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우여곡절 많았던 특무 기초 훈련이 모두 끝이 났다.
학생들에게 많은 웃음과 부끄러움 을 남겼던 ‘연기’ 훈련은 결국 ‘과몰 입’을 발동한 나의 활약으로 진지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내게 잠재 개성이 있다는 걸 모르 는 주변인들은 연기를 따로 배운 적 이 있냐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 역시 과몰입 상태에서 연기를 할 때 내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표 정 등이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느 껴졌었으니까.
“김선우 쟤는 뭔데 연기도 잘하냐? 갑자기 다른 사람 된 줄.”
“그러게. 발성 보니까 따로 배웠 나‘?”
“야. 난 처음에 애드립인것도 눈치 못 챘어. 다큐 땐 왜 저랬지?”
그렇게 속닥이는 주변 소리를 못 들은 척 자리로 돌아왔다.
털썩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둣 이서준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김선우~ 배우 해도 되겠어.”
이서준이 싱글벙글 즐거운 목소리 로 말했다.
“……왜 네가 신났냐?”
“신기하잖아. 연기 따로 배운 적 있는 거야?”
“있을 리가.”
내 대답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하긴. 연기를 따로 배우는 일이 혼하지 않긴 하지. 그럼 타고난 건 가?”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
비록 ‘잠재 개성’의 효과로 인한
연기력이었지만 잠재 개성이라는 것 이 결국은 내게 숨겨진 고유의 개성 인 것이니까.
그때 내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 껴졌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윤하영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야. 내가 잠깐 잊고 있었어!”
윤하영의 뜬금없는 말에 잠시 고개 를 갸웃했다.
“뭐가?”
그러자 윤하영이 내게 다가와 귀에 다 속삭였다.
‘네 일상이 연기라는 걸!’
으..
그렇게 속삭이던 윤하영이 내게서 떨어지더니 혼자 진지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게 생활 연기의 내공이라는 건가?”
……뭐라는 거야?
바로 그때 서류에서 점수를 매기던 김문태가 모두의 앞에 섰다. 동시에 어수선했던 훈련장의 분위기가 다시 조용해졌다.
“훈련받느라 모두 수고했다. 아마
생소한 훈련을 받아서 다들 어색한 부분도 있었을 거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훈련을 통해 차차 좋아질 수 있으니 모두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도 열심 히 하기를 바란다. 그럼 ‘멘토 선택 권’을 차지할 3명을 발표하겠다.”
최종 3인을 발표한다는 말에 모두 가 긴장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 다.
이서준과 유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척 은폐’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연기’에서는 둘 다 아쉬 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3등 안에 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거겠지.
김문태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보더 니 입을 열었다.
“1위 김선우. 2위 이서준. 3위 유 아라다.”
동시에 내 옆에 앉은 유아라가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연기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 기에 그 누구보다 마음을 졸였던 모 양이다.
하지만 유아라의 걱정과 달리 3등 과 4둥의 격차는 꽤 클 것이다. 이 번 순위의 평가 기준은 ‘위장 잠입’ 보다 ‘기척 은폐’의 비중이 더 크니
“그럼 오늘 훈련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도 좋다. 아! 그리고 선택권 을 획득한 세 학생은 여기에 남도록 한다. 이상이다.”
세계 최강의 집단이라 불리는 마법사 협회 산하 서울 대테러 특무팀 본부.
그곳에서 2명의 남성, 김덕현과 정 현수가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운 녀석들, 요즘 조용하네.”
“그러게요. 성무제 사건 이후로 완 전히 잠수탔던데.”
그 둘은 특무팀의 주적이라 불리는 자운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자운이 사건을 일으킨 주기가 담긴 데이터가 떠올라 있었 는데 최근 자운은 그 주기를 훌쩍 넘겨버렸다.
평생을 자운을 쫓으며 살아온 그들 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자운의 행동 패턴 변화가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자운보다 마인이 문제에요.”
정현수가 손을 휘두르자 홀로그램 의 형태가 바뀌었다.
한반도 지도와 중간중간 붉은 빛의 작은 점들이 여러 군데 분포된 형태 였다.
“여기 붉은 점들이 최근 한 달간 터졌던 마인 사건 발생 지역이에요. 무려 220%나 급증했어요. 테러와 신비 도난 사건도 늘었고요.”
정현수의 말에 김덕현이 심각해진 얼굴로 홀로그램을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올해 들어 마인 사건이 크 게 급증했다.
마인은 개인의 욕망보다는 ‘근거’
를 중요시하는 종족.
그런 그들이 단체로 활동을 시작했 다는 건 마인들에게 인간이 모르는 공통된 목적이 생겨났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마인들이 H-A 박람회를 습격한 이유는 아직도 못 알아낸 건 가?”
