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화
연회장에 입장한 뒤, 나는 동료들 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이동 했다.
다름 아니라 아공간에 미리 넣어두 었던 장비들을 착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마도구 들을 몸에 착용했다.
시계, 팔찌, 펜던트, 신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형의를 꺼내 입었다.
무형의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 직이며 내 몸에 착 감기더니 새하얀 빛과 함께 원래 입고 있던 셔츠와 바지, 신발의 형태가 되었다.
“......어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역시 장비는 몸에 항시 착용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현대인이 스마트폰을 항상 곁에 두 는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 해야 할 까?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혹시 아까와 달라진 부분은 없는 지. 또 방금 착용한 마도구가 남의 눈에 띄진 않을지. 이런 것들을 확 인했다.
“으 ”
완벽하네.
펜던트 같은 것들은 전부 옷 속에 넣어 놨으니 들킬 일도 없을 거고.
“좋아 좋아.”
당당하게 화장실 칸막이에서 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훈훈한 미모(?)를 한번 점검해주고는 손을 씻고 1층 홀로 이동했다.
홀에 도착하자 화려한 샹들리에 아 래에서 우아하게 꾸며 입은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어림 잡아도 200명은 되어 보인다.
어디까지나 1층에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고 2층부터 6충까지의 사람을 합치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겠지.
그렇게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며 걷 고 있는데 홀의 중심에서 테이블 위
의 과일을 집어 먹는 정현수를 발견 했다.
정현수도 나를 발견했는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다들 어디 갔어요?”
“뭉쳐 있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거라고 각자 흩어져서 주변 조사 중이야.”
“……아.”
하긴, 특무팀 요원은 한 명만 있어 도 눈에 띄는데 뭉쳐 있으면 이상하 게 보이긴 하겠네.
“너도 주변 돌아다니면서 미리 건 물 구조라던가 살피고 있어. 여기는 너무 넓어서 확인할 게 많더라고."
“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정현수가 과일을 먹던 손을 털더니 몸을 일으 켰다.
“으음! 그럼 나도 이만 가봐야겠 다. 아! 그리고 통신 마도구 없으니 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스마트폰으 로 연락해〜 아! 넌 스마트 학생 수 첩인가?”
정현수가 실실 웃었다.
“예. 그럴게요.”
“어어. 그럼 수고해.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정현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잠시 뒤, 한성그룹 한세진 부회 장님의 감사 인사가 있겠습니다. 관 심 있으신 분들은 1층의 홀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들려왔다.
그러자 계단에서 위층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홀에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약 1분쯤 지났을까, 방송이 울렸다.
—한세진 부회장님이 입장하십니 다!
계단 위에서 한세진이 인자한 미소 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지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테이블 위의 복숭아 를 집어삼켰다.
“반갑습니다. 한성그룹 부회장 한 세진입니다.”
짝짝짝짝!
관객들의 박수가 울렸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건 한성그룹 의 새로운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세계의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공개 되지 않았던 부유섬의 유물들을 공 개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한성의 초 대에 응해주신, 마법사, 연구가 여러 분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한세진이 모두의 집중을 끌어내는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연설에는 큰 흥미는 없었기에 나는 따분하게 복숭아를 마저 입에 넣었다.
그러던 그때, 나는 아주 우연히 무 대 위 테라스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 견했다.
푸른색의 드레스로 아름답게 꾸며 입은 여인, 한세연이었다.
한세연은 테라스에 턱을 괸 채 미 묘한 얼굴로 무대 아래의 한세진을 내려보고 있었다.
“유물은 오늘, 예고했던 대로 만월 이 떠오르는 밤에 공개됩니다. 하지 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부유섬의
달은 관측 제한 현상이 있어 정해진 시간에만 떠오릅니다.”
그렇게 한세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때, 한세연이 내 시선을 느 꼈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찰나의 순간.
한세연은 턱을 괴던 손을 풀었다.
어딘가 놀란 감정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세 진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김진우가 아닌 김선우의 신분이었 기에 괜히 그녀의 관심을 끌어서 좋 을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5초 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외부자의 혜택의 ‘스마트 동기화’ 로 스마트폰 메시지 알람이 떠오른 것이다.
[진우 씨, 혹시 지금 어디예요?]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한세연에게 온 메시 지였다.
나는 힐끔 무대 위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테라스에 몸을 기댄 한세연이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꼭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랑 김진우 사이에 어떤 의문이라 도 생긴 건가?
그렇게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해 손 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답장을 보내 려는 그때一
우우웅.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긴 장해서 그런지 순간 몸을 움찔했다.
외부자의 혜택으로 확인해보니 발 신인에 한세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순간 뇌정지가 왔다.
이걸 어쩌지.
외부자의 혜택으로 한세연이 보는 앞에서 티 내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 는 건 가능하지만, 통화는 다른 이야기다.
물론 통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한세연이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상황 에서는 분명히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전화를 거절하고 메시지 로만 대화를 나누자니 그것도 이상 하고.
“......으음.”
어떻게 할까, 수십 번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바빠서 못 받았다고 하지 뭐.
그렇게 외부자의 혜택으로 들려오 는 여러 번의 알람 끝에 결국 전화 가 끊겼다.
한세연의 반응을 살피고 싶었지만, 또 눈이 마주칠까 봐 그러진 못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방법이 있구나.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제3의 눈’을 발동합니다.]
새하얀 빛이 내 손 위로 모이더니 눈 부신 빛의 구체가 되었다.
