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3화 (292/535)

293화

나는 멍하니 스마트 학생 수첩의 악인 투표 결과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75명 중 68표.

많은 표를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 긴 했지만 설마 몰표에 가까운 표를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당장 B조에 나보다 종합순위가 더 높은 신영준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신영준이 20표 정도는 가

져가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기 투표 1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인기는 무슨 얼어 죽을 인 기.”

뜬금없이 업적을 달성하며 3,000포 인트를 획득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혀 기쁘지 않았다.

가끔 보면 일부러 맥이나 싶은 생

각도 들고.

그때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알람이 떠올랐다.

[30분 뒤, 당신의 위치가 10분간 모두에게 공개됩니다.]

[정글의 저주에 걸릴 확률이 34% 상승합니다.]

[정글의 저주는 마력 재해의 일종 으로 ‘안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저주에 걸리는 기본 확률은 10% 로, ‘김선우’님에게는 34%가 추가되

어 최종 확률은 44%입니다.]

44%.

절반에 가까운 확률이다.

저주를 마주치면 두 번 중 한번은 걸린다는 이야기다.

“……와. 진짜 뒤통수 얼얼하네.”

꿀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반 전이 생겨날 줄이야.

이서준과 유아라, 이현주가 속한 A조는 서로가 표를 나눠 가졌을 테 니, 오히려 이들이 없는 B조에 걸린 게 악수가 된 셈이다.

대기실 때부터 다들 날 경계할 때 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쳇.”

이미 사고는 벌어진 뒤다.

상황이 많이 불리해졌지만, 최대한 발버둥 쳐보는 수밖에.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다시 쥐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현실의 가히 효과 덕에 힘은 넘치는 상태라는 것.

정글 중간중간에 함정처럼 숨어 있 는 ‘정글의 저주’에 걸린다고 하더

라도 비현실의 가호가 어느 정도는 상쇄해줄 것이다.

“흐으음!”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천천히 스트레칭을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전체적인 정글의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다.

“어디 보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나무 하나 가 우뚝 세워져 있었다.

저 위에 올라간다면 한눈에 지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발에 마력을 집중해 나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나무를 밟고 밟아서 빠르게 꼭대기 에 올랐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했기에 점프력 또한 크게 상숭해 금방 오를 수 있었다.

“후우!”

꼭대기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머 리카락을 스쳤다. 정글이라 그런지 공기도 좋다.

지상을 쭉 둘러보자 드넓은 정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탐험을 시작하는 학생들, 몬스터를 사냥하는 학생들…….

심지어 벌써 다른 경쟁자를 만나 전투를 치르는 학생들도 있다.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 로 구상하던 그때.

하늘 위에서 검은빛의 동그란 무언 가가 뭉글뭉글 떠오른 게 보였다.

그러니까 저건…….

“ 구름?”

구름이다.

정확히는 구름보다는 안개 같은 느

낌이 랄까.

“……아, 정글의 저주구나.”

이전 삶에서도 이 시험을 경험했기 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저 구름 에 닿는 순간 일정 확률로 저주에 걸리게 된다.

지상을 쭉 둘러보는데 이것과 같은 구름이 정글에 수도 없이 깔려 있었다.

어떤 학생은 이미 저주에 걸린 듯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통을 호소하 고 있었다.

저주에 안 당하게 조심해야겠네.

그때.

슈우우우우웅一!

하늘 위에 떠 있던 정글의 저주가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 작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구름을 향해 마법을 방출했다.

파앙!

하지만 구름은 마법 구체를 그대로 통과시켜 버리더니 금세 내 몸을 덮

쳐왔다.

[마력의 자연재해가 당신을 덮쳤습니다!]

[44%의 확률로 ‘정글의 저주’에 걸 렸습니다!]

“아씨.”

시작부터 저주에 걸렸다.