“예. 분석가들이 조사하고 있기는 한데 마인과의 연관성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
김덕현이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H-A 박람회는 최근 있었던 사건 중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이었다.
마인들이 단체로 활동한다는 건 분 명한 이유가 있을 터.
하지만 H-A 박람회에는 도난된 물건과 사상자가 딱히 없었기에 아 직도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박람회 사건에서 김덕현에 게 가장 큰 의문을 남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인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공격을 시도했던 정체불명의 사내.
솔직히 말해서 그 사내가 가장 궁
금했다.
“……희한하게 구체 형태가 많단 말이지.”
“구체요?”
김덕현의 뜬금없는 말에 정현수가 물었다.
“작년부터 사건을 해결해준 의문의 사건들 있잖아. 생각해보면 전부 구 체 형태의 마법이었던 거 같아서.”
“……어? 그러게요?”
정현수가 놀랐다는 둣 눈을 깜빡였다.
물론 구체 형태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무속성, 빛 속성, 전기 속성 등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 ‘구 체’ 형태라는 건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정체불명의 구체 마법사건의 최 초 발생지가 어디지?”
그 말에 정현수가 손을 휘두르며 홀로그램의 화면을 바꿨다.
“작년 한국 마법사관학교 중간시험 인 장예 사건이요.”
홀로그램에 장예의 얼굴과 시험 장 소였던 무인도의 지도가 떠올랐다.
“당시 장예의 몸에는 박람회 때와 같은 빛 속성 구체가 검출됐어요.”
“……그리고 상대가 마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둣 선공했다는 점도 같지.”
김덕현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정현수 역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수상하네요.”
“마법사관학교에는 빛 속성 구체 사용자가 없는 건 확실하지?”
“네, 이건 확실해요.”
“구체 형태 사용자는?”
“구체 사용자야 혼하지 않지만 있 죠. 당장 김선우랑 유아라 같은 유
망주들도 구체를 사용하잖아요.”
어느새 홀로그램에는 김선우와 유 아라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김덕현은 김선우의 얼굴을 빤히 바 라보았다.
“……김선우가 이번 박람회에도 참 가하지 않았었나?”
“네, 참가했다고 들었어요.”
“마인 습격 당시에는 모습이 안 보 였다고도 들었는데.”
“네, 그렇죠? 그런데 아마 김선우 는 아닐 거에요.”
“이유는?”
정현수가 홀로그램 화면을 다시 바 꾸었다.
그러자 김선우에 대한 자세한 정보 가 떠올랐다.
“성무제에서 ‘바람 속성’을 사용했 어요. 그러니까 무속성과 바람 속성. 두 가지 속성을 사용하는 이중 속성 사용자라는 거죠.”
“이중 속성 사용자도 희귀한데 삼 중 속성 사용자는 더 희귀하니까 아 닐 것이다?”
“그렇죠. 심지어 김선우는 바람 속 성을 꽤 능숙하게 다뤘어요. 그걸 보면 꽤 오랜 시간 연습한 거 같은
데 빛 속성까지 연습할 시간이 있을 까요?”
합리적인 생각이다.
하나의 속성을 완벽하게 다루는 데 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두 가지 속성을 그 나이대에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하물며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녀 석이 삼중 속성을 다룬다는 건 오랜 마법사 역사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다.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런데 생각 해봐라.”
으..
“김선우가 보여주고 있는 성적 상 승폭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 말을 들은 정현수는 순간 뒤통 수를 맞은 둣한 기분이 들었다.
“……부, 불가능에 가깝긴 하죠.”
“김선우가 가진 잠재력을 일반인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어쩌면 이서준보다 더 뛰어난 천재성올 가 진 녀석일 수도 있어.”
정현수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 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감돌던 그때, 특무팀 본부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특무팀 훈련 교 사로 출장을 다녀온 김문태였다.
“어, 왔냐?”
“예, 선배님.”
그렇게 대답한 김문태가 주변을 둘 러보았다.
“근데 텅 비었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요?”
“출동이나 조사하러 갔지.”
“흐음.”
김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정현수가 김문태에게 물었다.
“선배님, 특무 훈련은 어땠어요?”
“훈련? 뭐,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 고 놀란 부분도 있었지. 아 맞다. 그그, 성무제 우승했던 김선우. 걔는 진짜 기대 이상이더라고.”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김덕현 과 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요? 왜요?”
“기척 은폐를 가르쳤는데 기척 감 지기에서 6점이 떴어.”
“……6점이요?”
정현수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신비 없이 그게 가능한가?“
“신비는 아니야. 특성이면 또 모르 겠지만.”
