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휘이이잉!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가 몰아치 는 설원.
최서윤은 움푹 파이는 눈밭을 걸으 며 목적지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조금 전만 해도 일행과 함께 있었 는데 강한 바람과 함께 시야가 흐려 지더니 한순간에 혼자가 되었다.
그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미스터리 설원’이라는 이 름답게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단서라도 있으면 좋을 텐 데.”
이 넓은 눈밭에서 혼자 뭘 하라는 거야.
“하아.…”
그렇게 최서윤은 한숨을 푹 내쉬다 가 일행과 헤어지기 전에 있었던 김 선우의 머리핀 선물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뭘까?”
김선우 선배님과 유아라 선배님의 사이가 자신이 아는 것보다 가깝다
는 건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야밤의 공원 앞에서 단둘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기도 했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도 허물없다는 느 낌을 많이 받았었으니까.
하지만 최서윤은 그 두 사람은 단 순한 친구 사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느꼈을 때 둘 사이에서 특 별한 감정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그건 자신의 착각이 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핀.”
머리핀의 선물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친구끼리 선물을 주는 건 흔 한 일이지만 1억이 넘는 마도구를 선물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지 않 나……?
정말 오랜 시간 만나온 소중한 사 람이 아니고서야.
그때 최서윤은 김선우의 마지막 해 명을 떠올렸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봐. 그러니 까……
김선우 선배님이 마지막에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오해하지 말라는 걸 보면 다른 이 유가 있던 거 같기는 한데.
하필 그 타이밍에 헤어지게 된 건 뭐 람.
“……으, 추워.”
최서윤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눈보라가 어째 한충 거세진 기분이 다.
다른 건 제쳐두고 우선 이 눈보라 부터 해결해야겠지.
최서윤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불어오는 눈보 라가 장막의 형태로 쩌저적 얼어붙 기 시작했다.
얼음의 장막은 점차 넓어지더니 마 치 거대한 우산처럼 눈보라와 강한 바람을 막아주었다.
“휴. 이제야 좀 앞이 보이네.”
자신의 마력 활용법에 최서윤은 스 스로 기특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속성에게 없는 얼음 속성 마 법만의 장점이 있다면 역시 마력의 고체화.
이런 사소한 마법 활용법에서 빙 속성 마법사의 실력이 나뉘게 된다.
최서윤은 자신의 머리에 쌓인 눈을 탁탁 털고는 다시 발을 앞으로 내디 몄다.
그럼 선배님들을 찾으러 가볼까.
최서윤은 다시 눈보라를 헤치며 앞 으로 걸었다.
그렇게 목적지 없는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최서윤은 설원 중심에 박혀있는 낡 은 팻말을 발견했다.
[이 땅은 얼음 마녀의 저주를 받아 영원한 겨울이 찾아왔다.]
[얼음 마녀가 죽기 전까지 이 땅의 생명체는 모두 얼어 죽을 것이다.]
“……얼음 마녀? 영원한 겨울?”
그때 였다.
[‘최서윤’님이 설원의 미스터리를 밝혀냈습니다!]
[이 땅은 얼음 마녀의 저주를 받아 영원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영원한 겨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는 얼음 마녀를 처치해야 합니다.]
[사계의 탑 19충 2 스테이지, ‘미
스터리 설원’이 공략되었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인연의 나침반’이 지급됩니다.]
“……어? 어어?”
뜬금없는 스테이지 공략에 최서윤 은 당황했다.
들려오는 탑의 의지에 의하면 자신 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스테이지 가 공략된 모양이다.
“뭔진 몰라도 내가 해낸 건가?”
그때 그녀의 앞에 새하얀 빛이 뿜 어지더니 이내 작은 원반 형태로 변
화했다.
조심스레 그것을 쥐자 그것은 나침 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자연스럽 게 나침반의 사용법이 각인 되었다.
“……인연의 나침반.”
나침반에 특정 사람의 마력을 등록 하여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유물이었다.
