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1/535)

242화

해가 저물고 주변은 어느새 깜깜해 졌다.

시간을 확인하니 밤 9시.

베르트와의 은밀한 거래를 끝내고 나는 강화도의 인적 없는 뒷산에 올 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마나 의 핵을 사용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 문이다.

아무래도 마나의 핵을 사용할 때 퍼지는 강력한 마나의 파장이 불편 한 상황을 만들 것 같아서.

—크르르르……

“……여기도 의외로 몬스터가 많 네.”

야밤의 산이라 그런지 몬스터의 울 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혹시 모를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 나는 경계심을 유지한 채 앞으로 걸 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산의 정상에 올랐다.

“후! 공기 좋네.”

정상 위에서 내려본 전경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주변에 민간 지역도 없어 야경이라 할만한 것도 없었다.

심심한 풍경이지만 몰래 무언가를 저지르기(?) 딱 좋은 장소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품 안에서 [마나의 핵]을 꺼냈다.

은은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투명한 빛의 구슬.

솔직히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마나를 주입해 발동시키면 되 려나?

“해볼까.”

나는 마나의 핵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마나의 핵이 살짝 떨리 더니 강력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 했다.

“오……

주입하던 마나를 풀어냈다.

작동을 위해 다른 무언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사용법도 대충 확인했으니 바로 차

원 관측을 사용해볼까.

나는 눈을 감고는 ‘권능’을 발동했다.

권능의 사용법은 저절로 내 몸에 익혀지기에 지체되는 것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인과율 10을 소모합니다.]

[권능, ‘차원 관측’을 사용합니다.]

우우웅!

권능을 사용하자 새로운 에너지가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몸 안의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이전에 차원 관측을 발동했을 때 겪었던 감각과 같았다.

“큭!”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

동시에 현기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 었다.

전에 권능을 사용했을 때 얼마 지 나지 않아 모든 마나를 소모하며 권 능이 취소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원 관측에 필요한 마나를 공급해 줄 마나의 핵이 있으니까.

나는 마나의 핵에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우웅!

손에 쥐어진 마나의 핵이 크게 떨 렸다.

그리고 자아라도 있는 것처럼 내 몸에 마나가 모두 사라지자 마나의 핵에서 마나가 홀러나왔다.

우우우웅!

동시에 이어지는 원형 모양의 마나 의 파동.

[‘차원 관측’에 필요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으윽!”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기운이 내 주변에 크게 감돌았다.

마나도 신비도 아닌 살면서 느껴보 지 못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넓게 퍼지더니.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나를 집어삼 켰다.

정신올 차려보니 공간이 바뀌어 있었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검은 공간.

하지만 벽에는 푸른 빛의 술식으로 가득했다.

아니, 벽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술 식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도 했으니까.

“근데 여기가 어디지?”

[‘세계의 기록소’에 입장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세계의 기록소?”

처음듣는 낯선 이름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원작에서조차 전혀 언급되지 않은 장소였다.

기록소라는 이름을 들어보면 차원 관측과 관련된 장소인 거 같기는 한

데.

그나저나 3만 포인트라.

새로운 공간에 입장한 것만으로 3 만 포인트를 준다고?

“흐음.”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3만 포인 트를 공짜로 획득했다는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벽 같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술식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술식에 담긴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 왔다.

“뭐야 이게……

술식에 적힌 내용은 일종의 거대한 역사책이었다.

세계의 기록.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기록만 적힌 게 아니라 미래의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여기 적힌 미래가 현재 의 전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그러니까, 여기 적힌 내용은 이전 생의 단편적인 기록이 적혀 있었다.

19살의 이서준이 성무제에 단독으 로 우승한 것.

22살의 이서준이 S등급에 오른 것.

그것 외에도 다른 인물들의 내용도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혹시 진천우나 김창현 같은 인물들 의 기록은 없을까 찾아보았는데 워 낙 자료가 방대하다 보니 그것도 쉽 지 않았다.

애초에 기록의 내용도 그렇게 자세 하지도 않았고.

그래도 끝까지 찾아보자는 생각으 로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여러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서준이 죽은 시점의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 다.

또 이상한 점은 그 뒤의 기록은 하나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못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내가 읽을 수 없게 술식이 거부하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내가 겪지 않은 시간대라 그런가 보네.”

아쉬운 마음이 일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지만, ‘차원 관측’은 내가 경험한 시간대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접었다.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도 방대한 술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대충 둘러보는데 여기에 적힌 기록 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 ‘현재’의 기 록인듯했다.

당장 눈앞에 ‘김선우와 이서준의 성무제 공동 우승’이 적혀 있었으니 까.

“근데 위에 덧쓴 건 뭐지?”

이전 생의 기록에서는 술식이 깔끔 하게 나열되어 있었는데 이번 생의 기록에서는 마치 술식을 위에 새로 운 술식을 덧쓴 흔적이 남아 있었

덧씌운 부분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 부 내가 개입한 시점이라는 점.

어떤 이유로 덧씌우게 됐는지 어렴 풋이 알 것 같았다.

나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어서 그 런 걸 거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다른 내용도 확인했다.

그곳에도 방대한 술식이 길게 나열 되어 있었다.

저건 어느 시점의 술식일까?

이번 생? 이전 생?

궁금증에 다가가 술식의 내용을 살 폈다.

“……안 보이네.”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경험 하지 않은 시간대라는 의미다.

술식이 방대한 걸 보면 이전 생의 기록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도 확실 하지 않다.

……설마 다음 회차는 아니겠지?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렇게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관측 가능한 차원은 총 ‘두 개’입니다.]

