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 흐음......
나는 침대에 앉아 새롭게 얻은 [권 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능력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 는지도 알겠다.
[차원 여행]은 내가 모르는 과거, 혹은 미래를 관측할 수 있는 힘.
이 능력을 사용한다면 진천우 또는 김창현과 관련된 미스테리가 풀릴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권능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과율 20의 능력 인 [가능성 조작]을 당분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능력이 정확히 어떤 힘을 지니 고 있는지는 몰라도 ‘가능성 조작’ 이란 이름처럼 생각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또 내 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이 ‘가능성 조작’은 내게 보험이
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권능 사용에 필요한 마나를 수급할 방법이 없다는 것.
“쯧.”
이러나저러나 힘들게 모은 인과율 을 사용하자니 아쉬운 게 많다.
이렇게 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용 조건인 인과율 100을 언제 쌓 나 싶기도 하고.
“에휴......
아쉬움을 한숨으로 털어놓고는 자 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두운 밤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솨아아아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함선 하나가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달 려나가고 있었다.
바다의 마력을 흡수하는 신비, [포 세이돈]과 무한한 마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마나의 핵]을 동력으로 사 용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이야〜 엄청 빠르네.”
갑판 위 난간에서 한 남성이 몸을 기댄 채 감탄했다.
남성의 둥에는 S등급의 창, ‘방천 화극’이 있었다.
“백은성.”
그때 뒤에서 남성, 백은성의 이름 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은성은 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바람에 홑날리는 화려한 금발의 여
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베르트.”
“왜 이리 신났어? 누가 보면 놀러 가는 줄 알겠네.”
“곧 ‘그분’을 뵐 수 있는 거잖아. 14년 만에 뵈는 건데 즐겁지 않을 수가 있나.”
백은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신을 떠올 리는 신도와 같았다.
그리고 그 말에 베르트 역시 희미 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14년 만인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숨고, 죽이고, 떼앗고, 훔쳐 왔는가.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않지만, 그분 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 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그게 아쉽네.”
베르트가 중얼거림에 백은성이 물 었다.
“뭐가?”
“네가 땟긴 [생명의 잔] 말이야. 그 것만 있었어도 그분의 육체를 만드 는 게 더 수월했을 텐데.”
백은성은 입을 다물었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사고였기에 할 말이 없었다.
“아, 왜 또 그 얘기냐…… 언제까 지 우려먹을 건데……
“아쉬워서 그렇지. 그분의 육체를 되살려야 하는데, 성배와 같은 능력 을 지닌 신비를 찾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백은성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뭐 하
고 있으려나.”
“그 녀석?”
“[생명의 잔]을 훔쳐 간 녀석 말이 야.”
자신의 추리가 맞다면 생명의 잔을 홈친 녀석은 테리사를 체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놈이다.
거기다 아틀란티스에서 자신의 왼 팔을 가져간 녀석이기도 했다.
그간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녀 석의 신분은 ‘룬의 일족의 종사’.
“설마 이번에도 쫓아온 건 아니겠 지? 그 새끼 매번 우리 일에 끼어 서 방해했잖아.”
백은성의 짜증 섞인 말에 베르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이, 그래도 다른 장소도 아 니고 아포리아인데 설마 여기까지 찾아왔겠어? 게다가 특무팀 소속도 아니잖아?”
백은성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피 식 웃었다.
“하긴, 여기까지 쫓아왔을 리가 없 지. 변태도 아니고.”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안한 기운이 서서히 느껴지고 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 였다.
“거의 다 왔네. 마지막 점검이나 하자.”
베르트는 뒤를 돌아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넓은 홀에 모인 14명의 사람이 각자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평소에 자주 보던 얼굴도 있었고 휴가를 간다며 사라졌다가 다시 복귀한 녀석들도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자운의 멤버였다.
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곧 결계에 도착할 거야. 각자 신 비 챙겨서 준비해.”
숙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익숙한 얼 굴을 발견했다.
벤치에 앉아 무언가 씁쓸한 얼굴을 한 채 생각에 잠긴 이서준이었다.
이서준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뭐야?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좀 더 쉬지.”
“아냐. 거의 회복됐어.”
휙휙 양쪽 팔을 뒤로 휘저었다.
이서준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보통은 마나 역류에 걸 리면 하루에서 이틀 정도 못 깨어난 다고 하더라고.”
“내가 생명력 하나는 좋잖아. 체력 회복도 빠르고.”
벤치에 앉은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서준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바람 쐬려고 나온 거야?”
“어…… 음, 그렇지?”
사실은 ‘강령술’을 이용해 진천우 의 영혼과 대화할 생각으로 나온 것 이지만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이서준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눈으 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놀랐어.”
“뭐가?”
“네가 진천우와 뭔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설마 그 정도 의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을 줄은 몰 랐거든.”
보아하니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것과 관련하여 내가 할 말은 없 었기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피가 이어진 혈육인 나보다 너를 보며 더 크게 동요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서준의 말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 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이서준의 심리가 떠올랐다.
진천우의 영혼을 마주한 이서준.
그리고 자신의 혈육인 이서준을 마 주한 진천우.
이서준은 [감정 간파]로 자신을 향 한 진천우의 감정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도구를 바라보는 것 만 같은 ‘무정함’이었다.
그 사실에 이서준은 작은 충격과 함께 씁쓸함을 느낀다.
비록 세계 최악의 범죄자라고 하나 혈육을 향한 최소한의 정은 남아 있 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진천우가 모두가 보
는 앞에서 나를 보곤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
아마 이서준의 입장에서는 꽤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김 선우.”
이서준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났 다.
