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Death.
죽음, 사망, 종말.
이 카드에 담긴 정확한 해석은 알 수 없었지만, 저 영단어에 담긴 뜻 을 알고 있었기에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었다.
“재밌는 카드가 나왔네요.”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진 고블린이 카드를 내려보고는 말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굳은 얼굴로 물었
다.
“……이 카드, 무슨 의미죠?”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앞 에서 말한 5, 6개월 뒤에 죽음의 위 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 죠.”
그 말에 최서윤이 미간을 좁혔다.
“이거 타로 카드 같은 거 아니에 요? 저도 예전에 해봐서 알고 있는 데 겨우 한 장 가지고 막 해석하시 는 거 같은데.”
“그것과 이건 다릅니다. 해석 방법 도 다르고, 앞에서 말했듯 이 카드 에는 특별한 힘이 담겨 있으니까
요.”
고블린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을 가린 검은 천 사이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속마음을 꿰뚫는 것 같다 고 해야 하나.
“사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몇 장의 카드를 더 확인하기는 합니다만…… 이건 특수한 경우라 한 장으로 판단 할 수 있죠.”
“특수한 경우요? 무슨 특수한 경우 인데요?”
최서윤이 쏘아내듯 물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설명해드릴 순 없습니다.”
“……그게 무슨.”
최서윤이 나를 돌아봤다.
“선배님, 제가 괜히 오자고 했나 봐요. 이런 거 신경 쓰지 마요. 그 냥 나가요.”
어딘가 화난 둣한 최서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앉혔다.
“있어 봐.”
“선배님.”
나는 고블린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이 카드가 인과율의 흐름을 읽는 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그럼 확률은 어느 정도죠?”
“사람마다 다릅니다. 세계의 법칙 아래, 각자 쌓아놓은 인과가 다르니 까요. 보통은 40%의 확률도 되지 않습니다.”
고블린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다 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과가 쌓여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몇 배가 되는 수치죠. 그리고 이렇게 인과를 쌓았다는 건 아마……
중얼거리던 고블린이 최서윤과 이서준을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무언가 수상함을 느꼈는지 그 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그쪽 기준으로는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아마 제 추측이지만 90%는 넘 지 않을까 합니다.”
“......90%?”
이번에는 이서준이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
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카드가 꼭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또 아니까요. 죽음 카드는 실패, 큰 변화, 이 별…… 또는 종결 이후의 새로운 시 작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고블린이 나를 보며 웃었다
“이 중 어떤 것이 당신의 미래에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 과 이별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지금 까지 겪어보지 못한 삶의 큰 변화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별과 변화가 당신의 죽음을 의미하 는 걸지도 모르죠. 후후.”
고블린이 낮게 웃자 이서준이 한숨 을 내쉬었다.
“……됐다. 괜히 기분만 나빠지네. 그냥 나가자.”
이번에는 이서준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최서윤도 그를 따라 벌떡 일 어났다.
“선배님 나가요.”
보아하니 둘 다 꽤 열 받은 모양 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점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감동이 기는 하다만.
괜히 분위기에 이끌려 어쩔 수 없 이 나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함께 밖으로 나가는 척하다 가 둘에게 말했다.
“잠깐. 먼저 가 있어 봐.”
“ 웅?”
이서준이 나를 돌아봤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금방 올 게.”
“그럼 같이 가요.”
“아냐,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먼저 가.”
내 말에 이서준과 최서윤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서준과 최서윤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고 블린에게 다시 돌아갔다.
고블린이 다시 돌아온 나를 보고는 말했다.
“다시 오셨네요. 더 하실 얘기라 도?”
“야. 너 정체가 뭐야?”
다짜고짜 반말로 쏘아 붙듯 물었다.
탑의 공간은 일종의 던전으로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이다.
즉, 탑에 거주하는 대다수 생명체
는 NPC가 아닌 실제 살아있는 생 명체라는 거다.
그리고 눈앞의 고블린 역시 실제 살아있는 고블린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고블린치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인과율의 의미는 인간들도 이해하 지 못한 영역이니까.
“후후. 역시 그게 궁금했군요.”
고블린이 다시 한번 낮게 웃었다.
“됐고, 너 정체가 뭐야? 어떻게 인 과율을 알고 있냐고.”
“……제 정체 말입니까? 좋습니다.
이야기해드리죠. 저는 개안자(開眼 者) 입니다.”
“개안자?”
고블린이 눈앞에 가려진 검은 천을 치웠다.
동시에 나는 깜짝 놀랐다.
고블린의 두 눈 전체가 우주와도 같은 짙은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눈에서 신비와 비슷한 기운을 감지했다.
