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직장인 대다수가 퇴근을 끝낸 밤 9시.
한성제약의 본부장실에서 한세연은 모니터 너머로 여러 영상이 담긴 폴 더를 살피고 있었다.
저번 주 토요일 날 열렸던 ‘H-A 박람회’ 사건 당시의 CCTV 영상들 이 있는 폴더였다.
« Q.»
=...
한세연은 발표회 당시 무대 내부의
CCTV를 클릭했다.
영상을 틀자 무대 위에서 연설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앞에 연설을 듣는 관객들의 모습과 그 틈에 숨은 마인들의 모습 도 보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그녀였기에 앞으 로 일어날 사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예상했던 대로 사건 이 시작되었다.
발코니에서 쏘아진 마법이 관객 사 이에 숨은 마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마인의 습격으로부터 지 켜주겠다는 것처럼.
조사 결과 당시 마인을 공격했던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는 5층 관계 자용 발코니에 있었다고 한다.
CCTV가 발코니 하나하나를 촬영 하고 있지 않았기에 정확한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떤 마법을 사 용했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세연은 마법의 방출과 동시에 영 상을 정지했다.
구체 형태의 마법.
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이 구체에는 ‘빛 속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속성이나 형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지만 한세연은 이런 ‘빛 속성 구체’를 사용하는 마법사 한 명을 알고 있었다.
바로 김진우.
단순한 우연일까?
흔한 것이 아니더라도 빛 속성 구 체를 사용하는 마법사가 없는 것은 아니니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
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이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가 마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관객 사이에 숨은 마인을 골라서 공격했 다는 점이다.
김진우에게서도 이것과 비슷한 능 력이 있었기에 그녀의 머릿속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한세연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마인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고 난 뒤, 무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 었다.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마인을
상대하는 마법사들.
잠시 뒤 검은 마기가 꿈틀거리더니 무대 내부의 모든 CCTV를 파괴하 기까지 한다.
이 검은 마기에 대해서는 협회 내 부에서도 많은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세연은 그녀의 경호원인 ‘검귀’를 통해 이 마기의 정체를 어 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마 정체를 숨기고 있던 또 다른 고둥급의 마인일 것이다. 검귀가 확 신하듯 말했으니 믿을 수 있다.
“흐음.”
한세연은 다시 영상을 뒤로 돌렸다. 이번에는 다른 의문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상을 뒤로 돌리니 4충 발코니에 어렴풋이 마법사관학교 학 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서준, 최서윤, 신영준, 윤하
영…….
하지만 정작 그녀가 찾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김선우.”
아무리 찾아도 무대 내부에서 김선 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김선우가 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분 명한데 혼자 보이지 않는다.
한세연은 혼자 생각하다가 당시 박 람회의 복도에서 마주쳤던 김선우를 떠올렸다.
스쳐 지나갈 때 은은하게 느껴졌던 특유의 향.
그것은 김진우의 냄새와 상당히 흡 사했다.
물론 주변의 화약 냄새가 섞여 확 신할 순 없었지만, 이런 여러 가지 사건이 겹치다 보니 뭔가 수상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둘의 관계가 뭐지?”
겹치는 게 많다 보니 다시 그 둘 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 다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동일 인물은…… 솔직히 말이 안 되고.
진짜 예전에 추리했던 것처럼 혈육 같은 건가?
마인을 구분하는 걸 보면 특별한 힘이라도 지닌 거고?
“……그렇다면 저 테러리스트가 김 선우?”
그렇게 혼자만의 퍼즐을 맞추던 그 때.
똑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번뜩 정신 을 차렸다.
“본부장님. 촬영까지 한 시간 남았 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촬영. 저번 토요일에 있었던 박람 회 사건과 관련하여 사과와 함께 몇 가지 발표할 일이 있었다.
오늘 그녀가 야근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김선우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쌓인 일부터 해결
해야 하기에 한세연은 모니터를 끄 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늦은 밤 10시.
조별 과제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조원들은 각자 인사를 나누었다.
“아참! 오늘 과제한 거 다들 검토 한번 해주시고 혹시 문제 있는 부분 보이면 바로바로 톡방에 얘기해주세
요.”
최서윤의 말에 1학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넵! 선배님!”
“네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다들 들어가요.”
“넵,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뒤 1학년들은 기숙사 로 돌아갔다.
“흐아암〜 으, 피곤하다. 그럼 서윤 아. 나도 이만 가볼게. 아! 선배님들 수고하셨어요.”
송승아는 피곤한 얼굴로 하품하더
니 나와 윤하영에게 꾸벅 고개를 숙 였다.
“어어, 들어가.”
“네에.”
그렇게 송승아도 사라졌다.
어느덧 어두운 가로등 아래에는 최 서윤과 윤하영. 그리고 나만이 남았 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조별 과제 도중에 나간 미안함으로 마지막에 가려 했는데 얘네는 왜 안 가는 거지.
그때 최서윤과 윤하영이 서로의 눈 치를 살폈다. 왜 안가냐는 둣한 뉘 앙스로.
“무슨 할 말 있어?”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내 물음에 최서윤과 윤하영이 나를 바라봤다.
“아뇨. 아까 과제 중에 심각한 얼 굴로 나가시길래 혹시 안 좋은 일이 라도 있으신가 해서요.”
최서윤의 말에 윤하영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으로 남 은 모양이다.
과제 중간중간에 내 눈.치를 살피던 데 이것 때문이었나.
“별거 아니야. 신경 안 써도 돼.”
“그럼 다행인데.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 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 드릴게요.”
최서윤이 진심이 담긴 말투로 주먹 을 꽉 쥐며 말했다.
그 열혈적인 모습에 나는 작게 웃 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선우야. 도움 필요하면 나한테도 언제든지 말해!”
