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9화 (268/535)

269화

“……멘토 선택권? 와. 이거 무조 건 1등 해야겠는데?”

김문태의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웅 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멘토 선택권.

진로 체험 시, 모든 학생은 멘토의 지도를 받게 된다. 그리고 멘토 선 택권은 자신의 멘토를 선택할 수 있 는 특권이었다.

한 멘토당 최대 3인까지 함께 할

수 있기에 진로 체험에서 이서준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멘토 선택권을 반드시 따내야 한다.

“멘토 선택권은 총 3장이다. 훈련 결과로 등수를 나눠 1등부터 3등에 게 멘토 선택권이 주어질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멘토 선택권에는 ‘특무 지역’을 선택할 권리도 포함 되어 있다.”

김문태의 설명이 이어지자 학생들 이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침투와 위장 훈련을 위 해 장소를 이동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김문태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학생들은 눈치를 살피더 니 그의 뒤를 따랐다.

김문태가 도착한 장소는 다목적 훈 련장 내부에 있는 ‘특무 훈련장’이 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기계 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상황 별 현대 배경의 방들이 보였다.

“그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침투 와 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 라고 생각하나?”

김문태가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은폐입니다!”

“정답이다. 침투에 가장 중요한 것 은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것. 즉 은 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폐에 도 한계가 있다. 왜냐? 인간에게는 ‘기척’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계는 주변의 기척을 감 지하는 기계다.”

김문태가 네모난 기계를 가리키며 말하자 학생들이 신기해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 여기 기계의 19라는 숫자가 보이나?”

김문태가 기계에 적힌 ‘9’라는 숫 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주변에 감지되는 기척을 숫 자로 표현한 것이다. 만약 이렇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 순간 기계에 적힌 숫자가 ‘86’ 으로 올랐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 척이 높아진 것이다.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이렇게 숫자가 바뀌게 되지.”

“와. 신기하다.”

내 옆의 윤하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이번에는一

김문태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 흐름이 바뀌었다.

김문태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했지 만 ‘존재감’이 전보다 확연히 약해 져 있었다.

마력으로 자신의 기척을 ‘은폐’시 킨 것이다.

“자, 여기 숫자가 보이는가?”

86이라고 적혀 있던 숫자가 17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오오. 놀란 목소리로 탄

성을 내질렀다.

“오늘 너희가 익힐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마력을 이용해 자신 의 의지로 기척을 숨기는 것.”

학생들의 반응이 재밌는 둣 김문태 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은폐 능력은 완 벽하지 않다. 최대한 기척을 숨겼지 만 17만큼의 숫자가 남게 되지. 그 러나 이 정도의 기척을 숨기는 것만 으로도 침투에는 엄청난 도움이 된 다.”

그 뒤로 김문태는 기척올 숨기는 방법에 대해서 강의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은밀한 발걸음]이 있어 크게 의미는 없지만, 수업 자체는 흥미로웠기에 열심히 들었다.

“강의는 여기까지다. 그럼 지금부 터 2시간 동안 연습한 뒤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테스트의 결과는 ‘기척 감지기’로 평가하겠다.”

“이서준 24! 현재 1등이다.”

“24? 와…… 역시 이서준이네.” 약 2시간의 개인 연습 시간이 끝

나고,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차례대로 ‘기척 감지기’ 앞에서서 오늘 익힌 기척 감지를 선보였다.

평균 점수는 40대였다.

오늘 익혀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애초에 기척을 인위적 으로 감춘다는 것은 프로 마법사들 에게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서준이 1위네. 저 정도면 멘토 선택권은 확정 아닌가?”

“그렇지. 유아라도 29점 나왔던데 걔도 확정인 거 같고. 에휴. 이럴 줄 알았다.”

“야. 실망하지 마. 아직 테스트 다 안 끝났어. 위장도 있잖아.”

그렇게 주변에서 테스트 결과로 아 쉬워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때.

테스트를 마친 이서준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나는 이서준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선택권은 거의 확정이네?”

“아직 확정은 아니지.”

이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힐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넌 3등 안에 들 자신 있어?”

“글쎄. 해봐야 알겠지.”

기척을 감추는 것쯤이야 [은밀한 발걸음]이 있으니 자신 있지만. 문 제는 ‘위장 연기’다.

내 기억에 의하면 테러리스트를 상 대하는 종업원을 연기해야 되는데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를 모르겠 다.

“흐음. 그래? 그럼 원하는 멘토는 있어?”

“김덕현 마법사.”

김덕현.

세계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서울

특무팀’에서도 베테랑 중 베테랑으 로 통한다.

원작에서도 이서준이 선택했던 멘 토이기에 나도 그에 맞춰 따라가는 게 맞겠지.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이서준이 신 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나도 그분 생각 중인데. 진 짜 신기하네. 어떻게 매번 선택이 겹치지?”

그야 내가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니 그러지.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윤하영 과 앉아 있던 유아라가 힐끔 우리를

바라보더니 다가왔다.

“……뭐야? 너네도 김덕현 마법사 님 노리고 있어?”

“웅. 설마 너도?”

이서준의 물음에 유아라가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그야 특무팀에서 실력도 좋으시고 경험도 많으시니까……

유아라의 말에 이서준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유아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너 1등 할 거지?”

얘가 또 저렇게 질문을 하네.

보통은 ‘이번 시험 1등 할 자신 있 어?’ 라던가. ‘1둥 노리고 있어?’ 이 렇게 물어보지 않나?

“넌 어떻게 매번 언제든지 1등 가 능하다는 것처럼 물어보냐?”

