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한성 제약의 발표회가 이루어지는 공연장.
4층 발코니석에 앉은 이서준 일행 은 대화를 나누며 발표회가 시작되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되게 좋다. 무대도 훤히 보 이고. 오페라 극장 같다야.”
“그러게. VIP석이라 확실히 다르긴 하네.”
이서준이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
다. 원형으로 된 공연장에 다양한 사람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기자부터 시작해서 기업인, 일반인, 마법사, 경호원…….
얼굴을 아는 유명 인사들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당장 맞은편 2층 발코니에 앉은 PL 그룹 회장의 모습도 보였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선우는 어디 간 거야? 아까 화장실 간다더니. 아직도 안 왔네.”
공연장에 입장한 지 15분.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김선우의 모
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발표
회가 시작될 텐데.
그러자 최서윤이 걱정이 담긴 얼굴 로 말했다.
“제가 나가서 찾아보고 올까요? 길
잃으셨을 수도 있는데.”
“에이, 김선우랑 던전 안 돌아봤
어? 걔 길 엄청 잘 찾아.”
“……흐음. 그런가? 전화는 또 안
받으셔서.”
“변비라도 걸린 거 아니야? 큭큭.” 신영준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따분하게 앉아 발표회가 시
작되기를 기다리던 그때.
이서준이 앉은 좌석 방향으로 2명 의 사람이 다가오더니 반갑게 말을 걸었다.
“이서준 학생? 여기서 또 뵙네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이서준이 시 선을 돌렸다.
부스 관람 때 우연히 마주쳤던 한 세진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함께 있었고.
“아, 안녕하세요.”
한세진은 살짝 웃더니 이서준 근처
의 좌석에 앉았다. 붉은 머리의 여 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서준의 옆 자리에 앉았다.
이서준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 어디서 마주쳤던 거 같은 데. 어디서 봤더라?
그때 붉은 머리의 여성이 획 고개 를 돌렸다.
“뭘 봐?”
“……아닙니다.”
이서준은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공연장의 모든 조명이 꺼 졌다. 깜깜한 어둠이 드리우자 공연 장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 다.
번쩍!
무대로 오르는 계단에 조명 하나가 켜졌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 을 향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아름다운 한 여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여성은 무대 위에 오른 뒤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성 제약의 한세연 입니다.
발표회가 시작된 지 10분.
나는 뒤늦게 공연장에 도착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생각해 눈에 띄지 않는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
아마 겉모습을 보고 나를 김선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나는 사람 없는 5층의 관계자용 발코니에 몸을 기대 공연장의 풍경 을 내려보았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조명 아래 에서 한세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연 설을 하고 있었다.
관객석을 가득 채우는 관중들은 마 치 홀린 것처럼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기술은 점차 빠르게 발전하고 있 고, 인류는 새로운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 위험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테러, 마인, 몬스터…….
침착하게 자신의 연설을 잘 수행하 는 그녀를 보자 수많은 감정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대견함, 흐뭇함, 불안함, 걱정…….
“ 후우......
그러나 깊은 한숨과 함께 모든 사
사로운 감정을 털어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다시 관중석을 내려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을 살펴 마인들 의 위치를 찾았다.
[인물 간파]가 있었기에 관객석에 숨은 마인들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 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2층 발코니에 앉은 마인의 왕이었다.
왕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무표정
한 얼굴로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저희 한성 제약에서 새롭게 개 발한…….
발표회에 참석한 왕의 목적은 대체 뭘까?
단순한 내 예상이지만 이번 사건에 개입하기 위해 이곳에 참석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PL 그룹 회장이라는 직책을, 단순 히 한세연을 죽이기 위해 포기할 것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녀석이 이곳에 등장한 건, 아마 말 그대로 한세연이라는 인물에 흥미가 생겨서일 것이다.
왕은 인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는 권력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 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녀석이 이 장소에 있다 는 점에서 원작보다 훨씬 불리한 상황이기는 하다.
이번에는 1충 VIP 석에 앉은 중년 의 남성에게 시선올 돌렸다.
이름 : 진건
나이 : 52
종족 : 마인 상태 : 긴장 마력 등급 : S 관심도 : 0
마인, 진건.
s등급의 마인으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중요 빌런이었
원작에서 일어난 박람회 마인 습격 사건의 주동자는 바로 저 녀석이었 으니까.
그때 진건의 옆에 앉은 마인이 귀 에 속삭였다.
보아하니 녀석들이 슬슬 일을 벌이 려는 모양이다.
“……나도 슬슬 준비할까.”
나는 품 안에서 ‘마력 은폐의 비 약’을 꺼냈다.
변화하는 미래.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
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보여야 할 때다.
“진건 님, 계획 실행까지 10분 남 았습니다.
공연장 1층의 관객석.
옆자리에 앉은 부하의 말에 진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모두 침착하게 대기하라 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잠시
나가서 입구를 봉쇄하겠습니다.”
옆자리의 마인이 떠나갔다. 진건은 몸을 기댄 채 다시 한세연에게 시선 을 돌렸다.
한세연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목 소리로 연설을 이어가고 있었다.
잠시 뒤 허공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오르더니 이번에 개발한 신약에 대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신약의 효능이 설명되자 몇몇 관객 이 놀라워하며 박수를 쳤다.
진건은 그런 관중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평화도 잠깐이다.
이제 곧 이 행사장 내부는 우리들 에 의해 혼란으로 물들 것이니까.