“안 물어보려 했는데 역시 물어봐 야겠다. 대체 진천우랑 무슨 관계인 거야? 도대체 뭐길래 진천우가 너를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냐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 나, 그대로 설명할 수 없어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나와 진천우의 연관성이 밝 혀지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겁 이 났다.
“김 선우.”
……아, 모르겠다.
“이서준.”
내 부름에 이서준이 입을 다물었
다.
“나에 대해 궁금한 거 많은 거 알 아. 아마 꽤 혼란스럽겠지.”
내 말에 이서준은 대답 없이 나를 웅시했다.
“근데 너도 봤다시피 나에겐 제약 이 걸려있어. 그리고 이 제약의 힘 은 꽤 강해. 나도 이 제약의 정체가 뭔지 확실히 모를 만큼.”
“그래서, 내가 너한테 말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이서준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실망감이 느껴지는 눈빛. 그리고 잠시 화난 듯한 표정.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작게 숨 을 내쉬었다.
과연 이게 맞는 선택일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는 건 아 닐까.
하지만 진천우와 나의 관계가 드러 난 이상 내게도 방법이 없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을 수밖 에.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말해줄 순 없지만, 대신 보여줄
순 있어.”
성벽 위로 올라온 김선우가 점프하 며 지상으로 착륙했다.
이서준은 그런 김선우를 바라보다 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 곤 따라서 뛰어내렸다.
착.
지상에 가볍게 착륙하자 김선우가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일은 전부
비밀이야.”
“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건데?”
“오늘 네가 보게 될 모든 것.”
«.C끄
김선우는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내 뱉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이서준은 눈을 깜빡이며 김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랐다.
그가 향한 곳은 아포리아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작은 숲이었다.
이서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여기 멋대로 들어와도 괜찮은 거 야?”
“괜찮을 리가 있나. 너도 공범이 야.”
김선우의 쿨한 대답에 이서준은 황 당함을 느꼈다.
“……흐음. 이쯤 어딘가에 있을 텐 데.”
김선우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김선우의 시선이 어딘가에 멈 추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작은 석 상이 있었다.
“찾았다.”
김선우는 곧바로 석상으로 걸어갔 다. 바닥에 칼을 꽂고 있는 여신상.
겉으로만 봐도 신비로운 힘이 느껴 진다.
김선우는 손바닥 위로 마력을 끌어 올리더니 석상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바닥에 숨겨져 있던 복잡한 술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풀어내기 힘든 난해한 술식이 었지만 김선우는 차근차근 전부 풀 어냈다.
그리고 잠시 뒤.
털컹!
석상 앞에 계단 하나가 생겨났다.
이서준은 할 말을 잃었다. 김선우 는 손을 탁탁 털곤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아포리아엔 영혼을 붙잡는 특수 현상이 있어. 협회에서 는 이 힘을 이용해 진천우의 영혼을 봉인하고 싶어 했지.”
뜬금없는 얘기에 의문이 생긴 이서준이었지만, 잠자코 얘기를 듣기로
했다.
“이 석상은 외부의 마법 현상을 인 위적으로 끌어다 주는 매개체야. 이 것 때문에 진천우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던 거야.”
이서준은 그런 김선우의 모습을 보 며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 김선우가 놀라울 정도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김선우의 말이 사실이 라면 이건 협회의 간부들만이 알법 한 극비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건......
말을 멈춘 김선우를 보며 이서준은 깨달았다.
제약 때문이구나.
동시에 김선우가 말했던 ‘말하진 못하지만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를 깨달았다.
자신의 행동을 보고 알아서 추리하 는 의미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억지로 말하 지 않아도 돼.”
김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김선우는 계단 안으로 들어
갔다. 이서준도 그를 따라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혹 속. 김선우가 마법 구체를 구현하자 주변이 밝아지며 긴 통로가 보였다.
“여긴♦.....
“진천우의 영혼이 봉인된 지하와 연결된 통로야.”
“웅?”
“아까 말했잖아. 석상의 힘으로 진 천우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었다 고.”
그러더니 한마디를 더했다.
“자운의 습격이 벌어지면 녀석들은 아마 이 통로를 이용할 거야.”
마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 다는 듯한 뉘앙스다.
황당한 말이었지만 이서준은 그의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김선우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 손올 뻗었다.
그때 그의 표정이 잠시 굳으며 안 색이 나빠졌다.
“씁…… 이것도 안 되는 건가.”
“김 선우?”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김선우는 챙겨온 가방에 손을 집어 넣더니 술식이 담긴 종이들을 꺼냈 다.
어찌나 많은지 대충 세어도 20장 은 되어 보였다.
김선우는 그것들을 바닥에 깔았다.
술식에 깊은 지식은 없었지만 함정 술식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자운의 습격을 대비해 미리 준비한 건가.
정말이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 네.
“그런데 지금까지 숨긴 걸 이제와
서 보여주려는 이유가 뭐야?”
문득 궁금해졌다.
김선우는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와 실력을 숨겼다.
물론 최근 들어 자신의 힘을 드러 내기도 했었지만 확실한 건 그는 자 신을 드러내기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지금의 김선 우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도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우우웅.
김선우는 마력을 이용해 바닥에 깔 아놓은 술식들을 은폐시켜놓곤 말했다.
“별거 없어. 내가 네 편이라는 걸 중명하고 싶거든.”
그러더니 김선우는 스마트 학생 수 첩을 잠시 살펴보더니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났다.
“시간 없다. 빨리 이동하자.”
“이번엔 뭐 하려는데?”
그 물음에 김선우가 씨익 웃었다.
“진천우와의 대화를 위한 강령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