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우리는 겐사쿠의 안내에 따라 마수 가 봉인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치는 사찰과 그리 멀지 않은 뒷 산이었다.
“와…… 이 바위에 재앙급 마수가 봉인되어 있는 건가?”
엘린이 눈앞의 거대한 바위를 올려 보며 작게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바위에는 수많은 술식이 그려져 있
고 그 위에는 여러 장의 부적이 덕 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길한 마력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바위에 그려진 술식을 살펴보 았다.
재앙급 마수를 봉인한 술식답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심오하고 복잡했다.
억지로 풀려고 하면 풀 수는 있겠 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아마 일 주일 정도는 꼬박 새워야 하지 않을 까.
“봉인은 바로 풀 수 있나?”
내 물음에 겐사쿠는 바위 위의 술 식을 손으로 쓰다듬더니 말했다.
“이 봉인은 우리 아베노 일족의 봉 인술로 되어있소. 아까 말했듯 보름 달이 뜬 날이면 언제든 풀 수 있 지.”
그 말에 잠시 의문을 느꼈다.
아베노 일종의 봉인술로 되어 있다 고?
“겐야의 일지에선 진천우가 다시 재봉인을 했다고 적혀 있던데.”
“맞소. 하지만 당시 봉인의 형태가 불안정했기에 우리 일족이 재봉인한 거요.”
흐음. 그런가?
나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해가 서서히 지고 있지만 보름달이 떠오르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제아무리 봉인으로 약해졌다고 하 지만 상대는 재앙급 마수.
남은 시간을 이용해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한다.
다행히 내 머릿속엔 그럴싸한 계획 이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나는 겐사쿠에게 물었다.
“그럼 봉인된 마수의 정보를 알려
줘.”
지피지기 백전백승.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 할 적의 정보를 미리 알 필요가 있 다.
겐사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위 를 올려보며 말했다.
“이 바위에 봉인된 마수는 아홉 개 의 꼬리를 가진 여우 요괴, 구미호 요.”
“구미호?”
겐사쿠의 말에 엘린이 끼어들었다.
“구미호라면 8년 전쯤인가 중국에
서 토벌된 몬스터가 아닌가요?”
“구미호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 과 중국에도 있는 요괴요. 구미호 일족에도 종류가 많기에 전부 설명 하긴 힘들지만, 이곳에 봉인된 구미 호는 재앙급 마수라 불리는 대요괴 인 만큼 그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가 졌소.”
구미호라…….
봉인된 마수의 정체는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 마수 가 아닐까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상대가 구미호라는 건 나에게 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구미호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주력 으로 ‘환술’을 사용한다는 것.
하지만 내게는 [은월환절]이 있다.
즉, 녀석이 환술을 사용해도 어느 정도 대웅이 가능하다.
[달빛을 받았습니다.]
[‘달의 포옹’ 효과가 발동됩니다.]
[모든 회복, 저항 효과가 200% 상 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4배 상승합니다.]
시간이 지나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밤하늘은 어두워지고 둥근 보름달 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달의 가히 효과가 발동되 며 강렬한 에너지가 내 몸 안에서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요괴의 요력은 보름달이 가장 높게 뜬 시각에 가장 강해진다고 한다.
그 시각은 밤 12시 근처.
봉인 해제는 그때 이루어질 예정이 다.
“종사님, 술식 설치 전부 끝냈습니다.”
엘린이 진지함이 담긴 얼굴로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봉인 바위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깔린 수많은 술식.
최근 아포리아 사건을 대비해 내가 고쳐놓았던 함정 술식 들이었다.
“잘했다.”
칭찬 한마디를 해주자 엘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난 뒤 나는 주변을 둘러보 았다.
어딘가 분주한 분위기.
처음엔 나와 엘린, 렌. 그리고 겐 사쿠 이렇게 넷만 있었지만, 지금은 5명의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
바로 겐사쿠와 같은 일족인 아베노 일족의 사람, 아니 요괴들이었다.
재앙급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 겐사 쿠가 부른 지원군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나는 근처 작은 바위에 앉아 스마트 학생 수첩 을 내려보았다.