물론 ‘검귀’가 그녀를 지키고 있어 그녀를 죽이기는 어렵겠지만 죽이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행사를 망친 것만으로도 한세연의 입지와 평판이 줄어들 것이니 결론 적으로 마인에게는 이득인 상황이 다.
그렇게 앞으로 자신이 벌일 일을 생각하며 두근거림을 느끼던 그때.
우우웅
진건은 대기에 흐르는 마력이 불안 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 고 그것을 느낀 건 진건 뿐만이 아 니었다.
계단 뒤에서 지켜보던 검귀역시 잠 시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보통 이런 현상은 대기의 흐름을 바꿔버릴 만큼의 강력한 마법을 시 전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에는 그 어 떤 마력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뭘까?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생겨난 거지?
바로 그 순간.
진건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관객 하나가 이상행동을 보이자 주 변 관객들이 그에게 의문에 찬 시선 을 보냈다.
한 마인은 그를 보며 ‘어? 아직 시 간이 남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불안을 느낀 진건은 주변을 둘러보 다가 손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검은 마기가
올라오더니 장막의 형태로 구현되려 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일자의 섬광이 번쩍였다.
파아아앙——
압축된 빛 속성의 마법이 진건의 가슴을 꿰뚫었다.
동시에 마법은 진건의 가슴을 지나 앞자리에 앉은 마인의 머리를 함께 터트렸다.
“꺄아아악!”
갑작스러운 마법 공격에 관객 사이 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 시작했고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 수라장이 되었다.
진건은 끔찍한 통증을 느끼며 무릎 을 꿇었다.
마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듯, 자신들만 공격하는 정 교한 마법.
순간 그는 공포감이 휩싸였다.
만약 녀석이 주변의 피해를 신경 쓰지 않고 제대로 마법을 압축해 공 격했더라면, 의문도 모른 채 그 자
리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
“……어떤 건방진 녀석이!”
무대 위의 한세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했다.
어느새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검귀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여러분. 서둘러 피신하세요!
그 와중에 한세연은 관객들을 향해 피신하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호출기에 경호 인력을 불렀다.
“도망쳐!”
“테러다!”
“경호원 불러!”
진건은 빛 속성으로 불타는 가슴을 부여잡다가 몸을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진건의 말에 관중 사이에 숨어 있 던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획 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웬 녀석이 훼방을 놓았기에 지금이라도 실행해 야 할 때였다.
그때 새로운 섬광이 번쩍였다.
파앙一一!
“끄아아악!”
근처의 마인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다시 섬광이 번쩍였다. 이 어서 다시 한번. 또 한 번.
파앙——
파앙——
“끄악!”
“끄아악!”
숨어 있던 마인들이 섬광에 몸을 꿰뚫리며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갔 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력의 기운 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마력 의 기운도 감지할 수 없는 완벽한 암살이 었다.
그렇게 부하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는 와증, 진건은 마법이 쏘아지는
방향을 겨우 찾아내었다.
5충 발코니.
모자와 마스크를 쓴 의문의 남성이 손을 뻗은 채 마법을 방출하고 있었다.
“저놈이……!”
녀석의 선공으로 계획은 이미 망했다.
경호 인력은 어느새 공연장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고, 마인이 개입되었 다는 사실조차 이미 알려졌다.
그때 다시 한번 빛 속성 마법이 진건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이번 에는 기습이 아니었기에 검은 장막
을 펼치며 손쉽게 막아내었다.
동시에 진건은 5충 발코니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기 위해 신체를 강화 했다.
계획에 실패했다면 우리의 계획을 망친 저놈이라도 죽이고 도망치겠 다.
그렇게 녀석을 향해 달려들려는 그 순간.
우우웅!
진건이 서 있던 바닥에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수많은 빛의 줄기가 지 상 위로 솟아올랐다.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에 진건은 크게 당황했다.
빠르게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 만 이미 발목이 잡힌 상태.
“이, 이건 또 무슨……!”
빛의 줄기는 빠른 속도로 진건의 온몸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의 몸은 빛의 줄기에 꼼 짝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크으윽!”
진건은 의문의 빛줄기에서 벗어나
기 위해 힘껏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마 법인 것인지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 았다.
52년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처 음 느껴보는 굴욕감이었다.
“당장 풀어……!”
진건의 목소리가 공연장 내부에 메 아리 쳤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혼란스러운 상
황에 이서준 일행은 주변에 등장한 마인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분명 한 건 공연장 내부에 테러가 일어났 다는 것.
그리고 그 테러의 대상은 놀랍게도 마인이었다는 점이다.
거기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았을 때 아마 s등급의 마인이 분명할 터…….
‘……분명 전에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의문의 마 법.
작년 마인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 었던 마법이었다.
그리고 선구자의 밤에서 자운의 일 행 하나를 체포하는데 큰 역할을 했 던 마법이기도 했고.
……대체 누굴까?
설마 마인이 이곳에 참석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걸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던 이서준은 1층 관객석의 상황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마인들과의 전투로 잠시 정신 팔려있던 사이 관객석 중앙에서 있 던 마인의 몸이 빛의 줄기로 전신이
속박되어 있었다.
그 마법을 보자 이서준의 눈이 떨 렸다. 정체불명의 빛줄기 마법.
그때 보았던 의문의 속박 마법이었다.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주었던, 그 마법사가 지금 이곳에 있다.
“……어? 이게 뭐야?”
그때 이서준의 옆에서 놀란 목소리 가 들려왔다.
붉은 머리의 여성, 한세진의 경호 원이 1층의 마인을 바라보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 종사님?”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