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화
……진천우의 사도라고?
예상치 못한 김창현의 정체에 잠시 당황했다.
사도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여기서 말하 는 사도란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를 말하는 거겠지.
지금까지 만나온 사도들이 전부 그 래왔었으니까.
“그럼 김창현은 진천우의 뜻에 따
라 움직이고 있다는 거야?”
—그, 렇다. 그 아이는, 진천우의 사후, 그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만 들어진 것이다.
그때 옆에서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 껴졌다.
유아연이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어깨를 작게 떨고 있었다.
“……사도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김창현이 진천우의 후계자라도 된다 는 거야?”
—후계자, 같은 의미, 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끅! 진천우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 그의 일부를, 부여받
은 존재인 것이지.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물었다.
“진천우의 일부라는 건 뭘 뜻하는 거지?”
—영혼, 이다.
“ 영혼?”
—그래, 그 아이의 몸에는, 진천우 의 영혼 일부, 가 담겨있다. 하지만, 흐끅! 인간의 한계로, 실험이, 완벽 하지 않기에, 영혼은 불안정한 상태 지. 끅!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진실에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다.
진천우의 영혼 일부가 김창현에게 담겨있다는 말이, 마치 진천우가 김 창현의 몸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것 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원작에 의하면 진천우 의 부활과 김창현은 큰 연관성이 없 올 텐데.
이서준이라면 모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들에게 한 가지 더 물었다.
“이서준을 알고 있나?”
—이, 서준?
“그래.”
괴인이 생각하듯 동공을 굴렸다. 몸 반쪽의 검은 슬라임이 다시 한번 꿈틀꿈틀 움직였다.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 었다.
—혹시 진천우의, 죽은 혈육을 말 하는 건가?
진천우의 죽은 혈육.
이서준은 이윤경의 뱃속에서 한번 죽음을 경험했으니 저들의 시점에서 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맞아.”
—당연히, 알고 있다, 그 아이의 실험도, 우리가 조금이지만, 관여, 했었으니까. 끅! 그 아이는, 유성 일 족의 아이와 함께, 진천우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또 다른 인간…….
괴인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후후. 어쩌면, 그 아이도 유성 일족의 아이와 같은, 진천우의 사도 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괴인이 나를 바 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런 정보 들을, 알고 있는, 것이지?
“뭐가?”
—세계의 법칙이라던가, 그것, 외에 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지식을, 너는 알고 있다.
괴인의 말에 유아연이 나를 힐끔 바라봤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천우를 쫓다 보니 자연스레 알 게 됐어.”
—그런가. 흐흐.
괴인이 낮게 웃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네가 말한 것과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
슨 연관이 있는 건데?”
—단순하다. 유성 일족의 아이가, 진천우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방법은 나도 잘, 알지 못한다. 진천 우가, 이 실험에 숨긴 것이 많으니 까. 나도 모든 걸 알지, 못 한다.
—어찌 됐든, 이 모든 건 그가 원 하던, 진정한, 신이 되기 위한, 과정 이라는 것. 혈육의 몸으로 만들어진 불사의 육체, 끅! 그리고 자유…….
역시 내 예상대로 진천우가 말한 ‘신’이 된다는 건 단순히 불사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김창현에게 회귀하는 능 력이 있나?”
—회귀?
내 말이 조금 뜬금없었는지 괴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정 조건을 달성하면 과거로 돌 아간다거나 말이야.”
—……회귀라. 그건, 모른다.
차원 관측에서 본 김창현의 발언은 ‘회귀자’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많았 다.
혹시 이것에 대해 알지 않을까 싶
었는데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은 없지.
“무슨 의미야?”
—그 아이는, 미약하지만, 혼돈의 힘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신비의 힘 또한, 흐끅! 담겨있어, 세계의 법 칙에 저항하는 힘이 남들과는 확연 히, 다르지. 회귀할 방법만 찾아낸다 면야, 불가능할 것은 없다.
요약하자면 회귀할 방법을 찾아낸 다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회귀한다 해서 큰, 의미 가 있을까?
이어지는 말에 나는 의문을 느꼈 다.
—그 아이는 세계의 법칙에 저항하 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나, 끅!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과거로, 돌아가도, 끅! 그 아이는, 미래를 바 꾸지, 못 하겠지.
괴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냐면, 녀석이 가진, 자유의 힘, 은 새로운 운명을 개척, 하기에는 많이, 미약하니까. 과거로 돌아가도, 정해진 운명, 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회귀로, 미래를 바꿀 수 없다. 허황된, 꿈이다.
회귀자가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건 관측의 사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창현의 행동이나 말투는 ‘회귀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회귀는 했지만 결국 미래는 바꾸지 못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더 궁금한 것이,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됐어.”
몇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지만, 녀
석이 알고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것에 대한 해답을 듣기 위해서는 신비와 같은 존재와 대화를 나눠야 겠지.
—그럼, 약속대로, 나를, 죽여다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을 구 현했다.
우우^—!
내 손바닥 위에서 밝게 빛나는 마 법 구체가 구현되었다.
나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 상대를 죽인다는 게 조금 꺼림직하긴 했지 만, 약속했으니 지킬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을 해소하 기 위해 녀석에게 [인물 간파]를 사 용했다.
이름 : 박성태
나이 : 36 종족 : ???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D 관심도 : 0
나는 인물 간파에 떠오르는 종족을 확인했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녀석 을 인간이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로 보였다.
