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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278/535)

279화

이서준, 최서윤, 김선우가 사라진 직후의 최씨 가문의 창고.

‘가상 세계 생성 장치’의 새하얀 빛과 함께 세 명의 사람이 사라지자 최재형은 크게 당황했다.

김선우와 이서준이 안으로 들어선 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 의 딸인 최서윤도 함께 들어갔기 때 문이다.

“아, 아가씨가……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곽무진의 아 내, 신혜원 역시 당황했다.

설마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가 따 라 들어갈 줄 예상 못 했으니까.

최재형은 멍하니 구슬을 바라보다 가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서며 손을 뻗었다.

딸을 찾기 위해 안으로 따라 들어 서려는 것이었다.

“가, 가주님!”

신혜원은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바로 그때.

구슬에서 다시 한번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우우우웅!

번쩍!

동시에 그 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신혜원은 경악에 찬 얼굴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여, 여긴 현실인가?”

“……러센 님‘?”

러센.

과거 남편, 곽무진의 기억을 확인 하고 싶다며 찾아왔던 신비 학자였다.

얼굴은 예전에 비해 많이 늙어지기 는 했지만,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 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뒤를 이어서 빛이 번쩍였다.

가상 세계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빛이 번쩍이더니 최서윤 이 밖으로 나왔다.

“서윤아!”

“아가씨!”

최서윤이 둥장하자 최재형이 크게 외쳤다. 하지만 반가움의 외침도 잠

최재형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최서윤……

“아, 아빠.”

최서윤은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아 버지의 화난 모습을 보고는 당황하 며 뒷걸음질을 했다.

평소에도 엄격한 사람이었지만 지 금 보이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공포스러웠다.

“제정신이야?! 그 위험한 곳을 왜 따라간 거야!”

“그, 그게…… 몸이 멋대로 움직였 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너 지금 무슨 소리를……!”

그때 다시 한번 빛이 번쩍이더니 이번에는 이서준이 등장했다.

“선배님!”

이서준의 등장에 최서윤은 빠져나 올 구멍을 찾기 위해 이서준을 불렀다.

이서준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 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돌아왔나……

그때, 러센이 다가와서 말했다.

“후. 자네도 왔나? 시간의 흐름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나오는 순간 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야.”

“네, 그런가 봐요.”

신혜원의 말에 따르면 과거 진천우 도 입장과 동시에 나왔었다고 한다.

물론 가상 세계의 시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다른 시간대에 나올지 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이번 에는 비슷한 모양이다.

“……근데 남은 한 명은 언제 오

지?”

아직 김선우가 오지 않았다.

이서준은 뒤의 구슬을 돌아보며 입 을 열었다.

“이제 곧 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모두가 30초 정도를 말없 이 기다렸다.

여전히 구슬에 반응이 없자 슬슬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왜 안 나오는 거지?”

“……그러게. 시간의 흐름이 바뀌 었나?”

최서윤은 불안한 얼굴로 있다가 입

을 열었다.

“……선배님한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에요? 아니면 제가 다시 들어가 볼까요?”

“최서윤.”

최재형이 찌릿 최서윤을 노려보았 다.

바로 그때.

우우우웅!

다시 한번 구슬에서 빛이 뿜어졌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같은 곳 을 향했다.

번쩍!

강렬한 빛과 함께 땀에 젖은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한데 남성은 어딘가에 쫓겨 있었던 듯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손끝은 물론 몸의 떨림까지 마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남성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선배님?”

남성은 김선우였다.

최서윤의 부름에 김선우는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어, 다들 제대로 왔나 보네.”

“선배님 괜찮아요?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최서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선 우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최재형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딸의 새로운 모습에 잠 시 황당함을 느꼈다.

김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일 없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땀에 절여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위험한 일올 겪은 사람처 럼 보였으니까.

그 말은 즉 김선우가 무언가를 숨 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김선우.”

그때 이서준이 김선우를 불렀다.

