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겐야.
나는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 이름 을 되뇌었다.
혹시 원작에서 잠깐이라도 언급이 된 인물이 아닐까 계속 생각해봤는 데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겐야는 내가 아예 모 르는 둥장인물이라는 거다.
“왜 대답이 없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렌이 다시
물었다.
근데 나도 대답하고 싶은데 겐야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거든.
흐음.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순간 가속] 을 겐야라는 자에게 배웠다고 믿는 거 같은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순간 가속이 일반적인 마법과는 조 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게 설마 한 유파의 일인 전승 비 기였을 줄이야.
이걸 어쩐다.
“김선우. 다시 한번 묻겠다. 대사부 겐야님과 어떤 관계지?”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계속 머릿속으로 궁리했다.
렌은 원작에서 ‘선역’에 가까운 인 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 적으로 둬서 좋은 건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의심받을 행동 을 피해야 한다.
……역시 이 방법밖에 없나?
나는 주변을 살피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 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잠재 개성, ‘과몰입’이 발동합니다.]
“……겐야의 사손(師孫)이군.”
내 입에서 홀러나오는 말에 렌이 눈을 찌푸렸다.
“……너 방금 뭐라고?”
“언젠간 나를 직접 찾아오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나
를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군.”
“김선우 갑자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렌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 세한 떨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동요하고 있다.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군. 먼저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룬의 일 족의 종사. 사정이 있어 ‘김선우’라 는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다.”
내 말에 녀석의 두 눈이 크게 떨 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학생인 줄 알았던 녀석이 일족의 종사라는 괴상한 패를 꺼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거겠지.
그나저나 자꾸 업보를 쌓는 것 같 아 괜히 걱정이 드는데.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이 상황을 넘어가는 게 중요 하니까.
내 말에 렌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일족의 종사라니.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중거를 보여주면 믿을 수 있나?”
“증거‘?”
나는 곧장 스마트 학생 수첩을 꺼 내 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를 켜자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잠시 후 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종사님. 무슨 일이세요?
“..I”
렌의 두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떨 렸다.
원작에서는 쿨한 성격을 보여주었 기에 녀석이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 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 앞에 렌이 있다.”
—앗…… 혹시 제가 말실수를?
“아니다. 녀석이 내가 일족의 종사 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기에 네가 증명해주었으면 한다.”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스피커 너머 에서 엘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아…… 야. 렌.
엘린.”
렌이 작게 중얼거렸다.
—기어코 그분을 찾아갔구나. 그분 우리 종사님 맞고, 그분께 손끝 하 나 건들면 나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살벌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렌이 입을 다물었다.
“수고했다. 전화는 이만 끊겠다.”
-아, 넵. 혹시 렌이 무례한 짓을 하면 바로 말해주세요.
뚝
전화가 끊겼다.
렌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조 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은 겐야 님과 어떤 관 계셨습니까?”
어르신.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다.
예전에도 엘린에게 이렇게 불렸었 는데.
그나저나 공손해진 말투를 보아하 니 완전히 나를 믿게 된 모양이다.
하긴, 일인 전숭의 비기를 사용하 고 엘린의 증언까지 있으니 당연한 반웅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겐야의 오랜 친우이다. 그리 고 그에게서 직접 [순간 가속]을 배 웠지.”
“……겐야 님께 직접?”
내 말에 렌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니 말했다.
“그렇다는 건 어르신은 제 사숙(師 救)이라는 겁니까?”
“사숙?”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사숙이 사부의 사제(師弟)를 말하 는 거니까…….
족보를 따지자면 사숙이 맞긴 하 네.
“……홈홈. 뭐. 따지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큭!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렌이 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속이는 것에 성공 했다는 안도감보다 앞으로 연기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 걱정되 었다.
그때 고개를 푹 숙인 렌이 말했다.
“……실종된 대사부님은 어떻게 됐 습니까?”
나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미리 생각한 대본을 읆었다.
“미안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다.”
“어째서입니까?”
렌이 고개를 들며 외치듯 말했다.
“그의 부탁이었다.”
“부탁?”
“그렇다. 그는 나키리류의 제자에 게 왜 내게 일인 전숭의 비기인 순 간 가속을 전수했는지. 또 그가 왜 실종되었는지를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겐야라는 인물을 전혀 모르는 나에 겐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한 핑계인 것 같다.
만약 겐야라는 인물이 뒤늦게 등장 해 버린다면 진짜 골치 아픈 일이 생겨나겠지만, 원작과 이전 삶에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기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라……
렌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기억하는 대 사부님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 죠.”
다행스럽게도 겐야라는 인물이 원 래 좀 비밀이 많은 모양이다.
렌은 생각에 잠긴 듯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더니 정리가 끝난 듯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곤 내게 말했
다.
“일단 알겠습니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뒤를 돌아선 렌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둣 내 쪽으로 고개를 돌 렸다.
“그리고 사숙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파앗!
그 말과 함께 렌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녀석이 사라진 장 소를 바라보았다.
“……휴.”
엘린과의 경험 덕분(?)인지 이번에 도 잘 넘어간 것 같다.
속여야 할 인물이 하나 더 늘었다 는 것에 앞으로가 걱정되긴 하지만 조심하면 되겠지.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래에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5 상숭합니다.]
[‘철면피’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렌과의 만남 이후 특별한 것 없는 시간이 홀러갔다.
나를 찾아오겠다던 렌은 잠적을 감 추었고, 엘린도 렌의 소식이 끊겼다 고 전했다.
