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각종 체력 단련 시설이 설치되어있 는 강화계 훈련장.
약 70명 정도의 3학년 학생이 모 여 강화계 심화 수업, ‘마력장 돌파’ 훈련 기록 측정을 하고 있다.
마력장이란 장막과 같이 짙은 마력 으로 뭉쳐진 덩어리를 말하는데 이 것을 빠르게 뚫고 지나가는 쪽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해주는 시험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깊은
심해에서 빠르게 탈출하는 시험이라 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의 시험을 구경 하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 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윤하영이 좀비처럼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철푸덕. 땅에 떨어진 젖 은 수건처럼 내 옆에 쓰러지듯 앉았 다.
“으…… 멀미할 거 같아. 힘들어어 어……
……엄살은.
나는 천장의 전광판에 떠오른 윤하 영의 기록을 바라보았다.
“기록 잘 나왔네. 최고기록 아니 야?”
마력장 돌파 15.67초.
이 정도면 전교에서 손꼽히는 성적 이다.
아마 여섯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 을까.
작년 초만 해도 종합 80위권에 있 던 그녀의 성적을 생각하면 그야말 로 엄청난 발전.
이서준, 유아라만큼의 재능은 아니
지만 얘도 확실히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니고 있긴 하다.
“으응, 최고기록이기는 하지.”
윤하영도 나를 따라 전광판의 성적 을 보더니 대답했다.
그러면서 은근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기분은 좋은 모양.
바로 그때.
“와아아!”
어디선가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방금 막 마력장을 통과한 이서준을 중심으로 모든 학 생이 입을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와, 뭐냐? 엄청 순식간에 지나갔 는데.”
“몇 초지?”
“이서준 6.32초!”
교사의 외침이 크게 들려왔다.
이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전광판 을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음에도 만족 스럽지 않은 얼굴이다.
반대로 윤하영은 아까의 신난 표정 은 어디 갔는지 멍하니 ‘6초……?’ 라며 중얼거린다.
“……압도적이군. 1학기 사이에 2
초나 단축시킬 줄이야.”
교사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아쉽네. 중간에 마력 제어 실 수만 안 했어도 1초는 더 단축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털썩 내 옆에 앉으며 물 었다.
“네 차례는 언제야?”
“글쎄. 이제 얼마 안 남았을걸.”
“그래?”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이번 시험 얘기 들었 어?”
“아〜 심연 탐험인가 그거?”
이서준의 물음에 윤하영이 대신 대 답했다.
“응. 심연 탐험.”
이번 1차 중간시험의 메인 종목인 ‘심연 탐험’.
나도 모르는 시험이다 보니 이름만 들어서는 뭔가 심오한 느낌이 든다.
“어떤 시험이려나. 이름만 봐서는 감이 안 오는데.”
윤하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듣기로는 트라우마 극복 같은 걸 위해 만들어진 시험인 거 같던데.”
“트라우마 극복?”
윤하영이 물었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소문에 의하면 무의식과 관련된 시험이라고 하더라고.”
무의식을 통한 트라우마 극복이 라…….
악몽의 안개랑 비슷한 건가?
“뭔가 특이한 시험이네. 근데 서준 아. 그건 어떻게 안 거야?”
윤하영의 물음에 이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은 아닌데, 심연 탐험이 본래 는 매년 치러졌을 만큼 꽤 전통 있 는 시험이었다 하더라고.”
“그래? 처음 듣는데.”
“그게, 이 시험이 폐지된 게 30년 전이거든.”
이서준의 말에 윤하영이 눈을 깜빡 였다.
“30년 전?”
“응, 30년 전 시험 도중에 어떤 사 고가 터졌대. 학생 한 명이 죽었고, 그 뒤로 폐지됐다고 들었어.”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30년 전이라…….
뭔가 낯이 익은 숫자인데.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잠깐, 30년 전?”
내 중얼거림에 윤하영이 내게 시선 을 돌렸다.
“왜?”
“30년 전이면 진천우 세대잖아.”
내 기억이 맞다면 진천우가 1학년 이던 시절일 것이다.
“……진천우?”