김선우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리 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 이따가 얘기하자. 지금 내가 정신이 없어서.”

“……어, 그래.”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이서준이었지만, 김선우의 모습을 보고 나중에 얘기하기로 했다.

늦은 밤, 최서윤과 최재형의 안내 에 따라 나는 최씨 가문의 손님 방 으로 들어섰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 안을 걷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피로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 분 전만 하더라도 목숨이 날아 갈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평화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금세 생각을 비우고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은 마법사관학교의 기숙사보다 약간 작은 크기였다.

식탁부터 해서 의자와 침대, 개인 화장실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심지어 과일과 과자 같은 간식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단순한 손님 방이라고 하기에는 호 텔처럼 호화로운데.

“......흐음.”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듯 드러누 웠다.

눈을 감고 푹신한 감촉을 느끼자 심신의 안정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진짜 큰일 날 뻔했 네.”

나는 가상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둥장한 거대 토끼.

만약 신비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나를 현실로 보냈더라면 정말로 죽

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일이 현실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비 녀석이 마지막 순간, 현실로 돌려 보내주는 척하면서 현실 같은 세계로 바꿔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니겠지?”

나는 서둘러 ‘비현실의 가호’와 능 력치를 확인했다.

긴장된 눈으로 쭉 살펴보는데 능력 치도 그대로고 가호도 발동되지 않 은 상태다.

그렇다는 건 이곳은 현실이라는 중 거.

“이거 현실을 구분하는 용도로 쓸 수 있구나.”

생각지 못했던 부가적인 용도에 씨 익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가상 세계가 계속 발전하게 된다면 정말로 현실 과 가상을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때 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살던 세계에서 보았던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던 모 영화처 럼…….

그때 였다.

—……남편은 그렇게 됐군요.

열어놓은 창밖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익숙한 목소리, 곽무진의 아내인 신혜원의 목소리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통해 1충의 정원을 내려보았다.

이서준과 신혜원이 벤치에 앉아 대

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곽무진 님께서 미안하다 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비가 ‘수면’ 상태가 되었 기에 가상 세계에 입장하는 것도 이 제는 불가능할 겁니다.

—이건 결국 남편의 유품이 됐네 요.

신혜원이 손에 쥔 구슬, ‘가상 세계 생성 장치’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이 구슬, 서준 학생이 가지세요.

—……네? 제가요?

—네, 지금은 힘을 잃은 구슬이라 고 해도 나중에서준 학생에게 도움 이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받 아주세요.

신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이후 신혜원은 사라졌다.

이서준은 멍하니 구슬을 내려보더 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 뭐 해?”

역시 감각이 예민한 녀석이다. 거 리가 꽤 되는데도 시선을 느끼다니.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그래? 몸은 이제 괜찮아?”

“나쁜 적도 없었어.”

내 말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그럼 잠깐 이야기나 하게 나와 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문 밑으 로 점프했다.

탁.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가볍게 지상에 착지했다.

그 순간.

“아씨 깜짝이야!”

뒤에서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까지 놀라서 뒤를 돌았다.

험악한 인상의 남성이 커피를 자신 의 상의에 쏟은 채 놀란 눈으로 나 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씨 가문의 정문에서 봤던 남성이 었다.

……이름이 박휘진이라고 했던가?

“아, 이런. 죄송합니다.”

괜한 미안함에 다가가자 박휘진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흠흠. 아닙니다. 대신 다음부터는 거기서 뛰어내리시면 안 됩니다.”

“아, 넵.”

그때 박휘진이 주변 눈치를 살피고 는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혹시 오늘 무슨 일 있 었습니까?”

무슨 일?

일이야 많이 있기는 했는데.

“가주님께서 엄청 노하셨더라고요.

아가씨는 아까부터 계속 혼나고 있 고.”

“아.”

대충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림 이 그려졌다.

원작에서도 이날 최서윤이 엄청 혼 났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근데 최서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 만 혼날 만한 거 같기도 하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했 을 테니까.

