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 렸다.
엘린이 가만히 멈춰 선 채, 동그랗 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경악과 충격. 그 외 수많은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런……
엘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현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하 나하나 설명할 시간은 없다.
지금 내게 최우선 과제는 급한 불 을 먼저 끄는 것이니까.
“조, 종사님!”
엘린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지만 무 시한 채 현교를 향해 다가갔다.
평소라면 룬의 속박 사용 도중 다른 행동을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 지만 [달의 가히의 효과 덕에 천천 히 움직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목소 리가 들려왔다.
“크윽! 네노음一!”
현교는 여전히 룬의 속박에서 벗어 나기 위해 몸을 비틀어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기세로 격렬 하게 움직이지만, 룬의 속박을 풀어 내지 않는 한 녀석은 꼼짝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녀석을 지나 한세연에게 다가 갔다.
혹시 다치진 않았을까 구석구석 살 펴보는데 다행히 그런 혼적은 보이
지 않았다.
“……김선우. 네놈 정체가 뭐냐?”
뒤에서 현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듯 분기가 한 충 내려간 목소리였다.
“……네 녀석, 설마 김진우냐?”
나는 대답 없이 뒤를 돌았다.
나를 노려보는 검게 물든 눈을 보 니 여전히 적개심은 가득했다.
“대답해!”
“후……
나는 대답 대신 짧게 숨을 내쉬고 는 몸 상태를 점검했다.
슬슬 마력에 한계가 오려하고 있었다.
달의 가호로 능력치가 4배 이상 상숭했다고는 하나, 룬의 속박의 엄 청난 마나 소모를 감당하기엔 부족 했으니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 이 만 끝내 볼까.
나는 빛의 구체를 다시 구현했다.
우우웅!
손바닥 위로 떠 오르는 새하얀 빛.
하지만 이 정도의 마력으로는 녀석 의 몸에 생채기도 입힐 수 없다.
더욱 강한 마력을 담기 위해 집중 하려는 그때, 구체가 파앗-! 하며 사라졌다.
«..으 »
..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룬의 속박을 유지하면서 다른 마법 을 동시에 사용하려 하니 머리에 과 부하가 온 느낌이다.
[달의 가히의 힘으로도 [룬의 속 박]과 함께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건 역시 힘들구나.
그 순간 현교의 표정에 의문이 떠 올랐다.
«..
그리고 이내, 녀석의 입가에 미소 가 걸렸다.
“……그렇군. 네 녀석도 한계가 온 거군.”
녀석의 얼굴에 한충 여유가 생겼 다.
“하긴, 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오지 않을 리가 없지. 네 놈도 한낱 인간일 뿐인데…… 크하 하……
왜 신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교가 크게 웃었다.
보아하니 내 마력에 한계와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룬의 속박을 풀어냈다.
그러자 현교의 몸을 속박하던 줄기 는 그대로 반짝이는 가루가 되며 아 름답게 흘어졌다.
갑작스레 자유의 몸이 된 현교가 씨익 웃었다.
“……방금의 속박 마법은 제법이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속박 마법 중
단연 최고였으니까. 하지만 강한 힘 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 그 힘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는구나.”
“……자꾸 뭐라는 거야.”
나는 그대로 빛의 구체를 구현했다.
룬의 속박을 사용하고 있지 않자 훨씬 구현이 수월했다.
현교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을 뻗고는 녀석의 머리를 조준했다.
우우우웅!
현교는 그에 맞춰서 검은 마기를 뿜어내었다.
그의 등 뒤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 르더니 수십 개의 검은 가시가 되었다.
폭주화로 한층 강해진 마기. 그리 고 자신에게 남은 모든 힘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파아앙——
마법이 서로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녀석과 내가 서로 전력을 다해 쏘아낸 마법이었다.
동시에 거대한 마법의 파동이 주변 을 크게 휩쓸었다.
나는 몸이 뒤로 밀려남과 동시에 모든 마력을 동원해 장막을 구현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아아아앙一!
가시가 장막에 부딪히며 크게 흔들 렸다.
계속해서 쏘아지는 맹렬한 가시의
세례에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확연히 다른 기세였다.
