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6화 (325/535)

326화

“……진천우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 다고요?”

김덕현의 말에 이서준과 유아라는 큰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원작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 에 나는 덤덤하게 그들의 반응을 살 폈다.

김덕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혹시 모를 혼란을 위해 협

회에서 극비로 숨기고 있지만, 아포 리아에는 현재 진천우의 영혼이 봉 인되어 있다. 참고로 진천우의 영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들의 영 혼도 그곳에 함께 봉인되어 있지.”

“ 영혼......

이서준은 심각해진 얼굴로 중얼거 리더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둣 들 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였다.

“……그래서 진천우의 영혼이 불러 지지 않았던 건가?”

이서준은 과거 강령술을 통해 그의 어머니인 이윤경을 만났던 그때, 진 천우의 영혼이 불러지지 않았던 것

을 떠올린 모양이다.

진천우의 영혼이 불러지지 않았단 것은 바로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이서준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김덕현이 말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자운은 오래전부터 진천우의 부활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부활을 위해 서 필요한 것은 바로 사자〈死者)의 영혼이지.”

“그런 이유로 협회에서는 아포리아 에 진천우의 영혼을 봉인했다. 그러

면 자운 녀석들이 강령술을 이용해 진천우의 영혼을 불러내지 못할 테 니 말이다.”

밝혀지는 진실에 이서준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만약 이번 사건으로 진천우의 영 혼이 자운의 손에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머지않아 진천우가 부활할지도 모 르는 일이지. 뭐, 죽은 자를 살리는 데 필요한 건 영혼뿐만이 아니라 시 간은 걸리겠지만.”

이서준과 유아라가 눈을 찌푸렸다.

“물론 아포리아는 마법사 협회 다

음으로 가장 보안이 단단한 장소. 아무리 자운이라 할지라도 영혼을 훔쳐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자 유아라가 끼어들었다.

“자운에게도 뭔가 계획이 있어서 노리는 게 아닐까요? 차라리 봉인한 영혼을 다른 장소로 미리 옮겨 놓는 게……

“영혼은 옮길 수 없다.”

김덕현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아포리아에 영혼을 장시간 봉인할 수 있던 건 아포리아가 가진 특수한 마법 현상 때문이다. 다른 장소에서 는 불가능해.”

유아라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 었다.

김덕현은 팔짱을 끼며 이서준과 유 아라를 훑어보더니 피식 미소를 지 었다.

“다들 걱정이 많아 보이는군. 각자 사연이 있어서 그런 건가……

그러곤 한마디를 더했다.

“아무튼 전달 사항은 여기까지다. 실습 날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마 음의 준비는 하고 있도록. 그럼 나 는 다른 할 일이 있으니 이만 가보 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김덕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아라와 이서준은 심각해진 얼굴 로 아까 그 자리에서서 깊은 생각 에 잠겨 있었다.

“설마 아포리아에 그런 비밀이 숨 겨져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그러게…… 자운의 목표는 결국 진천우의 부활이었나.”

유아라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날 카롭게 뜬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난 이만 훈련하러 가볼게.”

곧 자운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는 사실에 투지가 불타오른 모양이 다.

그 모습을 본 이서준도 고개를 끄 덕였다.

“나도 훈련하러 가봐야겠다. 이렇 게 된 거 같이 훈련이나 하자. 선우 너는 어때?”

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무슨 특훈이 라도 하려는 기세다.

“그러자. 오랜만에 스파링이라도 할까?”

“스파링……?”

이서준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파링 좋네. 실전 감각 키우기도 좋고.”

“가자 그럼.”

그렇게 우리는 교내의 훈련장 방향 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우우웅.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메시지 알람 이 울렸다.

뭔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엘린에게 서 온 메시지다.

무슨 일이지.

룬의 속박 술식을 풀다가 막혔나.

그렇게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나는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조만간 렌이 종사님을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렌이?

영국 어딘가에 숨겨진 작은 별장.

베르트를 포함한 자운의 몇몇 일행 들은 제작사, 제르미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제르미!”

스카의 반가운 외침에 회색 수염의 중년 남성, 제르미가 불만스러운 표 정을 지으며 등장했다.

“아씨, 뭐 이리 많이 몰려왔어? 베 르트 한 명만 오라니까. 이것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러더니 벽에 걸린 마도구를 만지 던 백은성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 를 질렀다.

“야! 그거 막 만지지 마!”

제르미의 외침에 마도구를 만지던 백은성이 눈을 찌푸렸다.

“……거참, 만질 수도 있지. 만진다 고 닳냐? 되게 깐깐하네.”

“네 손에만 닿으면 전부 망가지니 까 그러지. 저번에도 튼튼한지 실험 한다면서 3개나 망가트렸잖아.”

“야! 그건…… 흠흠.”