“허허. 신기하네. 아! 그럼 이번에 멘토 선택권은 김선우가 차지했겠네 요? 남은 두 명은 누구예요?”
“이서준, 유아라.”
“역시는 역시네.”
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멘토는 누구로 한대요?”
그 물음에 김문태가 김덕현에게 시
선을 돌렸다.
“선배님 인기 많으시던데요? 셋 다 선배님으로 한대요.”
김덕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냐? 마침 잘됐네. 가까이에서 관찰해보고 싶었는데.”
금요일,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
원작에서 이서준에게 나름 중요한 에피소드인 ‘불사 조사 과제’를 위 한 최씨가문의 본가 방문 시간이 찾
아왔다.
약속장소인 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이서준과 최서윤 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
커다란 베이지색 조끼를 입은 최서 윤이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옷차림이 바뀌어서 그런가? 평소보 다 싱그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서준 역시 다른 사람 집 방문을 의식했는지 얇은 스웨터로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오래 기다렸어?”
내 물음에 최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도 방금 모였어요.”
“그래?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가 자.”
“네!”
그렇게 우리는 게이트에 도착하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최씨가문의 위치는 서울 외곽의 주 택가 지역.
지역의 크기 자체는 작은 편에 속 하지만, 유명 가문의 본가들이 줄을 지어 늘어져 있어 흔히 말하는 ‘부
자 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는데도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가문의 건물들 이 보였다.
그렇게 신기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 러보며 걷고 있는데 앞장서서 걷던 최서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저희 본가에요.”
눈앞에는 마치 성을 연상시키는 거 대한 저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나와 이서준은 눈앞의 저택을 을려 보며 감탄했다.
“와…… 엄청 크네.”
“……그러게.”
지금까지 살면서 보아온 저택 중 가장 큰 저택은 한성가의 본가였는 데 이곳이 2배는 더 커 보였다.
물론 한성가는 ‘주택’의 역할만 해 서 그렇고, 최씨 가문의 저택은 수 많은 제자를 거두며 키우는 일종의 ‘훈련시설’이었기에 거주 인원이 많 아 넓게 지어서 그렇다.
이것과 관련하여 최씨 가문에도 몇 가지 논란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바로…….
그때 최서윤이 우리보다 긴장된 얼 굴로 주택의 문 앞에서더니 손을
데었다.
동시에 최서윤의 손이 닿은 면에서 마법진이 떠올랐다.
신체 인식 마법진이었다.
덜컥!
최서윤은 슬쩍 뒤를 돌며 나와 이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래?”
이서준이 묻자 최서윤이 고개를 저 었다.
“……아니에요. 근데 들어오실 때 놀라시지 마세요. 그리고 다들 착하 신 분들이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서준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묻자 최서윤은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마당 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마당에서 있던 수많은 덩 치의 남성들이 보였다.
그런데 하나 같이 인상이 더럽다. 얼굴에 흉터도 많고.
그들은 최서윤을 바라보더니 마치 연습했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2기화
덩치들의 힘찬 인사가 들려오자 이서준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어느 정도 예 상한 둣 최서윤이 머쓱한 미소를 흘 렸다.
그때 덩치 중 한 명이 나섰다.
“아가씨, 뒤에 멸치들은 누구입니 까?”
……멸치? 나랑 이서준올 말하는 건가?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와 이서준은 나름 꾸준한 훈련을 통해 근육으로 단련된 균형 잡힌 몸을 갖 고 있었다.
멸치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고 할 수 있는 몸…….
물론 눈앞의 과하게 벌크업한 덩치 들과 비교하자면 멸치처럼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말이 조 금 심하시네.
그때 최서윤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눈앞의 덩치들을 찌릿 노려보았다.
“휘진 아저씨, 이분들 제 손님이에 요. 말씀 조심해주세요.”
그 말에 덩치들이 놀란 눈으로 나 와 이서준을 바라보았다
“……손님이요?”
“이 사람들 남자인데요?”
“서윤 아가씨도 벌써 그럴 나이가 되셨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최서윤 이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휘진이라 불렸던 덩치가 해맑 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이서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아가씨 손
님분인 줄 모르고. 저는 최씨가문에 21년째 몸담고 있는 박휘진이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이서준이 머쓱한 미소로 고개를 꾸 벅 숙였다.
그러자 박휘진이 슬쩍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아가씨. 혹시 이 둘, 남자 친구라던가 썸이라던가 그겁니까?”
“……네, 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최서윤이 시뗄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단순히 친구 사이로 데려온 건 아 닐 거 아닙니까? 아! 저는 참고로 이 친구가 더 마음에 듭니다.”
덩치가 나를 가리켰다.
이서준이 아니라 나를 가리키다니.
나도 예상치 못한 결과여서 잠시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