“그야 이런 비전투 관련 테스트에서 1둥 안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때 유아라가 심각해진 얼굴로 혼 자 중얼거렸다.

“큰일 났네. 김선우가 1둥 하면 나

는 3등으로 밀려날 거고…… 선택권 은 3장이니까…… 으으음……

유아라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 었다.

이번 테스트로 선택권을 받지 못할 까 봐 불안한 모양이다.

하긴, 유아라는 예전부터 특무 쪽 에 워낙 관심이 많았으니까.

“A반 김선우.”

그때 나를 부르는 김문태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동시에 모든 학생이 기대하는 눈으 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요

즘 활약을 많이 했더니 나를 향한 기대감이 이서준에게도 밀리지 않는 다.

“다녀와.”

“어.”

나는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기계에 ‘84’라는 숫자가 떠 올랐다.

“그럼 바로 기척을 숨겨보아라.”

“네.”

나는 곧바로 [은밀한 발걸음]올 발 동했다.

특성을 사용하지 말까 고민도 해봤

지만, 괜히 어설프게 기척을 숨기다 가 멘토 선택권을 잃으면 손해가 크 기에 어쩔 수 없이 특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성을 발동하자 모두가 놀란 기색 을 보였다.

김문태 역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 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기계로 시 선을 돌렸다.

“……뭐야 이게.”

김문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 더니 정신을 차리며 내게 말했다.

“……흠흠. 김선우. 기척을 숨기는

재능이 대단하구나. 네가 1등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계로 시 선을 돌렸다.

기계에는 [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조금 과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3둥 안에 못 드는 것보다 는 나으니까.

‘기척 은폐’ 테스트가 끝나고 예고 했던 다음 수업인, ‘위장 요원’ 연습 이 시작되었다.

훈련 방법은 이러했다.

실제 테러와 비숫한 상황을 연출하 고, 직원이나 일반 시민 둥으로 위 장해 잠입했다는 설정을 부여했다.

연기를 하고 대본을 읽어야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멘토 선택권’이 걸려 있기 에 학생들은 부끄러움을 참아내며 연기를 했다.

“……어. 어떤 거로, 드릴깝쇼?”

한 학생의 연기에 주변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발연기에 진 지한 테스트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

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김문 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 중세시대 점원 연기하 냐?”

“......아뇨.”

“들어가라.”

“……넵.”

“에휴. 어떻게 마음에 드는 녀석이 한 놈도 없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김문태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연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

게 해라. 배우처럼 연기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안녕 하세요. 고객님.’이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그 말에 이서준도 부끄러운 둣 민 망한 미소를 홀렸다. 5분 전에 이서준도 발연기를 선보이며 대차게 까 였기 때문이다.

“……다음 김선우.”

내 이름이 불리자 주변에서 큭큭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선우 다른 건 다 잘해도 연기는 못 할 거 같지 않냐?”

“그렇지. 작년에 다큐 못 봤냐? 긴 장했는지 말투 이상해졌던 거.”

“아 미친. 생각났어. 말투 엄청 느 끼해지더만. 큭큭.”

나는 눈을 찌푸렸다.

……내 말투가 어때서?

“선우야. 네가 어떻게 해도 난 안 웃을게!”

주변에서 떠드는 목소리를 들었는 지 윤하영이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해.”

옆에 있던 이서준도 거들었다. 작 년 다큐 때문인지 망신당할까 봐 걱

정하는 모양이다.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 와 종업원 데스크에 섰다.

“자, 김선우. 아까와 같은 종업원 역할이다. 지금 눈앞의 나는 테러리스트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위장 잠입으로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건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는 꼭 필요한 일. 쓸데없는 일이라 고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 라.”

“……예.”

나는 대본을 살폈다.

일반적인가게 종업원의 응대 메뉴 얼이 적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 일반적인 종 업원의 메뉴얼은 아니고 테러리스트 를 상대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 어나가며 시간을 끄는 법과, 신뢰를 얻는 방법이나 제압 방법 등이 적혀 있었다.

“대본은 모두 숙지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좋다. 준비됐으면 대본 내려

놓고 바로 시작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후우......

그래, 망신만 당하지 말자.

평범하게.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 게.

진짜 종업원이 됐다고 생각하 고…….

그때 였다.

[잠재 개성, ‘과몰입’이 발동합니다.]

갑작스레 과몰입이 발동되었다.

동시에 내가 종업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모두의 관심을 받는 지금 이 상황에도 종업원 역할에 몰 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눈을 뜨면서 친절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 뭐야. 표정?”

“표정만 보면 엄청 친절한데?”

주변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입 올 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내 입에서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가 홀러 나왔다.

첫 마디는 내가 들어도 친절한 종 업원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훈 련장’이 아닌 ‘식당’으로 변했다.

웃고 떠들던 학생들도 어느 순간 진지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문태 역시 테러리스트인 자신의 역할을 잊은 둣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과몰입 특성이 만든 내 신들 린 메소드 연기에 당황한 걸 테지.

[‘관중을 압도하는 신들린 연기’ 업 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심지어 포인트까지 획득했다. 무려 5천 포인트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역할에 몰입한 상태.

포인트 획득에 기뻐할 틈은 없었다.

그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던 김문태 가 입을 열었다.

“……김선우.”

뭐지? 원래라면 다음 테러리스트 대사가 나와야 하는데. 내 연기에 너무 놀라서 저러는 건가?

“과몰입한 건 좋은데 애드립은 자 제해라. 다음 대사는 ‘안녕하세요. 자리 안내해드리겠습니다.’다.”

아.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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