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5화 (264/535)

265화

뚜벅 뚜벅.

한성 의료원의 복도에서 구두 소리 가 선명하게 퍼져 나왔다.

한대현이 입원한 VIP 병동에서 나 온 ‘왕’이 복도를 걷는 소리였다. 그 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차분했다.

표정 역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마주치는 의사와 간 호사에게 인사를 나누는 여유를 보 이기도 했다.

어느덧 왕은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 터 안에 들어섰다.

끼이 익.

문이 닫히자 왕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상하군.’

왕은 조금 전 한대현의 병동에서 마주쳤던 ‘김진우’를 떠올렸다.

김진우.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신기한 유 형의 사내였다.

‘공포’에 가까운 놀라움의 감정을 보였다.

타인의 감정을 감지할 수 있는 능 력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반응올 보인 것일까.

의심이 들었지만 아마 PL 그룹 회 장이라는 거물이 등장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짧은 순간, 그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마치 인격이 바뀐 것처럼…….

심지어 그 이후부터는 그에게서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완벽한 평온’ 상태를 유지했다 는 중거.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정한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 까운 일이었기에, 왕도 처음 겪어보 는 상황이었다.

‘……십마회 내부에서 왜 말이 나 오는지 알 것 같군.’

솔직히 말해 느껴지는 기운만 보면 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지금까지 보아온

인간 마법사와 다른 특별한 무언가 가 있었다.

분위기와 행동.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까지.

십마회 내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김진우가 마인을 구분할 수 있는 능 력이 있다고 하던데…….

그러다 문득 왕은 박람회에서 보았 던 ‘모자를 쓴 테러리스트’가 떠올 랐다.

‘가만. 그 둘……

지금 생각해보니 풍겨오는 분위기 가 비슷하지 않나?

체형도 비슷한 것 같고. 가만 생각

해보면 사용하는 마법도 비숫한 거 같기도 하고…….

동시에 왕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심 이 자리 잡았다.

‘……설마 동일 인물인가?’

VIP 병동.

멍하니 왕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 기 억에 의하면 둘 사이에 병문안을 올

정도의 친분은 없었을 텐데…….

어찌 됐든 잠재 개성인 ‘과몰입’의 효과 덕에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

만약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면 어떤 의심을 받았을지……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대현을 바라보 았다.

몇 주가 지났을 뿐인데 몸이 더 야위었다.

안색도 창백한 것이 건강이 더 악 화되었다는 게 느껴져서 안타깝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몸에 감각이 없어서 잘 모르겠 군.”

“엄청 안 좋으시다는 말을 돌려서 하시네요.”

내 말에 한대현이 피식 웃었다.

나는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 다. 그러다 우연이 탁자 위에 올려 진 사진을 발견했다.

한세연, 한세진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교복을 입은 걸 보아하니 고등학생 때인 거 같은데.

……엄청 풋풋하네.

“3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 들려온 한대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잘 찍혔네요. 사이도 좋아 보이고 요.”

“좋기는…… 다 연기하는 거지. 쯧.”

한대현이 혀를 쯧쯧 찼다.

“지금이야 내가 있으니 서로 사이 좋은 척하겠지만 내가 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보여서 잠도 제 대로 못 잔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아픈 사람 앞에서 ‘네, 그 럴 겁니다.’라고 말할 순 없으니 은 근슬쩍 대화 주제를 돌렸다.

“PL 그룹 회장은 왜 찾아온 겁니 까?”

“후계자에 대한 생각을 물으러 찾 아왔더군.”

왕이 한대현을 직접 찾아갈 만한 일은 역시 그것밖에 없긴 하겠지.

현재, 마인에게 한성가의 후계 구 도가 꽤 중요할 테니까.

“그래서 뭐라 대답하셨습니까?”

“뭘 대답하나. 나도 모른다고 했

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한대현이 갑자 기 크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괜찮으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한대현에게 다가 가자 괜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최근 호흡하는 게 힘들어져서 그렇네.”

그 모습을 보자 새삼 한대현의 남 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해야 한 달 정도쯤이려나.

“됐고, 저번의 이야기나 이어서 하 지. 저번에 자네가 한 제안 말일세. 생각해봤는데 조건을 살짝 바꾸기로 했네.”

u..2”

“세연이에게 칼을 쥐여주기보다는 조건을 걸어서 차라리 한 명에게 모 든 것을…… 쿨럭!”

한대현이 다시 기침올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부르려 하는데 그 때 한대현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크흐흐. 괜찮네. 자리 앉게.”

“회장님.”

“그보다 자네 마력 증서 써본 적 있나?”

한대현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테이 블의 서랍을 열더니 종이 하나를 꺼 냈다.

은은한 마력이 느껴지는 하얀 종 이.

마력 증서였다.

피의 맹세처럼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서류의 ‘진품’을 중명할 때 사용되는 약속이었다.

위조할 수 없기에 보통 ‘계약서’에 자주 사용된다.

“네, 써본 적 있습니다.”

“유언장 좀 쓰려는데 도와주게. 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한대현의 마력 중서를 이용한 유언장 작성을 도와주었다.

마력 중서는 마력을 이용한 계약서 이기 때문에 마법사인 내 도움이 필 요하다.

“……위의 조건에 도달한 쪽에게 모든 지분을 상속한다.”

그렇게 중서의 작성이 모두 끝이 났다. 중서 안에는 위조할 수 없는 한대현의 마력이 담겨 있었다.