[5개의 나침반이 당신을 인연으로 등록하려 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 까‘?]
“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극소량의 마력 일부가 빠져나오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다섯 갈래로 어 딘가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동시에 반대로 다섯 갈래의 마력이 최서윤을 향해 쏘아지더니 그녀의 손에 쥔 나침반에 담겼다.
최서윤은 본능적으로 나침반 안에 일행의 마력이 담기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최서윤은 곧바로 눈을 감으며 누군 가를 떠올렸다. 동시에 나침반의 바
늘이 움직였다.
[사계의 탑 19층 3 스테이지, ‘단 서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해서 는 얼음 마녀의 단서를 찾아야 합니다.]
[이 땅에 흘어진 단서를 모아 얼음 마녀의 행방을 찾고, 흩어진 동료와 만나세요!]
새로운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최서윤은 나침반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설원 어딘가에 숨겨진 깊은 동굴.
나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녹이고 있었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눈보라가 워낙 강하다 보니 적당한 장소를 찾아 피난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설산을 다녀왔지 만, 이곳만큼 심한 곳은 처음이었다.
이제는 다른 애들이 잘 살아 있을 지 걱정되는 수준.
그래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니 알아서 잘 살아남을 것이다.
“흐음. 얼음 마녀에 대한 단서도 찾아야 하는데.”
최서윤 덕에 새로운 스테이지가 빠 르게 열렸다.
초반 흐름은 원작과 미묘하게 달랐 지만 결국 겨울을 유지하는 얼음 마 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지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스테 이지 공략은 자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찾는 게 좋겠지.
그리고 나를 찾는 애들도 있을지 모르니 섣불리 움직였다가 서로 엇 갈릴 수 있기도 하고.
“흐아암……
크게 하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설치해둔 ‘고블린 특제 압축 위장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아늑한 내부. 고블린 램프로 텐트 안을 밝히자 따스함도 함께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침낭을 깔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좋네.”
침대보다는 조금 불편하지만, 바깥 환경을 생각하면 극락이 따로 없다.
그렇게 혼자 누운 채 천장을 바라 보다가 주머니에서 ‘인연의 나침반’ 을 꺼냈다.
[인연의 나침반(유물)]
설명 :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의 위 치를 찾을 수 있는 나침반. 마력을
주입하여 인연을 등록할 수 있다.
인연의 둥록 제한은 없으나 연결된 인연 중 한 사람이라도 끊어질 시 나침반은 파괴된다.
“……보상으로 이게 나올 줄은 몰 랐는데.”
인연의 나침반은 다른 사람의 마력 을 등록하여 원하는 사람의 위치를 알게 해주는 유물이다.
일종의 위치 추적기인데 이렇게 보 면 이서준이나 다른 일행의 위치를 빠르게 찾아 도와줄 수 있어 좋은
아이템인 것 같지만 나에게는 꼭 그 렇지는 않다.
다른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역으로 애들에게 걸릴 가능성이 생 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탑 공략을 마쳐야 하기에 어 쩔 수 없이 마력을 나눠주기는 했는 데 왠지 이것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졸업 이후에 ‘김진우’보다는 ‘김선우’로 움직일 일이 많을 테지
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번 마력이 등록된 나침 반은 바꿀 수 없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나침반이 고장 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끝나고 다 같이 파괴하자고 제안 해야 하나.”
사생활 침해를 걸고넘어지면 각자 나침반을 파괴하는 것으로 합의를 볼 자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내 정체를 들키는 것보다 이서준의 생존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으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동굴 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 는 몸을 일으키고는 밖을 보았다.
눈보라 사이에서 이쪽을 향해 터벅 터벅 걸어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머리 위로 얼음 장막을 넓게 펼쳐 눈보라를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로 걸어오는 최서윤이었다.
보아하니 나침반을 보고 찾아온 모 양이다.
“선배님!”