“홈…… 아마 별일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생각에 잠겨있던 박휘진이 내게 다 가와 작게 속삭였다.

“……아가씨와는 무슨 관계십니 까?”

“네?”

잠시 떨어져서 박휘진을 바라보자 그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아까 아가씨 혼나는 걸 살짝 엿들었는데 그쪽 이름이 계 속 들려서요.”

“……제 이름이요?”

“아니, 아이고. 내 입이 또.”

박휘진이 톡톡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술을 쳤다.

“전 일이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휘진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어디 론가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서준에게 걸어갔 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해?”

이서준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게. 나도 바로 밑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이서준이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근데 방금 무슨 얘기 했어? 귓속 말하던데.”

“별 얘기 안 했어.”

그렇게 말하며 이서준의 옆에 앉았 다.

이서준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보 다가 내게 말했다.

“혹시 우리 떠나고 가상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이서준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내 게 물었다.

아마 약간의 시간 텀과 숨을 헐떡

이던 내 모습을 보고는 하는 말이겠 지.

당연히 궁금해 할만한 것들이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가상 세계 구 경 좀 했어.”

“......뭐?”

이서준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 봤다.

“나중에 불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계에 방문해야 하는 일이 생길지 도 모르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신비 한테 지역 안내 좀 해달라 했지.”

나름 나쁘지 않은 핑계라 생각했는 데 이서준한테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럼 다 같이 남으면 되는데 왜 혼자 남아?”

“아, 그게. 너 보내고 나니까 딱 생각나더라고.”

이서준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한숨 올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포기했다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숨을 헐떡인 건 무슨 일 이 있던 건데?”

“신비의 안내를 받고 남쪽 지역에 방문했는데, 몬스터 한 마리를 만났 거든.”

“몬스터?”

“어, 무슨 재앙급 마수보다 더 큰 녀석이 있더라고. 신기하지?”

어느 정도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말했다. 그래야 덜 수상하게 보일 테니까.

그리고 이서준은 떡밥을 물었다.

“……재앙급 마수라고?”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흥미가 담겨 있었다.

얘도 참 은근히 단순해서 좋아.

“어, 하마터면 죽어서 못 돌아올 뻔했다니까?”

“와…… 큰일 날 뻔했네.”

그러고는 대화 주제를 바꾸기 위해 슬쩍 이서준의 손에 있는 구슬, ‘가 상 세계 생성 장치’에 시선을 돌렸다.

“나 그거 잠깐 봐도 되냐?”

“이거? 어. 여기.”

이서준이 나에게 구슬을 넘겼다.

구슬을 받은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서 구슬을 확인했다.

[잠들어 버린 신비의 구슬(유물)]

설명 : 신비의 힘이 봉인된 구슬. 봉인을 풀면 다시 신비의 힘이 깃든 다.

신비의 설명이 완전히 바뀌었다.

작년 영국에서 얻었던 ‘망가진 국 자’와 비숫한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망가진 국자는 말 그대로 신비가 망가져서 힘을 잃

은 것이라면, 이것은 신비가 자신의 의지로 힘을 봉인했다는 것이다.

“야. 신비.”

혹시나 해서 신비에게 말을 걸었다.

“야야. 자냐?”

구슬을 톡톡 건드는데도 대답은 들 려오지 않는다.

마력을 주입해도 마찬가지.

정말 완전히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흐음.”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틀 간 정들었던 녀석인데.

뭔가 아쉽네.

은근 괴롭히는 맛이 있었는데.

“이거 완전히 잠들었네. 반응도 아 예 없고.”

“우리랑 앞으로 힘을 사용하지 않 겠다고 약속했었잖아.”

“그렇기는 한데……

구슬을 빤히 내려보다가 이서준에 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이거 내가 가져도 되냐?”

내 물음에 이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뭐, 상관은 없는데 어디다

쓰게?”

“개인적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말 잘 듣는 신비를 다시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직 녀석에게 뽑아 먹을 게 많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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