“유언의 내용을 듣고 놀라지 않는 군. 후계 구도가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르는 유언인데 말이야.”

유언장에는 앞으로 한성가의 후계 구도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마 이게 세상 밖으로 전해진다면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제가 제안한 ‘내기’와 크게 다르지도 않고요.”

“그런가? 큭큭.”

“그럼 저번에 제안한 조건은 수락 하신 거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한대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 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자네와 대화할 때마다 참 즐겁군.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 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한대현이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네가 제안한 조건 중에,

세연이를 지킨다는 피의 맹세를 하 기로 했었지?”

“네, 그랬었죠.”

“피의 맹세는 됐네.”

“......네?”

“자네가 준 제안이 꽤 마음에 들기 도 하고. 자네와 대화하는 것도 즐 거워서 내 나름의 보답일세. 물론 약속대로 한성가의 ‘신비 대여권’은 그대로 주지.”

예상치 못한 이득이다.

물론 피의 맹세를 걸지 않아도 한 세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도 록 노력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약 세진이 그놈이 모든 것을 갖게 된다면, 세연이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주게.”

나는 한대현에게 안심하라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네, 약속하겠습니다.”

밤 9시. 한대현과의 대화를 마치고 한성 의료원에서 나온 나는 약속대 로 한세연을 만났다.

이대로 술집으로 가나 싶었지만,

한세연이 걷고 싶다고 말해 함께 공 원을 걷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한세연은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잡다한 대화, 일상 이야기 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한대현과 있었던 대화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유언장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달라 고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우 씨.”

그렇게 공원의 풀냄새를 맡으며 공 원올 걷는 도중 한세연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마워요.”

“뭐가요?”

“아버지 대화 상대해 줘서요. 얘기 나눠보니까 아버지가 진우 씨랑 대 화하는 걸 즐거워하시는 거 같더라 고요. 정작 저는 바빠서 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해서 미안한데. 고마워 요.”

한세연이 나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를 지었다. 그런 그녀를 따라 나도 피식 웃었다.

그러고서는 말 못 할 할 말이 있 는 둣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통화할 때도 박람회 때 어디 있었느냐. 뭐 하고

있었냐 자꾸 물어봐서 당황했었는 데.

……설마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 나?

그 뒤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며 대 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 생겼다.

“세연 씨.”

“......네?”

한세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바빠서 회장님을 자주 뵙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네. 그렇죠.”

“아무래도 이번 한 달은 일보다는 회장님과 있는 시간을 늘리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 말에 한세연의 눈에 슬픔이 깃 들었다.

자칫 무례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한 세연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기 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아직 건강하실 때 최대한 추억을 쌓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문득 현대에 있을 가족들이 생각났 다.

괜한 생각에 입맛이 쓰렸다.

한세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우 씨는 가족이 아버지와 어머니만 계시었다고 했죠?”

“네, 그렇죠.”

예전에 한세연과 술을 마시며 그런 얘기를 했었다.

“혹시 가족분들올 마지막에 뵌 게 언젠가요?”

마지막으로 뵌 날이라.

8, 9년 정도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이곳 생활이 오래됐 다는 게 실감 나네.

“글쎄요. 꽤 오래되었다는 것밖 에……

내 대답에 한세연의 얼굴이 다시 슬픈 표정이 되었다.

“가족들과 이별하게 된 건가요?”

“……뭐, 그렇죠.”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축 처지자 한세연 이 분위기 환기를 하려는 둣 작게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 멈췄다.

“아, 참. 저번에 제가 선물 드린다

고 한 거 드릴게요.”

한세연이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무 언가를 꺼냈다.

장신구 보관함을 연상시키는 조그 마한 상자였다.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모르겠는 데. 구하는데 꽤 고생한 물건이에 요.”

무슨 선물이길래 천하의 한세연이 구하는데 고생한단 얘기를 하지?

“아, 선물 고맙습니다.”

나는 상자를 받고는 조심스럽게 안 을 확인했다.

동그란 회색 돌로 만들어진 펜던트 였다. 어떤 아이템이려나?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으로 효 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및.”

나도 모르게 입 밖에서 ‘미친’이라 는 말이 튀어나올 뗀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한세연은 의 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우 씨?”

“홈홈. 죄송합니다. 그런데…… 세 연 씨, 설마 이게 선물이에요……?”

내 물음에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우 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 어서요.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그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고는 다시 펜던트를 확인했다.

[월석 펜던트(유물)]

설명 : 월석으로 만든 부적. 달의 힘을 지니고 있다.

[지속 효과]

►달의 힘

달빛을 받으면 모든 회복 효과가 상승합니다. 달의 밝기에 따라 최대 500%까지 상승합니다.

달빛 아래에서 착용자의 매력이 상 숭합니다.

►달의 은총

보름달이 뜬 날, 능력치 중 하나가 무작위로 0.5 상숭합니다. (능력치마 다 최대 10까지 상승 가능합니다.)

[사용 효과]

►달의 안식처

달빛 아래에서 기척을 숨길 수 있 습니다.

내구 : A

……무려 유물이다.

그것도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 는 유물 장신구.

“……세연 씨 혹시 이거 어떻게 구

하셨나요?”

내 물음에 한세연은 민망한 듯 볼 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경매에서 샀어요.”

“경매요? 혹시 얼마에……?”

내 물음에 한세연이 입을 꾹 다물 다가 말했다.

“50억이요.”

“……50억이요?”

황당함에 되물었다.

선물로 50억을 태워?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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