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화
원작의 흐름대로 자운은 진천우의 영혼을 훔치고 달아났다.
오늘, 하루만을 위해 14년간 수많 은 신비를 훔쳐 오고, 고대 병기들 로 무장한 그들이었기에 자운의 성 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고대 병기 8개.
소형 게이트 14개.
각종 결계, 봉인 신비 21개.
각종 혼란, 저주 신비 42개.
이번 작전을 위해 그들이 사용한 신비만 해도 80가지가 넘으니까.
아무리 김진철 다음가는 마법사로 불리는 최일현이라고 해도 온갖 신 비로 무장한 그들을 혼자서 막아내 는 것에는 한계가 있던 것이다.
“……그래도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 였네.”
이번 아포리아 사건에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를 예정이었던 ‘혈귀’를 조기에 처치했기에 괴멸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원래의 흐름대로라면 혈귀에 의해 수많은 협회의 마법사가 사망하며 60명에 가까운 탈옥자가 생겨났어 야 정상이니까.
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탈옥자는 0 명으로 그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좋은 결과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끝난 지금.
나는 무너진 성벽에 걸터앉은 채 오늘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와 추가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S급 빌런 ‘백우철’을 처치했습니다.]
[인과율이 1 상승합니다.]
[미래에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승합니다.]
[‘S급 동시 처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혈귀를 처치하며 인과율을 획득했다.
거기다 미래의 변화 감지와 테리사 처치를 포함하면 3이 넘어가는 인과 율을 얻은 셈이다.
어째 인과율 습득 텀이 점점 땔라 지는 기분인데.
“김 선우.”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아라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앉았 다.
유아라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 로 밤하늘을 올려보더니 혼잣말하듯 말했다.
“……고마워. 너한테 또 도움받았 네.”
“뭐가?”
“아까 혈귀한테서 나 구해줬잖아. 딱 보자마자 네 마법인 걸 알겠더라 고. 마법에서 네 색깔이 묻어나온다 고 해야 할까……
예민한 성격을 가진 그녀답게 내가 개입한 것을 바로 눈치챈 모양이다.
딱히 할 말은 없기에 굳이 대답하 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간질간질한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
를 스치고, 왠지 모를 불편함에 자 리에서 일어날까 고민하던 찰나 그 녀가 입을 열었다.
“……뭔가 우울하네.”
“……갑자기?”
내 말에 유아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난 왜 이리 부족한 걸까 싶 어서.”
언제나 강하고 당당한 모습만 보여 주던 그녀가 평소답지 않게 약한 말 을 내뱉었다.
“아까 말이야. 그토록 증오하던 자 운을 눈앞에서 마주쳤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겠더라고. 죽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겁도 났고.”
유아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나도 빨리 강해지고 싶은데. 누구 한테 지지 않을 만큼 성장해서, 나 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부족한 게 많아서 그럴 수가 없어.”
유아라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도 너처럼 되고 싶은데.”
그녀는 몰래 자신과 나를 비교하고 있던 모양이다.
원작에서는 이서준을. 지금은 나를.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이상한 기
분을 느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이서준에게 보 였던 특별한 감정들.
그 감정들이 이서준이 아닌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겁이 났다.
존재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성장시 키던 주인공의 역할을 나 따위가 대 체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급해할 필요 없어. 너라면 누구 보다 빠르게 성장할 거야.”
내 말에 유아라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뭔가 조심스러운 말투네. 이게 가 진 자의 동정심이라는 건가?”
“……가진 자는 무슨. 진심이야. 네 가 가진 재능은 특별하니까.”
비록 이서준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만년 2등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 만, 그녀는 어느 세대에서든 반드시 1둥을 차지할 만큼의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녀도 ‘천재’라는 것이다.
“내 재능이 특별하면, 네 재능은 뭔데?”
“내 재능은 너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야.”
“……뭐야. 기만하는 거야?”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외부자의 혜택’ 과 ‘회귀로 인한 과거의 경험’ 덕에 잠깐 앞서나가고 있을 뿐.
