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마력의 파 동.
나는 마력의 파동에 휩쓸리며 괴로 워하는 와중에 주먹을 꽉 쥐고 정신 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눈앞에는 원작과 술식으로 본 미래와는 또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진천우가 성공했다.
혼란스러운 말이었다.
자운이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의문을 느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건 아마 내가 개입해서 생겨난 변화…….
그런데 이걸 예상하는 게 가능하다 고?
무엇보다 진천우가 ‘돌아왔다’와 ‘성공했다’의 차이를 이해하기가 힘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진천우가 돌아왔 다’라는 의미가 성공올 뜻한 줄 알
고 있었으니까.
그때 나타샤가 베르트에게 물었다.
“베르트,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야?”
베르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입가 에는 희미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나타샤는 그런 베르트의 모습을 보 며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분께서 성공하셨어. 설마 그게 가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모두 잘 들어. 지금부터 우리가 세웠던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베르트의 말에 자운의 일행 모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실이 담긴 그분의 네 번째 일지를 찾는 거야.”
베르트를 중심으로 퍼지던 마력의 파동은 점차 강해졌다.
내 옆의 이서준은 다리아를 따라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나 역시 슬슬 정신을 유지하기 벅
찼다.
계속되는 체내 마력의 떨림에 온몸 구석구석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으니 까.
그렇게 고통 속에 괴로워하던 때. 베르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기에 나는 가 만히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마력의 파동 속에서 정신을 유지 하고 있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구 나.”
내 앞으로 다가온 베르트가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그 후 품 안에서 작은 종이 하나 를 꺼냈다.
“이건 내 연락처야. 피의 맹세의 두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이 필 요하면 여기로 연락해.”
베르트는 종이를 내 옷 주머니 안 에 넣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조만간 다시 만 나자고.”
베르트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더니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갔 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의문만 남긴 채 자운이 떠나갔다.
가상세계에서 스스로 나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관측의 악마를 베 르너가 장악하고 있기에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위젠 내부에서는 협회 소속 마법사와 위젠의 보안 마법사들이 베르너와 자운 일행을 추적하고 있 겠지.
나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하늘 올 바라보고 있었다.
성무제의 결승점.
‘내면의 안식처’가 붕괴되고 있었다.
가상세계가 실시간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한 기 분이 들었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오 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길고 길었던 성무제가 드디어 끝이 났다.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모르던 세계의 비밀도 알게 되었고, 또 예상하지 못한 전개의 변화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사건이 나를 기다 리고 있을까…….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기다가 외부 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일방적 거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세계의 커다란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승합니다.]
[인과율이 에이 되었습니다.]
[권능이 하나 해금됩니다.]
인과율이 드디어 20을 넘어섰다. 새로운 권능을 얻은 것은 덤. 이번에는 과연 어떤 권능을 획득했
을까.
[권능]
가능성 조작[인과율 2이
—일시적으로 어떤 사건의 확률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 조작?”
이름만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권능이다.
사건의 확률을 조작한다니.
누군가와 전투를 벌일 때 승리 확 률 같은 것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 미인 걸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차원 관측과 같이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말 그대로 ‘권능’이 라 할 만한 능력이었다.
……20의 인과율을 소모하는 만큼 이 능력을 사용할 날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으윽……
그때 이서준이 정신을 차린 둣 몸 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부여잡았다.
“ 괜찮냐?”
내 물음에 이서준이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괴로운 얼굴로 눈 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운은‘?”
“사라졌어.”
“……그래? 여긴 아직 가상세계 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세계인데 현실로 돌아가는 중.”
내 대답에 이서준이 주변을 둘러보 았다. 붕괴되어가는 세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의 양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몸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 는 마력을 느낀 걸 거다.
[마나의 핵]에서 뿜어진 마력의 파 동이, 이서준의 심장 속에 잠재되어 있던 대량의 마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을 테니까.
