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2/535)

253화

과연 한세연이 주최하는 행사답게 박람회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행사장을 밝히는 호화로운 조명.

자본력을 과시하듯 주변 곳곳에 설 치된 첨단 시설들.

단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도 입이 벌어질 만큼 압도적인 광경 이었다.

“우와. 진짜 사람 많다〜”

최서윤은 옆에서 쉬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확실히 엄청난 인파가 몰리긴 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박람회가 열릴 것이라는 한성 제약의 대대적인 홍 보가 있기도 했지만, 한세연이 어떤 발표를 할까. 궁금증에 참석한 사람 들도 많기 때문이다.

“……근데 이제 뭐 하지?”

한세연의 발표회까지 아직 7시간이 나 남았다.

그리고 우리 조의 주제는 ‘경영권 경쟁 속 리더쉽과 전략이 미치는 영 향’.

한세연의 발표를 듣는 것이 목적이 었기에 그전까지는 딱히 시간 때울 만한 것이 없었다.

다른 기업의 신제품 발표회도 있다 고는 들었는데 그다지 흥미는 안 생 기고.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 다.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윤하영과 송승아. 그리고 1학년들 의 모습이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다.

“주변 부스 구경 좀 하다가 6시간 뒤에 여기로 모인대요.”

“......그래?”

앞으로 터질 사건을 생각하니 윤하 영과 따로 행동하는 것이 조금 걱정 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다름 아닌 ‘마인’인 지라.

……크게 상관은 없으려나.

윤하영에게 마인의 관심을 줄여주 는 [항마석 팔찌]가 있으니까.

그때 최서윤이 내 옆으로 바짝 다 가오더니 내 옷깃을 잡았다.

“선배님, 저희도 이러지 말고 부스 관람해요.”

“부스?”

“네, 여기 부스 엄청 많잖아요. EB 그룹부터 시작해서 쩌~기 한성개발 부스도 있고.”

최서윤이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 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어제 일정표랑 지도 보면서 코스 연구 좀 했거든요? 선 배님은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 요.”

최서윤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팔짱 을 끼었다.

그 신난 모습에 잠시 황당함을 느 끼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안내해.”

시간 때울 수 있으면 나야 좋으니 까.

그렇게 나는 최서윤을 따라 한성 호텔과 이어진 컨벤션센터 내부를 돌았다.

세계의 이름있는 기업이라면 모두 참석했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큰 규 모였기에 정말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부스를 돌아다니 다 보니 어느덧 한성개발 부스에 도 착했다.

“이거 봐봐요. 내년 출시되는 ‘V워

치’래요.”

최서윤이 전시된 작은 시계를 가리 켰다. 그러자 부스 직원이 친절한 미소로 말했다.

“착용자의 마력 사용량을 측정하는 시계입니다. 그것 외에도 마력 방사, 스마트 연동 기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력 사용량을 측정해준다고요?”

신기하다는 둣 최서윤이 눈을 반짝 였다.

“한번 착용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어? 그래도 돼요? 그럼, 선배님 착용해봐요.”

최서윤이 시계를 받더니 내게 내밀 었다.

“아냐, 난 됐어.”

“에이, 한번 착용해봐요.”

그러고는 강제로 내 손목에 시계를 착용시 켰다.

나는 손목에 착용된 시계를 이리저 리 살폈다.

착 감기는 게 착용감은 좋다.

“사용법이 조금 복잡한데 천천히 알려 드리겠……

나는 직원이 설명하기 전에 V워치

의 스위치를 눌러 조작했다.

몇 번의 버튼을 누르자 V워치에서 작은 빛이 나왔다.

동시에 시계를 향해 마력을 주입했다.

우우웅…….

시계의 화면에서 푸른 빛이 뿜어지 더니 안에서 음성이 홀려나왔다.

[착용자의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사용자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직원이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 다.

“……어, 어어? 혹시 V워치 사용 해보신 적 있으세요?”

회귀 전에 사용해봤다.

마법사에게 꽤 편리한 기능이 많았 기에 자주 애용하기도 했었고. 그나 저나 오랜만에 다시 사용해보니 뭔 가 감회가 새롭네.

“아뇨. 그냥 멋대로 눌러 본……

그때 였다

“오. 대단하네요. 아직 출시도 안 한 신제품을 이렇게 처음부터 잘 다

루시다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스 직원은 놀란 얼굴로 내 뒤의 누군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최서윤 역시 뒤의 인물을 보더니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는 목소리였기에 뒤의 인물 이 누군지는 보지 않고도 유추할 수 있었다.

