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세연의 모습 에 조금 놀랐다.
……한세연이 왜 여기에 있는 거 지?
이곳은 JWK의 대표실.
편하게 앉아 서류를 확인하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JWK 사람의 모 습이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한세연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을 터.
그때 양태민이 눈을 껌뻑이며 나와 한세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응? 두 분 아는 사이신가요?”
양태민의 물음에 한세연이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양태민은 나와 한세연이 아는 사이 라는 것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두 분 스 캔들 같은 게 터졌던 거 같기도 하 고?”
“스캔들까지는 아니고……
절친한 사이다. 술친구다. 이 정도
의 기사가 올라온 적은 있었다.
자극적인 내용을 위해 나와 한세연 을 억지로 엮는 기사들도 몇 있기도 했었고.
덕분에 남성들의 분노를 사며 포인 트를 짭짤하게 벌었던 기억이 있다.
한세연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 는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양태민에게 시선을 돌린다.
“저, 양태민 대표님?”
“아, 네.”
“……근데 김진우 마법사님은 이곳 에 무슨 일로?”
한세연의 물음에 양태민이 내게 시 선을 돌렸다.
마치 ‘어떻게 대답할까요?’라고 묻 는 둣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한세연이 눈앞에 있는데 대 놓고 입을 맞출 수도 없는 노릇.
에휴.
어쩔 수 없나.
“양 대표님. 잠깐 자리 좀 비켜주 실 수 있을까요?”
“자리요? 아! 알겠습니다. 저는 빠 질 테니……아니, 이대로 퇴근할 테 니 두 분이서 편히 이야기 나누시
죠! 하하.”
뭔가를 오해한 양태민은 꾸벅 고개 를 숙이더니 도망치듯 사라졌다.
잠시 무거운 적막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분위기 전환 겸 나는 가볍게 웃으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네요. 이번 토요일에 만 나기로 했었는데 설마 이렇게 만나 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요. 저도 여기서 진우 씨를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 했는 데.”
“이쪽에 앉으세요.”
내 맞은편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 다.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맞 은편에 앉았다.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마실 거라도 내줘야 하나 고민하는 데 한세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JWK는 진우 씨 회사인가요?”
시원한 그녀의 성격답게 빙빙 돌리 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모 습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
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JWK의 주인이라는 걸 언젠가 밝힐 생각이었으니까.
회사가 점점 커지는 만큼 회사 주 인이 나라는 걸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 같고.
물론 그 시기가 예상보다 훨씬 앞 당겨졌지만 말이다.
“네, 맞습니다. 짜는 제 회사입 니다.”
한세연의 표정이 흔들렸다.
다리 위에 포개진 양 손가락을 꼼
지락 움직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JWK, 진우 씨 이름 이니셜이잖아 요. 근데 그게 진짜 진우 씨의 이름 일 줄은….…
한세연이 충격받았다는 둣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 한구석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먼저 말하려 했어요. 다만 아 직 준비가 안 돼서 말을 못 한 것 뿐이고요.”
그러자 한세연의 얼굴에 작은 우울 감이 내비쳤다.
속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나 에게 실망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는데 한세연이 말했다.
“..….JWK 가 한성마공학이 아닌 한성제약을 선택했던 건 저와의 개 인적인 정 때문이었나요?”
그 말을 듣자 그녀가 보였던 우울 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오빠, 한세진올 상대로 계 약을 따낸 것이 자신의 공이 아닌 단순한 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속으로 안심했다.
“양 대표님이 말씀드렸듯 JWK가
한성제약을 선택한 건 한성제약의 가능성을 봐서입니다. 저는 한성제 약이 한성마공학보다 더 잠재력 있 는 회사라고 생각하니까요.”
"무슨 근거로요?"
"한성제약 수장이 한세연 씨니까 요."
"풋."
농담하듯 한 진심이 담긴 말에 한 세연이 작게 웃었다. 아까의 우울한 얼굴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이 네요.”
한세연이 안심했다는 듯 의자에 등
을 기댔다.
“그나저나 진우 씨 대체 뭐예요? 회사는 언제 차린 거예요?”
“ 그건......
그때 한세연이 내 말을 잘랐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그건 토요일 술자리에서 이야기해 줘요. 오늘 봤다고 토요일 약속이 취소되 는 건 아닌 거 아시죠? 이건 비즈 니스, 토요일 만남은 친목.”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죠. 근데 이 시간에 여긴 무 슨 일로 오신 겁니까?”
“아! 마정석이랑 공방일 사업 관련 으로 급히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양 대표님께 연락드렸는 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직접 찾아왔 어요. 마침 이 부근을 지나가는 길 이기도 했고요.”
미팅 전에는 사전에 먼저 약속을 잡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기본을 잘 아는 한세연이 저 렇게 급히 찾아올 정도라니. 단순히 사업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는 생각 은 들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찾 아오게 만들었을까?
그런 의문을 눈치챘는지 한세연이 먼저 말했다.
“사실 제가 한성그룹 경영권을 노 리고 있다고 발표한 이후로 그룹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심상치 않다는 건?”
“아무래도 저와 오빠 사이에서 어 느 줄에 타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 때문이겠죠. ……그리고 아버지가 건강이 더 악화되셔서 조금이라도 제 능력을 더 보여드리고 싶고요.”
