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3화 (302/535)

303화

한대현의 장례식을 마치고 한성가 의 사람들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한세연은 넓은 복도를 쭉 걷다가 한대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선반과 그 위에 쌓여 있는 아버지의 유품들.

그녀는 그것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오빠와 함께 찍힌 가족사진을 발견 했다.

사진 속에는 어릴 적 자신과 한세

진.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 지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다시금 가슴 이 먹먹해졌다.

지나간 세월.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 겠지.

한세연은 이내 마음을 다시 잡았 다.

자신을 보호해 줄 아버지는 이제 없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한세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 려왔다.

뒤를 돌자 한세진이 자신을 바라보 고 있었다. 그 뒤에는 항상 한세진 을 따라다니는 그의 경호, 엘린이 있었다.

“수기 아저씨는 당분간 쉰대.”

검귀 장수기.

세간에는 한성가의 검이라고 불리 고 있지만, 그가 충성을 바치던 건 한성가가 아닌 한대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상 그분이 한

성가에 남아 있을 이유는 이제 없겠 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기에 한세 연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장수기와의 오랜 추억이 있었 기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은퇴하시는구나.”

“아니, 2, 3년 정도만 쉬고 다시 일하신다고 하시더라고.”

“다시 일하신다고?”

“어,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 지켜 보시겠다더군.”

“......그래?”

수기 아저씨가 아버지의 검이라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자신만의 착각 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주에 수기 아저씨가 아버지의 유언을 발표하겠다며 모여 달라 하시더라.”

“유언이 있었어?”

한세연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런가 봐.”

아버지의 유언은 꽤 중요한 일이 다.

어쩌면 차기 회장 자리가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정될지도 모를 만큼 큰 의미가 담겼 있으니까.

그때 한세진이 팔짱을 끼었다.

“앞으로 어쩔 거냐?”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긴 물음이었다.

한세연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 를 따라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대답 했다.

“이제 내 뜻을 펼쳐야지.”

“……그러냐.”

한세진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다 시 문밖으로 나갔다.

한세연은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 며 주먹을 꽉 쥐었다.

김진우를 통해 한세진이 마인과 손 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쌓아 올린 한성가 를 무너트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었다.

한성가를 자신이 차지해야 할 이유 가 하나 더 늘었다.

절대로 오빠의 손에 넘어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김선우, 위에서 내려온 특별 휴가 포상이다. 받아라.”

마법사 협회 특무팀 본부.

김덕현이 내게 뻣뻣한 종이 한 장 을 내밀었다.

종이를 받자 주변 관람객(?)의 환 호가 들려왔다.

“이야…… 실습이 특별 휴가 포상 받은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부럽다야.”

나는 종이를 받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서는 종이를 내려보았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하며 안에 담긴 정보가 떠올랐다.

[사계의 탑 18, 19층 입장권(6인)]

설명 : 사계의 탑 18, 19충 입장 권. 최대 6인까지 동행할 수 있다. 입장권의 주인은 ‘리더’로 선정되어 공략 성공 시 더 큰 보상을 획득한다.

*남은 사용 기간 : 87일

사계의 탑.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경 험을 겪게 해준다고 알려진 탑의 이 름이 었다.

공략 난이도도 낮기에 다른 탑과는 달리 가족 간에 입장도 가능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마법사 커뮤니티, ‘대현 자의 숲’ 투표 결과 가고 싶은 휴양 지 1위를 3년 연속 달성한 곳이기 도 했다.

“후배 님! 나도 데려가주라. 내가 평소에 잘 해줬잖아. 응?”

백예진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 콧소리를 섞으며 말했다.

나는 팔꿈치를 휘저으며 그녀를 떨 어트렸다.

“이게 6인 입장밖에 안 돼서요.”

“6인 밖에가 아니라 6인이나 겠 지!”

“거참.”

그렇게 데려가 달라는 요원들에게 한참을 시달리고서야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 흐음......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어냈다.

원작에서도 3년은 뒤에 다뤄질 사 계의 탑 입장권을 여기서 얻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이거 여름 휴가 계획을 전면 수정 해야겠는데.

“이서준.”

내 부름에 옆자리의 이서준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묘한 기대감이 담겨 있 다.

“웅? 왜 불렀어 선우야?”

말투도 평소와 달리 엄청 다정하 다.

잠시 황당함을 느끼다가 말했다.

“이번 휴가 때 사계의 탑 같이 갈 래?”

사계의 탑 공략 시 주는 특별한 보상을 생각하면 이서준만 한 파티 원이 없다. 그의 성장은 세계의 결 말과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니까.

그러자 이서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당연히 좋지. 고맙다 선우

야.”

“……어, 그래.”

이것으로 한 명 구했고.

