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러센과 헤어지고 북쪽으로 걸은 지 약 10시간.
우리는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채 먼 길을 헤매고 있다.
러센에게 받은 지도가 있었기에 길 을 잘못 찾은 건 아니었다. 다만 거 리가 너무 멀 뿐.
“ 후우......
잠시 숨을 고를 겸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어느덧 시꺼먼 어둠이 붉은 노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밤이 다가온 것이다.
“……쯧.”
갑작스레 괜한 후회가 밀려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작의 흐름대로 이현주를 데려올걸.
사실 원작에서는 이현주의 소환수 를 타고 비행해서 날아갔기에 이맘 때쯤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개입함으로써 비행 소 환수를 다룰 사람이 없어졌기에 시 간이 원래 계획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나도 비행 소환수를 다룰 수 있었 더라면…….
그레텔은 왜 날아다니지 못하는 거 지? 비행 옵션 추가는 못하나?
그때 하늘을 올려보던 최서윤이 내 게 시선을 돌렸다.
“슬슬 숨을 곳 찾아야 하는 거 아 니에요?”
“그래야겠지.”
밤이 되면 몬스터들이 잠에서 깨어 나 사냥을 시작한다.
경계의 몬스터들은 보통 이승의 몬 스터들보다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
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우리 수준에서 처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경계의 포식자’라는 상위 개체가 있기에 그 녀석들을 마주치 면 나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근처에 보이는 숲을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 저기로 이동하자. 내가 앞장 설게.”
그렇게 우리는 함께 숲으로 이동했다.
끼에엑一!
숲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기괴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스산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 며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방금 몬스터 비명 맞지?”
“어, 몬스터 하나가 사냥당했나 본 데?”
“여기 괜찮으려나? 주변에 몬스터 들이 많은 거 같은데.”
이서준이 긴장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밤이라 어쩔 수 없어. 아까 거기 보단 안전하겠지. 적어도 여기는 숨
을 곳이 많으니까.”
“그렇긴 한데……
바로 그때, 가까운 어딘가에서 바 스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시선을 돌리자 2M가 넘는 이족보 행의 괴물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손에는 기다란 창을 쥐고, 맨몸에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도마뱀과 물고기 를 섞은 듯한 느낌.
판타지에서 보던 리자드맨을 떠오 르게 하는 기괴한 외형이었다.
저놈의 정체는 러센이 경고했던 경 계의 포식자다.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외형과 완전 히 같았기에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경계의 포식자야.”
내가 작게 속삭이자 이서준과 최서 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들었는데 혼자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이대로 숨어 있을까?”
이서준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 있어봤자 금방 들킬
거야.”
“그럼 어쩌게? 함부로 공격하면 동 족들이 몰려온다잖아.”
경계의 포식자는 동족의 마력이 느 껴지면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
잘못했다가는 수십 마리의 포식자 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 다.
포식자의 개체별 강함은 천차만별 이라 그사이에 얼마나 강한 녀석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일.
포식자 무리와 전투를 벌이는 일은 도박이다.
“내가 처리할게.”
“......뭐?”
“선배님?”
나는 옷 속에 숨겨놓은 월석 펜던 트에 마력올 주입했다.
[‘달의 안식처’를 사용합니다.]
[달빛 아래에서 기척과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동시에 내 몸에서 모든 기척이 사 라졌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마비 단검’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파앗!
나는 그대로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척에 예민한 녀석이지만 달의 안 식처가 있기에 녀석에게 들킬 이유 는 없다.
그렇게 나는 소리 없이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갔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녀석의 약점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약점은 목 뒤.
곧바로 단검을 쥔 오른손에 마력을 주입해 그대로 찔렀다.
푸우욱——
—끼에엑!
놈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경계의 포식자는 최소 B등급 이상 의 몬스터.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쉽게 죽지 않는다.
일단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녀석 의 목을 계속해서 찔러 넣었다.
어느 순간 마비 독이 퍼졌는지 녀 석의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경계의 포식자 사냥’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후우.”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약점을 공략 했기에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아마 녀석은 포식자 중에서도 하 급.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
나는 달의 안식처를 해제하고는 말 했다.
“끝났어. 이제 나와도 돼.”
내 말에 이서준과 최서윤이 나무 밖으로 나왔다. 최서윤은 눈을 빛내 더니 내게 물었다.
“와. 선배님, 방금 뭐에요? 기척이 전혀 안 느껴지던데.”
그러자 이번에는 이서준이 끼어들 었다.
“아니, 기척은 그렇다 쳐도 발소리 가 어떻게 안 들릴 수가 있지? 대 체 어떻게 한 거야?”
내 대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시 선을 마주했다.
기척과 발소리를 완전히 숨긴 방법 이라…….
솔직하게 ‘월석 펜던트’의 효과라 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구매한 아이템이 아니 라 한세연에게 선물 받은 것이니까.
괜히 김선우와 김진우의 관계를 의 심받을 상황을 주면 골치 아파진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만능의 단 어로 상황을 모면하기로 했다.
“특성이야.”
10분이 지난 시각.
깜깜한 어둠으로 가려진 경계의 숲 에서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가 울렸다.
—크르르.
사냥감을 찾던 7마리의 포식자 무 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에 쓰러진 싸늘 한 사체를 발견했다.
—……동지의 시체다.
맨 앞에 선 포식자가 조용히 중얼 거렸다.
—……무엇에 크륵, 죽은 거지 ..?
한 포식자의 물음에 하나가 다가가 목 뒤의 상혼을 확인했다.
—날카롭고 짧은 날붙이…… 인간 의 무기다…….
_인간……?
-……그래, 그리고 상처에서 희미 한 마력이 느껴지는군. 끄르륵.
츄릅.
