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마법 테러에 취약한 이 세계 특성 상, 혹시 모를 테러를 방지하기 위 해 각국에는 ‘마력 감지 레이더’라 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마법 선진국 중 하나인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재앙급 마수인 구미호와의 전투 여파로 일본 협회 에서 조사를 위해 출동했다.
나와 엘린은 신분상 협회와 마주쳐 좋을 건 없었기에 아베노 일족에게 뒤를 맡긴 채 산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산을 내려 온 지 30분쯤 지났을까.
나와 엘린, 렌. 그리고 겐사쿠는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잠시 휴 식을 취했다.
“후우. 이 정도면 협회에 걸릴 일 은 없겠지.”
엘린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 얼거렸다.
“응. 제대로 따돌렸을 거야.”
렌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 더니 힐끔 겐사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마수가 다시 봉인되어서 뭔가 아쉽게 됐네요.”
“괜찮다. 일족의 힘을 되찾을 기회 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겐사쿠의 말에 렌은 고개를 끄덕이 고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묘하게 부담스러운 눈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 사숙님?”
“왜 부르지?”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다.
뜬금없는 사과에 뭔가 싶어서 눈을 깜빡이며 렌을 바라왔다.
“……솔직히 말해서 거짓말을 하시 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습니다. 처음 사숙님과 짧게 합을 겨뤘을 때 그렇 게 강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거든 요.”
“ 아.”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처음 나 와 렌이 겨뤘을 때와 여우를 상대했 을 때의 실력 차이를 보고 하는 말 인 모양이다.
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문이 들 만도 하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설마 그렇 게 강한 힘을 가지시고도 힘을 숨기 시다니…… 마음만 먹으면 저를 언 제든 죽일 수 있으셨을 텐데……
아니, 그게 본 실력 맞아.
“침착성, 통찰력, 절제력…… 사숙 님 덕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렌이 90도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 였다.
“......어, 그래.”
그렇게 다시 짧은 시간 침묵이 이 어지고.
나는 바위에 걸터앉은 채 오늘 있 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정보들이 꽤 있었다.
크루아스의 비밀, 재앙급 마수의 목적, 그리고 ‘신비의 사도’가 가진 의미.….
하지만 그것들보다 나를 더 의문에 차오르게 했던 것은 바로 진천우가 나를 이 세계에 끌어들였을지도 모 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가끔 하던 그 생각이 다시 자연스레 떠올랐다.
‘과연 이 세계가 정말로 소설 속이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
그리고 만약 이 세계가 실제로 존 재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라면.
내가 읽었던 소설은 대체 무엇이었 을까.
“......흐음.”
“저, 종사님?”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때.
내 옆자리에 따라 앉은 엘린이 나 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재앙급 마수와 어떤 이야기 를 나누셨던 겁니까?”
질문이 질문이다 보니 꽤 조심스러
운 말투였다.
“그냥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진천 우가 무엇을 요구했었는지 그런 것 들이지.”
렌도 흥미가 생겼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 몇몇 정보들을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진천우가 크루아스의 처치법을 물 어봤던 것. 그리고 재앙급 마수들이 신비의 사도라는 것.
그렇게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설명 해주던 중,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혹시 영겁의 봉인술에 대해 알고
있나?”
“……영겁의 봉인술?”
엘린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잠 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다시 입 을 열었다.
“그거 고대 마법 아니에요?”
“맞다. 진천우가 여우에게 사용한 봉인술이라더군.”
엘린이 턱을 매만졌다.
“예전에 술식 관련 서적을 읽다가 본적은 있어요. 100년 전에 실종된 마법이라고.”
“100년 전?”
“네, 제가 알기론 순수 술식과 마력으로 발동되는 마법은 아니고, 자 격 같은 게 필요할 거예요.”
자격이라…….
일부 마법 중에 자격이 필요한 마 법이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로 룬의 일족만 사용할 수 있는 [룬의 속박]이 있다.
“ 흐음......
그때 겐사쿠가 끼어들었다.
“영겁의 봉인술에 필요한 자격은 내가 알고 있소.”
...
겐사쿠는 내 시선을 마주하더니 말 했다.
“신비와의 거래를 통한 인정이오.”
다음날 이른 아침.
일본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와 헤어진 엘린은 곧장 한성가로 향했고, 렌은 일본에서 좀 더 조사 할 것이 있다며 나중에 연락을 주겠 다며 헤어졌다.
겐사쿠는 내게 흥미가 있다며 궁금 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 는 말을 전했다.
참고로 아베노 일족이 나와 엘린에 대한 것을 숨겨주었기에 일본에는 간단한 ‘마수 토벌’로 사건이 종결 됐다.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10월에 가까워지자 어느덧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겨졌다.
양옆에 가로수처럼 길게 늘어진 나 무와 붉게 물드는 단풍.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길을 감상 하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선우?”
뒤를 돌자 이서준이 반가움에 찬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와. 여기서 다 보네.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이서준이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 니 말했다.
“학교에만 있기 답답해서, 야외 훈 련 좀 하다가 이제 오는 길.”
“흐음. 그래?”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을 보면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넌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난 본가에 다녀왔지. 벽을 넘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조언을 좀 받 았어.”
“벽 이라……
이서준도 19살에 접어들었으니 슬 슬 ‘천재’ 특성의 힘이 제대로 발휘 할 때가 되었다.
아마 이맘때쯤부터 이서준의 성장 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었 지.