“유아라.”

내 부름에 유아라가 기다렸다는 듯 획 고개를 돌린다.

“웅?”

“너도 따라갈……

“웅, 나도 갈래.”

엄청 빠른 대답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아라는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

다.

이것으로 나를 포함해 3명이 모였다. 이제 남은 세 자리를 구하면 된 다.

“남은 한 명은 누구 데려갈 거야?”

그때 이서준이 물었다.

“남은 한 명? 이거 6인인데.”

“최서윤, 윤하영은 확정일 거 아니 야.”

이서준이 장난스레 말했다.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 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역시 그렇지.”

두 사람보다 성장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없으니 데려가는 게 맞다.

곧바로 메시지를 입력해 최서윤과 윤하영에게 물었다.

[다음 주 여름 휴가 때 여행 갈 건 데 갈래?]

그러자 동시에 답장이 왔다.

[네! 근데 어디로 가요?]

[여행? 난 괜찮은데 어디로 가게?]

두 사람은 되는 모양이다.

톡톡 메시지를 입력했다.

[사계의 탑]

답장을 보내자 엄청난 메시지 알람 이 울려왔다. 이따 확인하기로 하고 이서준에게 말했다.

“남은 한 자리는 신영준으로 할 까?”

다른 후보로 이현주도 있기는 하지 만 성장 기대치를 생각하면 신영준

이 더 괜찮기는 하다.

그리고 이현주랑 나는 좀 어색한 사이다.

“으음. 영준이도 괜찮지. 그럼 영준 이는 내가 얘기해 둘게.”

“오케이.”

이것으로 멤버는 정해졌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아지랑이가 피 어오르는 무더운 여름.

기다리고 기다렸던 여름 휴가가 시 작되 었다.

나와 이서준, 최서윤, 윤하영, 유아 라, 신영준은 충청북도에 세워진 ‘사계의 탑’에 도착했다.

“와…… 여기가 사계의 탑이구나.”

최서윤이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린 채 사계의 탑을 올려보았다.

무더운 더위에도 활력이 넘쳐 아까 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정작 윤하영은 그 옆에서 더위에 땀을 삐죽 홀리며 비실대고 있는데.

괜히 안타까워서 가벼운 바람 마법

을 구현해 그녀의 얼굴을 쐬어주었다.

[‘생활 마법’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오…….

그때 눈을 감으며 한참 바람을 쐬 던 윤하영이 작게 웃었다.

“으으, 좀 살 거 같다. 고마워.”

“아냐. 더운데 빨리 들어가자.”

“응.”

우리는 사계의 탑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던 협회의 직원이 우리를 알아보았다.

“마법사관학교 학생분들이시네요. 협회에서 김선우 학생이 올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아, 네.”

“그럼 신분증을 확인하겠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신분증을 내밀어 조회를 마쳤다.

사계의 탑은 협회에 얼마 지정되지 않은 ‘관광용 탑’으로 미성년자도

입장이 가능한 곳이기에 입장 절차 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층의 입구에 들어가자 새하얀 빛 으로 빛나는 포탈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응……

동시에 공간이 바뀌더니 신비의 마력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오랜만 에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다만 1년 사이에 수많은 신비를 마주치다 보니 그 전과 달리 마력에 담겨진 신비의 힘이 선명하게 느껴 졌다.

그리고 ‘탑의 의지’가 들려왔다.

[‘입장권’을 확인했습니다.]

[입장 인원은 6명으로 리더는 ‘김 선우’입니다.]

[의문의 힘이 탑에 영향을 끼칩니다.]

[18충으로 이동합니다.]

번쩍!

다시 들려오는 탑의 의지와 함께 또다시 공간이 바뀌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봄처럼 따스한 공간.

형형색색의 꽃이 주변을 가득 채우 고 있었다. 과거 중명의 탑 숨겨진 층에 올랐던 심상 세계를 보는 듯했다.

[사계의 탑 18층 1 스테이지, ‘시 작의 봄’에 입장했습니다.]

[사계의 탑이 당신을 환영합니다.]

“와. 이쁘다.”

최서윤과 윤하영은 들판의 꽃밭을

보며 아이처럼 신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스마트 학생 수첩으로 서 로의 SNS용 사진을 찍어주며 아주 난리가 났다.

어느새 유아라도 그녀들에게 끌려 가 사진을 찍었고, 이서준과 신영준 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뜨거운 청춘이구나.

그때 혼자 있던 나를 최서윤이 발 견했다.

“선배님도 찍어드릴게요! 빨리 오 세요!”

“아냐. 난 됐어.”

“에이. 같이 찍어요〜”

최서윤이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오 더니 팔짱을 끼었다.