[선배님, 본가에서 훈련 중인데 힘 들어요.. (기절 이모티콘)]
[선우야 너 오늘 훈련장 안 왔던데 혹시 어디 놀러 갔어??????]
바빠서 확인하지 못한 사이 메시지 들이 꽤 쌓여 있다.
최서윤과 윤하영. 이서준…….
그리고 누군지도 잘 모르지만 친한 척 메시지를 보낸 몇몇 학생들.
……엄청 많이 왔네.
친한 애들 위주로 톡톡 답장을 입
력하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아직도 이게 맞는지 모르 겠다. 애초에 S등급 마법사 셋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됐고, 우리는 종사님만 믿고 따 르면 돼.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소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렌과 엘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냐. 솔직히 말해서 저번 에 짧게 겨뤘을 땐 그렇게 강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그 말에 엘린이 피식 웃었다.
—그래? 이번에 보면 깜짝 놀라겠 네.
그때 였다.
“시간이 됐소.”
겐사쿠가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저 높은 어둠 속에 보름달이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몸 상태를 최 종 점검하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 구체 를 구현했다.
우우우웅!
내 손바닥 위로 마법 구체가 구현 되기 시작했다.
[달의 가히의 효과로 구체가 은빛
을 넘어, 금빛의 형태로 변하는 데 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 다.
그리고.
“......뭐야?”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며 놀란 시선 이 느껴졌다.
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게 떨리는 눈으로 내 손 위에서 구현되는 금빛의 구체를 바라보았 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 내 손 위에 구현된 마법 구
체는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낸 그 어 떤 마법 구체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위력이 담겨 있었으니까.
우우우웅!
겐사쿠는 내 손 위에서 구현되는 마법을 지켜보더니 일족들에게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게 5명의 아베노 일족이 바위 에 둥글게 서더니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내 그들의 손바닥 아래로 강 렬한 빛이 뿜어졌다.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 기 시작했다.
부적이 덕지덕지 붙여진 바위는 불 길한 마력을 내뿜으며 금이 가기 시 작했다.
쩌저적!
바위 전체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졌다.
이내 바위의 형태가 점점 커지더니
마치 산을 올려보는 듯한 거대한 여 우의 형상으로 변했다.
새하얀 얼굴에 찬란하게 휘날리는 금빛의 털.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질병의 마수를 처음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 다시 떠올랐기 때 문이다.
[……으음. 뭐지? 누가 봉인을?]
여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레 봉인이 풀려난 상황에 어
리둥절하면서도 즐거움이 담긴 목소 리였다.
그때 여우의 시선이 나를 향하더니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나를 보았다기보다는 내 손 위에 구현된 마법 구체를 보고는 당황하 며 행동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설치해두었던 수십 개의 술식이 빛을 발했다.
이내 술식 위로 수십 개의 빛의 사슬이 올라와 여우의 발을 묶기 시 작했다.
[이런.]
나를 보는 여우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마법 구체를 방출했다.
파아아아앙——
방출과 함께 생겨난 엄청난 파동으 로 내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금빛의 마력은 어둠을 밝히며 녀석 을 향해 빠르게 뻗어갔다.
여우는 당황하며 피하려 했지만 수
십 개의 속박 술식이 발을 묶고 있 었기에 녀석은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녀석의 가슴에 박힌 구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공격은 제대로 적중했다.
여우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 며 바닥이 붉은 피로 적셔졌다.
아무리 재앙급 마수라 할지라도 방 금의 공격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 녀석은 힘을 잃은 듯 몸을 웅크리며 상처를 재생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달의 가히의 마력을 쥐어 짜낸 구체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멀쩡할 수 없지.
“흐음.”
다행히 상황이 예상보다 쉽게 흘러 가는 거 같은데.
봉인술로 약화되었다는 말이 사실 인가 보네.
나는 녀석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말 을 걸었다.
“여우, 네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내 물음에 여우는 대답하지 않았 다.
그저 고통에 침을 질질 흘리며 경 악에 찬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 리고 있을 뿐.
