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0/535)

251 화

한성가의 부녀와 헤어진 뒤.

인도에서서 내 팔목올 확인했다.

내 팔목에는 아직 그 어떤 맹세도 걸려있지 않았다.

한대현의 앞에서 피의 맹세를 하겠 다고 했지만, 한대현이 아직 나를 완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나를 신뢰하기에는 아직 보여 준 모습이 없으니까. 신중해지는 것

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도 떡밥은 뿌려놨으니 그리 멀 지 않은 날에 나를 다시 찾지 않을 까 생각한다.

나는 인도를 쭉 걷다가 신철 공방 으로 이동했다.

신철 공방과 한성의료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30분이 채 되 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불 냄새와 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까운 곳에 온갖 안전 장비를 껴 입은 양태민의 모습이 보였다.

힘 있는 동작으로 모루 위의 금속

을 망치로 내려찍는데, 겉으로만 봤 을 땐 평범한 대장장이의 모습과 크 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양태민의 말에 의하면 ‘제 작’은 신비를 담는 일이기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심오한 세계가 있다 고 한다.

아마 저 행동 하나하나에 내가 모 르는 기술이 있는 거겠지.

그때 일을 마쳤는지 양태민이 장비 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 곤 나를 발견했다.

“어? 진우 님, 언제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말씀을 해주시지.”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 나저나 시간이 늦었는데도 밤 늦게 까지 일 하시네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어서요.”

양태민이 허허 기분 좋게 옷으며 벗어놓은 안전장치들올 정리했다.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회사 일로 할 얘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양태민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나는 주변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어떤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 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성그룹과 협업이 결정됐습니다. JWK는 한성그룹을, 그중에서도 한 성 제약을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그도 예상했던 내용일 테지만, 워 낙 대기업이다 보니 조금 놀란 모양 이다.

“협업으로 저희가 얻는 건 뭔가 요?”

“뭐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한성가가 소유한 생산용 신

비의 대여권입니다.”

생산용 신비.

‘요리 도구’, ‘채굴기’, ‘모루’, ‘플라 스크’ 등, 생산에 사용되는 신비의 도구를 말한다.

제품의 질과 생산 효율을 대폭 상 승시켜주기에 대기업이라면 하나씩 은 꼭 소유하고 있는 귀품이었다.

물론 이런 신비들은 한성가가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지만.

“……생산용 신비 대여권이요?”

그리고 공방 출신답게 양태민은 생 산용 신비 대여권의 가치를 알아본 모양이다.

“그거 한성그룹 1급 협력사 아니면 못 받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와…… 그걸 어떻게?”

양태민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무튼, 대여할 수 있는 신비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조사 해봤는데 15년 전에 행방불명 되었다고 알려진 [태양을 머금은 황 금 모루]도 있다고 하더군요.”

“자, 잠깐. 화, 황금 모루요?”

“네. 양 대표님이 아시는 그 황금 모루가 맞습니다.”

“와…… 그걸 한성가가 소유하고 있었구나..

양태민이 황당해하는 얼굴로 중얼 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표정에 작은 설렘이 담겼다.

공방의 제작사 사이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모루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하는 거겠지.

그 모습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럼 한성가 일은 전부 이야기했으 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나는 뒤를 돌아 책상 위에 놓여진 ‘작업 의뢰서’를 손에 쥐었다.

쭉쭉 서류를 넘기다가 원하는 이름 을 찾아냈다.

[이서준]

“그리고 저번에 이야기했던 이서준 학생의 의뢰 말입니다. 어떤 검을 제작할지 정했나요?”

“아뇨. 의뢰 금이 15억이라 살짝 애매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분명 큰돈이지만, 15억이라는 금액

은 검을 제작하기에 분명 애매한 액 수였다.

아이템은 주류인가 비주류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서준이 사용하는 ‘검’은 주류 중 에서도 주류.