그렇게 반강제로 꽃밭에서 사진 몇 장을 찍히고 찍어주고는 겨우 자유 가 되었다.

“......후우.”

혼자가 된 나는 잠시 모두에게 떨 어져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뭔가 다른데.”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사계의 탑에서는 첫 스테이지에 이런 꽃밭이 둥 장하지 않았다.

물론 원작의 배경은 18, 19층이 아닌 12, 13층이라 다른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 와 봤어?”

그때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이서준이 다가왔다.

“아니, 내 생각이랑 조금 달라서. 원래는 관광용으로 알려져 있잖아. 들은 바로는 음식도 차려지고 별장 도 세워져 있다고 들었는데.”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그렇고 원 작에서 보았던 묘사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곳은 관광용 탑이라기엔 허허벌판이었고, ‘전투용 탑’의 냄새

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흐음. 확실히 그렇긴 하네. 다른 스테이지 탈출구도 보이지 않고.”

그때 였다.

“저건 뭐지?”

유아라가 하늘 위를 가리켰다. 동 시에 모두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 로 시선을 돌렸다.

[배고픈 검정과 함께하는 즐거운 숨바꼭질!]

[14 : 01]

[14 : 00]

[13 : 59]

“배고픈 검정과 함께하는 즐거운 숨바꼭질?”

“밑에 숫자도 있는데?"

숫자가 시간처럼 계속해서 내려가 고 있었다.

“제한 시간이네. 60단위로 바뀌는 거 보니까.”

내 말에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제한 시간이 왜 있어? 관광용이라 며.”

“나야 모르지. 랜덤 테마에 잘 못 걸린 걸지도.”

같은 층의 탑이라고 하더라도 수많 은 테마가 존재하고, 그것은 입장하 는 사람에 맞춰 바뀌기도 한다.

“……흐음. 숨바꼭질이라.”

단서를 얻어 숨은 무언가를 찾아내 는 건가 보다.

탑의 스테이지에 자주 나오는 유형 이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검정이라니까 검은색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보니까 관광에 놀이 같 은 개념도 포함되어있는 거 같은 데.”

최서윤이 말에 유아라가 고개를 끄 덕였다.

“일리가 있네. 그럼 검은색부터 찾 아보자.”

“귀찮네. 다른 관광용 탑도 저러 냐?”

신영준이 쯧,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지. 다들 처음 와보는 건데.”

그렇게 대답하고는 주변을 둘러보 았다.

형형색색의 꽃밭 속에서 검은색이 라고 할 만한 것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그러자 꽃밭 사이에서 복잡한 마력 이 얽혀 일그러진 곳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가?

발견과 동시에 그곳을 향해 걸어갔 다.

바닥에 복잡한 술식이 그려져 있었다. 외부자의 혜택을 풀자 술식의 형태는 검은색의 꽃봉오리로 변했다.

“찾았어.”

“어? 벌써?”

윤하영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뒤를 이어서 다른 애들도 내 쪽으 로 다가왔다. 그러곤 검은 꽃봉오리 를 보고는 감탄한다.

“와. 김선우 찾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검은색 꽃

봉오리의 줄기를 집었다.

“그럼 뽑는다?”

그 말을 끝으로 쭉 잡아당겼다. 그 런데.

“......응?”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끙끙, 두 손 으로 잡아당기는 데도 그렇다.

“뭐여. 왜 안 뽑혀?”

뒤에서 나를 향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너네 왜 그렇게 쳐다보냐?”

“아니, 보기에는 쉽게 뽑힐 것 같 이 생겼으니까.”

“선배님, 잘 안 뽑혀요?”

최서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단단하네.”

“어휴. 김선우 허약한 거 봐라.”

신영준이 뒤에서 말했다.

“……뭐래, 기말시험 때 나한테 발 려 놓고.”

“야! 그, 그건! 크홈.”

신영준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기다려봐. 마력으로 뽑아볼게.”

나는 양손에 마력을 집중하고는 꽃

의 줄기를 쥐었다.

그 순간.

검은 꽃이 내 마력을 잡아먹기 시 작했다.

“......뭐야?”

우우우웅!

마력을 홉입하는 속도가 엄청나다.

그렇게 마력을 홉수하던 봉오리는 점자 크기를 부풀리더니 이내 검은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피융! 하는 소리 와 함께 검은 마력 에너지가 하늘 위로 떠 올랐다.

잠시 뒤 에너지에서 눈과 입이 생 겨났다.

[우와. 이렇게 뺄리 저를 찾아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역시는 역 시네요!]

그리고 들려오는 장난기 섞인 목소 리.

에너지는 나를 보며 즐거운 듯 웃 고 있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계 여행을 안내하게 될 ‘검정’이 라고 합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