천천히 뒤를 돌았다.

내 예상대로 한성개발의 주인, 한 세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 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 얼굴을 바라보던 한세진의 얼굴에 당혹이 번졌다.

“……당신은?”

이내 한세진의 표정이 침착을 되찾 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다른 누군가 와 헷갈렸네요. 제가 아는 누군가와 똑 닮아서요. 하하.”

나와 김진우를 잠시 헷갈린 모양이 다.

김진우를 알던 상태에서 ‘김선우’ 를 처음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일지 도 모른다.

“아뇨.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한세진이 살짝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 보니 누군지 알 거 같네요. 김선우 학생 맞죠? 최근 성무제에서 우승한.”

“맞습니다.”

“역시. 설마 여기서 성무제의 두 주인공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아까 근처에서 이서준 학생을 봤거 든요. 또 개인적으로 팬이라 이야기 도 나눴고요.”

원작에서도 이루어졌던 이서준과 한세진의 첫 만남.

제대로 이루어졌구나.

“아, 이런.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아실지는 모르겠지만一’’

한세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한성개발의 한세진이라고 합니다.”

“김선우입니다.”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한세진과의 만남이 있고 난 뒤 시

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와 최서윤은 박람회 부스에서 다 양한 것들을 체험하며 시간을 보냈 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 제작사 부스에서 괴상한 안경을 쓴 채 영화를 관 람하는 이서준, 신영준을 마주쳤는 데 자연스레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홀러 저녁 7시.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다 보니 어 느새 오늘의 메인 이벤트, 한성 제 약의 프레젠테이션이 코앞까지 다가 왔다.

“그래서 오늘 재밌게 잘 놀았어?”

한성 제약의 발표회장으로 가는 길.

다시 합류하게 된 송승아가 최서윤 에게 말했다.

“뭐가?”

“아니, 이곳저곳 돌아다녔을 거 아 니야.”

“……그렇긴 한데. 아니, 그걸 왜 네가 궁금해하는데.”

“궁금할 수도 있지. 왜 이리 반웅 이 까칠해?”

그렇게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며 길 올 걷던 중.

주변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어? 한세연이다. 옆에 검귀도 있 는데?

—진짜? 어디?

—저기 왼쪽 통로에 사람 몰린 곳 에 있잖아. 와. 근데 실물 장난 아 니다.

한세연의 이름이 들리자 모두의 시 선이 마치 연예인을 찾듯 그곳을 향 했다.

신영준은 멀리서 이동하는 한세연

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작게 감탄했다.

“이야. 근데 한세연 진짜 대단하지 않냐? 우리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도 하고, 심지어 이번 계획도 거의 혼 자 준비했다며?”

그 말에 공감하듯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라면 떨려서 못 할 거 같은데.”

“……대단하긴 하지.”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긴 하다.

올해 한세연의 나이는 고작해야

22살.

아직 사회 경험이라고는 1, 2년밖 에 되지 않았는데, 사회인으로서 저 런 실행력과 리더쉽을 보인다는 건 이서준 못지않은 사기캐라는 거다.

아니, 어쩌면 더 대단한 걸지도 모 르고.

그때 주변에서 또 다른 목소리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근데 한세연 옆에 저 남자는 누 구지?

-PL 그룹 회장 아니야?

PL 그룹 회장이라고?

나는 서둘러 한세연이 있던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주변 말대로 한세연의 옆에 한 남성이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은 통로를 지 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갑자기? 아까 가자고 할 땐 안 간다더니.”

신영준이 말했다.

“갑자기 좀 급해져서.”

내 다급함을 느꼈는지 신영준의 표 정이 진지해졌다.

“……진짜 급한가 보네. 큰거냐? 빨리 다녀와. 발표회까지 얼마 안 남았어.”

“어. 먼저 들어가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뛰쳐나가다시피 이 동했다.

—어? 야! 김선우! 화장실 그 방향 아니야!

뒤에서 신영준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무시하고 앞으로 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작게 ‘김선우 진 짜 급했나 보다.’라는 목소리가 들 렸다.

그렇게 [은밀한 발걸음]을 사용한 뒤 한세연이 이동했던 장소에 도착 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걸려있었지만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긴 복도를 걷자 멀리 복도 끝에서 한세연과 대화를 나누는 한 남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꺾이는 복도 뒤에 숨어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이름 : □□

나이 ; 67

종족 : 마인 상태 : 편안 마력 등급 : S+ 관심도 : 0

이름이 보이지 않는 마력 등급 S+ 의 마인.

