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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화 (249/535)

250화

갑작스러운 한세연의 난입에 긴 정 적이 흘렀다.

한세연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내 앞 에 반쯤 누워있는 한대현에게 시선 을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차오 른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하지만 내 입으로는 차마 묻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만 달짝거린다.

“한세연 씨?”

내 부름에 한세연이 어깨를 움츠렸다. 단순히 이름 불린 사람의 반응 이 아니었다.

“아, 네? 어, 음. 오셨…… 네요? 어, 언제 오셨지……

한세연이 마치 고장 난 로봇 같은 말투로 중얼거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다.

어디부터 들은 걸까.

대화에 집중하느라, 또 병실 밖에 있는 검귀의 존재감에 가려져 한세 연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뭔가 오해할 만한 발언을 했던 거 같기도 한데.

나 이거 실수했나? 부담스럽게 느 끼면 어쩌지?

“한세연 씨? 혹시 대화 들으셨一.”

“아뇨!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한세연이 칼같이 말을 잘랐다.

딱 봐도 들었네.

이걸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나 고민

하는데 한세연이 말을 이었다.

“그,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세요! 할 이야기가 많으신 거 같은데 자리 비켜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한세연은 도망치듯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검을 끌어안은 채 흥미롭 게 지켜보던 장수기는 어이없다는 둣 피식 웃더니 한세연의 뒤를 따라 갔다.

그 둘이 사라지자 잠시 무거운 침 묵이 내려앉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한대현이 침묵

을 깨고는 말했다.

“어이가 없군. 저번에 만났을 때는 세연이와 아무 사이 아니라더니 결 국 교제하게 된 건가?”

“아닙니다.”

내 대답에 한대현이 눈을 찌푸렸다.

“그럼 세연이를 사모하는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자네와 세연이의 관계는 대 체 뭔가?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이 필요

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이 되는 관계라고 해두죠.”

한대현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작게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는 아까 했던 이야기나 이어서 계속하죠.”

한대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세연 씨는 유능하지만, 아직 사

회 경력이 적어 한세진 부회장과 다 르게 주변에 자신의 편이 없습니다. 회사를 이끌 리더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죠.”

한대현이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지금의 한세연 씨라면, 아마 회장 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순식간에 한 세진 부회장에게 모든 것을 땟길 겁 니다. 그 뒤에 한세연 씨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회장님도 잘 아시리 라 생각합니다.”

이건 어느 정도의 진실을 섞은 과 장이었다.

실제 한세연은 주변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세진에게 모든 걸 빼앗길 만큼 무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말이었 기에 한대현은 진지하게 내 말에 귀 를 기울였다.

“제가 한세연 씨의 사람이 되어드 리겠습니다. 그리고 한세연 씨가 가 진 것을 한세진 부회장에게 빼앗기 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아까 말씀드 렸듯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피의 맹 세도 해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무슨 수로 돕겠다는 거지? 그것도 피의 맹세를 하면서까지 말 이야.”

“아직 정식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저는 JWK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 습니다.”

무표정을 유지하던 한대현의 얼굴 에 변화가 생겼다.

투병 생활 이후 회사 일에 관여하 고 있지 않음에도 사회의 흐름은 꿰 차고 있는 모양이다.

“..…-JWK? 그게 자네 회사였나?”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 공급난인 마정석을 저희가 가장 많이 공급하 고 있죠. 최근에는 각종 사업을 확 장하며 회사의 발을 넓히고 있기도 하고요.”

“설마 JWK가 자네 회사였을 줄 은…… 역시 믿는 구석이 있던 건 가?”

여유를 보이기 위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미약하지만 저에게는 한세연 씨를 도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얻는 이익이 뭔가?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그런 조건을 낸 것일 텐데.”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지금부터 가 중요하다. 뻔뻔하게 잘해야 한다.

“한성가가 소유한 신비를 원합니다.”

“……신비를 원한다고?”

예상외의 답이었는지 한대현이 의 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했다.

“미안하지만 신비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물건. 한성가의 재산은 절대 남에게 넘길 수 없네.”

“달라는 게 아닙니다. 신비의 사용 권을 원합니다. 그러니까 대여를 원 한다는 거죠. 횟수는 총 10회. 1회 대여 기간은 하루로 하겠습니다.”

“……대여라.”

고민하던 한대현이 입을 열었다.

“좋지. 대신 앞으로 세연이에게 의 도적으로 피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 겠다고 피의 맹세를 하게.”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한세연에게 피해가 될 행동 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거기다 사실 이런 조건이 없더라도 한세연을 적극 도울 예정이기도 했고.

어차피 해야 할 일에 괜히 생색내 서 또 다른 이득을 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건 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세연 씨가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힘 있는 몇몇 계열사도 한세연 씨에게 넘겨주었으면 합니다.”

