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밤 9시.
그레텔과의 나들이를 마친 나는 기 숙사 소파에 누워 오늘 있었던 훈련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멸마(B)] [숙련도 : 37%]
“……와. 엄청 올랐네.”
멸마 특성을 얻은 시간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성장 속도다.
빛 속성과의 시너지로 보너스를 얻 은 덕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성장 속도.
이러다 이번 주 내로 A등급으로 오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뭐, 이제 막 얻은 단계라 그렇겠 지.”
거의 대부분의 특성이 그렇듯 첫 사용 시 여러 보너스가 많다.
몇 번 사용하고 나면 성장 속도도
다시 느려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 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 과였다.
그렇게 흔자 생각을 정리하고는 내 허벅지 위에서 잠든 그레텔에게 고 개를 돌렸다.
오늘 하루 나들이를 다녀와서 그런 지 평소보다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 로 쿨쿨 잠을 자고 있다.
나는 그레텔 머리의 나뭇잎을 가볍 게 쓸었다.
나뭇잎 주제에 머리카락처럼 찰랑 거리는 게 언제 만져도 신기한 감촉 이다.
거기다 아주 풍성해서 탈모(?) 걱 정도 없어 보이고.
가끔 바닥에 나뭇잎을 흘리고 다니 긴 하던데, 말 그대로 아주 가끔이 라 이 스타일을 쭉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응애……
그렇게 희미한 미소로 그레텔의 머 리를 쓰다듬다가 티비를 켰다.
「……마인 게이트 사건 이후 밝혀 지는 마인 기업들로 인해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한국 마법사 협회에서는 수사에 돌입했다 밝혔지
만,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으 로 보입니다. 한편 세계 마법사 협 회장인 김진철 회장은 인접 국가들 에게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상태 입니다.」
« Q «
세계정세는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 가고 있었다.
현재 한국 마법사 협회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인, 자운. 그리고…… 곧 터질 아포리아 사건까지.
커다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을 나누자니 모든 일을 망칠 가능성이 있고, 하나씩 처리하자니 다른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이유로 그리 머지않은 시일 내에 각국에 명망 높은 마법사들이 한국에 몰리게 될 예정이다.
그중에는 이서준에게 큰 관심을 갖 고 접근하는 녀석도 있어 몇 가지 작은 에피소드를 일으키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그렇게 흔자 생각에 잠겨 있던 그 때 티비 속 앵커가 잠시 어색한 얼
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허공에 무언가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전 특 무 요원 출신이자 순신(B身)이라는 이명을 가진 마법사, ‘렌’。] 협회의 극비 문서를 폭로했습니다.」
“......웅?”
갑작스러운 속보에 잠시 정신이 멍 해졌다.
극비 문서 폭로라니.
이건 원작에는 없던 흐름인데.
아니, 그보다 렌이라고?
“렌……
일본의 S등급 마법사로 ‘순신’이라 는 별명을 가진 마법사다.
4년 전, 엘린과 함께 용병 활동을 했으며, 후에 한성가에서 독립한 엘 린의 동료가 되어 자운을 쫓는 인물 로 등장하게 된다.
그의 특기는 내가 자주 애용하는 스킬인 ‘순간 가속’.
그때 앵커가 입을 열었다.
'만월의 밤 사건과 연관이 깊다고 알려진 ‘김창현’이 소속된 ‘선현 가 문’이 진천우와 비밀 실험을 했다는 소식입니다.J
밤 10시.
훈련장의 휴게실에서 휴식하던 이
서준은 다소 진지한 얼굴로 벽에 걸
린 티비 속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앵커는 차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
하고 있었다.
「렌이 밝힌 협회의 극비 문서에 따르면, 김창현이 속한 선현 가문은 진천우와 비밀 실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창현이 진천우와 깊 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 했습니다.J
김창현이 진천우와 엮여 있올 가능 성이 높다는 충격적인 소식.
하지만 이서준은 그 충격적인 소식 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지금 밝혀지는 김창현의 비밀은 최 일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기 때문이다.