결국 녀석은 지금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마법을 방출 했다.
파아앙——
섬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끔찍한 무 언가가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험실 속 괴인 처치’ 업적을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인과율이 0.5 상승합니다.]
“……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인트와 인과율을 획득했지만, 썩 기분이 좋 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유아연이 생각에 잠
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혼란스럽네. 지금까지 진천우를 조사하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너한테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 건 이따 얘기하자. 일단 여기를 더 둘러보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 유아연은 실험실 내부 를 둘러보았다.
협회가 발견하지 못한 장소라 그런 지 이곳에는 많은 혼적이 남아있었
중간중간 보이는 끔찍한 형태의 시 체.
신비 열병에 걸려 죽은, 은발을 가 진 시체들도 보였다. 절로 눈이 찌 푸려지는 끔찍한 현장이었다.
나는 그것들에서 시선을 돌려 책상 위에 어지럽혀진 서류를 확인했다.
[세계의 법칙 저항 실험 결과 보고 세
작성일 : 2016.05.22.
대상 : 유성 일족 생존자 C-21
신비 열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확 인
다만 고통을 호소하는 둥의 부작용 발생
정신적인 후유증이 평생 남을 가능 성 있음
문서에는 김창현의 어릴 적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저런 실험에 희생되었 다는 생각에 조금 안타깝다는 마음 이 들었다.
그러다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의 김창현은 진천우의 실험으 로 인격이 달라진 걸까?
“끔찍하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서류를 살피던 유아연이 말했다.
“진천우와 선현 가문…… 상상 이
상으로 미친놈들이었어.”
그렇게 우리는 실험실 내부의 모든 서류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새로운 정보라 할 만한 게 나오지 않았다
전부 괴인에게서 들었던 내용이었 으니까.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난 거 같은데 나가볼까?”
“네, 그래요.”
나와 유아연은 지하에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지하의 문이 술 식에 의해 잠겼다.
그 후 긴 통로를 지나 건물 밖으 로 나왔다.
“후우.”
폐쇄된 공간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 니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던 하늘이 벌써 붉게 물들어 저녁이 되어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느꼈는 데,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은 모양
이다.
“……넌 대체 뭐야?”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아연이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뭐 냐니 요‘?”
“나는 평생 진천우만 쫓았어. 근데 오늘 느낀 건 너는 내가 아는 것보 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거 야.”
“……아까 말했잖아요. 저도 진천 우를 쫓았다고.”
내 대답에 유아연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세계의 법칙이란 대체 뭐지?”
유아연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김창현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조력자로 만들려면 내가 아는 전부를 말해줘 야 하는 걸까.
결국 선택했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지 못하게 하 는, 세계의 억지력이에요.”
“억지력?”
그 후 나는 과거 ‘관측의 사도’에
게 들었던 세계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아연은 처음에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다가 나중에는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낯빛이 어두워지 며 괴로워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거야?”
“그렇죠.”
내 대답에 유아연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외부자인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순 수하게 이 세계의 주민이었기에 납
득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비슷한 이론을 예전에 배운 적 있 어. 결정론이라고 했던가……. 잠깐,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도 정해진 거 야?”
“그건 모르죠. 제가 알기로는 세계 는 결정된 미래와 결정되지 않은 미 래가 있어요. 지금 순간이 어떤 미 래인지는 알 수 없죠.”
“그런가…… 근데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의욕이 꺾이 긴 하네.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진천우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돼.”
그렇게 중얼거리던 유아연이 내 눈 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찌 됐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김창현인 거지? 김창현이 실험의 피해자든 일단 녀석이 ‘진천우’의 사도가 되었다는 건 변함 없으니 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사실 예전부터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했는데 완전히 잠 적해서 추적이 쉽지 않더라고요.
“이건 나한테 맡겨. 내가 한번 찾 아볼게.”
강력한 권력을 지닌 ‘불의 마녀’가
말하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도 많다.
내 개인적인 성장은 물론, 마인과 자운 일당들 그리고 이서준에게 생 길지 모르는 변화를 감시하며 확인 해야 하니까.
유아연과 같은 강력한 조력자가 생 겨 내가 해야 할 일을 덜어줄 수 있다면 나쁠 건 없다.
“김선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아연이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여명의 칼날에 들어올 생각
없어?”
여명의 칼날.
수많은 정상급 마법사가 속한, 원 작의 중후반부에 커다란 존재감을 보이는 길드다.
그리고 작 중에서 자운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단체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여명의 칼날에 속하게 된다면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아뇨. 저는 혼자가 편해서.”
굳이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 은 없다.
마인 사건도 신경 써야 하는 지금, 마인과 전혀 관련 없는 여명의 칼날 에 속한다면 발목이 잡힐 수 있올 테니까.
“그래?”
유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확 고한 의지를 느낀 모양이다. 아마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래도 혹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오늘 네 덕에 이것저것 도움 받은 거 같아서……
유아연이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말 했다.
“고맙다고.”
나는 피식 웃었다.
“네.”
그러다가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나는 서둘러 스마트 학생 수첩을 열어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 표정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유아 연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네, 급히 가봐야 할 곳 있어서 빨
리 돌아가죠.”
“그래? 무슨 일이길래..… 일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별 과제 튀어서.
봐야 해요.”
심각한
빨리 가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