건 아닌 모양이다.

[영약 섭취로 ‘불멸의 지옥 마계수 그레텔’의 모든 능력치가 0.2 상승 합니다.]

[‘신비한 마계수 열매으???)’에 좋은 영양소가 담깁니다.]

영약을 섭취한 그레텔의 열매에서 미세한 마력이 뿜어졌다.

이렇게 눈에 띄는 상승이 있었으면 진작에 영약을 먹였을 텐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그레텔의 등을 한번 쓰담아 주고는 TV를 켰

다.

r……뉴스입니다. 어제 새벽, 마법사 협회 특무팀이 마인 기업 두 군 데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 당 기업은 ‘마인 게이트’ 사건의 혼 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으 며, 특무팀에서는 그들의 뒤에 알려 지지 않은 거대 단체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 성 그룹’과 ‘마인’간의 비밀 관계 가…….J

뉴스를 보며 교복 단추를 잠구고

있는데 스마트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한세연에게 온 메시지였다.

[선물로 주신 나뭇가지와 나뭇잎에서 처음 보는 에너지가 검출됐어 요.]

[영약의 생명 에너지와 비슷한 성 분인데, 가공하면 특별한 영약을 만 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웅?”

나는 메시지를 보며 잠시 당황했

다.

진짜로 그레텔의 나뭇가지랑 나뭇 잎에 그런 효과가 있었다고?

“허허......

그레텔에게 열매 말고도 먹을 수 있는 부위(?)가 더 있었다니.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답장을 입력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나뭇잎이 있으면 모아놓겠습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는 다시 그레텔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물오물 소시지를 먹던 그레텔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게 시선올 돌 렸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레텔. 학교 다녀오면 오늘도 산 책갈까?”

“응애!”

그레텔은 뛸 듯이 기뻐했다.

2학기 1차 중간시험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시험 날이 되자 참 관하러 온 스카우터들에 의해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첫 시험은 간단한 기초 마법과 필 기시험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자신 있는 분야였기 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김선우 종합 98점!”

“와. 미친.”

기초 테스트 결과가 나오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관중석에서도 웅성대는 소 리가 들려왔다.

—이야. 김선우 쟤는 진짜 물건이 네…….

—그거 들었냐? 투왕 길드에서 계 약금 100억 제시했는데 거절한 거.

—중국 길드에선 300억까지 제시 했다던데.

“홈홈.”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근데 뭔가 아쉽네. 이번 메인 시 험은 심연 탐험이라며.

—왜? 재밌을 거 같은데.

—재밌기는. 무의식이라 참관도 못 해. 저번처럼 시원한 전투를 기대하 고 왔는데. 쯧.

시험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데 관중석에서 신경 쓰이는 대화가 들려왔다.

바로 이번 메인 시험인 ‘심연 탐 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 흐음......

심연 탐험은 3일 뒤로 예정되어 있다.

정확히 어떤 시험인지는 나도 잘 모르기에 이전처럼 3위 안에 들 자 신이 넘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심연 탐험을 경험해봤던 선배. 아 니, 조상님들의 말에 의하면 탈출 순서대로 순위가 정해진다고 하던 데.

“수고했어. 나랑 동점이네.”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이서준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98점이거든.”

“……어, 그래?”

내 점수 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1둥이 몇 점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전광판을 올려보았다.

+기초 마법 시험 순위+

[1 위 : 98점 - 김선우, 이서준]

[3 위 : 96점 - 유아라]

[4위 : 89점 - 신영준]

“오. 유아라랑 2점밖에 차이가 안 나네.”

이서준과 큰 차이가 안 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결과였지만 아마 유아라 성격상 어디서 침울한 얼굴 로 있지 않을까 싶다.

괜히 궁금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내 예상대로 유아라는 저 멀리서 우울 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한숨을 내쉬 고 있었다.

위로라도 해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맞다. 선우야. 너 그거 알아?”

이서준이 내게 말했다.

“뭐가?”

“심연 탐험 시험 말이야. 폐지되기 전에 전통적으로 항상 최상위권 학 생이 꼴찌를 기록했대.”

“최상위권 학생이?”

“어, 대부분 5위 내에서 나왔다고 하더라고. 진천우도 꼴찌 출신이고.”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원작에 의하면 학창 시절의 진천우 는 거의 모든 시험에서 1등을 차지 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좀 의외네.”

“나도 듣고 조금 신기하더라고. 혹 시 우리 중에서 꼴찌 나오는 거 아 니야?”

주요 등장인물 중에 꼴찌라…….

그럴싸하기는 하다.

‘심연 탐험’은 무의식과 트라우마 를 보여주는 시험.

그런데 생각해보면 주요 등장인물 중에 정신 건강이 멀쩡한 애들은 별 로 없는 거 같거든.