B등급 검은 1~10억 사이에 거래 되고, A등급 검은 최소 30억 이상 에 거래가 된다.

B등급과 A등급 사이에 액수 차이 가 크다 보니 15억이라는 금액에 애매함을 느낀 걸 테지.

“성무제에 우승한 학생인데 선물로 A등급 검으로 하나 만들어주죠. 회

사 홍보용으로도 괜찮을 거 같고.”

“……선물로요? A등급이면 최소 30억짜리인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30억 쯤이야 아깝지 않지.

“부족한 금액은 제가 전부 부담하 겠습니다.”

한성의료원의 VIP 병동.

한대현은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김진우. 대체 뭐 하는 녀석일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녀석을 판단하 기가 어려워졌다.

갑자기 피의 맹세를 해서라도 딸을 지켜주겠다고 하지를 않나, 또 자식 간의 싸움을 말리기 위한 조언을 해 주질 않나.

한성그룹의 회장으로 살아오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이 렇게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상한 녀석.”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끼이익 병실의 문이 열렸다.

멍한 표정의 한세연이 터벅터벅 안 으로 들어왔다.

안 좋은 일이라도 겪었는지 아까와 달리 힘이 없어 보였다.

한대현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 다가 물었다.

“뭐 하다 왔느냐?”

“잠깐 앞에 공원 좀 돌고 왔어요. 잘 꾸며놨더라고요.”

“그러냐?”

그때 한세연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곱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를 발견했다.

“저 과일 바구니는 뭐에요?”

“그 녀석이 가져온 거다.”

“진우 씨요?”

“그래.”

한대현의 말에 한세연은 멍하니 과 일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주머니 속 김진우의 선물용 으로 챙겨놨던 월석 펜던트를 손으 로 어루만졌다.

“……선물도 가져왔구나.”

나도 그냥 뜸 들이지 말고 바로

줄걸.

그렇게 다시 후회와 미안한 감정에 사로 잡혀있던 그때.

“세연아.”

한대현의 부름에 한세연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평소답지 않은 다정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했다.

“꼭 한성가를 손에 넣고 싶으냐?”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하지만 한 세연은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다.

각오를 묻는 것이었다.

“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단호한 대답이 들려오자 한대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쯧. 누굴 닮아서 그렇게 욕심 이 많은 건지.”

한대현의 중얼거림에 한세연이 작 게 옷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3주 뒤에 한성 제약에서 행사 여는 거 아시죠?”

“알고 있다.”

H-A 박람회.

한성 제약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다

양한 기업들도 참여해 시민들에게 신기술과 제품들을 공개하는 행사였다.

“거기서 기조연설을 할 계획이에 요.”

“ 연설?”

“네. 한성 제약의 신약 공개와 앞 으로의 방향성. 그리고 제 포부에 대해 제대로 밝히려고요.”

한대현은 생각에 잠겼다.

기조연설에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 겠다는 것.

한세진을 향한 선전포고임과 동시 에 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활동을 시

작하겠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한대현은 자신이 개입하기 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진우가 했던 제안들이 그 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잘 해봐라.”

한세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 대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못마땅함 을 느끼면서 동시에 기특함을 느꼈 다.

그 어렸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성

장했구나.

“됐고,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 가거라.”

그 말에 한세연이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

내일 출근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많이 늦은 시간이기는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럼 아버지, 전 이만 가볼게요.”

“그래라.”

한세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꾸 벅 고개를 숙이고는 방 밖으로 나갔 다.

잠시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한대현은 멍하니 창밖의 야경을 바 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장수기.”

동시에 병실의 문이 열리며 검귀, 장수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회장님.”

“당분간 세연이를 따라다니면서 지 켜주게.”

이틀의 시간이 홀러, 중간시험까지 딱 3주 남은 수요일.

마법사관학교는 이른 아침부터 소 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야야. 어제 마인 습격 영상 을라 온 거 봤어?”

“어, 봤어. 그 나무 몬스터 말하는 거지?”