최서윤은 나를 보더니 손에 쥔 나 침반을 흔들며 반가운 얼굴로 다가 왔다.
나는 텐트 밖으로 나와 가볍게 미 소를 보이며 그녀를 맞이했다.
“춥겠네. 빨리 들어와.”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 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동굴 내부를 둘러보며 감 탄한 둣 입을 벌렸다.
“와.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어요? 되게 아늑하다.”
“따듯하지?”
“네에.”
“모닥불 앞에서 몸 좀 녹이고 있 어.”
내 말에 최서윤은 모닥불 앞으로 쪼그려 앉았다.
나는 모닥불 위의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그녀에게 넘겼다.
“앗. 감사합니다.”
최서윤이 물잔을 받더니 홀짝 마신 다.
그렇게 시간을 축이며 우리는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가볍게 대화를 나 누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최서윤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보 았다.
“선배님.”
“웅?”
“……그, 아까 헤어지기 전에 선배 님이 뭔가 말하려 했었잖아요. 그게 뭐예요?”
뭔가 했더니 유아라의 머리핀 이야기인 모양이다.
아까부터 은근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걸 묻고 싶었나보다.
나도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빠
르게 설명으로 하려 했다.
그때, 다시 한번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서윤도 그걸 느꼈는지 동굴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동굴 밖에서 검은 실루엣이 이쪽으 로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잔뜩 쌓인 눈덩이를 보 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우야!”
윤하영이었다. 나와 최서윤은 함께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윤하영은 최서윤을 발견하고는 잠
시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서윤이도 있네.”
“넵, 저도 방금 왔어요.”
나는 그녀의 머리에 쌓인 눈을 털 어주었다. 후두둑. 두껍게 쌓인 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 다 맞고 왔네. 얼음 장막으로 눈 좀 피하지. 얼음 속성이면 여기 서 구현도 쉬운 거 아니야.”
“아, 그럴 걸 그랬나? 아예 생각을 못 했네.”
윤하영이 탁탁 내게 쌓인 눈을 털 리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털어주면서 최서 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는 장막으로 촘촘하게 다 막고 왔어. 이런 것 좀 보고 배워.”
“……서윤이가 1등 출신이라 다르 긴 하네.”
윤하영의 칭찬에 최서윤은 미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눈이 다 털리자 윤하영이 동굴 안 을 둘러보았다.
“와. 근데 선우야. 진짜 아늑하게
잘 꾸몄다. 저 텐트 고블린 마을에서 산 거 맞지?”
“맞아. 내부도 생각보다 따뜻하고 넓더라고.”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살 걸.”
윤하영이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모닥불 위 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 라 주었다.
“아, 땡큐.”
윤하영이 불 앞에 쪼그려 앉더니 홀짝 물을 마셨다.
차갑게 얼은 몸이 좀 녹았는지 표 정도 서서히 포근해진다.
윤하영은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 다가 힐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맞다. 선우야. 그 있잖아. 아까 아 라 머리핀은 어떻게 된 거야?”
최서윤도 그렇고 윤하영도 그렇고 이번 스테이지 이야기보다는 이쪽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할 얘기도 많을 텐데 이 이야기부 터 꺼내는 걸 보니 어지간히 궁금한 가 보네.
“말 그대로 오해야.”
“무슨 오해?”
“유아라한테만 선물한 게 아니라 이서준한테도 선물해줬거든.”
내 말에 최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서준 선배님한테도 머리핀 을 선물했다고요?”
“아니, 머리핀이 아니라 이서준이 끼고 있던 반 장갑. 그거 유아라한 테 머리핀 준 날 같이 준거거든.”
“아~ 그냥 값비싼 우정 선물이라 는 거야?”
윤하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뭐, 그런 셈이지.”
내 말에 윤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 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하긴…… 선우가 예전부터 통이 크긴 했지. 이것저것 잘 사주 기도 했고.”
그러자 최서윤이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선배님도 선물 받은 게 있으 세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