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그 옷. 벌써 원래대로 돌아왔 네요.”
차원 균열의 동굴 속.
내 뒤를 쫓아 걸어오던 한세연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는 한세연을 한번 흘겨보고는 구 멍이 뚫려 있던 무형의의 뒷부분을 매만졌다.
그녀의 말대로 무형의는 원상 복귀 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수리하는 ‘품질 보증’의 효 과였다.
“네, 그런 거 같네요.”
“이렇게 재생하는 옷은 살면서 처 음 봐요. 아까 음식도 삼키는 거 같 던데……
한세연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내 옷 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연회장에 마도구 반입은 어떻게 한 거예요? 마도구 탐지기로 검사하고 있다 들었는데.”
“아, 그게一”
나는 셔츠의 소매를 매만졌다.
“이건 마도구가 아니거든요.”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답을 했다. 그러자 한세연의 두 눈에 의문이 떠 올랐다.
“마도구가 아니라고요?”
“네, 이건 살아있는 생명체에요. 자 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무 튼 마도구가 아닌 생명체라 감지되 지 않은 거죠.”
내가 생각해도 꽤 그럴싸한 답변이 었다.
거기다 무형의가 연회장에서 음식 삼키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아하.”
그리고 내 예상대로 한세연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신기한 생명체네요.”
“그렇죠. 저도 가끔 놀라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다 시 침묵이 감돌며 동굴 안에서 발소 리가 감돌았다.
어색한 분위기.
한세연은 묻고 싶은 게 많은 둣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손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이
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왠지 모를 코끝의 간지러움을 느끼 던 그때 한세연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진…… 아니, 선우 학생?”
“네?”
“……그, 고마워요.”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다시 그녀에 게 시선을 돌렸다.
“뭐가요?”
“균열의 마력으로부터 지켜주셨잖 아요. 저 때문에 둥도 다치셨고
“아. 이거요? 괜찮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나는 등을 매만졌다. 이 정도 상처 쯤이야 끄떡도 없다.
온갖 고통 내성과 회복 효과로 무 장한 덕분에 이 정도로는 꿈쩍도 하 지 않는다.
“여기서 탈출하게 되면 바로 병원 부터 가요. 제가 최대한 지원해드릴 게요.”
나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나를 지켜보던 한세연이 동굴 의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바깥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요? 아까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 었는데. 그 사람들도 차원 균열에 휩쓸렸을까요?”
“음. 아마, 차원 균열에 끌려간 사 람은 정말 극소수일 거예요.”
자연에서 생겨나는 특수한 마법 현 상은 인간에게 잘 연구되지 않은 숨 겨진 법칙이 존재한다.
바로 마력의 파동에 담긴 ‘의지’가 끌어들일 인간을 직접 선별한다는 이론인데, 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 다.
“음, 이게 설명하기는 복잡한 데 의지를 가진 유적지가 직접 선별해
서 우리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의지론’도 공부하셨나 봐요?”
의지론.
이름 그대로 ‘의지’를 탐구하는 학 문을 말한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의지’를 연구 하는 건 아니고 신비학과 밀접한 연 관을 가진 탑의 의지나 자연의 의 지. 또는 인간의 의지가 가진 잠재 력과 한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제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우리는 동굴 안을 계속 탐 험했다.
유적지답게 중간중간 몬스터가 등 장했지만, 높아봤자 c등급 정도라 간단한 마법으로 쓰러트릴 수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동굴의 끝에 도착했다.
마법 구체를 구현해 주변을 환하게 밝히자 벽에 그려진 복잡한 술식들 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자의 혜택으로 확인해보니 차 원 이동 술식이었다.
“다음 장소로 넘어가게 해주는 술 식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
었다.
한세연은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 더니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쥐고는 다른 한 손을 술식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마력을 주입했다.
우우웅!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눈앞이 번쩍였다.
동시에 풍경이 달라졌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
근처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뭇잎 소리가 들려왔다.
[숨겨진 유적지, ‘역사의 무덤’에 입장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0 상승합니다.]
