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검정의 본체가 우리를 만나고 싶다 는 말과 함께 새하얀 빛이 번쩍이더 니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우리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금빛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마치 시계 장치 속을 떠올리게 해 서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신비의 기운을 감지한 나는 이 공간이 일반적인 탑
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지?”
“검정의 본체가 보고 싶다고 했으 니 탑의 중심부 아니야?”
탑의 중심부는 이름 그대로 탑의 중심으로 마력과 신비 등 탑의 모든 것을 제어하는 공간을 말한다.
탑의 모든 것을 처리하는 중요한 공간이기에 탑의 초대 없이는 절대 입장할 수 없는 특수한 공간이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때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목소리 가 들려왔다.
탑의 의지처럼 머릿속을 울렸기에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왔는지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리 고, 그 발소리는 우리들의 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금발의 미 청년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이 서 있는 탑의 의지인 ‘사계의 탑’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 사계의 탑 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탑이라고?”
[그렇습니다. 저는 이 탑의 관리자 면서 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들을 뵙기 위해 인간의 모습 을 빌려봤는데, 어떠신가요?]
탑이 자신의 양팔을 들어 올리며 잠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제가 이곳에 여러분들
을 부른 건 꼭 직접 뵙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탑은 어딘가 홍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몸의 제스처 도 커졌다.
[닥쳐오는 수많은 시련…… 하지만 모든 걸 극복해버리는 강한 유 대……! 저, 사계의 탑은 여러분들 의 우정에 감동했습니다.]
갑자기 청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낯간지러운 대사를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목소리 톤도 연극 톤이다.
검정의 수상한 행동 때문에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의 유대가 더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특 별한 가호를 드릴까 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탑의 말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특별한 가호?”
[네, 그렇습니다. 바로 인연의 가호 입니다.]
인연의 가호.
이름만 들어보면 그레텔에게 얻은 유대의 끈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겠지 만 아이템 대신 가호가 주어진다는 건 꽤 만족스럽다.
아이템은 돈으로 주고 살 수 있지 만, 특성은 포인트로밖에 얻지 못하
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들의 앞에 새하얀 빛의 구체가 구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의 몸 안에 스며들었다.
[적응형 특성, ‘인연의 가호(A)’를 획득했습니다.]
[이서준, 김선우, 최서윤, 윤하영, 신영준, 유아라에게 인연의 결속이 걸립니다.]
[마력이 1 상숭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외부
자의 혜택을 이용해 특성의 정보를 확인했다.
[인연의 가호(A)]
설명 : 인연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가호.
[지속 효과]
►인연의 축복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과 가까이 있 을 때, 몸의 활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사용 효과]
►인연의 결속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력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단, 받은 사람은 나눠준 생명력의 20%만 획득합니다.
그레텔의 유대의 끈처럼 서로를 강 하게 만들어주는 특성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해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일종 의 치유 특성이었다.
20%라는 비효율적인 수치가 조금 거슬리지만, 이서준의 죽음을 막아 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보험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라 만족스럽다.
“인연의 가호……
그리고 다른 애들도 자신들이 받은 가호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몸으로 체감한 모양이다.
“……음, 이거 좋은 건가?”
“나쁘지 않지. 효율이 낮기는 해도 언젠간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 고.”
신영준의 말에 유아라가 대답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끼어들었다.
“난 이 특성 좋아.”
“나도. 인연의 가호라는 이름도 마 음에 들고.”
윤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마음에 들어요. 다른 건 몰 라도 여기에 있는 누군가에게 안 좋 은 일이 생기면 도와줄 수 있는 거 잖아요.”
그렇게 말한 최서윤이 힐끔 내 쪽 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안에 담긴 걱정과 불안의 감정
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신경 쓰지 않는 척하더니 내심 고 블린의 예언이 계속 생각났던 모양 이다.
그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안 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다들 제 선물에 만족해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제가 드린 인연의 가호는 여러분들의 인연이 쉽게 끊 어지지 않게 만들어 줄 겁니다.]
우리는 모두 탑을 바라보았다.
탑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슬슬 여러분들을 인간 세계 로 보내줄 때가 됐군요. 무료한 일 상 속에서 특별한 손님들을 만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탑의 시선이 은근슬쩍 나를 향했다. 그러곤 빙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탑, 아니. 신비로서 충언을 해드리겠습니다.]
나를 향한 탑의 시선이 이서준을 향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게 될 순 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최우선 가치가 무엇인지 미리 생각 해두시길 바랍니다.]
휴가였는지 탑 공략이었는지 혯갈 리는 사계의 탑 공략을 마치고 우리 는 인간 세계로 돌아왔다.