무언가 반박을 하려던 백은성이 이

내 할 말을 잃었는지 헛기침했다.

“그래서, 열쇠는 완성됐어?”

베르트가 상황을 중재하려는 듯 앞 으로 나서며 물었다.

제르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 안 에서 투명한 빛의 구슬을 꺼냈다.

“어, 완성했어.”

“ 오오......

모두의 눈에 감탄의 빛이 담겼다.

“이게 아포리아 대결계의 열쇠

허락하지 않은 자는 절대 입장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장소를 뚫어낼

열쇠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이것으로 자운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제르미는 베르트에게 열쇠를 넘기 곤 물었다.

“그분의 영혼 회수는 언제 할 예정 이야? 협회에서도 이미 다 알고 대 비 증인 거 같던데.”

“계획은 3주 뒤에 시작할 거야. 지 금은 경계가 워낙 심하기도 하고, 준비도 덜됐거든.”

“3주 뒤라……

제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쨍그랑!

어디선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누구야?!”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도자기 하나 가 깨져 있었다.

그 위에선 백은성이 당황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 이게 왜 멋대로 떨어지지. 귀신이라도 들렸나.”

“백은성 너 진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제르미의 외침 에 백은성이 어깨를 들썩였다.

“아, 이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새 로 사줄 게 됐지?”

“30억짜리다 이 망할 놈아!”

백은성이 눈을 찌푸렸다.

“30억은 무슨…… 30억짜리 도자 기가 어딨어. 거짓말 하지 마.”

“저거 유물이야. ‘행운을 부르는 청자’라고.”

“……어, 진짜?”

유물이라는 말에 백은성이 낭패라 는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유물과 성유물을 보유한 백 은성에게도 30억은 무시할 수 없는

돈이었다.

결국 백은성은 자신이 가진 유물 하나를 제르미에게 주는 것으로 합 의를 보게 되었다.

“아, 맞다. 너네 뉴스 봤냐?”

백은성에게 받은 유물을 살피던 제 르미가 말했다.

그러자 스카가 물었다.

“무슨 뉴스?”

“김창현 사건 말이야. 그분과 관련 되어 있다고 하던데. 무슨 실험을 했다면서 말이야.”

김창현이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잠

시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베르트였다

“진위여부를 조사 중이야.”

“뭐야. 너네도 모르는 거야?”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걸 말씀해 주시진 않았으니까.”

김창현이 속한 선현 가문에 대한 정보는 진천우와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베르트조차 몰랐던 사실이다.

생전부터 어떤 계획을 준비하고 있 는지 ‘자신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라며 얘기해주지 않았기에 배신 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계획 이 있다는 것에 섭섭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흐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 네.”

제르미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기 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공개된 정보를 보니까 확 실히 그분과 관련되어 있는 거 같기 는 하던데.”

“내 생각에도 그래. 개인적으로 선 현 가문을 조사해봤는데 그분과 연 관된 증거들이 나오더라고. 아마 김 창현도 그분과 연관된 건 맞는 거

같아. 아군인지 적인지는 아직 판별 되지 않았지만.”

베르트가 탁자에 걸쳐 앉으며 말했다. 그때 제르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 맞다. 근데 김선우. 걔는 이번 에도 또 엮였더라?”

“김 선우?”

“김창현 사건 말이야. 거기에 김선 우도 있었다며.”

“……어, 그랬지.”

김선우.

이상하리만큼 ‘그분’과 관련된 일

에는 항상 엮여 있다.

이번 만월의 밤 사건에서도 그랬 다.

이게 우연인지 아니면 다른 필연적 인 무언가가 엮여 있는 것인지 이제 는 의심이 될 정도다.

“그럼 김선우 붙잡아서 김창현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면 되는 거 아니야? 적당히 이용하다가 죽여도 상관 없잖아.”

제르미의 말에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니, 싸해진 수준이 아니라 침울 함까지 느껴진다.

“뭐야. 갑자기 분위기가 왜 그래?”

“......그게.”

백은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쉽지만 김선우는 못 건드려.”

“못 건들게 뭐 있어. 너희가 무서 워하는 게 뭐가 있다고?”

제르미는 순수하게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실제로 자운은 김진철과 진천우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 는다.

설령 그것이 마인의 왕이라 할지라 도.

“그게…… 녀석한테 인질 잡힌 게 있거든.”

“……인질? 무슨 인질?”

“그러니까 피의 맹세로 우리 목숨 이 인질로 잡혔어. 녀석을 건들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뭐 임마?”

토요일 아침.

아포리아 사태를 대비할 겸, 이런 저런 준비물을 위해 서울 시내로 향

했다.

내가 먼저 향한 곳은 협회 인근에 위치한 술식 상점, ‘지혜의 언어’였다.

띠 링一

“어서 오세요.”