그러자 한대현이 고개를 저었다.

“세연이만 챙겨주면 세진이 녀석이 반발할 거다. 괜히 자극하면 상황만 심각해져. 내 성격을 똑 닮은 놈이 라 잘 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간단한 명분만 준다면 한세진 부 회장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겁니다. 예를 들면 계열사를 걸고 자식

들에게 내기를 건다거나 말이죠.”

한편, 한세연은 빠른 발걸음으로 한대현 회장이 입원한 병원에서 뛰 쳐나왔다.

거의 뛰어가듯 움직인 그녀는 어느 새 병원 앞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멍한 눈으로 공원을 둘러보다가 근 처 벤치에 앉았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방금 뭔가 이상한 대화를 들었던 것 같은 데.

그러다가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장수기가 칼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뒤에서 있던 것이다. 아마 호위를 위해 따라온 것이겠지.

“……수기 아저씨, 거기 서 있지 말고 옆에 앉으세요.”

한세연의 부름에 장수기는 피식 웃 더니 고개를 저었다.

“여기면 충분합니다. 아가씨. 그리 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시지 않 습니까?”

혼자만의 시간…….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는 잘 모르겠지만 장수기는 자신이 한 말은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었기 에 한세연은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 였다.

한세연은 고개를 돌려 정원의 풍경 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방금 자 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먼저 온 진우 씨는 웬일 인지 병실 안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서 엿듣게 되었다.

—저는 압니다. 회장님께서 세상을 뜨면 한세진 부회장이 한세연 씨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진우 씨는 자신과 오빠에 대해 아 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제였기에 조 금 놀랐었다.

—대대로 한성가의 사람들은 자신

의 앞길에 방해가 될 인물들을 가만 두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내용도 제법 심각했던 것 같다.

‘한성가 사람들은 방해가 될 인물 들을 가만두지 않았다.’라는 이야기 는 자신도 포함된 이야기였으니까.

진우 씨는 나도 그런 시선으로 바 라보고 있던 걸까?

그런 작은 불안감이 들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오가기도 했다.

세상은 영화와는 다르구나.

그럼 나에게 보였던 호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혼자 생각을 하다가, 더 이상 대화 를 엿듣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 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방문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제가 책임지고 한세연 씨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저를 못 믿겠다면 피 의 맹세도 해드리겠습니다.

방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김진우의 목소리.

아무리 이성 간의 연애 감정에 둔 한 한세연이라도 그 말의 의미를 모 를 수가 없었다.

……거기다 피의 맹세까지 언급하 는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 역시 알 수 있었고.

피의 맹세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힘은 마법에 문외한인 그녀도 잘 알 고 있었으니까.

“……하아.”

김진우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 에서 맴돌았다.

피의 맹세는 일반적인 약속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나를 지키겠 다는 특별한 각오였다.

지금까지 내게 보였던 호의를 생각 하면 확실히 심상치 않기는 했지 만…….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얼굴로 진우 씨를 봐야…….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나는 또 왜 이래?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 뒤

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기 아저씨, 저 괜찮아요. 잠깐 혼자 있게 놔두……

“세연 씨?”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세 연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뒤를 돌아보니 김진우가 서 있었다.

“……진우 씨? 아버지랑 대화 끝내 신 거예요?”

“네, 바로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찾으러 나왔습니다.”

한세연은 슬쩍 가방 속의 스마트 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2통.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아버지랑 무슨 대화 나누셨어 요?”

“그게……

김진우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더 니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한세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그 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근데 오늘 감사의 의미로 뭐 해준 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한세연은 주머니 속에 넣 어둔 유물, [월석 펜던트]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마인에게서 구해준 보 답으로 그녀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어서인지 지금 주기가 망설여졌다.

김진우가 싫어서가 아니라, 혹시 내가 실수하는 건 아닐까.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왔어요.”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실망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가요? 두고 오셨다니 어쩔 수 없네요. 천천히 주세요.”

“미안해요. 여기까지 찾아오게 해 놓고.”

“아닙니다. 저도 회장님이랑 대화 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대화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한세연 씨 도 회장님께 얼른 가보세요.”

“네, 그래야죠. 진우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김진우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발 걸음을 옮겼다.

한세연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 봤다.

그때 김진우가 발걸음을 멈추곤 뒤 를 돌았다.

“아, 그리고 한세연 씨.”

“네?”

김진우가 망설이듯 입을 다물다가 말했다.

“……그, 아까 병실에서 제가 회장 님께 했던 이야기 들으셨죠?”

“……예.”

김진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했던 말이 신경 쓰이셨 다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진우는 떠나갔 다.

한세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진우가 마지막에 했던 말의 의

미.

아마 자신의 당황한 반응을 눈치채 고 했던 말이겠지.

마음속으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내 태도에 상처를 입은 건 아 닐까.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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