그러다 아주 우연히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윤하영과 눈을

마주쳤다.

약 3초간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다 가 말했다.

“일단 얘가 꼴찌 할 일은 없는 거 같고.”

“……그거 무슨 의미야? 뭔가 기분 이 안 좋은데?”

“칭찬이야. 넌 정신이 건강하잖아. 순수하고.”

내 말에 윤하영이 눈을 가늘게 떴 다.

“……선우 너, 지금 나 생각 없다 고 돌려서 욕하는 거지? 그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선 아까부터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아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생각할 때 유아라가 강력한 꼴찌 후보가 아닐까 싶다.

겉으로 봤을 땐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사 소한 것에도 큰 감정 변화를 보이는 애니까.

이서준도 유아라를 보며 나와 똑같 은 생각을 했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 었다.

그때 윤하영이 말했다.

“근데 선우야. 너는 자신 있나 보 네‘?”

나는 피식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 했다.

“난 자신 있어. 정신력 하나는 좋 거든.”

3일의 시간이 홀러 1차 중간시험 의 메인 시험, ‘심연 탐험’이 시작되 었다.

전날 공지해준 내용에 따르면 1,

2, 3학년이 동시에 무의식을 들여다 보는 신비, [심연의 거울] 속으로 입장한다고 한다.

[심연의 거울] 속에 입장하고 나면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곳에서 탈출하면 되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심연 탐험’은 자신의 무의식에서 탈출하는 시험이 다.”

마법사관학교의 대강당.

단상 위에 시험 교사, 장안철이 말 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거울, [심연의

거울]이 있었는데, 거울을 통제하기 위함인지 마도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참고로 ‘심연 탐험’ 시험은 참관이 불가능하기에 안에서 어떤 일이 벌 어지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다.

“다들 알겠지만 ‘심연 탐험’은 사 망자가 발생하며 폐지되었던 시험이 다. 한 학생이 무의식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어 죽어버렸 지.”

사망자가 언급되자 학생들의 얼굴 에 긴장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몇 가지 마련되어 있다. 심연에서 ‘정 신 오염’을 일으킬 요소를 최소한으 로 줄였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절대로 안전한 건 아니니 방심해서 는 안 된다.”

장안철이 말을 이었다.

“시험 방법에 대해서는 가진 목적 성으로 인해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없는 점 이해 바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하자면 심연에는 ‘무의식 의 유대’라는 게 있다.”

“……무의식의 유대?”

“쉽게 설명하자면, 유대 관계가 깊

은 사람끼리 서로를 끌어당기며 무 의식이 중첩되는 이론이지. 이건 입 장하면 알아서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다.”

장안철이 자신의 옆에 있던 거대한 거울을 매만졌다.

이내 신비한 기운이 거울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럼 바로 시험을 시작하겠다. 1 학년부터 입장한다.”

그 뒤로 1학년부터 차례로 거울 속에 들어갔다.

마치 물웅덩이에 빠지는 것처럼 학 생들이 거울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표면이 물결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다음은 2학년이 입장하고, 마지막 3학년의 차례가 되었다.

“선우야. 이따가 다시 보자!”

윤하영은 내게 밝게 인사하더니 안 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울의 표면을 살짝 만지곤 그녀를 따라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 부신 빛과 함께 공간이 바뀌었다.

후우우웅…….

[‘무의식’에 입장했습니다.]

[‘비현실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나는 눈을 떴다. 공간이 바뀌고,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왠지 모를 그리움의 향수를 느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이었다.

책상 위에 책이 어질러 있으며, 벽 장에는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 뒤에는 침대가. 그 옆에는 덜덜 떨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풍경.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고 손끝이 떨려왔다.

나는 입술 꽉 깨물었다.

그리고 무겁게 발걸음을 떼어 책상 앞에 섰다.

사진이 하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찍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선우야.”

그 순간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뜬 이서준에게 보인 것은 아 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빛이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으응.”

마치 아기라도 된 것 같은 기분.

이게 뭐지?

“……드디어 성공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준은 순간 그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주 강령술을 통해 들었던 평생 잊을 수 없던 목소리였으니까.

“……신이시여. 이제는 알고 싶습니다. 이 아이를 되살린 이유가 뭡 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진천우’가 대답 했다.

“나는 5년 뒤 죽는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나를 되살릴 열쇠지.”

“……자, 잠깐. 그게 무슨 말씀이십

니까?!”

“말 그대로다. 나는 내가 죽는 미 래를 보았다. 그리고 이 아이는 앞 으로 일어날 모든 변화를 위한 시작 이야.”

이서준은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 며 큰 충격에 빠졌다.

이건…… 어릴 적 자신의 기억인 듯했다.

그때 진천우가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언젠간 죽 게 되겠지.”

“......네?”

눈 부신 빛이 사라지더니 진천우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천우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