구체는 금세 1층 홀의 천장 위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홀 내부의 풍경이 환하게 보였다.
제3의 눈으로 본 한세연은 뭔가 실망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등을 돌려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미안한 기분 이 들었다.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가 그녀를 속이고 있는 건 분명하니 까.
“……이것도 할 짓이 못되네.”
……그래도 언젠간.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테이블 위의 복숭아를 다시 집었다. 바로 그때.
쥬르르릅!
셔츠의 소매 끝자락이 입처럼 벌어 지더니 순식간에 복숭아를 집어삼켰 다.
[‘무형의’가 포식했습니다.]
[무형의가 달콤한 식사에 만족합니다.]
[착용자의 마력 저항력이 0.1 상승 합니다.]
……어, 방금 뭐야?
순간 당황했다.
얘 음식도 먹어?
나는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 다.
다행히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아무 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만약 누군가가 보기라도 했으면 마 도구를 지니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꽤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 른다.
진짜 다행이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 때.
내 머리 위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 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 끝에는 한세연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황망함을 느꼈다.
“……걸렸네.”
한편, 한세진의 연설이 이루어지는 연회장 외부의 작은 공원.
엘린은 처음 착용해본 S등급 마도 구의 힘을 느끼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와. 이거 엄청나네.”
온몸에서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마력이며, 힘이며, 집중력이며.
평소보다 2배…… 아니 3배 가까 이 강화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마법사들이 템빨 템뺄 거 리는 구나.”
엘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등에 그려진 마법진을 발 동했다.
동시에 공원 앞에 마법진이 떠오르 더니 수많은 빛의 사슬이 치솟아 올
랐다.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강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이건 진짜 묶이면 못 벗어나겠 네.”
비록 순수한 자신의 힘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손에서 이런 마법이 발현 되었다는 것에 그녀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종사님에 비하면 부족하지.”
그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종사님의 손에서 구현되던 ‘룬의
속박’올.
그때 보았던 수십 개의 빛의 줄기 는 그 어떤 마법사가 와도 풀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속박 마법이었다.
이렇게 S등급의 마법을 무장한 지 금도 그분의 마법을 따라갈 수 없다 니.
“난 언제쯤 그분의 발끝이라도 쫓 을 수 있으려나……
아이템을 통해 얻었던 기쁜 마음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작은 우울감이 남았다.
그나저나 그분은 지금 뭐 하고 계 실까?
그러다 종사님이 해주었던 말을 떠 올렸다.
-……인간 사회에 숨은 악의 뿌리 를 뽑기 위해서다.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그분과 달리, 나는 악과 손을 잡았구나…….
진짜 한심하네. 나.
그녀는 다시 우울함을 느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마기가 느껴졌다.
이내 어둠 속에서 검은 연기가 뭉 쳐 오르더니 S등급의 마인이자 AY 생명의 ‘현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보다 실력이 제법이군.’’
현교가 엘린에게 말했다.
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인에게 악감 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교도 엘린의 그런 감정을 느꼈는 지 눈을 찌푸리며 불편함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엘린도 당장 죽여버 리고 싶었지만, 오늘 행사에 특무팀 이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 쩔 수 없이 화를 억눌렀다.
“서로에 대한 악감정은 내려두고 일단 계획부터 생각하자고.”
현교의 말에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까지 얼마나 남았지?”
“약 2시간 남았다.”
2시간 뒤는 만월이 뜨는 시간이다.
“2시간이라…… 근데 신기하네.”
엘린의 중얼거림에 현교가 물었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지?”
“저 중앙섬 내부에서는 어떠한 마력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거잖아.”
엘린이 손가락으로 만월의 결계가 펼쳐진 중앙섬을 가리켰다.
중앙섬은 말 그대로 그 어떤 마력 도 감지할 수 없는 마력 현상이 숨 겨져 있었다.
부유섬을 연구하는 극소수의 사람 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설마 김진우의 암살을 위해 이런 장소를 준비할 줄은 생각도 못 했 어.”
“……확실히 놀랍긴 하지.”
이곳이면 그 어떤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한세진이 김진우를 유인만 해 준다면 그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한세진의 연설이 끝나고.
나는 연회장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세연이 계단을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그 뒤를 따라 가는 내 모습이 마치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무실
로 향하는 것 같았다.
“......씁
이건 내 계획에 없는 상황인데.
한세연이 잠깐 이야기하자는 제스 처를 보였기에 일단 따라가고 있기 는 한데.
아까부터 말이 없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마도구 소지로 소란을 일으키진 않 아 줘서 고맙기는 하다만.
“......홈.”
그나저나 언제나 그렇듯 김선우의 신분으로 한세연과 함께 있는 건 말
로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있다.
마도구 소지를 어떻게 해명해야 하 나 고민도 들고.
괜히 무형의의 소매를 꼬집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착용자와의 유대가 하락합니다.]
[무형의의 자아가 0.3% 감소하고, 착용자의 마력 제어술이 0.2% 감소 합니다.]
눈앞에 떠오를 메시지를 보자마자 꼬집은 손을 떼었다.
그러고는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미안, 아팠구나.
그때 한세연이 힐끔 뒤를 돌며 말 했다.
“마도구 반입은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잠깐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거 예요.”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오르던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와 마 주쳤다.
그는 나와 한세연을 번갈아 바라보 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 거기서 뭐 하냐?”
남자는 김덕현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