“……야외네요.”
한세연의 말에 고개를 꼬덕이고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깜깜한 밤하늘.
관측 억제 현상 때문인지는 모르겠 지만 밤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석판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의 무덤이라더니 정말로 무덤 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나는 마법 구체를 구현해 주변을 밝힌 뒤 석판을 살폈다.
복잡한 술식으로 만들어진 문구가 적혀 있었다.
파괴된 흔적이 있어 완벽한 술식은 아니었지만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해석은 가능했다.
[……계의 원인과 결과는 톱니바퀴 처럼 맞물려 있다. 자유란 허상이며 우리는 정해진 틀에……]
뭐지.”
석판에 적힌 술식이 파괴되어 있어 완전한 해석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신비를 마주치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나는 발걸음을 옮기고 다른 석판을 확인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틀이라 할 지라도 외부에서 끼어 들어온 작은 이물질 하나에 모든 규칙이 무 너……]
“선우 학생.”
순간 들려오는 한세연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한세연이 내가 꼭 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요.”
“아, 죄송합니다.”
곧바로 손올 놓았다.
석판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을 꼭 잡고 있었네.
한세연은 꼼지락 손을 매만지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여긴 어딜까요?’’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까 중앙섬 유적지 중 한 곳인 거 같아요.”
“중앙섬에 이런 장소가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이중 은폐 결계나 공간 중첩 현상 으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때 였다.
우우웅!
가까운 어딘가에서 하늘 위로 푸른 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하늘 위로 거대한 원기둥이 솟아오르며 아름다운 빛을 내뿜었다.
그 어떤 마력도 감지할 수 없었기 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전투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꽤 수준 높은 마법사가 벌 이는 전투의 흔적.
“……마력 은폐 현상인가?”
중앙섬에는 마력이 감지되지 않는 마법 현상이 있다는 건 이미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곳에서 누군가 전투
를 벌이고 있다는 뚯.
하지만 대체 누가?
그리고 저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여기에 있다고?
“가보죠.”
의문을 가득 품은 채 나는 빛의 원기둥이 보였던 방향으로 달려갔 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강렬한 기운 이 내 숨을 조여왔다.
빛의 기둥은 금세 사라졌다.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한 인 간의 뒷모습과 여러 개의 구멍이 뚫
려 부서져 가는 기괴한 외형의 무언 가가 보였다.
회색빛의 돌로 되어 있는데 마치 골렘을 연상시켰다.
나는 골렘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부유섬 유적지의 수호자였다.
나는 서둘러 저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서 강렬 한 파동이 내 몸을 밀쳐냈다.
“이건 또 뭐야……
결계는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몇 번을 다시 시도했지만 나는 그
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쳇.”
어쩔 수 없이 [제3의 눈]을 사용했다.
[……놀랍군. 어떻게 인간의 몸으 로 그렇게 많은 자유를 쌓은 것이 지‘?]
제3의 눈이 녀석들을 향해 가까워 지자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그 녀석이 만들어낸 자유의 파장 을 흡수했다. 뭐, 오늘 일로 지금까
지 쌓은 자유를 전부 소모해버렸지 만.”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는 인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김창현……
“선우 학생!”
그때 뒤늦게 한세연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터져 나오는 마력 파동에 숨이 막힌 듯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 o »
X....
“ 괜찮아요?”
그녀는 한참 동안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으며 내 품 에서 쓰러졌다.
마법을 수련하지 않아 마력 저항력 이 낮아 생긴 일이었다.
나는 마법을 사용해 그녀를 향한 마력 파동을 억제했다.
[너는 정말 미쳤군…… 어떻게 일 개 인간이…….]
수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허무맹랑한 계획을…… 여 기까지…….]
“아직 갈 길은 멀어. 이제야 단계 를 밟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말해 두지만 이건 내 계획이 아니야. 그 분의 계획이지.”
[크흐흐…… 시공을 초월한 집념인가…… 경이롭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수호자가 다시 웃었다.