“개안. 인간의 언어로 특성이라고 하죠. 저에게는 인과율의 흐름을 읽 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마인이 가 졌던 예언의 특성과 함께 극소수의
존재에게만 내려주는 저주이죠.”
“왜 저주라는 거지?”
“알고 싶지 않은 세계의 비밀을 알 게 되어버리니까요.”
“알고 싶지 않은 세계의 비밀?”
“세계의 법칙과 같은 것이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은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고블린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고 개를 끄덕였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녀석은 정말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는 건 정말 5, 6개월 뒤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건가?”
자칫 심각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 리자 고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과…… 아니,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이 당신에게 집 중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폭발하는 기점은 아마 당신이 말한 5, 6개월 뒤겠죠.”
그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 했다.
“조심하세요. 가까운 미래에 당신 에게 지금까지 겪지 못한 큰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승합니다.]
고블린과의 대화 이후 밖으로 나왔다.
무거운 여름의 밤공기가 느껴졌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서준과 최
서윤이 나를 돌아보았다.
“안에서 무슨 얘기 했어?”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그런 얘기를 했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 며 말하자 이서준이 말했다.
“아까는 점 같은 거 안 믿는다더 니…… 은근 신경 쓰였나 보네.”
“면전에 대고 너 죽는다는데 신경 이 안 쓰이겠어?”
“……하긴. 근데 너무 신경 쓰지 마. 단순한 점일 뿐이야.”
“맞아요. 카드 한 장으로 판단하는
점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세계의 법칙과 같은 개념을 모르는 이들이었기에 단순한 점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점을 보기 전 상반된 우리의 태도 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불편한 의문을 가슴 속에 묻 어둔 채 그들에게 안심하라는 둣 살 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신경 안 써.”
“그러면 다행이지만……
“얘들아〜 아! 겨우 찾았다.”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 뒤를 돌자 각자 손에 꼬치를 쥔 윤하영과 유아라, 신영준이 이쪽으 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검정이 함께 있었다.
“이거 먹어. 너희들 것도 사 왔어.”
윤하영이 봉투안에 든 꼬치를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야채와 고기. 그리고 달콤한 향이 나는 소스가 발 라져 있었다.
얘는 결정 조각 아깝게 이런 걸 샀네.
“와. 맛있겠다. 잘 먹을게.”
꼬치를 받은 이서준이 검정에게 시
선을 돌렸다.
“근데 검정도 있네. 중간에 사라지 더니 어디 갔다 온 거야?”
[아, 잠깐 할 일이 생겨서요. 제 본 체를 보고 왔다고 해야 할까요?]
“본체?”
[저는 이 ‘탑의 의지’의 분신, 또는 화신 같은 거라서 말이죠. 상황 보 고라던가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아.”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최서윤이 물었다.
“그런데 저희 찾고 있었어요?”
이서준이 묻자 윤하영이 고개를 끄 덕였다.
“웅, 검정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해서. 계속 돌아다니는데 안 보여서 한참 찾고 있었지. 대체 어 디에 있던 거야?”
그 순간 검정이 옆의 건물을 보고 는 말했다.
[혹시 고블린 점술에 다녀온 겁니 까?]
“……어. 맞아.”
그러자 검정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기괴하게 가늘어졌다.
[이야~ 고블린 점술이 사실 이 마 을의 숨겨진 명소인 걸 또 어떻게 아시고~ 저기가 아주 신통하거든요. 아마인간 세계의 그 어느 점집보다 용할걸요?]
“신통하긴……
최서윤이 작게 이죽거렸다. 그 말 을 듣지 못한 윤하영이 반응했다.
“신통하다고? 그럼 우리도 보자!”
윤하영이 고개를 돌려 유아라와 신 영준에게 외치듯 말했다. 그러자 유 아라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난 저런 거 안 믿어.”
“에이〜 그러지 말고
“안 믿는다니까 그러네.”
어째 아까 최서윤과 나의 대화를 보는 것 같은데.
그때 검정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
렸다.
[그래서 고블린 점술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올 덤덤하게 마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도 돼.”
[에이, 뭔지 알려주세요〜]
검정이 둥둥 떠다니며 내 주위를 어지럽게 빙빙 돌았다.
“그래, 뭐 어때. 뭐라는 데?”
윤하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발탬하다가는 끝도 없이 물을 것 같 아서 어쩔 수 없이 말했다.
“5, 6개월 뒤에 내가 죽는대.”
“......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윤하영은 미간을 좁히더니 획 검정 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통하긴 뭐가 신통해. 완전 돌팔 이잖아.”