[크으으윽! 뭐지? 너는 대체…….]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한다.
[……왜, 왜 나를 공격 하는 것이 냐‘?]
왜 공격하긴. 적이니까 공격하는 거지.
그때 여우가 나를 보더니 눈을 찌 푸렸다.
[아니, 잠깐. 네 녀석…… 어떻게 그런?]
무언가 새로운 의문이 생겨난 모양 이다.
여우의 표정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말도 안 돼. 설마 그 망할 놈이 정말로……?]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 던 여우가 불길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지상이 다시 한번 지진이 난 것처 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가슴에 생긴 구멍은 빠르게 재생되었고 나를 향한 눈빛은 적대 감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내 질문에 대답할 의향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두들겨 패는 수밖에.
나는 곧바로 다음 능력을 사용했다.
[사용 효과 ‘대자연의 심장’을 발동 합니다.]
[사용 효과 ‘투쟁심’을 발동합니다.]
두 개의 사용 효과가 [달의 가히 와 중첩되며 다시 한번 내 육체에 엄청난 힘이 깃들었다.
나는 내 머리 위로 7개의 마법 구 체를 구현했다.
구체를 따로 압축하지 않았음에도 은은한 금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방출.
파앙——파앙——
파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악!]
7개의 마법 구체는 여우의 몸에 적중하며 다시 한번 거대한 비명을 울렸다.
이어서 다시 구현.
그.리고 방출.
다시 구현. 방출.
나는 끊임없이 녀석의 몸뚱어리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봉인으로 약해 진 녀석이라 해도 재앙급 마수는 재 앙급 마수라는 걸까.
녀석은 끝없이 퍼붓는 내 공격에도 여전히 불길한 마력을 내뿜으며 견 디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떠한 불안감도 느 끼지 못했다
녀석에게 느껴지는 마력은 분명 강 대했지만, 이전에 겨루었던 질병의 마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하 다.
달의 가호 효과가 끝나지 않는 한, 녀석에게 패할 일은 없다.
[……크으으으윽!]
그때 파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여 우의 발을 묶던 수십 개의 사슬이 끊어졌다.
짧은 순간.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녀석이 공격 을 피하기 위해 뒤로 크게 점프했다.
도망치는 선택을 택했지만, 내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손바닥을 펼쳐 술식을 구현했다.
동시에 바닥에 수십 개의 빛의 줄 기가 솟아오르며 녀석의 다리를 강 하게 붙잡았다.
룬의 일족의 비기, 룬의 속박이었다.
[이건 또 무슨……
룬의 속박이 녀석의 몸을 묶자, 렌 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빠른 속도로 여우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흐아아아압一!”
푸우욱!
렌은 손에 쥐어진 단검이 여우의 목을 크게 찔렀다.
인간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여우 였기에 일반적인 단검으로는 상처도
입힐 수 없겠지만 그는 s등급의 마법사, 단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마력이 담긴 검기가 구현되 어 있다.
푸우우욱!
[끄아아으]'!]
목이 찔린 여우는 그대로 지상으로 다시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거대한 진동이 울리며 희뿌연 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녀석은 전투 의지를 상실한 듯 추 가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크으윽... 봉인으로 힘만 잃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억울한 듯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머리 위로 마법 구체를 다시 여러 개를 구현해 녀석을 향해 다가 갔다.
[그, 그만! 멈춰!]
나는 녀석의 외침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들려온 목소리는 음성이 아니 었다.
신비와 같이 나에게만 전해지는 목 소리였다.
[그대 또한 나와 같이 달을 수호하 는 요괴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죽이려 드는 건가……?]
«..2”
방금 잘못 들었나.
나보고 요괴라고 한 거 같은데.
그때 내 머릿속에 ‘달의 가호’에 적힌 문구가 떠올랐다.
‘달을 수호하는 요괴의 피’
……설마.
[어떤 방법으로 그대가 혼돈을 얻 게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같은 동족 에게 이러지 마시오…… 내게 원하 는 게 있다면 모두 들어줄 테니, 부
디…….]
“하......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또 시작이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