저주에 한 번 걸린 이상 스스로 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저주에 저항하는 특별 보상을 획득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근데 뭐가 바뀐 거지?”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저주에 걸렸지만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디버프 효과인 ‘쇠약’이라던가, ‘탈 진’이라던가, ‘마비’라던가, ‘집중도 하락’ 둥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정 상일 텐데.

“뭐지?”

그렇게 의문을 느끼던 그때.

내가 앉아 있던 나무의 꼭대기에서 길고 굵직한 가시덩굴 하나가 솟아

올랐다.

덩굴은 마치 눈이 달린 뱀처럼 주 변을 훑어보더니 이내 나를 발견한 듯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덩굴이 나를 향해 빠 르게 쏘아졌다.

“..!”

‘살기 감지’가 발동하지 않았기에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점프했다.

파아앗!

가시덩굴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방금 내가 서 있던 나무를 그대로 박살 냈다.

마치 그레텔의 나무줄기 공격처럼 강력한 파괴력이었다.

“씁……

아무래도 내가 걸린 정글의 저주는 식물 몬스터의 어그로를 늘려주는 모양이다.

어쩌면 디버프보다 더 귀찮은 것이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스르르륵!

나무를 박살 냈던 덩굴은 다시 뱀 처럼 굼틀거리더니 나를 향해 쏘아 졌다.

나는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 마법

구체를 구현해 덩굴을 향해 빠르게 속사했다.

콰아아앙!

[‘녹색 덩굴 괴물’을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휴.”

바닥에 착지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급 식물형 몬스터답게 방어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10포인트를 얻은 건 덤.

“흐음. 이거 오히려 좋을지도?”

저주의 효과로 이렇게 계속 몬스터 의 어그로를 끌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포인트를 모을 수 있올지도 모 르겠다.

“그나저나 어딜 가지를 못하겠네.”

나는 아까 나무 위에서 보았던 검 은 안개들을 떠올렸다.

정글에는 생각보다 많은 저주가 깔

려 있다.

저주에 걸릴 확률이 44%나 되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돌아다닌다면 온갖 저주를 달고 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현실의 가호로 얻 은 버프를 훨씬 뛰어넘는 디버프가 생길 수도 있겠지.

“이걸 어쩌지.”

저주를 피하자고 계속 여기서 가만 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인간의 존재감.

나는 서둘러 마력을 끌어올리며 경 계 태세에 돌입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촤르륵! 소리가 들려오더 니 무언가가 내 양발을 묶었다.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르는 덩굴이 내 발을 묶은 것이다.

“아씨.”

하필 중요한 순간에!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단단 하게 묶여서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 다.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서 또 다

른 덩굴이 솟구치더니 내 양팔을 잡 았다.

한순간에 팔과 다리가 묶여 옴짝달 싹 못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덩굴을 뜯어내기 위해 마력 을 주입하려는 순간.

앞에서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한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선우?”

반에서 가끔 스쳐 지나가듯 본 얼 굴이었다.

어딘가에서 볼 법한 흔한 얼굴. 어떻게 잘 구슬린다면 말을 잘 들을 것 같이 생겼다.

이름이…… 김충범이었나?

내 기억으로는 90위권 학생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아씨…… 망했다.”

나를 발견한 김충범은 어째서인지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도망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추더니 휙 뒤를 돌았다.

팔과 다리가 묶인 내 모습에 의문 을 느낀 모양이다.

“……잠깐, 너 왜 묶여 있어?”

김충범이 물었다.

“저주에 걸렸거든.”

“……저주? 아, 정글의 저주에 걸 린 거야?”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충범이 씨익 미소를 짓더 니 마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오른 손바닥 위로 기 다란 화염의 장창이 구현되었다.

그러고서는 꿈틀꿈틀 입꼬리를 씰 룩이며 내게 걸어왔다.

“흐흐. 대박. 이거 꿈은 아니겠지?”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신난 얼굴이다. 보아하니 팔다리가 묶인

것을 보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녀석이 한 발짝 더 다가오자 나는 팔과 다리에 마력을 끌어모아 덩굴 을 뜯어내었다.

파악!