언제 이서준과 유아라에게 추월당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진심이야. 너는 나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되는 재능을 갖고 있어. 몇 년 후면 자운 따위는 손쉽게 이 겨 버릴 만큼의 재능을.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
내 진심을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 만, 유아라는 입을 꾹 다문 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용기를 얻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웅, 고마워.”
태평양 어딘가의 바다.
온갖 마도구로 무장한 배 한 척이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협회의 감시를 피해 아포리아를 탈 출한 자운의 배였다.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만 그래 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어.”
벽에 둥을 기댄 나타샤가 작게 중 얼거렸다.
“그러게. 14명 중 8명만 돌아왔다 는 건 좀 뼈 아프지만.”
진이 배 안에 남은 베르트, 스카, 나타샤, 백은성, 애런, 이청, 베르너 를 둘러보며 말했다.
“6명이나 잃은 건가……
“테리사까지 잃었으니 7명을 잃은 거나 다름없지.”
“지나간 일은 잊고, 아까 그 얘기 나 마저 하자고.”
나타샤가 말하며 진에게 시선을 돌 렸다.
“그래서, 테라사를 죽인 마법에서 마력이 안 느껴졌다는 게 사실이 야?”
“어, 사실이야.”
그러곤 백은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팔을 자른 룬의 일족 녀석에게
도 마력이 안 느껴졌다는 게 사실이 고?”
“어. 확실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 어.”
백은성의 말에 나타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야. 백은성. 너는 왜 그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건데.”
“……으웅? 어, 그게…… 굳이 내 굴욕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백은성의 중얼거림에 스카가 작게 웃었다.
“쟤 저런 거에 부끄러움 엄청 타잖
아. 생명의 잔 뺏겼을 때도 복귀 안 하고 숨어 있었지. 크흐흐.”
“아니, 생명의 잔 이야기 좀 그만 우려먹으라고!”
백은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근데 놀랍긴 하네. 룬의 일족 녀 석이 복수를 하겠다고 아포리아까지 숨어들어왔단 거잖아. 진짜 변태 같 은 놈이네.”
이청이 말했다.
그때 나타샤가 베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베르트.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모두의 시선이 베르트에게 집중되 자 그녀가 팔짱을 끼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은 마법 말이야. 사실 나도 본 적이 있어.”
“웅‘?”
베르트의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란 반웅을 보였다.
“어디서?!”
“작년 한국에 있는 내 별장에서.”
“......작년?”
진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이서준이 마인한테 습격당했
을 때를 말하는 거야?”
“맞아. 그때 마인의 몸을 뚫어버린 마법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거 드 ”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
“잠깐, 그 마법. 여명의 칼날 녀석 이 쏜 거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럼 여명의 칼날 녀석들이 범인이 라는 건가?”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베르트가 말 했다.
“난 그 마법의 주인이 김선우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나타샤가 물었다.
“말 그대로야. 별장에서 쏘아진 그 마법. 김선우의 마법과 상당히 흡사 했거든. 또 녀석한테 그만한 능력이 있기도 하고.”
모두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베르트 의 입에서 범인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별장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잔, 선구자의 밤, 아틀란티 스. 그리고 이번 아포리아까지 그간 우리를 쫓아다녔던 게 김선우였단 거야?”
백은성이 부들부들 손을 떨며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한테 엿이나 까먹으라 하고, 내 팔을 자르고, 피 의 맹세라는 굴욕까지 안겨주고?”
백은성의 말에 멤버들이 수군거렸다.
“……와. 저렇게 들으니까 진짜 악 질 중의 악질인데? 김선우 그거 진
짜 또라이 아니야? 뭐 하는 놈이 지?”
“아니, 근데 그 녀석, 룬의 일족의 종사인가 그거라고 하지 않았어? 김 선우는 너무 어리잖아.”
“그리고 백은성 팔 가져갈 때 전기 속성을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그때 백은성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 그러지더니 ‘방천화극’을 허공에 휘 둘렀다.
후우웅一!
“당장 그놈을 죽이러 가야겠어.”
“그건 안 돼.”
베르트가 말했다.
“우리에겐 피의 맹세가 걸려있어. 김선우에게 어떠한 해를 끼쳐선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녀석이 오늘 테리사를 죽인 시점에서 이 맹세는 끝이야.”