[……재밌군. 너희가 하려는 것이 신이 되려는 것인지, 신을 만들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희 의 꿈을 높이 산다…… 변화할 미래 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게…… 아 쉽군……]
그 말을 끝으로 수호자는 파괴되었다.
김창현은 수호자를 내려보더니 다 가가 녀석의 가슴에 박혀 있던 푸른 빛의 보석을 쥐었다.
그렇게 어딘가로 걸어가려는 그때 김창현이 무언가를 느낀 듯 내 쪽으 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김선우.”
김창현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러고선 내 품에서 정신을 잃은 한세 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대단한걸. 근데 혹시 방금 대화 들었어?”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을 노려보았 다.
“……반응을 보니까 듣긴 들었나
보네. 이거 곤란한데…… 어디부터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 닥치고 말해. 너 뭐 하는 놈이야?”
“나? 글쎄. 철학적인 질문이네.”
김창현이 농담하듯 웃었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다시 말했다.
“네가 진천우의 사도라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신’이 되려는 것 도 알고 있지. 대체 네가 되려는 신 이라는 건 뭐야?”
내 말을 들은 김창현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네. 하
지만 저번에도 말했지만 말해줄 수 없어. 특히 너에게는.”
김창현이 말을 이었다.
“너는 그냥 네 역할만 잘 수행하면 돼. 세계에 숨은 나쁜 녀석들 많잖 아. 마인이라던가 자운이라던가…… 또 재앙급 마수라던가?”
“......뭐?”
“너는 그렇게 하나씩 악당들을 처 치해가면서 강해지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면 되는 거야.”
“……잠깐. 너 자운과 한패가 아니 었어?”
김창현과 자운.
이 둘은 진천우와 깊은 연관을 지 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창현은 진천우의 사도고, 자운은 진천우를 승배하는 집단이니까.
내 말에 김창현이 두 눈을 깜빡이 며 생각에 담기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그 정도는 말해주지. 어, 아 니야.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자운? 그 녀석들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 야?”
그 말에 나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자운과 한패가 아니라고?
하지만 김창현은 진천우의 사도일 텐데.
“……너는 진천우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 거야?”
“그분의 부활이라…… 후후. 그 이 상은 미안한데 말해줄 수 없어.”
김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김창현의 손에 들린 푸 른 빛의 보석을 발견했다.
녀석이 부유섬에서 이런 짓을 벌인 건 바로 저 보석 때문이었다.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영혼 추출석(유물)]
설명 : 영혼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영혼 추출에 성공 시 파괴됩니다.
영혼 추출석…….
어떤 목적으로 쓰이려는 것인지 전 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추리해보자면 진천우의 부활 을 위해 이서준의 영혼을 뽑으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자운의 역할이었다.
김창현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난 이만 가볼게. 수호자가 파괴됐 으니 곧 결계가 무너질 거야. 그리 고 이제 슬슬 만월이 떠오를 때가 됐기도 하고.”
그렇게 김창현이 뒤를 돌았다.
“기다려!”
나는 한세연을 눕히고는 곧바로 녀 석의 둥 뒤로 마법 구체를 방출했다.
하지만 김창현은 장막을 펼치며 아 주 가볍게 막아내었다.
그러더니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 위로 원기둥의 마법이 구현되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찔러 넣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의 마법이었다.
“끄으윽!”
“그 정도 상처쯤이야 금방 회복할 수 있지? 뭐, 만나서 반가웠어. 다 음에 또 보자.”
김창현은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빠르게 상처를 지혈했다.
김창현이 사라지자 주변을 감싸던 마력의 압박도 사라졌다.
이 유적지에는 나와 한세연만이 남 았다.
그러던 그때.
우우우웅!
눈앞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두 명 의 사람이 등장했다.
“워, 여긴 또 어디야?”
“……야외인가?”
잘 알고 있는 얼굴.
엘린과 현교였다.
그때 엘린이 나와 한세연을 바라보 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 한세연?”
엘린의 말에 현교도 내 쪽으로 시 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쓰러진 한세연을 보며 씨 익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