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화 (235/535)

236화

“조건이라고?”

내 말에 이서준의 얼굴에 의아해하 는 표정을 지었다.

“조건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 리야?”

“말 그대로 1둥 양보해줄 테니까 부탁하나만 들어달라는 거지.”

“무슨 부탁인데?”

이서준이 궁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이번 시험에서 내 페이스에 맞춰주면 돼.”

이번 성무제에서의 내 목표는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이서준을 우승시켜 ‘영 응의 가호’를 얻게 하는 것.

두 번째는 자운이 ‘내면의 자아’를 성공적으로 얻어내는 것.

세 번째는 다리아가 생존하는 것.

원작의 흐름과 같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서준에게 성장이라는 결과 를 남긴다.

특히 두 번째 같은 경우는 자운이

‘내면의 자아’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마력이 퍼지게 되는데 그것 이 이서준에게 커다란 성장을 안겨 주게 되기에 꼭 필요하다.

세 번째는…… 나의 개인적인 욕 심.

변화하는 미래에서 대웅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됐든 이 모든 것을 성공하게 된다면 이서준의 성장과 다리아의 생존과 신뢰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 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이서준 과 미리 합을 맞출 필요가 있고.

하지만 이서준은 내 대답에 많은 의문이 남은 둣 다시 물었다.

“너한테 맞춰야 하는 이유가 뭔데? 제대로 설명해봐.”

“나는 이 시험에서 누군가를 돕고 있어.”

예상외의 대답이었는지 이서준의 표정이 잠시 변했다.

“……누구를 돕고 있다고? 그게 누 군데?”

“다리아 타란.”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다리아? 걔를 네가 왜 도와?”

지금부터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어설픈 거짓말은 이서준과의 신뢰 가 깨질 수 있으니 사실대로 말해야 겠지.

그렇게 나는 다리아의 이야기를 시 작했다.

물론 진실만을 말하기에는 수상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일부 내 용은 각색해서 말했다.

다리아가 동생을 납치한 자운에게 통화로 협박당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목소리가 작년 용병 수 업 때 마주쳤던 베르트의 목소리와

같았다는 이야기.

그 후 다리아와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소환석과 관련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이야기까지.

“……그게 사실이야?”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서준의 얼굴 은 충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부 사실이야.”

“……이런 쓰레기들!”

이서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자운이 저지른 비열한 행동에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의로운 이서준에게는 도저히 용

납할 수 없는 상황일 테지.

내가 생각했던 이서준다운 반웅이 라 괜히 안심되었다.

“그래서 도와줄 생각은 있어?”

“당연히 도와줘야지. 사람의 생명 이 걸린 일이잖아.”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계획을 설명할게.”

성무제 마지막 시험이 시작된 지

9시간.

“하아아앗—!”

릴리 로즈는 눈앞의 ‘악몽’을 쓰러 트렸다.

악몽의 몸은 분해되더니 작은 구슬 하나를 남겼다. 릴리는 깔끔한 승리 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구슬을 집 었다.

철컥!

벽에 있는 작은 홈에 구슬을 넣자 다음 스테이지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쉽다 쉬워〜”

릴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넓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신기함을 느끼 다가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스르룽-

릴리는 검을 쥐고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수 있게 몸을 긴장시켰다.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다른 학 생과 마주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 이다.

릴리는 지금까지 스테이지에서 만

나온 모든 학생과 겨루어 승리했다.

팀을 꾸려 함께 시험을 진행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했지만, 릴리는 팀플레이보다는 혼자 활동하는 게 더 편했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주변의 벽을 둘러보다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자 세를 풀었다.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마주치 지 않나 보네.”

잘됐다. 같은 학생끼리 싸우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니까.

그때 였다.

우우웅!

기계 엔진음이 귓가에 크게 울리더 니 빈 공간이 열렸다.

이내 그 안에서 누군가가 스테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은?”

누군가가 릴리를 바라보며 놀란 표 정을 지었다.

릴리는 눈앞의 상대를 보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야 ‘김선우’를 뒷조사하면서 수 도 없이 보게 된 얼굴이었으니까.

“……최서윤.”