“응. 걔 싸우는 거 보니까 진짜 신 기하더라. 크기는 엄청 작은데 마법 능력이 와……

오늘 학생들의 대화 주제는 바로 그레텔이었다.

한세연을 노렸던 마인 습격 사건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그레 텔의 전투 모습이 담긴 CCTV와 블 랙박스 영상도 세상에 퍼졌기 때문 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레텔 같은 나무 소환수는 워낙 희귀하기에 마법사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 다.

저 소환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 까?

김진우는 어떤 방법으로 저런 깜찍 하면서도 무서운(?) 소환수를 얻은 것인가?

그런 의견이 오갔던 덕일까? 소소 하게 포인트를 획득하기도 했다.

“흐아암……

“선우야.”

그렇게 책상에 앉아 하품하며 따분 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윤하영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 왜?

“이번 조별 과제. 나랑 같은 조 하 자 했었잖아.”

“조별 과제?”

……아, 맞다. 그랬었지.

6명이 조를 짜서 자유 주제로 연

구를 하는 조별 과제 시험.

조에 학년당 2명을 넣을 수 있기 에 내가 윤하영에게 같이 하자고 제 안했다.

아무래도 이서준이나 유아라 같이 성적이 너무 높은 애들과 팀을 짜면 점수 페널티가 커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인의 활동이 많아진 지금 멸마의 힘 때문에라도 함께 있을 시 간을 늘리고 싶었고.

“어어, 그랬었지. 근데 왜?”

“다른 애들은 슬슬 조가 완성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소식이 없잖아. 뭔가 아는 게 없나 싶어서.”

“……그러게? 알아서 경쟁으로 이 긴 쪽이랑 하겠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네.”

그렇게 나와 조를 짜고 싶어서 의 욕 넘치던 놈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서로 죽여라.라고 했다고 설마 전 부 죽었을 리는 없고.

“지금이라도 직접 구하러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조 마감이 내일까 진데.”

윤하영이 걱정되는지 불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나도 진지 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드르륵 교실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모두의 이목이 그곳으로 쏠 렸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한 여학생.

최서윤이었다.

최서윤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아, 찾았다. 선배님!”

최서윤이 반갑게 다가왔다. 그러더 니 내 옆의 윤하영을 발견하고는 잠 시 멈칫하더니 예의 바르게 꾸벅 고 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웅. 안녕.”

인사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서 어색 한 기류가 느껴졌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유독 저 둘이 더 어색한 것 같다.

같은 얼음 속성을 다뤄서 그런 걸 까?

“여긴 웬일이야?”

내가 묻자 최서윤이 번뜩 정신을 차린 듯 내게 시선을 돌렸다.

“아, 다름 아니라 이번 중간시험 조별 과제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

어서요.”

“조별 과제?”

내 물음에 최서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선배님 저랑 같은 조가 됐거 든요. 사실 노린 건 아니었는데 승 아가 끼어들어서 어쩌다 보니 그렇 게 됐어요.”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설마 최서윤과 같은 조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어, 그래?”

“넵! 아 그리고 선배님, 연구 주제

를 정해야 하잖아요? 혹시 생각해두 신 주제가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아, 그럼 다른 조원들이랑 얘기를 나눠봤는데 3주 뒤에 열리는 H-A 박람회 조사 어때요?”

“……박람회?”

“네, 이게 무슨 행사냐면……

그렇게 최서윤이 설명을 시작하려 하자 그녀의 말을 잘랐다.

“대충은 알아.”

“어? 어떻게 알아요?”

“ 그야......

원작에서도 나름 중요하게 다뤄졌 었던 사건의 배경이니까.

H-A 박람회.

이서준이 2학기에 있을 ‘특무팀 호 위 임무 체험’으로 참가했던 배경이 었다.

그리고 이날, 원작에서는 마인의 습격이 일어나며 큰 소란이 일어나 게 된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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