밖으로 걸어 나오고는 멍하니 사계 의 탑을 올려보았다.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긴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 는 것인지 말없이 사계의 탑을 올려 보았다.
“휴가도 이제 끝이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윤하영이었다. 아쉬움과 개운함이 담긴 목소리 였다. 신영준은 실실 웃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으~ 즐거웠다. 최종 보상은 개인 적으로 아쉽긴 한데, 이 창을 얻었
으니까 만족.”
신영준이 사계의 탑에서 구매했던 A등급의 창, ‘여름의 파괴자’를 가 볍게 휘둘렀다.
다른 이들도 자신이 얻은 아이템들 을 확인했다.
결정 조각을 이용해 구매한 것들이 많았기에 가방이 한가득이었다.
참고로 남아 있던 결정 조각은 모 두 소멸되었다.
그때 윤하영이 ‘인연의 나침반’을 꺼냈다.
“결국 이것도 현실로 가져와 졌 네.”
그러자 모두가 주머니에서 각자 나 침반을 꺼냈다.
나는 인연의 나침반을 내려보다가 말했다.
“이건 파괴하자.”
인연의 나침반 처분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해봤는데, 역시 앞으로의 계 획을 생각하면 파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단순히 ‘김진우’의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이유를 제외하고도 다른 이 유가 더 있었다.
그러자 윤하영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파괴하자고? 왜?”
“개인 사생활은 지켜줘야지.”
그 말에 유아라도 생각에 잠긴 얼 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우 말도 어느 정도 맞아. 어 찌 됐든 이 나침반이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건 사실이니까. 이 나침반 에 마력을 담은 것도 상황에 떠밀린 거였고.”
유아라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설득력 있는 주장에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주장에 한 마디를 더 했다.
“무엇보다 이 나침반은 우리의 약 점이 될 가능성이 있거든.”
“약점?”
“만약 테러리스트나 마인에게 이 나침반을 빼앗겼다고 생각해봐. 그 럼 어떻게 되겠어?”
내 말에 모두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 그 부분은 생각을 못 했네.”
이서준이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 정을 지었다.
가까운 미래, 원작 전개와 달라지
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특무 팀에서 활동하게 된다.
앞으로 온갖 빌런과 마주쳐야 할 그들이기에 인연의 나침반은 확실히 약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나만 위험해지는 건 상관없지만 여기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
이서준도 내 의견에 결국 수긍했다.
“……아쉽네. 잠깐이지만 추억도 생겼고, 우리 사이를 증명해주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럼 이건 어때요?”
윤하영의 중얼거림에 최서윤이 끼 어들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최 서윤을 향했다.
“파괴하지 말고 다 함께 어디에 묻 어두는 거예요.”
“묻어두자고?”
“네, 우리만 아는 장소에 보관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최서윤의 제안에 이서준이 피식 웃 었다.
“그거 괜찮은데?”
“오. 좋다. 그래, 나도 파괴하기 뭔 가 아쉬웠는데 어딘가에 묻어두면
상관없겠네.”
신영준도 최서윤의 의견에 힘을 실 었다.
“나도 찬성!”
윤하영도 아까와 다른 힘찬 목소리 로 외쳤다.
“그 정도는 괜찮긴 하겠네.”
유아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들.
그 시선들을 마주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하자 그럼.”
“오케이!”
윤하영이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럼 어디에 보관할까요?”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지. 그리고 우리만 알 수 있는 장소로.”
내 말에 이서준이 고민하는가 싶더 니 말했다.
“마법사관학교 뒷산 어때?”
“ 뒷산?”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알고 있 어. 아마 너도 알 거야.”
뒷산에 숨겨진 진천우의 아지트 근
처를 말하는 것 같다. 확실히 그 주 변은 눈에 띄지도 않고 찾기 힘들긴 하지.
“괜찮네. 거기로 하자.”
그렇게 의견이 결정되고 우리는 게 이트를 타고 오랜만에 마법사관학교 로 돌아왔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 안은 휑했다.
우리는 숙소와 마도구 상점에서 몇 가지 물건을 챙긴 뒤 뒷산을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진천우 의 아지트가 있다.
“이런 장소가 있었네.”
“그러게. 뒷산은 자주 안 가봐서 몰랐는데.”
모두가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함을 느낄 때, 이서준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흙을 쓸었다.
“음. 여기가 좋겠다.”
“오케이.”
우리는 미리 챙겨둔 삽으로 흙을 파내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생기자 마도구 상점에서 구매해 놓은 ‘은폐 보관 상자’를 넣었다.
그 뒤 상자의 뚜껑을 열어 ‘인연의
나침반’을 차곡차곡 넣었다.
“이러니까 뭔가 타임캡슐을 묻는 거 같네.”