뒤에서 지켜보던 포식자가 자신의 입 주변을 혀로 핥았다.
입맛을 다신 것이다.
한 포식자는 침을 뚝뚝 흘렸다.
—……경계를 방문한 살아있는 인
간이다. 그것도 꽤 능숙한 마법을 다루는 인간. ……보아하니 동족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아마 꽤 강한 힘을 지녔을 것 같 다…….
—마법을 사용하는 인간이라…… 위험한 식량이 경계에 찾아왔군. 크 륵.
포식자들 사이에서 잠시 긴장감이 흘렀다.
과거, 수많은 포식자를 학살하고, 보물까지 홈쳐 달아난 검은 머리의 인간 마법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륵…… 위험의 뿌리를 미리 제
거해야 한다…… 당장 왕께 보고하 라.
다음 날 오후 1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생자의 도시 에 도착했다.
우리는 멍하니 눈앞의 풍경을 바라 보았다.
몬스터와 포식자의 침공을 막기 위 한 특수 마법 소재로 만들어진 성벽 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문에는 강력한 결계 마법이 처져 있었는데 외부자의 혜택으로 해석해 보니 인간에게는 무해한 결계였다.
“오오. 오랜만에 손님이 왔구만!”
“자네들은 몇 년도에서 왔나?”
“바깥세상은 어떤가?”
그렇게 결계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인파가 우리에게 몰렸다.
도시 내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 이 있었다. 인구수만 따지면 500명 은 되지 않을까.
물론 이들 중 대다수가 우리처럼
살아있는 인간은 아니다.
도시의 사람은 크게 세 가지의 종 류로 나뉘는데 곽무진과 같이 살아 있는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방문하 게 된 경우.
또는 우리나 러센, 진천우와 같이 곽무진의 신비를 통해 방문하게 된 경우.
마지막으로 이승에서 죽음을 겪은 영혼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경계에 머물게 된 경우로 나뉜다.
이곳의 주민 대다수는 후자에 속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이승과 저승의 경
계인 세계에 들어선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 까.
그렇게 월천 여관을 찾아 마을을 걷는데 몰려온 주민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들 설마 마법사인가? 도시 밖 은 상당히 위험한데 잘 살아있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나 본 데?”
“실력은 모르겠고 마법사는 맞습니다.”
이서준의 말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마법사다! 마법사야!”
“뭐? 마법사라고?”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환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이서준과 최서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자네들 마법 둥급은 어떻게 되나?”
“자네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
“포식자와 만나본 적은?”
마법사라는게 밝혀지자 질문은 더 더욱 많아졌다.
나와 달리 친절한 성격의 이서준은 귀찮음을 모르는지 그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주었다.
“어떤 도움이요? 아! 마력 등급은 저희가 학생이라 아직 책정되지 않 았습니다.”
“뭐? 학생? ……쯧. 왠지 어려 보 인다 싶더니.”
몇몇 사람이 실망감을 보였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나이 든 노인이 말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진천우 님 을 잊었나? 그분도 당시에 21살이 었어!”
동시에 이서준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진천우?”
“자네, 진천우 님을 아시는가?”
“……네, 압니다.”
“오호. 그분은 바깥세상에서 어떻게 지내시지? 분명 훌륭한 일을 하 고 계실 텐데.”
“......그건.”
이서준은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대 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최서윤은 내게 다가 와 귀에 속삭였다.
“선배님. 그런데 이서준 선배님은 왜 이렇게 그 사람을 쫓는 거예요?”
최서윤이 말하는 그 사람은 진천우 를 말한다.
비밀을 굳이 캐묻지 않는 성격의 그녀였지만 최근 이서준의 모습을 보고는 궁금중이 생기지 않올 수가 없던 모양이다.
“이따가 얘기해줄게.”
“......네에.”
그렇게 우리는 러센이 알려준 월천 여관에 도착했다.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던 사람들에 게 잠깐 우리끼리 있게 해달라고 부 탁하자 의외로 많은 사람이 순순히 여관 밖에서 대기했다.
“어서 오시오.”
안으로 들어서자 여관의 주인이 인 사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왜 이리 밖이 시끄러운가 했더니 오랜만에 신비를 통해 찾아온 손님 이 방문했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서준이 묻자 중년의 남성이 피식 웃었다.
“그야, 이 세계는 멈췄으니까.”
“네?”
“이 세계는 곽무진이 만들어낸 가
상 세계. 시간 일부가 고정되어 있 기에 죽은 영혼은 더 이상 경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쉽게 요약하자면, 게임 업데이트가 멈춰서 NPC 추가는 없고 신규 유 저만 추가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서준과 최서윤도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도 곽무진의 신비를 통 해 왔나 보네요.”
“그래, 내 이름은 정청호. 이 세계 를 만들어낸 곽무진의 후배이자 신 비 학자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정청호가 이서
준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잠깐. 뭔가 이상한데?”
뜬금없는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갸 웃했다.
“자네 살아있는 인간이 맞나?”
“……무슨 의미죠?”
“자네에게 특이한 마력이 느껴져.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겪은 경계의 주민과 흡사한 마력이라고 해야 하나?”
오..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듯 정청호의 낯빛이 바뀌었다.
“이런.”
그러더니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 기 시작한다.
잠시 뒤 진정했는지 몸을 숙이며 말했다.
“이제 알았어. 자네는 진천우 님께 서 보내주신 사도로군.”
“그게 무슨……
바로 그때.
밖에서 거대한 소란이 일었다.
—여, 여러분 큰일 났어요! 바, 밖 에!
—무슨 일인데?
—포식자가 군단을 이끌고 이곳으 로 오고 있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포식자 군단이 오고 있다고?
원작에서는 없던 전개인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