“……김창현.”
이서준은 작게 김창현의 이름을 중 얼거렸다.
사실 이서준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협회보다 먼저 김창현을 쫓 던 사람을 알고 있었다.
최근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의문을 푸는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출생보다 더 많은 의문을 느끼게 하는 사람.
바로 김선우였다.
그렇게 김선우와 관련하여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유아라가 다소 놀란 눈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유아라?”
이서준의 부름에도 유아라는 대답 하지 않고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유아라는 진천우의 피해자.
선현 가문이 진천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그녀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 뉴스가 끝나자 유아라
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들었어?”
이서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오는 선현 가문…… 김선 우가 찾던 그 가문 맞지?”
유아라가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작년 수련의 방에서 김선우가 모두 에게 선현 가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거기다 그것과 관련하여 그녀의 언 니인 유아연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맞아.”
“……설마 김선우는 이걸 알고 있 었던 거야?”
“아마 그러지 않을까?”
자신과 같은 학생임에도 김선우는 오래전부터 평범한 학생이라면 모를 만한 특수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가 선현 가문을 쫓았던 건, 그 가문이 진천우와 관련된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서 그랬을 확률이 높 다.
“……김선우는 그걸 어떻게 안 거
지‘?”
“모르지. 워낙 비밀이 많으니까.”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그로서는 아 직 알 수 없었다.
다만 김선우에게 수상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실력을 숨겨왔던 이유. 다른 신분의 활동 의심.
소수 일족.
그리고 진천우와의 관계.
하지만 이서준은 단 하나도 김선우
에게 묻지 못했다.
아니, 물었어도 확증이 없었기에 김선우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빠져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유아라는 이서준의 말에 생각에 잠 겼다.
김선우가 선현 가문을 쫓고 언니를 찾아간 건 진천우와 관련된 일이었 던 건가.
그렇다는 건, 김선우는 자신의 추 측대로 진천우를 쫓고 있는 게 맞다 는 건데…….
하지만 최근 김창현을 만난 김선우 의 반응은 너무도 평온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둣...
그때 이서준이 그녀의 생각을 잘라 내며 말했다.
“김선우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거 같아.”
“무슨 소리야?”
“괜히 캐묻지는 말자는 거야. 어차 피 물어도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 고 괜한 경계심만 키우게 되겠지.”
이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서는 뒤를 돌아 유아라의 눈 을 마주쳤다.
“김선우한테 몇 번의 도움을 받았 어.”
정확히 몇 번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 있을 때 김선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돕고, 구해주었다.
이건 이서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 었을 것이다.
당장 유아라만 하더라도 작년 마인 에게 죽을 뻔한 상황에서 구원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난 김선우를 돕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 김선우와 가까이 지내면서 느낀 건, 그는 어떠한 도 움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이서준은 한 발자국 떨어져 김선우를 지켜보았 다.
하지만 최근, 김선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언을 듣게 되었다.
이서준은 그의 할아버지인 김진철 을 통해 ‘예언’이 가지는 힘이 얼마 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정말로 졸업이 가까워 지는 시기에 김선우에게 큰 위기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서준은 그리고 그 위기가 ‘김창 현’ 혹은 ‘진천우’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번엔 우리가 도와주자.”
개학 2주 차 월요일.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 이 되었다.
“배고프네.”
나는 허기를 느끼며 곧바로 식당을 향해 내려갔다.
평소라면 윤하영이나 이서준과 함 께 식사했겠지만 방금 들은 수업은 ‘마공학 이론’ 수업으로 나 혼자 수
강 신청했기에 혼밥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1층의 학생 식당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름 모르는 몇몇 학생이 내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어, 안녕.”
가볍게 인사를 받아준 뒤 식판 위 에 음식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앉을 자리를 찾는 데 익숙 한 무리를 발견했다.
“......엉?”
이서준, 신영준, 유아라, 윤하영,
이현주. 그리고 최서윤까지.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은 목소리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 고 있었다.
“뭐야?”
