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자정이 지난 시각.
한성제약에서 제공한 호텔에서 쉬 던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다름 아니라 멸마의 힘과 관련해서 윤하영과 잠시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음에 도 윤하영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 지 않았다.
“흠.”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기다려 볼 까.
그렇게 건물 벽에 몸을 기대고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건물과 파손된 차량.
그리고 현장을 수습하는 협회와 한 성제약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의 모 습도 몇 있었다.
워낙 큰 사건이 터졌던 지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멀리서 상황 수습을 돕는 한세연올 발견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 지휘 를 내리는데 이번 사건에 책임감을 느낀 둣 표정이 어두웠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모양이다.
위로 메시지라도 하나 보내줘야 하 나.
“선우야!”
그렇게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던 그 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윤하영이 었다.
아니, 저거 잠옷 아닌가?
“너 어떻게 된 거야?”
내 앞에 다가온 윤하영이 다짜고짜 말했다.
“뭐가?”
“팔 말이야. 거의 뜯어졌다시피 했 었는데……
윤하영이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는 듯 중얼거리더니 나를 올려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선우 너 혹시……
윤하영이 말끝을 흐린다.
“마인이야?”
“웅‘?”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마인이 아닌 이 상 망가진 팔이 그렇게 짧은 시간 내로 회복될 순 없잖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그리고 내 팔을 회복시킨 능 력 역시 ‘마인’의 능력이 맞기는 하 니까.
하지만 이건 마인의 능력이지 내가 마인인 것은 아니다.
“내가 마인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팔이 회복된 건 내 특성 때문이야.”
그러나 윤하영은 의심을 거두지 않 았다.
혼자 추리를 하는 듯 고민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선우야 난 네가 마인이라 하 더라도 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자신 있어.”
“뭐‘?”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네가 마인 이든 아니든 우리 사이에 변하는 건 없으니까.”
웬 뻘소리를 진지하게 한다.
멘트 자체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 는 게, 묘하게 감동적이기는 한데.
“ 하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라도 보여줄까? 검은색인지 아 닌지?”
“피는 숨길 방법이 많잖아 신비나 특성, 마력 같은 걸로.”
맞는 말이기는 하다.
마인들이 인간 사회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얘 윤하영 맞나? 묘하게 두뇌 회전이 빨라진 게 평소처럼 대 충 넘어가질 않네.
“그럼 나한테 멸마의 힘을 써봐.”
그 말에 나를 바라보던 윤하영의
동공이 살짝 떨렸다.
“멸마의 힘을?”
“응. 어차피 멸마의 힘은 악마나 마인이 아니면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으니까.”
내가 마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 려면 이것만큼 확실한 게 없지.
“……그건 싫어.”
“얘는 왜 또 싫대?”
“네가 다칠 수도 있잖아. 다른 방 법 없어?”
“다른 방법은 안 믿을 거잖아. 그 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멸마의 힘은
인간에게 그렇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해. 아마 일반 무속성 마법보다 위력이 떨어질걸?”
“그래도 다칠 수 있는 건 맞잖아. 그리고 아직 미숙해서 힘 조절도 제 대로 못 해.”
그렇게 중얼거리던 윤하영이 한숨 을 푹 내쉬었다.
“……됐어. 그냥 선우 네가 마인이 아니라고 믿을게.”
결국 윤하영이 백기를 들었다.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앞으로 마인을 상대할 수 있으련지. 쯧.
“아니야. 이참에 확실히 하는 게
좋겠다. 멸마의 힘 써보자. 어차피 크게 다칠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 고.”
윤하영은 거절했지만 지속된 설득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했다.
“장소부터 옮기자.”
그렇게 윤하영과 나는 인적 없는 골목길로 들어왔다.
이곳이라면 누군가의 감시가 쉽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바로 시작하자.”
윤하영은 손바닥을 펼치더니 작게 멸마의 힘을 구현했다.
동시에 손바닥만 한 작은 화살의 형태가 윤하영의 손 위로 떠 올랐다.
힘 조절을 못 한다더니 생각보다 작은 크기로 잘 구현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멸마의 화살 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파직!
동시에 스파크가 튀듯 강한 마력이 내 손가락을 밀어냈다.
나는 억지로 손가락 끝을 화살에 찔러넣었다.
마력이 번지듯 내 손가락의 주변을 찔렀다.
상처가 생기며 붉은 피가 손가락을 따라 뚝 흘렀다.
“자, 됐지? 만약 내가 마인이었으 면 손가락이 불탔을 거야.”
그제서야 윤하영이 마법을 풀어내 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설마 네가 마인일까 봐 걱정했어.”
나는 작게 웃었다.
“마인이라도 우리 사이에 변하는 건 없다며?”
“그, 그렇기야 한데……! 그래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 까…… 그럼 팔 회복한 건 정말로 특성 때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주 사용할 순 없지만.”
“와. 선우 너는 가진 특성이 대체 몇 개야? ……아, 그거 혹시 소수 일족의 특성이야?”
“소수 일족?”
뭔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 한세진 님 경호원분께서 너보 고 룬의 일족이라고 하시길래. 혹시 나 해서.”
엘린이 쓸데없는 말을 했네.
우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흐음. 알았어.”
윤하영이 섭섭한 듯 시무룩한 목소 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자 괜한 미안한 기분 이 들어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위로 차원에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 게 토닥여주었다.
“아, 그리고 지금 부른 이유 말인 데 앞으로 조심해.”
윤하영이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조심하라고?”
“오늘 사건으로 멸마의 힘을 가진 사람이 박람회에 참석했다는 걸 알 았을 거야.”
“아.”
윤하영이 이해했다는 둣 고개를 끄 덕였다.
