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1화 (320/535)

321 화

영국 숲 어딘가에 숨어있는 작은 별장.

베르트는 자운의 오랜 동료를 만나 기 위해 별장에 방문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에 전시된 온갖 신비한 마법 물품들이 보였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신비’가 아 닌,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제작사 의 물건이었다.

“ 베르트냐?”

방 안에서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 왔다. 베르트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봐도 대단한 곳이야. 제레미.”

그 말에 방 안에서 회색 수염의 중년 남성이 나왔다.

제르미.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제작사 중 하나로, 오랜 시간 자운 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필 요한 마도구를 제작하는 일을 해온 자였다.

“일은 어때? 잘 돼 가?”

“뭐 그럭저럭.”

제르미가 커피를 타며 대답했다. 그러곤 베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분의 네 번째 일지는?”

“단서를 모으고 있기는 한데 시간 이 더 필요할 거 같아.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베르트가 말끝을 흐렸다.

“그분께서 평범한 장소에 숨기신 것 같지 않더라고. 또 그 장소에 입 장하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 거 같 은데 그게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특정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

“……특정 사람?”

결계나 보안 마법에는 특정 사람을 인식하며 해체되는 것이 많다.

흔한 일이었기에 제르미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음. 그럼 이서준이 열쇠 아니야?”

그분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가장 먼 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서준이었다.

그러자 베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이서준은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아?”

“지금까지 얻은 단서를 살펴보면

알 수 있어. 이서준보다는 좀더 다른 유형의 인간이야.”

“……흐음. 그래?”

이서준이 아니라면 누구라는 거지? 그분이 필요로 할만한 사람이라면 이서준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때 베르트가 물었다.

“근데 결계의 열쇠는 아직이야? 설 계도가 협회에 넘어가서 한시가 급 하다고.”

“거의 완성했어. 이 주일 정도면 돼.”

이 주일이라.

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다음 테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 이번 테러는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테러보다 위험한 일이 되겠 지.

언제나 그렇듯 실수는 용납되지 않 는다.

깊은 꿈속.

—김선우.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 만, 그는 김선우를 부르고 있었다.

—너는 그냥 네 역할만 잘 수행하 면 돼. 세계에 숨은 나쁜 녀석들 많 잖아. 마인이라던가 자운이라던 가…… 또 재앙급 마수라던가?

저게 무슨 말일까? 역할이라니?

—그렇게 하나씩 악당들을 처치해 가면서 강해지고 소중한 사람을 지 키면 되는 거야.

계속해서 들려오는 의미심장한 말.

이어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녀석, 설마 김진우냐?

번뜩.

한세연은 긴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그

녀는 상체를 일으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새하얀 벽. 그리고 몸에 부착된 의 료 마도구.

병실을 연상시키는 장소였다.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두 통을 느꼈다.

“……읏.”

이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편적 인 기억들.

부유섬, 차원의 균열, 유적지, 그리 고……

“……김선우.”

두통은 금세 잦아들었다.

다만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지 모를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꿈에서 들렸던 목소리였다.

그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병실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 오더니 그녀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 칫했다.

이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진우 씨?”

남성은 김진우였다. 김진우는 그녀 에게 다가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 다.

“이틀 동안 잠들어 계셨습니다.”

그 말에 한세연은 깜짝 놀랐다.

이틀이나 잠들어 있었다고?

“……그럼 여긴.”

“한성 의료원입니다.”

“ 아.”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우는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

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의사에게 들었는데 몸에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마력 파동에 노출되 면서 생긴 마나 과부하 현상이었거 든요.”

한세연은 대답 없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김진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마나 과부하 현상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그 모습이 김선 우와 겹쳐 보였다.

“마나 과부하라는 게 처음에는 좀 고통스럽고 힘들지 모르지만 한번

겪고 나면 장점도 있어요.”

김진우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 위로 푸른 빛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려왔다.

“몸에 흐르는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 도 신체의 마나가 안정화되어서 전 보다 훨씬 건강해지실 겁니다.”

김진우의 긴 설명에도 한세연은 대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에게 묻고 싶은 것 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 지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곤 김진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이름을 불 렀다.

“김 선우.”

그 말에 김진우가 행동을 멈추고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한세연은 그 얼굴을 관찰했다.

이불 속에 숨긴 손가락을 꼼지락거 리다가 말을 이었다.

“……김선우 학생은 어떻게 됐죠?”

“듣기로는 다친 곳 하나 없이 안전 하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때 끼익- 문이 열리더니 세 명 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세진과 엘린. 그리고 김덕현이었다.

그 셋은 김진우를 보고는 잠시 놀 란 표정을 지었다.

“……김진우?”

김덕현의 부름에 김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모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김진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짧은 시간,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한세진이 한세연에게 다가갔 다.

“정신이 들었구나.”

“웅.”

“다행이네. 아픈 곳은 없고?”

형식적인 물음.

한세연은 그 질문에 맞춰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행사 는 어떻게 됐어?”

“취소됐지.”

“……그래? 안타깝게 됐네.”