역시 한성가 때문이구나.
앞으로 한세연에게 일어날 일들이 대충 예상이 됐다.
본격적인 후계 싸움.
한성가 남매의 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치적이면서도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기에 이 ‘남매 의 난’은 자운과 마인까지 개입하여 큰 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네 요.”
내 말에 집중하듯 한세연이 내 눈 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JWK7} 도와줬으면 한다 는 거죠?”
저녁 10시.
정신적으로 피로했던 모든 일을 마
친 한세연은 집으로 돌아왔다.
겉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는 소파에
누웠다.
언제나 그렇듯 집 안의 고요함이 싫어서 TV 리모컨을 눌렀다.
삐 빅一
[대체 왜 그런 건데요?]
[……몰라서 물어?]
티비를 켜자 영화의 한 장면이 흘 러나오고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젊은 남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으 나 언성이 높아지는 걸 보면 감정싸 움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한세연 이라 금세 신경 끄고는 천장을 바라
보았다.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 일, 한성그룹의 일, 오빠와의 일, 아버지와의 일…….
“……김진우.”
그러나 오늘 있던 일 중 가장 그 녀의 머릿속에 남았던 일은 역시 김 진우와 있었던 일이었다.
‘대체 뭐지?’
마정석 공급 계약으로 한성제약에 큰 힘을 주었던 JWK의 숨겨진 주 인이 다름 아닌 김진우였다.
김진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 의 야망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위로 가 되어주던 사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마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일이다.
JWK가 한성제약에 보였던 호의와 이니셜을 보고 김진우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내심 생각해보기는 했는 데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근데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친하다 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큰돈이 오가
는 계약에 그럴 수 있다고?
김진우는 정 때문이 아니라 한성제 약에서 가능성을 봤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이 100% 진심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나한테……
그때 였다.
[왜 그랬냐고? 정말로 몰라서 하는 말이야?!]
TV 속의 젊은 남성이 마치 자신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쳤다.
한세연은 화들짝 놀라며 TV 화면 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 남성은 격한 감정이 되어 계속해서 소리쳤다.
[너 참 모르는구나? 정말로 단순한 호의로 그런 일을 베풀었다고 생각 해? 당연히 널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한세연은 TV 화면을 보며 눈을 깜 빡였다.
그와 동시에 온갖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 대사에서 말하는 ‘좋아한다.’가 단순히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이성 간에 생기는 연애 감정 을 말하는 거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성가의 주인 이 되겠다는 비틀린 욕심으로 평생 을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낯선 세계의 이야기였다.
한세연은 지난 1년간 김진우와 있 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호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진우가 자신에게 보였던 호의에 도 혹시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던 건 아닐까?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한세연은 그대로 소파에 얼굴을 파 묻었다.
[등장인물 ‘한세연’에게 당신에 관 한 관심도가 상승합니다.]
[등장인물 ‘한세연’의 당신에 대한
관심도 Lv : 3]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야?”
기숙사로 돌아와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그레텔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세연의 관심도 레벨이 상승했다.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떠오른 메시 지였기에 살짝 당황했다.
“..…-JWK 때문에 그런가?”
아무래도 그 이유가 맞는 거 같다.
그런데 만약 그 이유로 관심도가
상승한 것이라면 아까 회사에서 함 께 있을 때 상승하는 게 맞지 않았 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 흐음......
뭐,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가야지.
시스템의 관심을 끄고는 다시 그레 텔을 바라보았다.
“……웅애.”
그레텔은 천사 같은 얼굴로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숨 쉬는 걸 보면 죽은 건 아닌데 마치 죽은 것처럼 도통 깨어나지 않
는다.
“……괜찮은 거 맞나?”
걱정되는 마음에 그레텔의 둥을 천 천히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그레텔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떠오르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멸의 지옥 마계수 그레텔’。] 잠 재되어 있던 힘을 각성했습니다!]
[고유 특성, ‘급속 성장(S)’을 획득 합니다!]
“어? 뭐야?”
급속 성장?
뭔가 싶어서 곧바로 효과를 확인했다.
[급속 성장(S)]
설명 : 마계수가 자신의 마력을 한 계까지 사용해 짧은 시간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자라나는 힘
10분간 마계수의 몸이 성장합니다. 성장을 마치면 모든 능력치가 2배 상승하고 특성이 강화됩니다. 10분 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3일간 새싹 상태가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0일
“와. 대박.”
급속 성장.
10분간 강해지는 일종의 ‘버프기’ 같은 스킬이었다.
30일이라는 재사용 대기시간을 보 면 버프기보다는 ‘필살기’ 느낌이 강하긴 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 된 모습은 아 마 천년삼을 섭취했을 때 보였던 어 린이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기는 한 데, 능력 사용 시 3일간 새싹 상태 가 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 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아기의 모습 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같기는 한데.
“……흐음.”
뭔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모 습이려나.
설마 지금보다 더 귀여워지나?
“웅애.”
그때 그레텔이 몸을 뒤척이더니 눈 을 떴다.
“그레텔, 괜찮아?”
그레텔은 비몽사몽 한 눈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
다행히 건강해 보인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마력을 보면 전보다 더 강 해진 느낌도 들고.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그레텔의
머리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황금빛 열매 가 머리에 맺혀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