[원하는 시점의 술식에 손을 대면 자세한 관측을 할 수 있습니다.]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역시 이래야지.”

혹시 이게 차원 관측의 끝이 아닐 까 걱정했다.

겨우 이런 정보를 얻자고 인과율을 모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관측 가능한 차원이 두

개라는 건 원래 살던 현실은 관측이 불가능한 모양이다.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인과율을 더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추억 감상을 위해 인 과율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서준이 죽 은 시점을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망 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으윽.”

눈을 질끈 감게 했던 강한 빛이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둘 러보았다.

낯익은 공간이었다.

넓은 거실, TV, 소파, 식탁, 조명.

'뉴스입니다. 세계 마법사 협회에서 167회차 승급 마법사 명단을 발 표했습니다. S등급 심사에 오른 마법사는 총 3명입니다. 한국에서는 최서윤 마법사가 S등급 심사에 올랐 습니다.」

귀에서 TV 뉴스 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나는 멍하니 뉴스를 바라보았다.

화면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의 여인 이 눈에 들어왔다.

……24살의 최서윤.

오늘 아침에 본 앳된 얼굴의 최서 윤과는 다르게 약간의 성숙미가 느 껴진다.

[2039년에 도착했습니다.]

2039년 4월 봄.

나는 그날로 돌아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그 당시에 내가 살던 아파트였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과거의 나였다.

……아니, 과거의 나가 아니라 미 래의 나인가.

미래의 나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 하네.

그냥 이전 생의 나라고 하자.

어찌 됐든 이전 생의 나는 따분해 하는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어 떤 심정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괜히 쓴웃음이 나왔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 끼는 거겠지.

그나저나 내가 가까이 다가왔음에 도 미동도 없는 걸 보아하니 내가 보이진 않는 모양이다. 만지려고 해 도 그대로 통과할 뿐이고.

말 그대로 ‘관측’이다.

이전 삶의 나를 마주하자 뭔가 이 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서글퍼진다고 해야 하나?

과거의 나는 항상 혼자였다.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혹시 모 를 사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 정하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나만 조용히 있으면, 세계는 분명 행복한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믿음 이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서준은 죽었고 모든 게 리셋되었다.

“……쯧.”

괜한 감상이다.

후회해봤자 늦었고 지금부터 잘하 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저 때처럼 외롭지는 않다.

스토리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 작하면서 많은 인연을 쌓았기 때문 이다.

동시에 내 한 번의 실수로 이 모 든 것을 잃게 될까 봐 가끔 두렵기 도 하지만…….

그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잘 해야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엔딩을 보고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기회가 생 긴다고 했을 때.

이곳에서 이뤄낸 모든 것을 포기하 고 편히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다.

나는 ‘외부자’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서 생각을

비워 냈다.

그건 더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집 밖으로 나와 이서준의 죽 음이 일어나는 서울의 도심으로 이 동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와는 그렇게 거리 가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하네.”

무슨 추억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며 추억을 느낀다니 뭔가 아이러니함이 느껴진 다.

6년 사이에서울도 참 많이 바뀌 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당장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스 마트 폰만 봐도 그 세월의 차이가 실감 난다.

특히 전광판 중간중간 보이는 익숙 한 얼굴들이 보일 때 특히 그렇다.

유아라, 윤하영, 신영준, 이현주..

2039년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스

타 마법사들.

“근데 지금이 몇 시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중간의 거대한 시계를 발견했다.

[3시 20분]

“얼마 안 남았네.”

내 기억에 의하면 3시 30분쯤에 악룡 크루아스가 도심 한복판에 모 습을 드러낼 것이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이서준은 뒤늦게 출동할 예정이니 이서준을 보는 건 아마 시간은 더 걸릴 거 같고.

“흐음. 여기서 또 할 게 없나.”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라 크게 당황 했다.

“……김창현?”

익숙한 얼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창현이 었다.

워낙 수상한 점이 많았던 녀석이라 혹시 이서준의 죽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설마 정말로 이곳에서 마주칠 줄이 야.

김창현은 낯빛이 어두운 얼굴로 벽 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이를 질끈 물더니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아파 보인다.

그때 였다.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웬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마법 테러나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 는 경보였다.

[재앙급 마수의 마나가 감지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서둘러 지하 벙 커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재앙급 마수의 마나가 감지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서둘러 지하 벙 커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도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도망쳐——

“꺄아악——

시민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 시에 마련된 지하 벙커로 뛰어들었다.

모두가 급하게 움직이는 상황에도 김창현은 여전히 괴로운 얼굴로 그 자리에서 있었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는 뭘까.

혼자 의문을 느끼다가 ‘억지력’에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김창현은 원래 이 장소 에 있어야 하면 안 되는 인물이라던 가.

그때 였다.

멀리서 강력한 마나가 느껴지기 시 작했다.

소름이 돋았다.

감지하는 것만으로 공포심이 들게

만드는 불길한 마나였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의 거대한 용 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악룡, 크루아스.

같은 재앙급 마수였지만, ‘질병의 마수’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압 도적인 힘이었다.

“쳇!”

김창현은 악룡을 노려보더니 그대 로 뒤로 도망쳤다.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김창현

을 따라 이동했다.

아직 이서준이 둥장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악룡과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김창현은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까와의 괴로운 얼굴은 많이 지워 져 있었다.

김창현은 바닥에 쪼그려 앉더니 손 으로 이마를 감쌌다.

“진짜 황당해서 어이가 없네. 얘가 진짜 끝까지……

김창현이 분노한 얼굴로 중얼거렸

다. 내 기억 속에서 김창현이 감정 을 드러낸 적이 없어 조금은 생소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토해내던 김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생은 망했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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