그리고 진천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윤하영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진천우가 시험을 봤던 해에 사고가 터지면서 폐지됐다고 해.”
“ 흐음......
다른 시기도 아니고 하필 진천우가 있던 시대에 터졌다고 하니 뭔가 심 상치 않게 느껴진다.
또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비밀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하
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혼자 진지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3학년 A반 김선우.”
나를 부르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동시에 모든 학생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마력장 돌파 측정의 내 차 례가 온 것이다.
윤하영은 나를 보더니 작게 웃었다.
“다녀와.”
“응.”
그렇게 나는 마력장 앞에 섰다.
눈앞에 푸른 빛으로 감싸진 긴 터 널이 보였다. 그 안에 젤리처럼 뭉 쳐진 마력이 눈에 들어온다
“방법은 간단하다. 터널 안에 입장 해 최대한 빠르게 통과하면 된다. 입장과 동시에 카운트가 세어지니 원하는 때에 들어가면 된다.”
교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잠재되어있던 마력을 천천
히 끌어올려 전신의 피부 위에 덮어 씌었다.
마력장의 탄력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
준비 완료.
그럼 가볼까.
파앗——
나는 바닥을 박차며 마력장 안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엄청난 탄력감이 느껴지며 마력의 에너지가 내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몸이 바깥으로 튕겨질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내 몸을 밀 어내는 마력을 파헤치며 계속해서 달렸다.
“후앗!”
얼마 안 가 터널 밖으로 빠져나왔다. 감탄 소리 하나쯤을 들릴 줄 알 았는데 어째 쥐 죽은 둣이 조용하 다.
뭔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려는 그 때 교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김선우 5.34초!”
“……미친.”
동시에 환호성 대신 온갖 욕설이 섞인 감탄이 들려왔다.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발현계 마법 훈련장.
모든 개인 훈련을 마친 나는 오늘 의 훈련 결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 속성의 제어가 능숙해집니다.]
[바람 속성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바람 속성 제어술][등급
0(94%)]
“……와. 진짜 이제 얼마 안 남았 네.”
근 한 달간 바람 속성 훈련만 했 더니 숙련도가 어느덧 94%에 도달 했다.
남은 숙련도는 이제 6%.
한세연에게 받은 [폭풍의 심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성과였다.
이거 조만간 감사 선물이라도 챙겨
줘야겠네.
“그나저나 다음 속성은 뭐로 하 지.”
바람 속성을 완전히 다룰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음 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남은 속성이라 해봤자 화염과 얼 음. 그리고 비주류 속성인 땅, 물 같은 것들밖에 없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얼음 속성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력의 고체화로 얻을 수 있는 뛰 어난 유틸성과 안정성 때문이다.
물론 기존 마법과 사용 방법이 달 라 숙련도를 쌓는데 훨씬 많은 시간 과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외부자의 혜택이 있다.
상점의 효과를 잘 이용하면 얼음 속성의 숙련도를 빠르게 쌓을 방법 이 있을지도 모른다.
뭐, 아직 시간이 있으니 다음 속성 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흐아암.”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기숙사 로 돌아갔다.
“응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그레텔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며칠 사이에 또 몸이 더 커진 그 레텔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최소 한 4cm 정도는 더 커진 거 같은데.
그렇게 무거워진 그레텔을 안아 들 고는 머리의 나뭇가지를 쓰다듬어주 는 척 혹시 새로운 열매가 열리진 않았나 나뭇잎 사이사이를 열어보았 다.
“……응애?”
그때 내 살기(?)를 읽은 그레텔이 파박! 하고 나를 밀쳐내더니 내 몸
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곤 화려한 백 덤블링을 선보이 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쳇. 이거 귀찮게 됐네.”
그레텔이 유대의 효과로 내 감정을 읽으며 빠르게 도망쳤다.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
“그레텔, 그런 거 아니야. 혹시 벌 레가 먹지 않았나 걱정되어서 확인 한 거야.”
“응애.”
하지만 이미 내 감정을 읽어버린 그레텔은 나를 향한 의심을 풀지 않
는다.
“거, 정말이라니까?”
“응애.”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 그레텔.
