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최서윤은 잠시 통화한다며 나간 김 선우가 사라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 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전화를 받는 순간 보였던 그의 표정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했다.
뒤늦게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아 니라는 뉘앙스를 풍기긴 했지만 짧 은 시간 굳었던 그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기에 괜한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구길래 표정이 굳으신 거 지?”
좋은 전화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선배님이 표정을 굳히며 전화를 받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 니까.
대체 무슨 전화일까.
스마트 학생 수첩 위에 떠 오른 전화번호를 봤을 땐 국제전화가 분 명해 보였는데.
“국가 번호……
최서윤은 자연스레 화면에서 보았 던 국가 번호를 떠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고 인터넷에 자신이 보았 던 번호를 검색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창.
“......일본?”
김선우에게 온 전화는 일본에서 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김선우가 일본과 별다른 교류가 없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 기에 조금 예상외였다.
국제전화라고 해봤자 5대 마법 선 진 국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었 으니까.
“으음.”
일본과 연락할 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혹시 저번 네팔 때처럼 정부로 부 터 지원요청이라도 받으신 건가.
그러고 보니 최근 일본에 역병이 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하던 데.
거듭 추리를 이어가던 최서윤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멋대로 뒤를 캐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선배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는 하지만…… 언젠간 직접 말씀해주시겠지.
그렇게 수많은 의문에 사로잡혀있 던 사이, 통화하러 나갔던 김선우가 다시 돌아왔다.
최서윤은 눈을 깜빡이며 그의 얼굴 을 바라보았다.
김선우도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마 주하다가 입을 열었다.
“……눈빛이 왜 그래? 무슨 일 있 어?”
“ 아.”
최서윤은 잠시 머쓱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누구한 테 온 전화에요?”
“외국 길드에서 온 전화야.”
“외국 길드요?”
김선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 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졸업 후 대우 좋게 해줄 테니 자기 길드로 오라는 거지. 흔히 있 는 일이야.”
김선우는 정말로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정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전화를 받고 굳었던 김선우의 표정
이 그녀의 머릿속을 다시 헤집었다. 최서윤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가만
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수업과 개인 훈련을 마친 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앉아 마저 하지 못한 함정 술식들을 고쳐 나가고 있었다.
며칠 이것만 붙잡았더니 이제는 술 식에 꽤 능숙해졌다.
[술식 이해도]의 숙련도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술식 수정을 완성하 는 텀도 점점 짧아졌다.
“……진지하게 보조계를 좀 익혀봐 야 하나?”
나 진짜로 이 분야에 재능 좀 있 는 거 같은데.
속박 계열은 이미 다룰 수 있으니 환술 계열 마법 몇 개만 익혀도 요 긴하게 쓸 날이 올지도…….
바로 그때.
부우웅…….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메시지 알람 이 울렸다.
[이번 주 토요일 괜찮으십니까?]
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 내게 말했던 ‘대사부의 일지’ 를 볼 날짜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사실 니카리 류의 대사부가 뭐 하 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괜히 더 엮 이다가 거짓말이 들통날 것 같아 거 절하려 했다.
그런데 렌이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대사부의 일지에 진천우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천우.
아마 렌은 룬의 일족이 진천우와 깊은 악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에 의하면 그 역시 진천우를 향한 악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 흐음......
대사부의 일지에 진천우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면 내가 모르 는 사건이 숨겨진 모양인데.
진천우 이놈은 안 찌른 곳이 없네.
[그래, 토요일에 가도록 하지.]
톡톡. 메시지를 전송하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럼 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 나 고야 주부 출입국 게이트에서 뵙겠 습니다. 사숙.]
나는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봤다.
사숙.
“……진짜 부담스럽네.”
안 그래도 종사님 소리 듣기도 거 북한데.
톡톡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나키리 류의 정식 제자가 아니다. 겐야에게 배운 것도 순간 가속 하나 뿐이지. 그러니 나를 사숙이라 부를 필요는 없다.]
“이 정도면 알아서 알아듣겠지.”
답장은 10초도 걸리지 않아서 도
착했다.
[그래도 대사부님의 가르침을 받으 신 분이니 제겐 사숙이 맞습니다.]
“……맘대로 해라.”
시간이 홀러 토요일 오후 1시. 약속했던 렌과의 만남올 위해 인천 의 출입국 포탈 게이트에 도착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출국을 위해 수많 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여행 기분을 뽐낸 여행객과 해외 출장을 위한 직장인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혹시 모를 관심을 피하기 위해 버 킷햇을 깊게 눌러쓰고 얼굴은 마스 크로 가렸기 때문이다.
물론 출국은 ‘김선우’의 신분으로 할 것이긴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해외 여행을 가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 니까 상관없겠지.
“여권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직원에게 출국 심사를 위한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은 사진올 보더니 잠시 표정을 굳혔다.
“……김선우? 잠시 얼굴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을 확인한 직원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아는 척 호들갑을 떨진 않을 까 걱정했는데 도장을 찍고는 무표 정한 얼굴로 쿨하게 여권을 내민다.