조언해주지 않더라도 이서준 스스 로 자신의 몸 안에서 휘몰아치는 마 나의 사용법과 제어법을 익혀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몇 단계는 더 성 장하겠지.
그때 였다.
우우웅!
뒤의 공간이 열리며 새로운 누군가 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선배님!”
최서윤이었다. 그 뒤에는 릴리 로 즈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 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얘네가 왜 같이 이곳에 온
거지?
저 둘의 접점은 원작에서도 없었는 데.
“시험이 끝났는데도 현실로 귀환하 지를 않아서 계속 시험을 치르다 여 기까지 왔어요.”
마치 내 속마음을 읽은 둣 최서윤 이 웃으며 말했다.
“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선배님 우승 축……
최서윤이 말을 멈추었다.
창백한 안색의 이서준과 기절한다
리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여기 무슨 일 있었어?”
“어, 자운의 습격이 있었거든.”
내 대답에 릴리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최서윤 표정 역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자, 자운? 설마 그 테러리스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로 돌아가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가상세계의 붕괴가 끝나자 우리는 현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현실의 풍경.
‘관측의 악마’의 시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빛을 뿜어대던 거대한 구체 에서는 그 어떤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세계의 법칙]에 의해 완전히 수명 이 다했다는 증거겠지.
그것을 보자 여러 생각이 스쳐 갔 지만 이내 떨쳐 내었다.
어찌 됐든 성무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자운의 등장으로 난리 난 협회와 위젠은 우승자를 위한 성대한 축하 식을 열 생각도 없이 자운을 쫓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응애!”
기숙사 문을 열자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텔!”
반가운 마음에 그레텔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레텔의 까칠까칠한 등을 어루만 지자 마음의 평온이 느껴진다.
“잘 지냈어?”
“응애.”
그레텔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레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나 없는 일주일 사이 방을 어지럽히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의 외로 방은 깔끔했다.
아니, 바닥이 번들번들 한 것이 내 가 나가기 전보다 더 깔끔한 거 같 기도 하고?
“그레텔, 혹시 네가 청소한 거야?”
그레텔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 깊은 곳에 감동의 물결이 차오른다.
“우와. 그레텔 이제는 청소도 스스 로 할 수 있는 거야?”
“응애!”
“아이고. 우리 웅애 기특하다.”
그레텔의 지능이 날이 갈수록 상승 한다.
말로만 아기처럼 응애 거릴 뿐이 지, 하는 행동을 보면 진작 철들었다.
음식도 양보할 줄 알지. 이제는 혼 자 청소까지 하네.
어쩜 이렇게 기특한 짓만 골라서 할까?
이 정도면 마계수가 아니라 집 요 정이라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싶 다.
“잘했어. 그레텔 우리 이따 맛있는 거 먹을까?”
“응애.”
그레텔이 웃으며 좋다는 반응을 보 였다.
“그래, 잠깐 혼자 놀고 있어.”
그레텔의 등을 다시 한번 쓸어주고 는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감촉에 눈을 감고 몸을 맡 기다가 TV를 켰다.
「뉴스 속보입니다. 성무제가 종료 되었지만, 위젠의 상황은 여전히 심 각하기만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TV에서는 성무제
관련 뉴스가 홀러나오고 있었다.
주로 다뤄지는 내용은 자운의 가상 세계 침투와 위젠 소속 연구원, ‘베 르너’에 관한 내용.
r……협회는 추적에 나섰습니다. 현재 협회에서는 자운이 ‘미래 관 측’을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성무제의 우승 축하 일정 은 뒤로 미루어졌다는 이야기가 흘 러나왔다.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특별
히 놀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뉴스에 관심을 끄고는 소파에 누웠다.
“흐음…… 그나저나 결국 쓰질 못 했네.”
[보유 포인트 : 142,000]
성무제의 우승과 함께 여러 명성 포인트를 얻어내며 보유 포인트가 14만을 넘어섰다.