유아라가 상자 속의 나침반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윤하영이 모두의 시선을 끌려 는 듯 박수를 쳤다.
“우리 기념사진 한 장 찍자. 여기 모여 봐.”
윤하영이 숙소에서 챙겨왔는지 카 메라 한 장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본 나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사진을 몇 장을 찍는
거야.”
거짓말 안 하고 사계의 탑 입장 이후로 사진만 몇백 장은 찍은 것 같은데.
그러자 윤하영이 말했다.
“다 추억이잖아. 그리고 다 함께 찍은 사진도 없고. 이번에 다 같이 찍으려고 삼각대도 챙겨왔단 말이 야.”
윤하영이 손에 쥔 삼각대를 들어 올렸다. 이서준은 쓴웃음을 짓다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마지막 한 장인데 끽자.”
“……그래, 마지막이니까.”
“그럼 찍는 거지? 자자, 그러면 거 기 모두 서 있어봐.”
우리는 타임캡슐 앞에서 함께 사이 좋게 섰다. 그리고 삼각대 위에 올 려진 카메라를 보았다.
카메라 설정을 마친 윤하영이 빠르 게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찰칵. 셔터가 울리고 그 뒤 폴라로 이드 카메라처럼 카메라 위에서 깔 끔한 화질의 사진이 곧바로 나왔다.
“오. 사진 바로 나오네?”
“봐봐. 잘 나왔어?”
신영준의 물음에 윤하영이 사진을 물끄러미 보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 었다.
“다 잘 나왔어. 이 사진도 상자에 같이 묻어두자.”
“사진도?”
“웅, 나중에 다 같이 열어보자. 으 음. 한 20년 뒤? 선우야 어때?”
20년 뒤라…….
아득히 먼 시간이다. 과연 그때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때까지 이 세계에 남아 있을까?
그런 온갖 의문에 휩싸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윤하영이 말했다.
“선우야?”
나는 윤하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20년 뒤 8월에.”
“웅.”
우리는 사진을 상자의 가장 밑에 넣어두었다.
뚜껑을 닫고는 조심스레 흙으로 덮 었다.
이 상자에는 그 어떤 마도구로도 감지되지 않는 은폐 기능이 있다.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이 상자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을 묻어두었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로 들어서자 혼자 퍼즐을 맞추 던 그레텔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응애!”
그레텔이 반가워하는 얼굴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레텔을 번쩍 안 아 들었다.
“그레텔〜 잘 지냈어?”
그레텔이 고개를 저었다. 많이 심 심했다고, 외로웠다고 어필하는 것이다.
탑 공략을 한다고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놔두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 었다.
나는 그레텔의 등을 쓸어 담다가 부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밥은 잘 해 먹었나 보네.”
싱크대 위에 차곡차곡 쌓인 그릇이 보였다. 설거지까지 마쳤는지 살짝
물기가 남아 있었다. 엄청 깨끗하게 잘 닦았네.
밥도 스스로 해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 나무라니.
세상에 이런 똑똑한 나무가 어디 있을까?
기특한 마음에 그레텔을 꽈악 안아 주었다.
그렇게 그레텔을 내려주고는 힘없 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일주일간 밖에서 생활하다가 이렇 게 소파에 앉아 있으니 마음에 평안 이 찾아온다.
“……역시 집이 최고구나.”
그러면서 사계의 탑에서 있었던 일 들을 다시 떠올렸다.
고생도 많았지만 관광용 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즐거운 기억도 많았 다.
이서준의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오랜 만에 모든 걸 잊고 편하게 즐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고블린의 예언이 다 시 떠올랐다.
“그레텔.”
내 부름에 그레텔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내가 죽으면 그레텔은 어떻게 할 거야?”
“......웅애?”
그레텔이 당황한 눈으로 나를 올려 본다. 마치 나보고 죽냐고 묻는 듯 한 눈빛이다.
“……어, 그러니까 인간은 평생 살 수 없잖아. 그레텔은 불멸이지만 나 2=—”
“응애애애!”
그레텔이 내 말을 자르며 다시 소 리를 지른다.
똘망똘망한 두 눈에서는 물기가 가
득 차오르더니 이내 닭똥 같은 눈물 을 떨어트린다.
괜히 당황해서 그레텔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냥 해본 말이야. 나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응애애……
나는 그레텔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 다.
그럼에도 그레텔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딸꾹질까지 하면서 서럽게 운다.
진짜 괜한 말을 했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진정됐는지 그레텔의 눈물이 멈추었다.
다시 한번 그레텔을 쓰다듬어 주고 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레텔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바닥을 보며 방 안으로 들 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후우.”
소파에 다시 둥을 기댔다.
