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화
기말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언 제나 그렇듯 학교 분위기가 삭막해 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 전투 모드에 돌입했기 때문이 다.
물론 나는 어떤 시험이든 일정 등 수 이상을 달성할 자신이 있었기에 여유가 넘치는 상태다.
“요즘 사건이 자주 터지네.”
그리고 1교시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내 옆에 앉은 유아라가 스마트 학 생 수첩으로 무언가를 보더니 흔잣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윤하영이 관 심을 표했다.
“무슨 사건?”
“최근에 터진 마인 사건 있잖아. 태상금융 회장이 마인이었던 거로 밝혀진 사건.”
“……으웅? 그, 그런 게 있던가 아……?”
윤하영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어색 한 연기톤으로 대답했다.
누가 봐도 ‘이 일에 나와 김선우가 연관되어있어요.’라는 게 풀풀 풍겨 진다.
얘는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갈 텐 데 왜 꼭 모르는 척 연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눈치 빠른 유아라가 이걸 놓칠 리 없었다.
“뭐야? 너네 뭐 아는 거 있어?”
“으웅? 아니이……?”
……저거 진짜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설마 비밀로 숨기는 게 답답해서 일부러 티 내는 건 아니겠지?
“뭐야? 뭐 숨기는 거 있지? 잠깐,
그러고 보니 너네 요즘 유독 다니는 거 같다? 너네 설마….
같이
유아라가 톡 쏘아 붙듯 말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나 몰래 사귀고 있어?”
“콜록콜록!”
예상치 못한 답변에 헛기침이 나왔다.
윤하영 역시 새빨개진 얼굴로 엉?
엉? 거리며 당황해하는 반웅을 보였다.
괜히 윤하영이 쓸데없는 말을 할까 봐 먼저 대답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 얘랑 나 랑 무슨……
그러자 윤하영이 휙 내게 시선을 돌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딘가 꿍해 보 이는 것이 ‘나 불편해요.’라고 말하 고 있다.
“잠깐, 선우야. 너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는 거 아니야? 거의 기겁하는 수준인데?”
[등장인물 ‘윤하영’이 당신에게 섭 섭함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메시지까지 뜨는 걸 보니 진짜 섭 섭하긴 했나 보네.
일단 사과부터 박았다.
“기분 나빴으면 미안. 근데 아닌 건 아닌 거잖아. 우리 친구 사이인 데.”
내 말에 윤하영이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그렇지…… 친구지……
윤하영이 바닥을 내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메시지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2참’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건 또 뭐야?
2참? 아니, 내가 언제 찼는데?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작년 윤하 영에게 억울한(?) 2차임 업적 달성 을 당했었기에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바로 그때.
띠 링一!
교내 모든 학생의 스마트 학생 수 첩에서 알람이 울렸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동시에 스마 트 학생 수첩을 확인했다.
[3학년 1학기 기말시험, ‘정글 멸
망전’의 조 편성이 발표되었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자신이 속한 조를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기말시험의 조가 발표되었다.
이번 기말시험의 이름은 ‘정글 멸 망전’.
이름 그대로 정글에서 학생들끼리 개인전을 치러 최대한 오래 생존해 야 하는 시험이다.
룰은 작년에 있었던 서바이벌 시험 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뭐야. 조가 두 개밖에 없네?”
윤하영이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번 시험의 조는 총 2개다.
A조와 B조.
한 조에 75명의 학생이 모인다.
이 조 편성은 꽤 중요하다.
이서준과 같은 조가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에 따라 시험 난이도가 크 게 달라질 테니까.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내 가 속한 조를 확인했다.
[김선우 : B조]
B조라…….
아마 B조에 유아라와 이현주가 있 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작이고 나의 개입으로 달라졌을 테니 미리 명단 을 확인해봐야겠지.
“......어?”
그렇게 쭉 명단을 살펴보는데 무언 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없다.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확인해봤는 데도 없다.
유아라, 이현주는 물론 이서준과 윤하영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A조 명단을 확인하자 그제야 그들의 이름이 보였다.