오전만 해도 검정이 무섭게 생겼다 며 쳐다도 안 보더니 이번에는 제대 로 노려보고 있다.
꽤나 격한 반웅이라 나까지 조금 당황스럽다.
그러자 검정에게 작은 촉수와 같은 손 하나가 뻗어 나오더니 자신의 머 리 위를 긁적였다.
[허허.. 신통하긴 합니다만. 그
런 안 좋은 점이 나왔나 보네요.]
그러더니 녀석의 눈이 다시 한번
반달 모양으로 가늘어졌다.
[근데 죽는다고 했다고요? ……이 거 재밌네요. 끅끅.]
탑에 입장하고 난지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우리는 꽤 많은 일을 겪었다. 각종 스테이지를 공략하고 탑의 화폐인 결정 조각을 모았다.
또한 중간 마을에 도착해 관광용
탑이라는 명성에 맞게 환상적인 불 꽃놀이 감상이라던가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드림 랜드’라는 거대한 놀 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며 휴가를 즐 기기도 했다.
호화로운 식사는 덤이다.
그렇게 내가 모은 결정 조각은 어 느덧 100개를 넘어섰다.
[사계의 탑 18충 6 스테이지, ‘여 름의 결말’을 공략했습니다!]
[18층을 모두 공략하셨으므로 19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열립니다!]
[보상으로 결정 조각 50개가 주어
집니다!]
[팀의 리더인 ‘김선우’에게는 30개 의 결정 조각이 추가로 지급됩니 다!]
“……후. 드디어 19충인가.”
18충의 보스, 철갑으로 몸을 두른 여름의 수호자의 몸에 박힌 검을 뽑 은 이서준이 말했다.
모두의 협공으로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무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패턴이 까다로워 시간을 꽤 잡아먹 었다.
다행히 여름의 수호자는 원작의 사 계의 탑 에피에서도 등장했던 녀석 이라 쉽게 패턴을 파악해 공략할 수 있었다.
“와. 근데 이번에 결정 조각을 50 개나 주네.”
“그러게. 서준아. 지금까지 몇 개 모았어?”
윤하영의 물음에 이서준이 결정 주 머니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난 134개.”
“진짜? 난 107개인데.”
“전 112개요. 중간중간 MVP나 다
른 활약을 하면 더 챙겨줬잖아요. 그래서 차이 나는 것 같아요.”
“……으음. 그래도 차이가 꽤 크네. 일부러 결정도 아꼈는데.”
그러자 유아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끼긴 뭘 아껴. 드림 랜드에서 음식 좀 그만 사 먹으라 했잖아.”
“……핫도그 두 개밖에 안 먹었어. 그거 합쳐봐야 결정 조각 4개라고.”
그들의 말에 나도 슬쩍 결정 조각 주머니를 확인했다.
으음. 생각보다 무게가 묵직한데.
개수를 세어보니 186개다.
[18층의 특별 상점이 열립니다!]
동시에 들려오는 탑의 의지.
사계의 탑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새하얀 공간 중앙이 열리며 무언가가 덜컹덜컹하며 올라왔다.
그곳에는 거대한 벽판, 그 앞에 전 시되어있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었다.
“어? 상점이다! 빨리 가 보자!”
우리는 특별 상점으로 이동했다.
“흐음. 생각보다 파는 게 많네.”
“그러게. 밑에 가격표랑 성능표도 있어. 뭐 사지?”
“얘들아, 결정 조각 너무 막 쓰진 마. 19층에서도 써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윤하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 촉인데 여기서 아끼면 똥 될 수도 있어.”
내 기억이 맞다면 다음 층으로 넘 어간다고 해서 결정 조각의 소모처 가 많아진다거나 하지는 않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미리미리 조 각을 소모해 두는 게 좋다.
물론 원작의 흐름과는 조금 다르기 에 아닐 수도 있지만, 괜히 똥되는 것보단 나으니까.
윤하영은 내 말에 잠시 생각에 잠 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 두에게 말했다.
“선우가 그렇다고 하네. 그럼 막 쓰자!”
“……막 쓰라곤 안 했는데.”
어찌 됐든 우리는 각자 쇼핑을 시 작했다.
쭉 둘러보는데 원작에서 본 아이템 도 몇 보였다.
[봄의 망토(A)]
[끝나지 않는 겨울의 손아귀 (B)]
[가을비 (C)]
[여름의 분노(C)]
“ 흐음......
생각보다 많네. 신박한 아이템도 많고.
그때 내 눈에 몇몇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 부여서 : 겨울의 수호(S)]
[가격 : 180 결정 조각]
뭐야. S등급도 있었어?”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