“김선우가 범인이라는 건 어디까지 나 내 추측이야.”
“......뭐?”
“맹세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확신’ 을 가질 수 있는 중거가 필요하다 고.”
피의 맹세는 ‘양심’에 의존하는 마 법이다.
즉, 양심의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된 다면 심장과 마력에 새겨진 피의 맹 세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아니, 베르트!”
백은성이 크게 소리쳤다.
“난 김선우가 범인이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었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해버 려서 못하게 됐잖아!”
“미안한데 피의 맹세에 동료가 김 선우를 해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는 조항이 있어. 널 막지 않으면 내 가 죽어.”
백은성은 할 말을 잃고는 창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진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김선우한테 완전히 당했네. 그땐 몰랐는데 맹세의 조건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워. 녀석한테 너무 유리 한 조건들 뿐이야.”
“……하아. 돌겠네.”
백은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베르트 는 모두를 둘러보곤 말했다.
“증거를 찾아야 해. 김선우가 그놈 이 맞다는 확실한 증거를.”
그 순간 스카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근데 베르트, 그분의 부활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하잖아. 그게 우선 아 니야?”
“……그렇긴 하지. 해야 할 일이 많네.”
아포리아의 아침이 밝았다.
혼란스러웠던 사건은 하루 만에 완 전히 수습됐으며, 잠시 풀려난 범죄 자들은 임시 수감실에 재수감되었
다.
피해를 입은 협회의 마법사들도 치 료를 받으며 안정을 되찾고, 아포리 아의 무너진 성벽들도 일부 복구가 되었다.
‘진천우의 영혼’이 사라진 것만 제 외하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아 포리아의 모습이었다.
“김선우. 어제 있었던 일은 협회에 보고가 들어갈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김덕현과는 진천우의 영혼이 나를 보고 놀랐던 것에 대해 짧은 면담을 가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지만, 내 상황을 알고 있는 김덕현 덕분에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포리아를 떠나 대한 민국의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 워졌다.
나와 이서준, 유아라는 태양에 물 들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배를 기 다리고 있었다.
“뭔가 많은 일이 있었네.”
유아라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의문만 늘어난 것 같아 더 혼란스러워진 거 같기도 하고.”
이서준이 힐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게 하는 말인 모양 이다. 나는 굳이 반웅하지 않았다.
“내일 학교를 가야한다는 게 아직 도 믿어지지 않아.”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유아라의 말에 문득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곧 중간시험이네?”
“아, 맞다. 시험……
시험이라는 말이 나오자 유아라가 표정을 구겼다.
만년 2둥이던 시절도 괴로웠을 텐 데 이제는 만년 3등 소리를 듣게
생겼으니 그녀에게는 이번 시험이 꽤 중요할 것이다.
근데 나도 이번 시험은 잘 모르겠 다.
심연 탐험.
원작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것이었 으니까.
그때 수평선 너머에서 배 한 척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가는 거냐.”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우리는 뒤를 돌았다.
최일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네, 이제 가야죠. 선생님은요?”
내 물음에 최일현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있 거든.”
그때 이서준이 생각났다는 둣 말했다.
“아 참. 심연 탐험 시험이 폐지된 게 최일현 님 세대 아니에요?”
“심연 탐험?”
최일현의 두 눈에 잠시 의아함이 담겼다.
“……어. 우리 때에 폐지된 시험이 맞는데. 그건 왜?”
“이번 중간시험이 그거라서, 혹시 아시는 게 있을까 해서요.”
이서준의 말에 최일현이 지저분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심연 탐험은 내면의 무의식에서 탈출하는 시험이다.”
“내면의 무의식?”
유아라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사람마다 안에서 보게 될 것은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보게 될 지는 몰라. 소중한 것을 보게 될 수
도 있고. 가장 증오하는 것을 볼 수 도 있고……
최일현이 생각에 잠기듯 중얼거리 더니 미소를 지었다.
“뭐, 어쨌든 아마 꽤 재밌는 추억 이 될 거다. 운이 좋으면 주변 사람 의 무의식에도 다녀올 수 있거든. 역으로 네 무의식에 다른 사람이 다 녀올 수도 있는 일이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