이번에는 윤하영이 나서서 말했다.
“너는 조용히 있어 주는 게 도 움…… 홈홈. 아니다.”
“……그거 무슨 의미야?”
윤하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대답했지만, 윤하영은 여전 히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시무룩해진 얼굴로 입술을 삐 죽 내민다.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 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그때 나와 윤하영을 번갈아 바라보
던 최서윤이 나한테 꾸벅 고개를 숙 였다.
“그럼, 선배님 저도 이만 가볼게 요!”
“어, 그래. 들어가.”
“선우야. 나도 가볼게.”
“웅, 잘 가.”
나는 손을 흔들어주며 최서윤과 윤 하영을 보냈다.
그렇게 모두를 떠나보낸 뒤, 나는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달. 그리고 주변을 아름답게 비추는 수많은 별
빛.
언제봐도 내가 살던 현대와 다르게 아름다워서 묘한 감상에 젖게 된다.
과거에는 이것과 같은 풍경을 바라 보면 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인지, 아니면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 진 허구의 세계인 것인지에 대한 의 문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새 이 세계는, 나에게 지키고 싶은 세계가 되었으니까.
외부자로서, 이 세계에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인연을 만들어 버렸
으니까.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내가 살 던 세계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올 전처럼 리셋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힘내자.”
앞당겨지는 미래의 사건에 대비하 려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이 세계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비 밀이 너무나도 많이 숨어있으니까.
생각의 정리를 마친 나는 기숙사
안으로 향했다.
“웅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그레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텔〜”
나는 웃으며 그레텔을 반겨주고는 소파에 털썩 누웠다.
“……피곤하네.”
소파에 앉자마자 오늘도 피로가 한 순간에 몰려온다.
신체적 피로가 아닌, 정신적 피로 도 없애주는 특성 같은 건 없으려 나. 아니면 멘탈 관리에 좋은 특성
이라던가.
‘돌부처’라던가 ‘철면피’ 같은 이름 의 특성이 있을 법도 한데.
흔자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스마 트 학생 수첩에서 알람이 울렸다.
[Hanseong Korea 한성제약]
[잠시 뒤 라이브 방송이 시작됩니다.]
한성 코리아.
한성제약의 공식 미튜브 채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 설정을 해
놨는데 이 늦은 시간에 라이브 방송 을 한다는 모양이다.
[박람회 마인 사건과 관련하여 사 과 인사, 그리고 당시 사건으로 취 소된 연설을 이어서 진행합니다.]
“연설 이어서 하나 보네.”
이번 박람회는 한세연이 겪은 가장 큰 실패였기에 혹시 기죽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원작에서는 재기하는 데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괜히 내가 안심됐다.
응원 차원에서 메시지나 보내볼까.
[방송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하실 거라 믿]
메시지 입력 도중에 잠시 멈췄다.
“……믿는다 하면 좀 부담되려나.”
안 그래도 요즘 잘해야 한다는 압 박감이 심해 보이던데.
나는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
[방송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이팅]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고마워요. 진우 씨도 화이팅 (화 이팅하는 강아지 이모티콘)]
한세연의 라이브 방송은 성공적이 었다.
현대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끌어내었으며, 문제 해결에 대한 것도 모범적인 답 변을 보여주면서 한성제약에 대한 기대감을 한충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개발된 신약이 발표 되자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주 상태.
그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세진이 이 방송을 보고 있을 텐데 그녀의 침착하고 뛰어난 발표 능력 에 긴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다.
이번 조별 과제 발표도 내가 맡게 되었는데 보고 좀 배워야겠네.
어찌 됐든 한세연은 마지막으로 자 신의 포부를 말하며 잠시 잠잠해졌 던 한성가의 후계 구도를 다시 불태 웠다.
이 방송을 본 한세진은 속을 부글 부글 끓고 있을 테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1시간가량의 방송이 끝 이 났다.
마인 사건으로 욕을 하러 온 수많 은 시청자는 한세연의 발표에 감화
되어 이미 민심이 뒤집혔다.
[신약 언제 나오냐 진짜? 저대로 나오면 제약계 독점인데]
[그것보단 가격이 말이 안 됨 거 긔]
“……반응 엄청 좋네.”
한세연의 성공에 대리만족감을 느 끼며 채팅창을 홅어보는데 전화 알 람이 울렸다.
[한세 연]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세연씨.”
[아, 진우 씨, 방금 방송 끝냈어 요.]
스피커 너머에서 한세연의 뿌듯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어요. 처음엔 안 좋은 반웅 도 많았는데 나중에는 민심이 뒤집 히더라고요.”
[방송 다 보셨나 보네요. 진우 씨 덕이에요.]
“제 덕은 무슨……
[아뇨, 저번에 진우 씨가 망치더라 도 자책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확실히 예전에 그런 말을 하긴 했 었지.
마인 습격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말에 용기를 얻었던 거 같아 요.]
……그렇다고 하니 다행이기는 한 데 괜히 낯간지럽네.
[아 참, 진우 씨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저번 토요일에 어디 계셨어 요?]
토요일?
“박람회 당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건 왜 묻는 거지. 박람회 때 나 는 당연히 박람회에 있었다.
하지만 ‘김진우’가 어디에 있었느 냐를 묻는다면 나도 몰라서 대답하 기가 곤란하다.
회사에 있었다는 어설픈 거짓말은 금방 들통날 거 같고.
“사람들 좀 만나고 그랬습니다.”
이 정도면 무난한 답변이겠지.
굳이 어떤 사람을 만났냐고 묻지도 않을 테고.
[사람들이요?]
“네.”
[……어떤 사람들이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걸 물어볼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어, 그게.”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주변 지인 마법사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마법사요?]
“……한세연 씨?”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죄송해요. 방금 한 말 잊어주 세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