무슨 말을 해도 내 말을 듣지 않 을 것 같아 결국 포기했다.
“그레텔도 사춘기가 온 건가……
생각해보니 최근 나를 향한 애교가 부쩍 줄은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매번 살갑게 굴었던 것 같은데.
내가 편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
다.
“씁쓸하구먼……
그렇게 나를 경계하는 그레텔을 놔 두고는 쇼파에 벌러덩 누웠다.
잠시 피곤함에 눈을 붙이려는 그때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메시지 알람 이 울렸다.
곧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포리아 근무 날짜가 정해졌다. 이번 주 토요일이다』
“ 후우......
드디어 중요한 메인 스토리가 코앞 으로 다가왔다.
파도 소리가 울리는 해안가.
한 남성이 배에서 내려 육지 위에 올랐다.
고개를 들자 거대한 성벽과 수많은 마도구로 보호되어있는 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언제나 살벌하구만.”
남성이 지저분한 수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남성은 천천히 성벽 입구에 다가섰 다.
입구에 들어서자 문지기가 등장했다. 단순한 문지기는 아니었다.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마력은 그가 S등급에 가까운 괴물이라는 것 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그때 문지기가 다가온 남성을 보고 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일현 님?”
그 물음에 남성. 아니, 최일현은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문지기는 종이를 받았다.
“회장님께 받은 허가증이다.”
“……아, 확인했습니다. 들어오시 죠.”
끼이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최일현 이 내부를 둘러보았다.
“역시 아포리아인가…… 생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네.”
멍하니 중얼거리던 최일현은 뚜벅 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최일현은 성벽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미로와 같은 공간이었다.
최일현은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며 이동했다.
-……주, 죽여줘.
—..으흐흐. 끅..
어디선가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포리아에 수감된 범죄자들의 목 소리였다.
-……너, 최일현이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최일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안대로 눈이 가려져 있고 전신이 사슬 같은 것에 뒤덮인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는지 몸은 뼈처럼 앙상했고, 머리는 전부 빠져 대머리가 되었다.
—……그, 숨소리 기억해…… 네게 패배한 이후 단 한 번도…….
“……혈귀인가.”
S등급 마법사, 혈귀.
35년 전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악명 높은 살인마였다.
“쯧. 재수 없네.”
최일현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걷다가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정중앙에, 수많은 술식에 둘러싸인 제단과 비슷한 것이 눈에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회색 연기 같은 것 이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최일현은 그것의 앞에 섰다.
착잡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최일현의 중얼거림에 회색 연기가 잠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작게 움 직였다.
그것은 바로, 봉인되어있는 진천우
“언제봐도 참 하찮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 윤경이를 죽여서 얻은 결 과가 고작 이런 거라니……
최일현의 말에 영혼은 이번에는 반 응하지 않았다.
가만히 영혼을 응시하던 최일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천우. 나는 지금까지 네 영혼의 소멸을 위해 계속 연구해왔다. 네 영혼이 소멸되지 않는 한, 너는 언 제든지 되살아나려 할 테니까.”
꾹꾹 눌러 담은 무미건조한 목소 리.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다행히 연구의 진전은 꽤 됐어. 수많은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중요 한 단서 몇 개를 얻었거든. 뭐, 네 충실한 부하들이 널 구하러 아포리 아까지 쳐들어온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약속하마.”
최일현이 영혼을 노려보았다.
“윤경이의 복수를 위해 네 영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소멸시 켜주마.”
그 말을 끝으로 최일현은 다시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 다시 계단에 오 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최일현의 머릿속에 불현듯 무 언가가 떠올랐다.
“아, 참. 묻고 싶었던 게 하나 있 는데.”
최일현이 뒤를 돌아 영혼을 바라보 았다.
“김창현 그 녀석은 대체 뭐냐? 요 즘 그 녀석 때문에 난리인데.”
바로 그 순간.
진천우의 영혼이 크게 떨리기 시작 했다. 영혼의 연기가 흩어지며 회색
빛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최일현은 잠시 놀란 눈으로 영혼을 바라보았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녀석이 깊은 동요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녀석의 모습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