티는 내진 않았지만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솔직히 말해서 마음
이 많이 무겁다.
진천우가 왜 불사에 그렇게 집착했 는지 이제는 이해가 될 정도.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거기서 내 삶이 끝나는 걸까, 아니 면 이서준이 죽을 때와 같이 과거로 또 회귀하는 걸까?
무엇이 됐든 그런 일은 절대 겪고 싶지 않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포인트가 꽤 쌓이지 않았나?
곧바로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 225,000]
“ 오.”
드디어 목표했던 22만 포인트를 달성했다.
특성 할인 쿠폰은 사용했을 때 SS 등급 특성을 구매하기 위한 최소 포 인트였다.
드디어 내가 SS등급 특성을 사게 되는 구나.
괜히 뿌듯한 기분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포인트 상점을 쭉 둘러보았 다.
“……역시 이게 좋겠지.”
[달의 가호(SS)]
분류 : 특성
설명 : 달을 수호하는 요괴의 피
[지속 효과]
►달의 포옹
보름달이 뜬 날, 달빛을 받으면 모
든 능력치가 5배 상승합니다.
가격 : 400,000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떠오른 밤 밖에 효과를 얻지 못하지만 그만큼 빌런 상대로 확실하게 숭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장 점이 있다.
그리고 [능력 조건 변경권(???)]이 있기에 까다로운 발동 조건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기도 하고.
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졌는 지 모르는 지금 시점에서 이것만 한 특성이 없다.
사실 특성이 아닌 스킬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포인트 상점에서 판매하는 스킬에는 큰 단점이 하 나 있다.
바로 강한 제약이다.
긴 재사용 대기시간. 혹은 엄청난 양의 마나 소모.
그 외 기존의 능력보다 너프가 되 어 있기에 솔직히 말해서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래, 이거로 하자.”
고민하면 끝도 없으니까.
[‘SS등급 이하 45% 종합 할인 쿠 폰으???)’.을 사용합니다.]
[‘달의 가호(SS)’를 180,000포인트 만큼 할인합니다.]
[‘달의 가호 (SS)’를 구매하셨습니다.]
[‘SS등급 특성 구매’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새하얀 빛이 허공 위에 떠 올랐다. 빛은 이내 내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이것으로 나는 SS등급 특성을 얻 게 되었다.
강원도 어딘가에 숨겨진 한세진의 별장.
엘린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여러 종류의 마도구를 내려보았다.
“이게 뭐야?”
엘린의 물음에 한세진이 미소를 지 으며 말했다.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지원해드 리는 장비입니다.”
“장비?”
엘린은 마도구를 내려보았다. 마도 구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보통 물건들은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김진우를 처 리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습니다.”
엘린은 마도구 밑에 적힌 감정 성
능표를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옷, 장갑, 신발, 각종 주문서…….
모두가 돈 주고도 구매하기 힘들다 고 알려진 s등급의 아이템들이었다.
엘린은 황당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재앙급 마수라도 사냥하러 가는 줄 알겠어.”
S등급도 아닌, 고작 A등급 마법사 인 김진우를 죽이기 위해 준비한 것 이라니.
과해도 너무 과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 이다.
그러나 한세진은 별생각이 없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한성가에 이 정도 마도구는 넘쳐 흐릅니다.”
“……좋아. 어차피 내 물건도 아니 고, 김진우는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게.”
“그리고 저번에 마주쳤던 그 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아마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S등급 마인을 말하는 걸 테다.
마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상 당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명령은 절대적이니 엘린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상황.
S등급이 둘인데 거기다가 엄청난 마도구를 지원받았다.
A등급 마법사인 김진우는 이미 죽 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자리를 만든다면서 언제까 지 기다려야 하지?”
엘린의 물음에 한세진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엘린은 그것을 받았다.
종이로 된 초대장이었다.
“......이건?”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한성가의 건 재함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한 연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엘린은 물끄러미 초대장을 보았다.
“여기에 김진우가 참가할 거란 이야기지?”
“네, 무조건 참가할 겁니다.”
“하지만 연회에는 많은 사람이 참 가할 텐데 괜찮겠어?”
한세진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 를 꼬았다.
“당연히 그 장소를 따로 마련할 생
각입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 할…… 그런 공간을 말이죠.”
한세진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엘린은 그 미소를 보며 속으로 역겨 움을 느꼈다.
“분명 말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너와 나의 관계는 끝이야.”
“네, 그러시죠. 일족의 부흥인지 뭔 지도 멀리서 응원해드리겠숩니다.”
엘린은 다시 초대장으로 시선을 돌 렸다.
그곳에는 [만월의 밤]이라는 문구 가 적혀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