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스으으으一
영혼에서 뿜어져 오는 스산한 기운 이 계속해서 내 몸을 스쳤다.
이서준과 유아라. 그리고 최일현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슴 속에 숨 긴 채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이 올지도 모 른다는 생각은 이미 했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 세계에 나를 끌어들인 것이 바로 진천우였으니 까.
하지만 녀석의 반웅은 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격했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 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김선우, 진천우가 왜 이런 반 웅을 보이는 거지?”
최일현이 내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의문뿐만 아니라 경 계의 감정도 담겨 있었다.
나는 최일현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진천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적빛으로 물들었던 진천우의 영혼 이 다시 회색빛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착잡한 눈으로 진천우를 바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대답해야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른다?
그 누구도 그런 답변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저 상황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로 볼 테지.
결론적으로 힘들게 쌓은 신뢰가 무 너지고, 경계심만 높일 뿐이다.
아니면 이제 와서 진천우의 피해자 다? 정체를 숨긴 다른 마법사다?
이것들 역시 전부 말이 안 된다.
아마 많은 질문을 통해 사실 증명 에 들어가려 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의 거짓이 들통날 것이다.
“……김선우.”
다시 한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유아라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수많은 의문이, 그 리고 동시에 불안과 걱정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냥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이들과 함께하며 쌓 아온 신뢰.
그리고 지금 진천우가 내게 보인 특별한 감정.
이 모든 것들이 허무맹랑한 나의
말의 강한 근거가 되어줄 테니까.
그렇게 수십 번 혼자 생각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말하자.
나도 계속 숨기는 것에 한계를 느 끼고 있다.
차라리 그냥 이번 기회에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자.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 다. 그리고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 었다.
“나는 사실一.” 그때 였다.
두근!
내 심장이 철렁였다. 식은땀이 흐 르고 숨통이 조여오며 호흡이 이루 어지지 않았다.
“……김선우?”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이서준이 나 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다리에 힘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
다.
“ 크으윽……
내 몸 안의 마력이, 마치 다른 사 람의 것이 된 것 마냥 내 심장을 강하게 옥죄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격 통.
[고통 내성] 특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괴로 움이 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쿨럭!”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보였다. 내 가 토해낸 피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나 설마 죽는 건가?
바로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과의 부족으로〈발설〉이 강제 차단되었습니다.]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자 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
니다.]
[인과율이 2.0 상승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니?
“김 선우!”
그때 유아라가 빠르게 달려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양손으로 내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걱정스런 얼굴로 안색을 살핀다.
나는 흐릿한 눈으로 가까워진 그녀 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괜찮아?!”
그리고는 자신의 마력으로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유아라의 따뜻한 마력이 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마나 역류 현상?”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유아라 의 목소리.
……거기까지 였다.
눈앞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나는 그 대로 정신을 잃었다.
“.…”허억!”
깊은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이고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동시에 가슴에서 약간의 통증이 터 져 나왔다.
“크윽……
“김선우. 괜찮아?’’
그리고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걱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아라의 얼굴이 보
였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적은 유아라였기 에 지금 보여주는 표정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심호홉하며 내 몸 안 에 꼬인 마력을 풀어냈다.
그러자 고통은 금세 잦아들었다.
“……어, 괜찮아. 근데 여긴 어디 야?”
“……숙소야. 아포리아의.”
“ 숙소......
그제서야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게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 진천우 의 영혼. 그리고 비밀을 말하려는 나에게 찾아온 고통과 의문의 메시 지……
“김 선우.”
유아라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났 다.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마나 역류 현상 말이야. 보니까 무슨 제약 같은 거에 걸린 거 같던 데.”
제약?
아까 보았던 메시지를 봤을 때 제 약의 일종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간단히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순 없었다.
아까와 같은 현상이 다시 생겨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아.”
내가 대답이 없자 유아라가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내 눈을 조용히 웅시했다.
그 눈빛에는 의문, 안타까움……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Q99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얼굴을 웅시하던 유아라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약이라는 게 쉽게 생기는 게 아 니잖아.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제약이 걸려 있던 거냐고.”
그러게. 나도 알면 좋겠는데.
내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자 유 아라가 말했다.
“……말할 생각이 없구나. 알았어.
너한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 겠지만 지금은 묻지 않을게.”
유아라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몸 상태는 괜찮은 거 같아 다행이야.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쉬 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유아라는 방 밖으 로 나갔다.
나는 멍하니 유아라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뭐야?”
진천우와의 연결점에 대해 이것저 것 집요하게 물어볼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다.
오히려 내가 뻘쭘한데.
“……아, 맞다. 지금 몇 시지?”
본래 내 계획은 자운이 습격하기 전 진천우의 영혼을 방문하고 강령 술을 이용,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이 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 잠들어 있었다면 상황이 곤란해진 다.