웬만한 S둥급 특성 하나를 구매할 수 있는 숫자다.
원래라면 성무제 시험 도중에 사용 하려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포 인트 사용 없이 사건이 잘 해결되었다.
“……이렇게 된 거 포인트를 더 모 아볼까.”
슬슬 S등급이 아닌 SS등급의 특성 을 노려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나는 포인트 상점에 입장했다.
그렇게 쭉 둘러보다가 예전부터 미 리 눈도장을 찍어 놓았던 특성을 확 인했다.
[달의 가호 (SS)]
분류 : 특성
설명 : 달을 수호하는 요괴의 피
[지속 효과]
►달의 포옹
보름달이 뜬 날, 달빛을 받으면 모 든 능력치가 5배 상승합니다.
가격 : 400,000
말이 필요할까.
설명은 단순하지만 어마무시한 특 성이다.
모든 능력치의 5배 상승.
지금보다 5배 아니, 활용도를 생각 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나도 예측할 수 없다.
물론 보름달이 뜬 날에만 특성이 발동된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다.
보름달이 뜨는 주기는 약 한 달.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면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내가 이 특성을 눈독 들 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A와 S등급 특성으로 인한 애매한 성장보다는 한 달에 한 번이지만 확 실하고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 관측의 악마는 미래의 사 건들이 앞으로 당겨질 것이라 경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나와 다른 인물들의 성장 수준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
건들이 꽤 많다.
이 특성을 이용한다면, 위험 요소 들을 미리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 상대가 ‘자운’이라고 해도.
무엇보다 이서준을 죽였던 재앙급 마수, 악룡 ‘크루아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이나, 성장으 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꼼수를 적극 활용해야 작은 답이라도 보일 것이다.
“흐으음……
그래도 여전히 고민된다.
“……40만 포인트.”
비싸다.
40만이면 S등급 특성을 4개나 구 매할 수 있는 포인트다.
물론 모으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이게 가성비적으로 뛰어난가? 그걸 생각하면 의문이 든다.
“……좀 더 고민해볼까.”
그래,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그렇게 포인트 상점을 꺼놓자, 스 마트 학생 수첩에서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나는 멍하니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았다.
[사진]
[동생은 무사히 돌아왔어. 고마워 네 덕이야.]
다리아였다.
성무제에서 내내 보였던 어두운 얼 굴과 달리 밝게 웃는 얼굴로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방금 찍은 사진
인 모양이다.
자운이 오늘 내로 동생을 돌려보내 준다더니 제대로 약속을 지켰다.
도망치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피 의 맹세가 무섭긴 한 모양이지.
[잘됐네. 또 이런 일 생기지 않게 조심 하고.]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웅. 그래야지. 사례도 할 겸 조만
간 동생 데리고 한국 찾아갈게. 다 시 한번 말하는데 진짜 고마워.]
[그래. 알았어.]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는 다른 메시 지를 확인했다.
일주일 사이 엄청나게 많은 메시지 가 쌓였다.
유아연부터 시작해서 윤하영, 최일 현…….
스마트 폰에는 JWK 회사 일과 관 련하여 양태민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할 일이 많네.”
생각해보니 베르트한테 받은 쪽지 도 있는데.
옷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긴 숫자. 추적이 안 되는 특수 통 신 마도구의 번호일 것이다.
에휴.
한숨이 나왔다.
성무제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아 직 나에게는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아 있다.
그렇게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한 이 름이 눈에 띄었다.
[한세 연]
그녀에게도 꽤 많은 메시지가 쌓였다.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미리 했는데도 무료함에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못 본 지 꽤 됐 네.”
워낙 서로 바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가끔 지칠 때마다 함께 술을 마시 며 서로를 위로하곤 했는데.
나는 가볍게 웃고는 한성 그룹 관 련 기사를 확인했다.
「한대현 회장, 건강 악화에도 수 상 행보.」
이제 미뤄왔던 한대현 회장 관련 사건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