다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최 근 술식 공부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
최근 여러 사건을 겪은 뒤, 술식이 가진 비밀과 그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술식을 공부하다 보면 ‘보조계’를 다루는 데에도 큰 도움 이 되기에 내 새로운 능력을 키우려 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의 점심시간.
잠깐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마법사 관학교의 도서관에서 주말에 구매했 던 술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음.”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들.
내가 구매한 것들 대다수가 아포리 아에서 사용할 ‘함정 술식’들이었다.
물론 이런 술식 쪼가리로 괴물 같 은 자운에게 해를 끼치는 건 불가능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들을 보완한다면 녀석들의 1초 정도는 빼앗을 무기가 된다.
나는 함정 술식 하나를 펼치고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동시에 술식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 어왔다.
‘충격 시 발동, 생명체 인식, B등급 속박, C등급 폭발, 은폐……
안에 담긴 정보만 보면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함정 술식이다.
나는 마력을 주입하고는 술식의 내 용 몇 가지를 고쳤다.
가장 먼저 ‘폭발’ 부분을 삭제했다.
마력 강기로 신체를 보호하고 있는 자운에게 A등급 이상의 폭발이 아 니면 그 어떤 의미도 없기 때문이 다.
그러니 폭발을 다른 것으로 수정하 는 게 더욱 효율적이다.
‘급속 냉동, 접착……
아직 술식 작성 능력이 부족해 제 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술식 분야에선 치트키인
‘외부자의 혜택’이 있으니까.
우우우웅!
마력을 주입하자 술식의 형태가 조 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술식 하나를 처음부터 만드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지 만 기존의 술식을 고치는 건 생각보 다 간단하다.
그렇게 약 10분가량 술식의 내용 을 고치다 보니 하나가 완성되었다.
[B등급 술식을 완벽하게 수정해, A둥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술식 이해력(B)’의 숙련도가 20% 상승합니다.]
“오호.”
나는 곧바로 변경된 내용을 확인했다.
충격 시 발동, 생명체 인식, B등급 속박, 은폐, 급속 냉동, 접착…….
내가 원하는 대로 수정되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발동되는지 확인
해볼 차례다.
소모품이라 조금 아깝긴 하지만 성 공하기만 한다면 새롭게 만드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근데 이걸 어디서 실험하지.”
어디 훈련장에 들어가서 혼자 실험 해야 하나?
그렇게 혼자 고민하던 그때.
“어? 선배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여러 개의 책을 잔 뜩 껴안은 최서윤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언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모습이 책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괜히 내가 조마조마하다.
“떨어트리겠다. 조심해.”
“넵. 마력으로 꽉 붙잡고 있어요. 근데 선배님, 여긴 웬일이세요?”
그러더니 책상 위에 놓여진 여러 술식을 보고는 물었다.
“아〜 술식 공부 중이셨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흐음.”
최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을
내려놓고는 은근슬쩍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선 테이블의 술식을 빤히 바 라본다.
“함정 술식이네요.”
“웅, 바로 알아채네?”
“저 이론 1등이잖아요. 술식 시험 거의 만점이에요.”
최서윤이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그녀는 발현계를 주특기로 다루고 강화계를 부특기로 다루지만, 보조 계에도 꽤 일가견이 있다.
흔히 말하는 올라운더 유형의 천재 다.
“그런데 이건 어디다 쓰려고요? 보 니까 실전용으로 만드신 거 같은 데.”
최서윤이 힐끔 나를 올려본다.
“그냥 연습해두는 거지 혹시 언젠 간 쓸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면서.”
“ 으음......
최서윤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 로 술식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 맞다. 선배님, 혹시 고민 같은
건 없으세요?”
“무슨 고민?”
“그냥, 평소에 고민 같은 거요.”
어째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말투 다.
그러다 식당에서 나에 관해 떠들던 이서준 패밀리의 모습이 생각났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 자신이나 챙겨.”
“쳇. 걱정해줘도.”
그러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고민 같은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혹시 말 못 할 사정이라던가 비밀 같은 게 있어도 전 언제나 선배님 편이니까……
혼자 중얼거리던 최서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기가 말해놓고 민망함을 느낀 모 양이다.
그 모습에 괜한 미안함과 고마운 기분이 느껴졌다.
“알았어. 나중에 생기면 얘기해 줄 게.”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때.
부우우웅.
책상 위에 놓여진 스마트 학생 수 첩에서 전화 진동이 울렸다.
나는 멍하니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내가 모르는 번호다.
아니, 애초에 번호가 한국의 번호 가 아닌데.
“외국에서 온 전화 같은데요?”
전화번호를 보던 최서윤이 말했다.
“그러게.”
기술력이 발전한 곳답게 국제 전화 에 특별히 요금이 더 추가된다거나 하는 건 없다.
다만 각 나라별 고유 번호가 다를
뿐이다.
“전 신경 쓰지 말고 전화 받아보세 요.”
“응.”
고개를 끄덕이곤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사숙님. 안녕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
렌이 었다.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순간 긴장했는데 내 표정을 살피던 최서 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표 정을 굳혔다.
뒤늦게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 는 척 미소를 지어주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잠깐 통화하고 올게.”
“......아, 넵.”
그렇게 나는 최서윤을 뒤로 한 채 도서실 밖으로 나왔다.
“……흠흠. 무슨 일인가?”
[사숙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 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거?”
그게 뭐지?
[대사부님이 행방불명되기 전 남기 신 일지입니다. 잠시 일본으로 와주 실 수 있으십니까?]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