“네 힘은 특별하니까. 아마 녀석들 도 슬슬 움직이겠지. 앞으로 어디
다니더라도 최대한 사람 많은 곳에 다니고.”
멸마의 힘은 불사에 가까운 힘을 가진 ‘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
무한에 가까운 왕의 재생능력을 억 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니 그녀의 힘은 앞으로의 전개 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 면 무조건 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웅. 알았어.”
잠시 걱정이 담긴 표정을 짓던 윤 하영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편, 이서준은 호텔 내부의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아 오늘 발표회에 있 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발표회 도중 내부에 숨은 마인을 기습 공격했던 모자를 쓴 정체불명 의 남성.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전투 스타일이나 체형을 봤을 때 그자의 정체는 ‘김선우’가 분명했다.
작년부터 경쟁심을 느끼고 관찰했 던 상대였기에 이서준은 단번에 눈 치챌 수 있었다.
“……김선우.”
하지만 김선우라고 확신하고 있음 에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당시 모자 쓴 남성은 전투 도중 한쪽 팔이 완전히 박살이 났었다.
‘신비’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평 생 팔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치 명적인 상처.
하지만 20분 채 되지 않아 김선우 는 멀쩡한 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만약 김선우가 자신이 생각한 것처 럼 모자를 쓴 남성이었다면 김선우 의 팔에서 그런 낌새가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그 둘 이 다른 존재라는 뜻이다.
“......흐음.”
그럼에도 이서준은 둘의 연관성을 지울 수 없었다. 모자 쓴 남성의 전 투 스타일은 누가 봐도 김선우였으 니까.
누굴 바보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1년을 넘게 함께 지내왔는데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미스테리는 망가졌던 팔이 어떻게 회복되었냐는 건데…….
이서준은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다가 스마트 학생 수첩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룬의 일족]
검색을 마치자 쫘르륵 검색 결과가 나온다.
「‘룬의 일족’, 테러리스트 자운에
의해 멸족. 보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 실종된 인원도 다수 존재.」
「3년간 진천우에 의해 멸족된 소 수 일족이 십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j
기사의 내용 대다수가 자운이 활동 하던 14년 전의 기사였다.
보자마자 눈에 띄는 키워드가 있었다.
‘자운’, ‘진천우’…….
동시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김선우가 보였던 수상한 행동들.
잘 알지 못하던 나에게 접근하던 모습들.
그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나…….
진천우의 비밀 실험과 관련된 선현 가문에 관심을 두던 것도 수상하다 느꼈었는데 이제야 퍼즐이 딱딱 맞 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김선우와 마인의 관계라던가. 혹은 다른 룬의 일족이 말한, 일족의 종 사라던가…….
김선우가 종사라고 불리기에는 아 직 많이 어리지 않나?
“ 흐음......
……김선우의 목적은 뭘까?
역시 일족의 복수를 준비하는 거겠 지?
그렇게 생각하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김선우는 자신의 원수, 진천우의 아들인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 까?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룬의 일족, 세계에서 보조계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 져……J
이서준은 그 문장을 읽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술식 해석 능력이 심상치 않기는 했는데……
그 비밀을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될 줄 몰랐네.
오늘도 십마회 내부에서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마인의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S등급 마인을 또다시 잃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인의 전력이 퇴 화하고 있었기에 몇몇 간부들은 참 담한 심정을 느꼈다.
그러나 ‘왕’은 이번 결과에 만족감 을 느끼고 있었다.
직접 다녀오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수확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왕이시여. 그곳에서 무슨 일 이 있었습니까?”
어둠 속에서 한 마인이 말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왕이 잠시 생각 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참가하지 않았으면 얻 지 못했을 두 가지 수확이 있었다.”
“두 가지 수확이라 하시면?”
“하나는 그곳에서 멸마의 힘을 가 진 존재를 찾아냈다.”
“..J”
왕의 충격 발언에 모두가 놀란 표 정을 지었다.
“멸마의 힘이 분명합니까?”
“그렇다. 진건은 멸마의 힘에 의해 죽었다.”
마인들은 오늘 알려진 마인 습격 사건의 기사를 떠올렸다.
진건을 토벌한 인원은 놀랍게도 한 국 마법사관학교의 학생들로 알려져 있었다.
왕은 손에 쥔 서류를 확인했다.
[박람회 참가 마법사관학교 3학년]
[이서준, 김선우, 신영준, 윤하영]
“……예언의 아이는 아마 이 넷 중 하나라는 거겠지.”
씨익.
왕이 미소를 지었다.
예언의 아이만 처치할 수 있다면, 나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 이다…….
설령 그것이 김진철 회장이라 할지 라도…….
그렇게 예언의 아이 명단이 네 명 으로 줄었다는 사실에 잠시 소란이 일 때 어둠 속에서 다른 마인이 입 을 열었다.
“왕이시여, 그럼 남은 하나의 수확 은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왕은 한세연의 발표회가 시작되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자를 쓴 정체불명의 남성.
그자는 마치 마인을 구분할 능력을 가진 것처럼 무대 내부에 숨은 마인 들을 하나하나 처치해갔다.
그 탓에 마인들이 계획을 실행하기 도 전에 큰 혼란이 생기며 계획을 망치기도 했고, 의문의 속박 마법을 사용해 진건의 몸을 꼼짝 못 하게 묶어내기도 했다.
“또 하나의 수확은……
사실 왕은 그자가 가진 마력 능력 이 그렇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건의 몸을 속박하던 마법의 위력 이 뛰어난 만큼 엄청난 마나를 소모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녀석에게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 건이 토벌당했다.
비록 멸마의 힘에 의해 토벌된 것 이라고는 하지만, 왕이 생각하기에 는 진건의 토벌에 그 정체불명의 남성의 공이 컸으리라 짐작했다.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존재를 미
리 알게 된 것이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