하긴, 수많은 스타 마법사들이 출 입국 게이트를 내 집 드나니 듯 이 용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게이트를 통과했다.
번쩍!
나는 천천히 한순간에 달라진 풍경 을 바라보았다.
[나고야 주부 출입국 게이트]
한국 바로 옆에 있는 섬나라지만 왠지 모를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 걸까.
“ 흠.”
그렇게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소리 없이 내게 다가 왔다.
“종사님.”
«..2”
고개를 돌리자 나처럼 모자와 마스 크로 얼굴을 완벽하게 가린 엘린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잠시 황당함을 느끼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얘가 여기 왜 있지.
“……뭐냐? 가 아니라. 흠흠.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내 물음에 엘린이 빙긋 미소를 지 었다.
“종사님을 배웅해드리기 위해 기다 리고 있었습니다.”
“……한세진의 호위는 어쩌고?”
내 물음에 엘린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 저 이틀 휴가입니다. 한세진이 좀 쉬라고 하더군요.”
……휴가도 있구나.
나는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 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아! 렌이 먼저 알려줬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요. 종사 님도 오신다길래 바로 수락했죠.”
……도움?
그냥 일지 확인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나?
그때 엘린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눈 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렌, 이놈은 어디에 있는
거야?”
“안녕하십니까.”
어디선가 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렌 이 미소를 보이며 이쪽으로 다가오 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고 왔는데 세 명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아이러 니한 상황이다.
“사숙님 잘 지내셨습니까?”
렌이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를 향한 S등급 마법사의 공손한
모습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다.
“흐음.”
그때 엘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렌 을 바라봤다. 렌은 엘린의 시선을 마주하더니 쏘아내둣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네 이런 모습은 처음 봐서. 근데 진짜로 종사님을 사숙이라 부 르는구나.”
“예를 갖추는 것뿐이야. 너도 종사 님을 향한 예를 갖추잖아?”
렌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보는 눈도 많은데 바로 이동 하죠.”
“그러지.”
그렇게 우리는 일본 현지 가이드 (?), 렌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렌.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 야?”
조용히 따라오던 엘린이 물었다.
“기후현. 그쪽에 우리 유파의 본거 지가 있거든.”
“……기후현?
엘린이 잘 모르는 표정으로 중얼거 렸다.
렌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길을 걸 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게이트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녹색 빛이 우 거진, 산이 많은 전형적인 시골 풍 경이었다.
“오. 공기 좋네. 마나 농도도 짙 고.”
“조심해. 이 주변은 몬스터 필드니 까.”
여느 나라가 그렇듯 산이 많은 지 역은 몬스터가 출몰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일본의 몬스터는 다른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외형을 가진 몬 스터가 많다 보니 ‘요괴’라는 별칭 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 다면 유적지가 자주 발견된다는 점.
내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 자 렌이 내 눈치를 살피곤 말했다.
“사숙님께서도 처음 와보십니까?”
짧은 시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 들겼다.
“……처음이다.”
어설프게 아는 척할 바엔 차라리
이게 낫겠지.
“그렇군요.”
렌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우리는 산을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신기함을 느 끼던 와중 웬 사찰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 특유 의 사찰들이었다.
렌은 내 시선을 따라 사찰을 보더 니 말했다.
“저 주변에는 음양사 일족이 거주
하고 있습니다.”
“음양사 일족?”
지나가듯 들어본 적 있다.
일본에 사는, 예언이 가능한 일족 이라 했던가.
하지만 대가 이어지며, 예언의 힘 이 약해져 지금은 일반인과 크게 다 르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나저나 원작에서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던 내용인데 직접 들으니 조 금 다르게 느껴지네.
“네, 저희 나키리 류는 음양사 일 족과 함께 지냅니다. 서로에게 도움 을 주는 관계죠.”
내가 몰랐던 설정을 발견할 때마다 뭔가 오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때 렌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나키리 유파의 건물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옛 건 물이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게 사 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생각 이 들지 않는다.
“여기서 혼자 지내는 건가?”
“그렇습니다. 보기엔 이래도 제법 튼튼합니다.”
그렇게 신기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 러보던 그때.
“렌인가?”
어디선가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 가 들려왔다.
일본어였지만 외부자의 혜택 덕에 안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일본 전통의상을 입 은 한 노인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 는 사내다.
마법사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까?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렌이 고개를 숙이며 일본어로 인사 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시 선을 돌렸다.
“……이분들이 저번에 말한 손님인가?”
“네, 맞습니다.”
렌이 말했다.
그러더니 생각났다는 둣 내게 시선 을 돌리며 한국어로 말했다.
“아, 이분은 이 마을의 음양사이신 아베노 겐사쿠님이십니다.”
아베노 겐사쿠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반갑습니다.”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일본어로 말했다.
아마 현지인과 같은 발음과 톤이었 을 것이다.
그러자 렌과 엘린이 잠시 놀란 표 정을 지었다.
하지만 겐사쿠는 여전히 무표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반갑소.”
……이 사람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내 촉이 눈앞의 상대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눈앞의 상대에게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인물 간파’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야?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