자운의 습격 시간도 코앞으로 다가 왔을지 모르고.
서둘러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켰다.
[오후 7시 26분]
“휴.”
다행히 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 머리 판에 등을 기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발설 차단.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자격…….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는 인과율 100을 쌓 아야 한다는 건가?
“아니, 진짜 뭐야……
편히 말도 못 하게 하네.
아니, 그보다. 이러면 진천우가 보 였던 감정 변화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게 된 거잖아?
“돌겠네.”
머리가 아파온다.
그때 내 머릿속에 잠시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맞다. 권능 얻었었지.”
진천우가 나를 향한 격한 감정 표
현(?)을 보이면서 인과율 30에 오르 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권능을 획득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직 확인하 지 못했는데.
과연 어떤 능력을 얻었으려나.
바로 확인해 볼까.
나는 곧바로 [권능]을 발동했다.
같은 시각.
해가 저물며 어두워진 아포리아의 성벽에 김덕현, 최일현, 이서준이 심 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믿기 힘들군요. 설마 거기서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나도 머리가 아프다. 설마 진천우 랑 제자 녀석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 니까. 거기다……
최일현은 김선우가 무언가를 말하 려는 순간, 마나 역류 현상이 일어 나며 고통을 호소하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다행히 응급 처치를 해서 다행이
지, 심각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 는 상황이었다.
“김선우에겐 어떤 제약이 걸려 있 는 건 확실해. 전조 없는 마나 역류 현상은 불가능하니까. 하물며 김선 우 정도의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면 더더욱.”
최일현의 말에 이서준과 김덕현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제약일까. 몸에 특별한 제약의 혼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피의 맹세 아닙니까? 아까 몸 상 태를 살펴보니까 비슷한 흔적이 남 아있던데요.”
최일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어디까지나 흔적이지 지금은 지워져서 효력이 없어.”
“흐음. 대체 뭘까요. 김창현에 이어 서 김선우까지……
그때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숙소에 남아 김선우를 간호하던 유 아라였다.
그녀가 다가오자 이서준이 물었다.
“김선우는 어때?”
“잠에서 깼어.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은 거 같아.”
그 말에 최일현이 놀란 표정을 지
었다.
“벌써 깨어났다고? 놀라운데, 하루 이상은 잠들 줄 알았는데.”
마나 역류 현상은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혼수상 태에 빠지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
그런데 5시간도 되지 않아 깨어났 다는 건 김선우가 초인적인 생명력 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김선우에 대한 결론이 나 왔어요?”
유아라가 물음에 최일현은 고개를 저었다.
“추측하는 거지. 다만 확실한 점은 김선우와 진천우는 긍정적인 관계로 보이지 않다는 거다. 녀석의 반응이 너무도 격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진천우의 부하였다면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티 나는 반응을 보이 진 않았을 거다.”
그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김선우가 진천우와 관련이 있는 건 확정이지만, 그의 부하일 가능성은 적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거지.”
최일현은 잠시 붉게 물들었던 진천 우의 영혼을 다시 떠올렸다.
“진천우가 보였던 그 감정의 정 체.”
“혼란이에요.”
이서준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혼란?”
“네. 확실해요.”
‘감정 감지’를 가진 이서준이기에 진천우의 감정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물론 진천우가 김선우를 보며 혼란 을 느낀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혼란이라…… 김창현에 이어 김선 우까지…… 그렇담 둘 사이에도 어 떠한 관계가 있을 수 있겠군.”
이들은 김선우가 김창현에 대해 쫓 던 것을 떠올렸다.
역시 김선우가 김창현을 쫓았던 것 은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혹시 진천우에게 실험을 당했다든 가 하는 건 아니겠죠?”
유아라의 물음에 최일현이 말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뭐, 일단 여기서 백날 떠들어
봤자 나오는 건 없으니 난 내 할 일 하러 가마.”
그 말을 끝으로 최일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덕현도 얼마 안 가 그를 따라 사라졌다.
이서준과 유아라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유아라의 물음에 이서준은 김선우 가 있는 숙소로 시선을 돌렸다.
머릿속에 김선우와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난 믿어보려고.”
아포리아 숙소.
나는 침대에 앉아 새롭게 얻은 권 능을 확인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이건 뭐냐?”
[권능]
차원 여행[인과율 30]
—세계의 기록소를 열람해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모든 차원의 시간대 를 1회 관측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능력이 떠올랐다.
차원 여행.
인과율 10의 권능인 [차원 관측]과 비슷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차원 관측]은 내가 경험한 차원의 시간대를 관측하는 것이었다면, 차
원 여행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차원 의 시간대를 관측하는 것이었다.
즉, 이서준이 죽고 난 이후의 미 래, 혹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의 시간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