술식 상점은 말 그대로 술식을 판 매하는 장소이다.

소환계의 계약 소환 마법진부터 시 작해서 온갖 트랩 술식, 그리고 유 적지에서 발견된 미해석 술식까지

다양한 술식들을 판매하고 있다.

“흐음.”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벽에 전시된 술식을 살펴보았다.

사실 함정 술식을 구매하러 왔는 데, 처음 보는 유형의 흥미로운 술 식이 보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박물 관이라도 온 것처럼 구경하게 되었다.

“……혹시 김선우 학생 아니세요?”

그렇게 술식을 살펴보던 그때, 옆 에서 나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나를

보며 신기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선우 학생 맞네요? 아! 저는 ‘지혜의 언어’를 운영하는 정미연이 라고 합니다.”

정미 연.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안다.

1급 술식 제작사라는 칭호는 쉽게 주어지지 않으니까.

“선우 학생이 술식계에서 상당히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바로 알았어 요.”

“아, 예.”

유명하다는 말에 그리 놀라진 않았 다. 어느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 니까.

“그런데 찾으시는 술식이라도 있으 신가요?”

“함정 관련 술식을 원합니다.”

“함정 관련이요? 음, 따라오세요.”

정미연이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 이동하자 함정 관련 술식들이 전시된 공간에 도착했다.

“오…… 엄청 많네요. 특이한 함정 도 많고.”

신기함을 느끼며 술식들을 둘러보

자 정미연이 미소를 지었다.

“술식 해석 능력이 뛰어나다고 들 었는데 보자마자 아시네요.”

“뭐, 그렇죠.”

나는 술식들을 둘러보며 쓸만해 보 이는 술식 몇 가지를 골랐다.

굳이 아포리아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으 로 가득.

그렇게 장바구니에 술식을 가득 담 아두고는 계산대로 이동했다.

장바구니를 올리자 정미연이 황당 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무슨……

그러더니 술식의 개수를 세기 시작

했다. 전부 세어보니 26개였다.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세요?”

오랜만에 돈이라는 걸 제대로 쓴 기분이다.

이런 걸 플렉스라고 하던가.

오늘 쓴 돈만 해도 이천만 원은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술식 외에 여러 가지 쇼핑 을 마치고 나니 벌써 태양이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오늘 계획한 일정은 모두 마쳤기에 나는 게이트를 타고 마법사관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흐아암.”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고 싶 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 순 간.

사아악一

어디선가 나를 향한 이질적인 기운

을 감지했다.

살기…… 라고 표현하기엔 많이 부 족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기운이었다.

죽이려는 의사는 없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이지.

그게 누굴까?

나를 노릴만한 인물이라…….

워낙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지 후보가 한 둘이 아니다.

바로 그때.

파앗!

강렬한 마력이 느껴지더니 무언가 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지금까지 만 나본 그 누구보다 빠르고 신속했다.

이 정도의 속도를 보일 것이라 예 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씁

결국 나는 ‘순간 가속’을 사용했다.

동시에 체감되는 시간이 느려지며 주변의 풍경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 했다.

하지만.

내게 달려드는 무언가는 느려졌다 고 믿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빠른 움직임으로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내 코끝을 스치며 단검을 쥔 손이 허공에 휘둘러졌다.

아슬아슬한 한 끗 차이였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파앗!

이어서 녀석이 크게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발길질을 했다.

이번에도 나는 녀석의 움직임에 맞 춰 공격을 홀려낸 뒤 반격할 틈을 찾았다.

하지만 반격의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순간 가속’ 상태에서 수 많은 S등급 마법사를 상대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대체 뭐지.

동시에 내 머릿속에 누군가의 이름 이 떠올랐다.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마법사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뿐이니까.

그때 녀석의 신형이 사라졌다.

상황을 지켜보려는 둣 녀석이 먼저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리고 약 3초간의 순간 가속이 끝났다.

고개를 들자 새하얀 머리의 남성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게 맞네. 실제로 보니 상당히 놀라운 데.”

남성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침착한 눈으로 눈앞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전에 엘린의 경고가 있었기에 이 런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했는데, 이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사토 렌.”

내 부름에 렌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바로 알아보네. 최근 뉴스에 나와 서 그런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렌이 허리를 펴 더니 당당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나키리류 15대 전승 자. 사토 렌이다. 네가 사용한 ‘순간 가속’은 우리 유파의 비기라 할 수 있지.”

……나키리류? 그게 뭐지.

처음 들어보는 설정인데.

“참고로 나키리류는 일인전승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현재 나만이 사용 할 수 있는 마법이다. 그래서 묻겠 다.”

렌이 내 눈을 똑바로 웅시했다.

“너는 실종되신 대사부, 겐야님과 무슨 관계지?”

그건 또 누군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