그렇게 남매간의 대화가 이어지던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김덕현이 적 당한 때에 끼어들었다.

“대화를 나누시는 와중에 죄송합니다.”

김덕현이 끼어들자 한세진이 약속 이라도 한 듯 뒤로 잠시 물러섰다.

김덕현은 품 안에서 사진을 꺼내더 니 한세연에게 보였다.

“유적지에서 이 남자를 보셨습니 까?”

한세연은 사진 속 얼굴을 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

사진 속 남자는 작년 마법사관학교 의 최대 유망주로 불렸던 김창현이 었다.

그 순간 한세연에게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머릿속에 울리던 의 문의 목소리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그간 있었던 일을 요약하자면, 정 신을 차린 한세연이 김창현을 발견 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마인 암살 사건의 범인이 김창현이 아니었느냐 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사소한 변화가 아니었다.

어쩌면 김창현이 십마회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큰 변화였으니까.

어찌 됐든 마법사관학교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이제는 끝을 보이려 하 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는 제법 선선

해졌다.

여름은 끝나가지만, 세계에 남은 사건들이 끝난 건 아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위험한 사건이 기 다리고 있기에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그 말이 사실이야? 김창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네, 정말이에요.”

[……으음.]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어느 정도 각색해 유아연에게 공유했다.

함께 김창현을 조사하는 비밀 동료 (?)로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유아연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운에게 호의적 이지 않은 건 조금 의외네.]

나도 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자운의 목적은 진천우의 부활.

하지만 김창현이 자운에게 호의적 이지 않다는 건 진천우의 부활을 원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니 또 다른 의문이 발생한다.

이 세계에서 ‘사도’는 일종의 분신 과도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분신이 자신의 본체에 적대 적인 성향을 갖는다?

말이 안 된다.

“아마 다른 목적이 있는 거 같아 요. 그게 뭔지는 더 조사해봐야겠지 만요.”

[다른 목적이라…….]

스피커 너머에서 유아연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알았어. 공유해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저도 도움받았는데요.

뭐.”

그때 유아연이 말했다.

[아, 그리고 다시 제안하는 건데. 여명의 칼날에 올 생각 정말 없어? 특무팀보다 훨씬 자유로울 텐데.]

“네, 특무팀에 남을 생각입니다.”

[금전적인 부분이 걱정이라면…….]

“아뇨. 제 필요에 의한 선택이에 요.”

내 단호한 대답에 잠시 침묵이 감 돌았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네.]

유아연의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뭔가 정보가 생기면 다시 연락할게.]

“네.”

뚝. 전화가 끊겼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고개를 돌리자 그레텔이 바닥에 잠 을 자고 있고, 무형의가 그 옆에서 그레텔이 먹다 남긴 소시지를 먹고 있었다.

왠지 모를 평화로운 분위기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짐이나 싸야겠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떠나 기숙사로 돌아갈 때 가 되었다.

그리고 개학이 시작되면 얼마 안 가,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던 자운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아마 이번에 터질 사건은 지금까지 있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테러가 되겠지.

“......후우.”

원작에서 보았던 그 사건을 떠올리 자 오싹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에 일어날 사건은 자운과 협회 간의 전투가 이어질 예정이다.

결과는 자운의 완승.

자운은 그 어떤 피해도 없이 완벽 한 승리를 쟁취한다.

동시에 협회는 수백 년의 역사 동 안 겪어보지 못했던 굴욕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마 그 사건은 나의 개입으로도 막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자운은 자신이 가진 모든 수를 써

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할 테 니까.

……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피해를 줄이는 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운의 팔 하나 정도 는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마법사 협회 본부의 최상층.

김진철 회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김덕현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김창현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어떤 술식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천우와의 관계성은 보이나?”

“잘 모르겠습니다. 선현 가문의 연 구 기록은 이미 진천우에 의해 말소 된 터라.”

김진철은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는군. 실험 실이 발견되었을 때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을 보인다라.”

김진철은 자신이 발견했던 선현 가 문의 실험실을 떠올렸다.

혹시 모를 진천우의 숨겨진 장치가 있을까, 오랜 시간 김창현을 조사해 왔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그 어떤 장치라 고 할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부분이 많아 저도 몇 가지 생각해 봤는데 ‘암시’에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암시?”

“네, 각종 마도구의 검사에도 벗어 날 수 있기에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 고 있습니다.”

“……암시라.”

김진철은 생각에 다시 잠겼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 흐 음.”

그러던 그때였다.

똑똑.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식 해석 반장 박성혁입니다.

“들어오게.”

끼익 문이 열리고 박성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박성혁은 김덕현을 보고는 작게 고 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실버스에서 얻은 ‘열쇠의 도면’ 해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달이면 될 것 같다더니 꽤 오 래 걸렸군.”

김진철의 말에 박성혁이 고개를 숙 였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형 태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됐네. 그래서 그 술식은 어느 결

계의 열쇠였지?”

박성혁은 김진철에게 보고서를 넘 겼다.

“특수 마법 교도소, 아포리아 결계 의 열쇠입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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