“......뭐지?”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거 A조에 모 였다. B조에 남은 위협 인물이라고 해봤자 신영준과 박인환 정도…….
“와씨.”
꿀조네?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기숙사.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최일현에게 전수받은 ‘공간 도약’ 마법을 연구 하고 있었다.
보조계 마법의 뼈대가 되는 마법진 의 구현.
외부자의 혜택으로 마법진의 구조 는 쉽게 그릴 수 있었지만, 마력을 이용해 구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 수십, 수백 번 마법진
구현을 반복하던 그때.
[반복되는 술식 구현으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적웅형 특성, ‘술식 이해력(C)’을 획득합니다.]
“......엉?”
갑작스레 새로운 특성을 획득했다.
보아하니 ‘진화와 적응’으로 얻은 특성 같은데…….
곧바로 능력을 확인했다.
[술식 이해력(C)][수련치 : 1%]
설명 : 술식과 관련된 이해력이 상 승합니다. 등급이 상승할수록 술식 의 구현 정확도와 습득력이 상승합니다.
“오……
겉으로 보기에는 외부자의 혜택의 술식 해석 능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효과
를 지니고 있다.
외부자의 혜택이 답안지를 보여주 는 것이라면, 술식 이해력은 문제 풀이의 방법과 이해를 상승시켜주는 특성이었다.
기초를 단단하게 해주는 능력이었 기에 더더욱 나에게 필요한 특성이 다.
왜 이제야 얻게 되었는지 의문이 느껴질 정도.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실실 웃는데 내 발밑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레텔이 내 다리를 두들긴 것이다. 유대의 효과로 그레텔이 놀아달
라고 신호를 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레텔 놀아줘?”
“응애!”
그레텔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 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으음〜 어떻게 놀아줄까? 응?’’
간질간질.
장난스레 웃으며 그레텔을 간지럼 을 태웠다.
그러자 그레텔이 무슨 개짓이냐는 둣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본다.
“……간지럼 안 타는구나.”
괜히 무안해져서 그레텔을 다시 내 려놓는 그때, 스마트 폰에서 전화 알람이 울렸다.
“그레텔 잠깐만. 어, 여보세요?”
[진우 씨 오늘 약속 안 잊으셨죠?]
스피커 너머에서 한세연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언제 볼까 요?”
[저 20분 뒤에 퇴근할 것 같은데 그쯤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장소는 아까 말씀하 신 곳으로?’’
[네, 주소 찍어준 곳으로 오시면 돼요. 그럼 이따 봬요.]
뚝. 전화가 끊겼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레텔, 잠깐 밖에 다녀올게.”
그렇게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김진 우의 모습으로 작은 바(BAR) 에 도 착했다.
안을 쭉 둘러보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손님이 없는 건가 살펴보는데 진짜 로 없다. 단 한 명도.
분위기가 좋아서 장사가 안될 것
같지는 않은데.
“진우 씨.”
그때 어디선가 한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바 테이블 앞에 앉은 한세연이 손을 혼들고 있었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손님이 하나도 없네요. 바텐더도 안 보이고.”
“아〜 제가 오늘 가게 좀 비워달라 고 했거든요.”
한세연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통째로 빌린 겁니까?”
“아뇨, 이 가게가 제 거에요.”
한세연이 별거 아니라는 둣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서는 테이블 위에 미리 준비 해 놓은 양주를 술잔에 따라 내게 내밀었다.
이게 가진 자의 여유라는 걸까. 엄 청 멋지네.
이리저리 술잔을 돌리던 나는 곧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회장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회귀 전만 하더라도 이쯤 한대현의
죽음으로 시끌벅적했던 것 같은 데 희한할 정도로 조용했다.
적어도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기사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한세연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짧 게 말했다.
“계속 잠들어 계시긴 하는데 잘 모 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라.
이유를 알 순 없지만 한대현의 수 명이 원작보다 길어졌다.
나의 개입으로 신약 개발의 진척이 생겨서일까?
홀짝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겨있는 데 한세연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 게 말했다.
“이번 태상금융 정태혁 회장 사 건…… 그거 진우 씨가 손 쓴 거 맞죠?”