애초에 [천재] 특성이 괜히 100만
포인트나 잡아먹는 게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 벽에 막힌 기분인데.
미래의 사건이 앞당겨지는 만큼, 나도 빠르게 강해져야 할 텐데 마력 제어술이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 고 있다.
아무래도 나도 이서준과 같이 ‘깨 달음’이 필요한 구간에 도달한 거 같은데 그 깨달음이라는 게 얻기가 어디 쉽나.
“에휴......
내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 내쉬 자 이서준이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왜 갑자기 한숨이야?”
다음날 월요일.
각국의 마법 관련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 ‘오라클’에서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일본 기후현에 봉인되어 있던 재 앙급 마수, ‘구미호’의 봉인이 일요 일 밤 12시에 잠시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일본 음양사 일족
‘아베노 일족’과 다른 현지 마법사 들의 도움을 받아 큰 문제 없이 재 봉인에 성공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에 올라온 하나의 기 사.
내용만 보면 단순한 해프닝처럼 적 혀있었지만, 그 내용은 꽤 심각했다.
재해에 가까운 재앙급 마수가 둥장 했다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수의 봉인이 풀린 지 얼 마 되지 않아 다시 봉인에 성공했다 고 한다.
자꾸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는 최근 시국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서윤은 뉴스를 여러 번 살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일본.”
평소였으면 그냥 넘어갔을 기사의 내용.
그러나 최근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 를 한번 들은 경험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바로 저번 주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김선우가 일본에서 온 통화 를 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기 때
문이다.
“......흐음.”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서윤.”
흐릿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서윤!”
그 외침에 최서윤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자 교탁 앞에서 교사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최서윤은 순간 얼 굴을 굳혔다.
아, 맞다. 조례 시간이었지.
최서윤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최서윤은 스마트 학생 수첩을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교사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 가 입을 열었다.
“……뭐, 다른 학생도 아니고 서윤 이면 그럴 수 있지. 요즘 서윤이가 스트레스가 많나 보네. 그렇지?”
“왜 특정 학생만 편애해요!”
한 학생이 크게 외쳤다.
“그럼 너도 서윤이처럼 매 시험에
서 1둥 하던가.”
교사의 장난스런 말에 학생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유머였지만 생각보다 묵직했다.
“지독하네. 성적 제일주의......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중요
사항을 전달하겠다.”
교사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2학기 1차 중간시험 날짜와
시험 종목이 결정되었다.”
“아, 뭐야. 벌써 시험이야?”
“실습 과제 때문에 바빠 죽겠는 데.”
조례 시간. 3학년 교실.
담임 교사, 이희영의 말에 이곳저 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사실 나도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곧 터질 아포리아 사건과 시 험이 겹칠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조 금 아프긴 하다.
“자자, 실습 활동한다고 바쁜 거 다 압니다. 그래도 마지막 학기니까
끝까지 열심히 잘 준비하자고요.”
“그래서 메인 시험이 뭐예요?”
“이번 1차 중간시험의 메인은 전 학년 단체 시험으로 결정됐습니다.”
“……전 학년 단체 시험?”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 학년 단체 시험.
작년 2학기 기말시험처럼 모든 학 년이 함께 모여 치루는 시험을 뜻한다.
전 학년이 하는 시험은 매년 있어 이에 놀라는 학생은 없었지만, 보통
기말시험에 치루는 것이 일반적이기 에 몇 명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 였다.
하지만 이건 원작에서도 진행되었 던 흐름이었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이희영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동시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원래는 기말시 험에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2학기에 태휘제와 졸업 여행으로 일정이 빡 빡해서 1차 중간시험으로 앞당겨졌 습니다.”
“설마 작년과 똑같이 멸망전으로 진행되는 거예요?”
한 학생이 손을 들며 물었다.
동시에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 멸망전 같은 거면 좀 아닌데. 김선우랑 같은 팀이 너무 유리하잖 아.”
“난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PTSD 가 온다. 폭우 마법은 진짜……
PTSD 올 것까지야.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중간시험 역시 작년처럼 멸망전 형식으로 진 행될 예정이다.
팀을 나눠서 전투를 치르는 방식의
시험.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이서준을 제외한 모 든 학생 상대로는 패배하지 않을 자 신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몇십 명의 학생을 동시에 상 대해야 한다고 해도 내 생각은 변함 이 없다.
이번 시험도 포인트를 위해 최대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게 화려하게 해 야지.
하지만 그때.
“아뇨. 이번 시험의 룰은 조금 다 릅니다. 각 개인의 성적으로 절대
평가를 합니다.”
“......웅?”
예상치 못한 이희영의 말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절대 평가?”
뭐지? 원작에서는 이번 시험도 분 명 상대평가였는데.
그때 이희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상대평가로 치 러지는 멸망전 형식의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번 1학기 기말시험에서 멸망전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을 보니 나 때문에 생긴 문제인 모양이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도 그 말에 담 긴 의미를 이해한 듯 내 쪽으로 시 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는 선망, 두려움, 경외 등이 담겨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하영도 힐끔 보더니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선우야. 저번 멸망전에서 혼자서 60명 가까이 상대하는 건 선 넘긴 했어.”
갑작스레 바뀐 시험의 룰에 황당함 을 느끼던 그때.
이희영이 말을 이었다.
“이번 중간시험은 ‘심연(深溫) 탐 험’입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