표정들을 살펴보니 뭔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2학년인 최서윤까지 있는 걸 보니 우연한 모임으로 보이진 않고.
……근데 왜 나만 빼고 모인 거지.
“......크홈.”
괜히 소외감 느껴지네.
슬쩍 합석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
만두었다.
나 빼고 모인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테고, 눈치가 있으면 빠져주는 게 맞겠지.
소외되었다는 생각에 삐진 건 아니다.
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주 쿨하 니까. 암. 그렇고말고.
……아니, 근데 진짜 왜 나만 빼고 모인 거야?
나는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이동하자 이서준 무리의 대 화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확실히 이번 뉴스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남들에게는 말 못할 사연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평소 에 비밀이 많으신 것도 그렇고요. 특히 탑에서 들은 예언은 그냥 넘어 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비 학에서 예언에 대한 이론은 이미 검 증되었잖아요.
―동감이야. 예언은 단순한 점 같 은 게 아니야. 그런 예언을 들은 이 상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웬 예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 다.
얘들이 떠들만한 예언이라고 하면 사계의 탑에서의 예언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설마 내 예언에 대해 떠드는 건가.
—하영아. 넌 어떻게 생각해?
—나, 나? 으음…… 자, 잘 모르는 데에…… 그래도 예언은 확실히 신 경 쓰이긴 하지…….
—넌 김선우 얘기만 나오면 항상 이러더라. 너 뭔가 알고 있…….
바로 그때.
이서준이 나를 발견했다.
이서준은 잠시 당황한 듯 표정을 굳히더니 내 쪽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김 선우!”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동시에 나는 작은 낭패를 느꼈다.
이들의 대화가 꽤 흥미로웠기 때문 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제3의 눈으로 엿들을걸.
“선배님. 여기 앉으세요.”
최서윤이 옆자리의 의자를 빼주었다. 어쩔 수 없이 합석했다.
그렇게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말 수가 확 줄어든 것이 어째 아까 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 었다.
“……너네 나 빼고 무슨 얘기 했 냐? 아까 심각한 이야기 하는 거 같던데.”
“응? 별거 아니야. 그렇지?”
이서준이 웃으며 하는 말에 모두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O 웃.”
서울 외곽의 작은 뒷골목.
엘린은 벽에 둥을 기댄 채 종이에 그러진 술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으. 봐도 봐도 모르겠네.”
엘린이 보고 있는 것은 일족의 종 사님이 숙제로 준 ‘룬의 속박’의 술 식이었다.
술식을 해석하기 위해 며칠 내내 이것만 붙잡고 있었는데 조금의 진 전도 없었다.
“마력 운동 방향을 술식 표만으로 어떻게 맞추라는 거야……
엘린은 울상을 지으며 손바닥을 펼 치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푸른빛의 마력이 실처럼 올 라오더니 원형의 형태가 되었다.
엘린은 천천히 종이에 그려진 형태 를 그려냈다.
“으음.”
하지만 얼마 안 가 술식의 형태가
무너지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형태를 구현하는 정보를 제대로 담 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아.”
“무슨 마법 연습해?”
그렇게 술식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 지 고민하던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백발의 젊은 남성이 부드러운 미소 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엘린은 그를 보더니, 표정을 잠시 굳혔다.
“ 렌.”
엘린의 부름에 렌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3년 만인가?”
“4년 만이야.”
“벌써 그렇게 됐구나. 마법 실력은 좀 늘었나?”
“S등급 초입에 올랐지.”
엘린의 짧은 대답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엘린은 팔 짱을 끼곤 말했다.
“그래서 왜 보자고 한 거야? 뉴스 보니까 네 얘기로 시끌벅적하던데.”
“다름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 서. 부유섬에서 김선우라는 녀석이 랑 함께 김창현을 봤다며?”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엘린은 잠시 표정을 굳혔다.
어느 정도 예상한 질문이기는 했다.
“김창현에 대해 묻고 싶은 모양인 데, 미안하지만 나도 녀석에 대해서 아는 게……
그때 렌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김선우인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