『녹색 덩굴 괴물’을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질기네.”

이리저리 손목과 발목을 돌리자 김

충범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도, 도와주려 했는데 혼자 잘 풀었네?”

얘가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말없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충범이 휙 뒤를 돌았다.

“그, 그럼 난 이만 가볼게! 1둥 웅 원할 게 수고해!”

그렇게 김충범이 뒤로 돌아 도망가 려 하자, 나는 빠르게 마법 구체를 구현해 녀석의 머리 근처로 쏘아냈 다.

파앙!

구체는 김충범의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김충범의 몸이 딱 딱하게 얼어붙었다.

“야. 너 이리 와봐.”

“......나?”

김충범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가 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김충범이 쭈뻇쭈뗫 내게 걸어왔다. 아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어디 갔는지 엄청나게 소극적인 모습이 다.

나는 피식 웃으며 김충범에게 다가 가 어깨동무를 했다.

동시에 김충범이 어깨를 바짝 움츠 렸다.

“야야. 왜 쫄았어. 긴장 풀어. 웅?”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자 김충범이 나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웅? 으, 으응……

“너 김충범 맞지? 같은 반이라서

기억하거든.”

“양충범인데……

아, 양충범이었나?

“아, 미안. 헷갈렸네.”

“웅? 아, 아니야. 김충범이라고 부 르고 싶으면 그렇게 불러도 돼 n

양충범이 다시 한번 어색하게 웃으 며 말했다.

“어, 그래도 돼?”

“어어, 편한 대로 해.”

“그럼 김중범아. 나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탁?”

김충범이 불안해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주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 들어서 그러니까 네가 애들을 여기 로 유인해줘야겠다.”

“......웅?”

김충범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알다시피 주변에 정글의 저 주가 쫙 깔렸잖아. 그리고 내가 몰 표에 가까운 표를 받아서 저주 확률 이 44%거든. 이게 무시할 수 없는 수치란 말이지.”

김충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 위치 공개되기 전에 미 리 숫자 좀 줄이고 싶은데 내가 쉽 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너도 알 지?”

“으, 으응. 그래서 어떻게 유인해야 하는데?”

“별거 없어. 하늘에다가 폭죽 마법 을 쏴서 어그로 좀 끌어주면 돼. 한 두세 번만 쏴줘.”

내 말에 김충범이 다시 한번 어색 하게 웃었다.

“……그 정도는 너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사람들 시선을 끌 정도면 마나를 꽤 많이 써야 하는데, 여기 나 노리 는 애들이 하도 많아서 마나 아껴야 하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러자 김충범이 ‘내 마나는?’이라 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한다.

“친구끼리 그 정도는 해줄 수 있 지?”

“미안한데 그건 좀……

김충범이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충범아.”

«..

“너 혹시 투표 누구 찍었어?”

김충범이 찔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 았다.

“뭐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 해서.”

그러자 김충범이 말했다.

“……마법으로 사람 끌어모으면 되 는 거지?”

“오. 도와주게? 고맙다야. 내가 너 500, 아니 300포인트 정도는 모을

수 있게 해줄게. 약속한다.”

“……으응, 알았어.”

[‘기적의 협상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업적을 달성했다.

3,000포인트. 좋네.

그때 김충범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바로 하면 될까?”

“웅. 최대한 화려하게. 폭죽처럼 펑. 하고 쏴줘.”

김충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력 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기다란 화 염의 장창이 구현되었다.

꽤 많은 마나를 실은 듯 아까 보 았던 마법보다 2배는 더 커 보인다.

“하앗!”

동시에 화염의 창이 긴 불꽃의 잔 상을 남기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잠시 뒤.

퍼어어엉!

하늘 위에서 화염이 폭죽처럼 화려 하게 터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은 학생의 시 선을 끌었겠지.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은밀한 발걸음’을 사용했다.

그러곤 김충범에게 말했다.

“나, 나무 위에 숨어 있을 거니까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서서 허수아 비 역할 하고 있어. 알았지?”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