하지만 버틸 수 없는가? 라고 묻 는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장막에 모든 정 신을 집중했다.
깨질 것 같으면서도 깨지지 않는, 위태로운 장막에 의지했다.
어느덧 가시의 공격이 멎었다.
가라앉는 적막.
피어오르는 연기가 사라지고, 주변 의 시야가 트이자 녀석의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머리만 사라진 기괴한 형태의 현교 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장막을 펼치기 전 쏘아냈던 빛의 구체가 녀석의 머리를 제대로 적중한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S등급 마인 단독 토벌’ 업적을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S등급 빌런, ‘현교’를 토벌했습니다.]
[미래에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승합니다.]
[표적과의 싸움에서 숭리했습니
다!]
[승전보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 마력 제어술의 숙련도가 3%, 빛
속성 숙련도가 10% 상승합니다.]
[당신은 수많은 마인과 전투를 하 고, 토벌했습니다.]
[당신의 육체가 마인과의 전투에 맞게 ‘진화’합니다.]
[당신의 마력에 아주 미세한 ‘멸마 (滅魔)’가 담깁니다.]
“......후우.”
그제서야 내가 승리했음을 직감했다.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
감과 만족감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그 누구의 도 움을 받지 않고 S등급 마인을 토벌 했다.
현교와의 전투를 마치고 나는 곧장 한세연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으음.”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도통 정신 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딘가 괴로운 듯 중간중간 신음을 홀리는데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불 덩이처럼 뜨겁다.
몸에 상처라고 할 만한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 거지?
“그, 마력 과부하 상태인 것 같습니다……
엘린이 쭈뼛쭈뼛 내 쪽으로 다가오 며 중얼거렸다.
마력 과부하.
마력 탈진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강 렬한 마력의 파동에 노출될 때 생겨
나는 현상 중 하나였다.
참고로 마법사들은 이 마력 과부하 에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고 있지 만, 일반인은 그렇지 않다.
과연.
그녀의 말을 듣자 한세연이 왜 괴 로워하는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됐어.”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쓸어 넘 긴 뒤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 뒤 정신을 집중해 그녀의 몸속 구석구석에서 날뛰는 마력을 느꼈 다.
일반인에게 마력 과부하는 목숨을 잃을 만큼 치명적이다.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서둘러 마력을 제어해야 한다.
“후……
짧게 숨을 내쉰 뒤 그녀의 마력을 천천히 제어했다.
그러자 내 의지에 따라 그녀의 마력이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마력을 제어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작업. 살을 가르는 수술 작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몸속에 꼬인 마력을 하나하나 풀었다.
한세연의 마력이 저항했지만 정교 한 제어술로 움직이자 마력은 금세 잠잠해졌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까?
한세연은 평온의 상태를 되찾았다.
“……휴.”
다행히 실수 하나 없이 성공했네.
이전에 영약을 먹으며 마력을 다스 린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 한세연도 안정기에 들었 고…….
이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남았다.
나는 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엘린이 어깨를 크게 떨며 반응했다.
엘린은 혼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보 더니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했다.
“루, 룬의 일족 엘린이 종사님을 뵙습니다...
보아하니 내가 일족의 종사인지 뭔 지로 완전히 믿는 모양이다.
하긴, 방금 내 전투 능력과 [룬의 속박]을 사용하는 걸 보았으니 그녀 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그나저나 다른 모습도 아니고 김선 우의 모습으로 들키게 될 줄은 생각 도 못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종사님?”
대답이 없자 엘린이 다시 물었다.
그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결론을 지었다.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결국 들켜버렸군.”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일족의 종사 가 되어 주기로 했다.
룬의 일족이 아닌데 룬의 속박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설명해주는 것 보다 이쪽이 훨씬 쉬울 테니까.
그러자 엘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여, 역시 종사님이 맞으셨군 요……?”
[잠재개성, ‘과몰입’이 발동합니다!]
“그렇다…… 나는 일족의 종사
엘린이 그러자 바짝 엎드리며 바닥 에 머리를 박았다.
방금 쿵! 소리가 난 거 같은데.