릴리의 부름에 최서윤의 눈빛이 가 늘어졌다.

최서윤 역시 그녀와의 만남이 탐탁 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릴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의 조사에 의하면 최서윤은 사 교성이 좋은 성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향하는 저 눈 빛에는 짙은 경계로 가득 차 있었

다. 아니, 경계가 아니라 중오나 짜 중 같은 감정에 가깝다고 해야 하 나?

하지만 얘란 나는 오늘 처음 대화 를 나눠보는 사이인데 왜 나한테 그 런 감정을 느끼지?

그러다 금세 의심을 떨쳤다.

시험 중이니까 저런 예민한 반웅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신경 쓰지 말자.

“안녕. 대화하는 건 처음인 거 같 은데 나 알지?”

릴리가 웃으며 살가운 말투로 말했다.

적당히 방심을 유도한다음에 탈락 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경계심이 짙은 눈으로 자신 을 바라볼 뿐.

그러다 이내 대답했다.

“알죠. SNS로 관종 스토커짓 하시 던 분이잖아요.”

“……관종 스토, 야. 너 지금 뭐라 고 했냐?”

갑작스러운 도발에 릴리가 도끼눈 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살벌한 눈빛에

겁먹을 법도 한데 최서윤은 전혀 눌 리지 않았다.

“관종 스토커요. 맨날 SNS에 김선 우 선배님 사진 올려서 사람들한테 관심 끌었잖아요. 설마 부정할 생각 이에요?”

“야! 그건 그냥 팬심 같은 거야!”

“그게 팬심이라고요? 아~ 내가 알 던 팬심 뜻이 바뀌었나?”

반박할 말이 없었다.

팬심이라고 하기에는 뒤틀린 부분 이 없잖아 있긴 했으니까.

“오냐. 그냥 나랑 싸우자. 넌 죽었 어!”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릴리가 검을 꽉 쥐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최서윤도 그녀의 공격에 대비하려 는 둣 빠르게 얼음의 창을 구현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려는 그 순 간.

[‘꿈의 세계’에 입장 후 14시간이 지났습니다.]

[선두를 발표합니다.]

[현재 선두는 8번째 스테이지를 공 략 중인 ‘이서준’, ‘김선우’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의지에 릴리와 최 서윤이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김선우랑 이서준?”

그 둘이 동시에 선두라는 건, 팀으 로 시험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릴리는 황당함을 느꼈다.

“아니, 저 둘이 한팀인 건 반칙이 잖아.”

큰일 났네. 저 두 사람이 팀이 됐 다니. 이게 무슨 사기 조합이지?

아니, 그 전에 8번째 스테이지를 공략 중인 건 또 뭔데?

지금 여기가 6번째 스테이지인 데…… 갈수록 스테이지 공략 시간 이 길어지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 한 차이.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못 하고 우승 을 내주게 생겼다.

릴리는 이를 악물고는 눈앞의 최서 윤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기회를 봐서 탈락시키려 했 는데 계획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 꼈다.

이렇게 된 이상 최서윤을 동료로 삼아 이서준, 김선우와의 격차를 좁 혀야 한다.

“야. 방금 들었지?”

릴리의 물음에 최서윤은 고개를 끄 덕였다.

“우리끼리 싸우면 쟤네 절대 못 따 라잡아.”

“나랑 동맹하자.”

최서윤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 더니 입을 열었다.

“싫은데요.”

“뭐? 야! 우승 포기했어?”

“아뇨. 그쪽이랑 팀 한다고 해도 1 위 탈환은 힘들어 보여서.”

“너 지금 나 무시하……

그때 였다.

그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째 선두를 발표합니다.]

[7번째 스테이지를 공략 중인 ‘다 리아 타란’ 입니다.]

“……어? 방금 내가 잘 못 들었 나?”

릴리가 눈을 깜빡였다.

다리아를 라이벌로 생각하던 최서 윤 역시 이번에는 많이 당황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다리아가 7번째 스테이지를 공략 중이라고?”

시험 시작 16시간. “……이건가?”