한세연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그녀가 확신하 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태상금융을 조심하라고 언급했던 마당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발 빼는 건 오히려 그녀의 신뢰를 깎아 먹는 짓이겠지.
“네, 제가 한 짓 맞습니다. 다른 곳엔 비밀이지만요.”
그러자 한세연의 표정이 잠시 어두 워졌다. 초조한 손짓으로 술잔을 매 만지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진우 씨가 맞 았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한세연이 말을 이었다.
“그럼 진우 씨는 마인을 구분할 수 있는 건가요?”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 드릴 순 없지만 제 능력 중 하나입 니다.”
내 말에 한세연은 무언가 묻고 싶 은 듯 입술을 움츠렸다.
하지만 질문 공세가 이어져 좋을 건 없기에 그녀의 말을 선수 쳤다.
“궁금한 게 많으신 건 알지만 저에 게도 사정이 있어 모든 건 이야기해 줄 수 없습니다.”
확고한 내 말에 한세연은 포기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요. 정말이지 진우 씨 는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네요.”
나는 그녀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 었다.
“언젠간…… 때가 되면 모든 걸 말 해드리겠습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세연뿐만이 아니라 나와 유대를 쌓은 모두에게.
한세연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 가 진심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죠. 혹시 협회에서 연락 온 거 없습니까?”
분명 협회에서는 태상금융을 압수
수색하면서 한성그룹과의 비밀스러 운 거래 내역을 발견했을 것이다.
분명 무언가 조치가 있었을 터.
하지만 금시초문인 듯 한세연이 눈 을 깜빡였다. 보아하니 모르는 눈치 다.
수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가?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에게 말 했다.
“아직 아무 연락도 못 받은 모양이 네요. 머지않은 날에 협회에서 한성 가를 조사할 겁니다.”
“……협회에서요?”
한세연의 말투에 황당함이 묻어나왔다.
“네, 그때가 되면 최대한 협회의 조사에 협조해주세요.”
나는 술잔을 홀짝였다.
“한세진 부회장을 무너트릴 절호의 기회니까요.”
3일의 시간이 지나, 모든 학생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법사관학교의 기말시험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마법사관학교 내부에는 평 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길드 스카우터부터 기자, 학생, 협 회 관계자들까지.
작년과 다른 게 있다면 일반인의 참관이 금지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최근 늘어나는 범죄조직과 마인의 테러로 인해 바뀐 규정이었다.
덕분에 올해 마법사관학교 시험은 협회에 공식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참관할 수 있다.
“의외로 사람 많네?”
그리고 오늘 있을 메인 시험, ‘정
글 멸망전’을 위한 가상 세계 시험 장으로 향하는 길.
혼잡해진 주변 풍경을 둘러보던 이서준이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나란 히 걷던 신영준이 대답했다.
“그러게. 한국 마법사관학교 빼고 다 시험 끝났다더니 외국인 학생들 도 많이 보이네.”
신영준의 말대로 성무제 때 보았던 몇몇 외국인 학생의 얼굴이 보인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 서바이벌 시험 이다 보니 다른 시험보다 사람이 몰 린 것이다.
“흐음. 그나저나 참관은 A조에 몰
리겠지?”
정글 멸망전 시험은 A조와 B조가 동시에 치러진다.
양쪽 시험장의 위치가 다르기에 두 시험을 동시에 참관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다.
“A조에 다 몰렸으니까 당연히 A조 에 참관하겠지. 저기 봐라.”
신영준이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 리 켰다.
A조 시험이 치러질 경기장에는 벌 써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에 비해 B조 경기장이 있는 주
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건 좀 차이가 심한데.
아무리 이서준 인기가 넘사벽이라 고 해도.
“됐어. 참관자 수가 중요하냐. 시험 내용이 중요하지. A조 같은 죽음의 조에 안 걸린 게 어디야.”
신영준이 정신 숭리하려는 듯 웃으 며 말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글쎄. 별로 죽음의 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서준이 힐끔
내게 시선을 돌렸다.
“김선우만 없으면 1둥은 자신 있거 든.”
어, 그거 나돈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