“조, 종사님 죄송합니다! 저의 무 례함을 용서해주세요!”
언제봐도 종사인지 뭔지를 향한 충 성심이 대단하다.
괜히 부담스럽다가도 괜한 괘씸한 기분이 들어 조금 괴롭혀주기로 했다.
“실망이 크군.”
내 짧은 한마디에 엘린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마인과 손 을 잡았다.”
“그, 그건……
엘린도 할 말이 없는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일족의 부흥을 위해 비기를 얻기 위해서 그만 ...
“그건 핑계다.”
“..…큿
엘린은 다시 이마를 땅에 박았다.
쿵! 소리가 울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종사님은 왜 마법사관 학교의 학생 신분으로 있으신 겁니 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침을 꿀꺽 삼기고는 대답했다.
“……잠입이다.”
“잠입……
엘린이 격동적인 감정이 담긴 목소 리로 외쳤다.
그러더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 니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마법사관학교에 터 졌던 마인 테러 사건들…… 전부 종 사님이 해결하신 거였군요!”
엘린이 자신의 입맛대로 내 말을 해석했다.
꽤 그럴싸한 해석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학교에 숨은 마의 뿌 리를 뽑기 위해 잠입을 한 것이지.”
내 말에 엘린의 두 눈에 다시 한 번 크게 떨렸다.
“그렇다면 ‘김진우’도 종사님의 다른 신분입니까?”
“……김진우?”
“아까 마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종 사님보고 김진우냐는 말을요. 그리 고 김진우도 종사님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추리해버린 건가?
나는 다시 한번 갈등했다.
김진우라는 패까지 그녀에게 공개 해야 하는 것일까.
어설픈 거짓말은 금세 들통난다. 그럴 바엔 제대로 각 잡고 속이는 게 맞다.
“그렇다. 김진우도 바로 나다.”
“역시……! 종사님은 김선우 외에 도 다른 신분을 숨기고 계시는군 요‘?”
그러더니 엘린이 다시 머리를 박았 다.
“지금까지 제 무례를 용서해주세 요!”
그녀가 김진우에게 날카롭게 굴었 던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나 또한 너를 속였으니 이해는 한다. 그 부분은 용서하지.”
내 말에 엘린의 표정이 한충 밝아 졌다.
“……그러나.”
«..2”
“마인과 손을 잡은 건 다시 생각해 도 실망스럽다. 같은 피가 이어졌기
에 더더욱.”
“아악! 죄송합니다!”
엘린이 다시 머리를 박으며 쿵! 소 리가 울렸다.
저러다 이마에 피 나는 게 아닐까 괜히 걱정된다.
“한세진과의 관계는 오늘로 끊겠습니다!”
“아니, 너는 한세진의 밑에 계속 있어라.”
“......네?”
엘린이 고개를 들었다.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꼬인 이상,
나는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이다.
“한세진은 마인과 손을 잡았다. 그 가 가진 욕심과 잔혹한 성격. 그리 고 권력을 생각하면 인류에 어떤 위 협이 생길지 알 수 없지.”
“……역시. 거기까지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일족의 종사로서, 네게 임무를 맡 기겠다.”
“ 임무?”
“한세진을 감시해라. 무언가 일이 있으면 보고해라. 의심하지 못하게 철저히 녀석을 속여라.”
엘린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다시 한번 격동적으로 떨렸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한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세연을 한성가의 주인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족 사기극’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때 강한 마력과 함께 주변의 공 간이 크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닥과 석판에 그려진 술식 들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닥의 술식을 해석한 나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려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외부에서 균열의 틈을 찾아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현교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아마 사람들이 현교의 시체를 발견 하게 된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 전에 미리 입을 맞추어야 한다.
“엘린.”
“......네?”
“곧 특무팀에서 들이닥칠 것이다.”
“……아, 예. 저건 제가 처치했다고 할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엘린은 마인과 한세진 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럴 일을 피함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특무팀이 들이닥치면 말해라. 저 마인을 처치한 건 ‘김창현’이라고.”
나는 김창현에게 사소한 복수를 하 기로 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