우여곡절 끝에 나와 이서준은 최종 스테이지의 문으로 보이는 포탈을 발견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검은색 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강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원작 묘사에 따르면 이 흑점을 만 지는 순간 ‘내면의 자아’가 숨겨진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가자.”

“응.”

나와 이서준은 지체없이 흑점을 터 치 했다.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새로 운 공간에 도착했다.

[‘내면의 안식처’에 입장했습니다.]

[‘내면의 자아’가 당신의 입장을 눈 치챕니다.]

[안식처에 숨은 ‘내면의 자아’를 찾 아 접촉하십시오.]

[‘꿈의 공간 입장’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색과 백색이 물감처럼 섞여 있

는 텅 빈 공간이었다.

“……여기가 최종스테이지인가?”

“맞는 거 같아.”

이서준이 복잡한 생각이 눈으로 주 변을 둘러보았다.

“김선우.”

“왜?”

“아까 네가 나를 1둥으로 만들어준 다 했잖아.”

“어, 그랬지.”

정확히는 만들어준다기보다는 원래 예정된 운명이지만.

“난 누가 1등 양보하거나 만들어주 는 거 싫으니까 제대로 경쟁하자.”

나는 이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은 한없이 진지한 눈으로 나 를 웅시하고 있었다.

늘 공정함을 추구하는 이서준다운 모습이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네가 우승해. 난 우승 욕심 없어.”

“욕심이 없기는. 여기서 우승하면 가호도 주어지는데 어떻게 욕심 안

나?”

그 가호 때문에 양보를 하는 거다.

단순한 돈과 명예뿐이라면 내가 우 승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가호’ 는 이서준에게 꼭 필요한 힘이다.

나의 개입으로 이서준이 원작보다 약해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어, 욕심 안나.”

하지만 이서준은 그런 내 심정을 알지 못했다.

우승 욕심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 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억지로 양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됐고, 김선우. 너도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이서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서준에게 미움받아서 좋을 건 없 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최선을 다하는 척하다가 양 보해주면 되겠지 뭐.

우리는 그렇게 ‘안식처’의 앞으로 걸었다. 정면을 웅시하던 이서준이 불쑥 말했다.

“그나저나 다리아는 언제쯤 오려 나.”

“아마 우승이 확정 지어지려는 즘 에 맞춰서 오겠지. 아까 의지도 우리랑 한 스테이지밖에 차이가 안 난 다고 했고.”

“2학년인데 걔도 엄청 빠르네.”

나는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증폭제의 효과 덕이라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걸었다.

10분가량을 쭉 걷자 온몸에 술식 이 그려진 검은색과 백색이 섞인 인

간의 형태가 등장했다.

원작의 묘사와 같았기에 눈앞의 저 것이 ‘내면의 자아’라는 것을 눈치 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서준 님, 김선우 님.]

“당신이 내면의 자아인가요?”

이서준이 물었다.

내면의 자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는 관측의 악마에 숨어있는 내면의 자아. 만약 제 몸 에 여러분들의 손이 닿는다면 그대 로 시험의 최종 승리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쉽게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내면의 자아가 작게 웃으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없어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개가 나를 향하고 있으니 나를 바라보는 게 맞 겠지.

[……그나저나 미래가 이렇게 변했 군요. 설마 이런 상황이 될 것이라 고는 예상 못 했는데. 재밌네요. 후 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는 지금 완전하진 않지만 작은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 살면서 처 음 느껴보는 감각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 당신이…….]

내면의 자아가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이서준의 눈치를 본 모양이다.

그나저나 갑자기 자유니, 뭐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다.

물론 내면의 자아가 말하는 ‘자유’ 의 의미를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전에 내게 말해줬던 ‘세계의 법 칙’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사도의 말에 의하면 이 세계에 속한 자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유를 느낀다 고?

그때 내면의 자아가 말했다.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여러분들의 신체가 제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시험이 종료됩 니다.]

스 O O.

그 말과 동시에 내면의 자아 주변 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수십 개의 혹색과 백색의 촉수가 되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그럼 자유를 만끽할 겸 난이도를 기존보다 두 배로 올려보겠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둘 중 한 분은 탈락할 것이니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난이도를 두 배로 올린다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