내가 예상한 사람이 맞았다.

세계 모든 마인의 주인이라 불리는 ‘마인의 왕’.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왕’에게 는 이름이 없다는 설정이 있어서이 다.

왕의 칭호를 얻기 전에는 다른 별 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중요한 빌런인 왕의 존재를 눈앞에서 확인하자 심 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동시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왕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원작에 따르면 왕은 이번 박람회에 참석하지 않는데?

아무리 사건이 앞당겨지고 있다고 해도 왕이 개입하는 건 너무 큰 변 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력으로 청각 을 강화해 한세연과 마인의 왕의 대 화를 엿들었다.

—한세진 부회장에게는 비밀이지만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본 부장님께서 보여주신 실행력은 저희 그룹 내부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거 든요.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죠.

왕은 PL그룹 회장 정태원의 가면 을 쓴 채 한세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 조금 의외였다.

마치 한세연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 고는 한세진으로부터 갈아타려는 둣 한 뉘앙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신다고 하 니 영광이네요.

한세연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보 이며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 무언가 ‘특별한 도움’이 필요 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 말을 듣고는 왕이 한세연에게 접근한 이유를 확신했다.

나의 개입으로 한층 더 실행력이

높아진 한세연에게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방금 왕이 말한 ‘특별한 도 움’은 아마 한세진과 같은 마인과의 협동을 말하는 거겠지.

다행히 왕이 직접 이 행사를 망치 려 한다거나 하려는 상황은 안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관중석 참석을 위해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에 있을 발표회 때 의 모습, 기대 하겠습니다.

—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왕은 근처의 문을 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이 마 지막에 말한 발표회 때의 모습을 기 대한다는 말이 앞으로 터질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지 기대 하겠다는 의 미로 들렸다.

검귀와 단둘이 남은 한세연은 바로 옆의 벤치에 앉아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표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도 부담을 느끼 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남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수기 아저씨, 저 잠깐만 혼자 있 고 싶은데 괜찮아요?

—안 됩니다.

—……5분만요.

—……알겠습니다.

장수기가 근처의 문 안으로 들어갔 다. 혼자 남은 한세연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 를 걸었다.

마인의 왕도 사라졌으니 스토커처

럼 엿듣는 것도 조금 그렇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럼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가 볼까.

그렇게 원래 장소로 돌아가려는 그 때.

부우웅.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외부 자의 혜택으로 발신인의 이름을 확 인했다.

[한세 연]

나는 힐끔 벤치에 앉아 전화를 거 는 한세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쥔 채 바닥을 내려보고 있었다.

누구한테 전화를 거는 건가 싶었는 데 나한테 거는 거였다.

혹시 몰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 게 말했다.

“……아 네, 세연 씨.”

—아, 여보세요? 진우 씨 지금 바 빠요?

한세연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뇨. 한가합니다.”

—그, 소식 들었죠?

“네, 오늘 발표하신다고…… 이제 곧 아닙니까?”

—네, 발표까지 지금 10분 정도 남 았어요. 갑자기 긴장돼서 용기가 필 요해서 전화했어요.

한세연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장 올 올려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이번 일 망치고 싶지 않 아요. 꼭 성공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자 깊은 갈등을 느꼈다.

잘 될 거라고. 잘할 거라고. 응원 의 말을 해주고 싶은데, 앞으로 일 어날 사건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세연 씨.”

대신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 는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다.

“만약. 아주 만약에. 세연 씨가 생각한 것처럼 잘 안될 수 있어요. 어

쩌면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고 요.”

내 말이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을 까. 한세연의 표정에 의문이 담겼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거나 자책 하지 마세요.”

—……네?

“기회가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에요. 편안하 게 해요. 한세연 씨, 능력 있으니까 꼭 오늘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아도 언젠간 사람들은 알아줄 거니까요.”

내 말에 한세연이 생각에 잠겼다.

왠지 스스로 낯간지러운 말이라고

느껴져서 한세연의 얼굴을 엿보기가 민망해졌다.

나는 벽 뒤로 다시 몸을 숨겨 벽 에 등을 기댔다.

—진우 씨, 좋은 말씀 고마워요. 덕분에 부담감이 확 줄었어요.

다행히 그녀에게 나쁘게만 들리지 는 않은 모양이다.

—아 참. 진우 씨, 저번에 선물 드 린다고 했잖아요? 다음 주말에 시간 어떠세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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