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내 대답을 들은 사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파괴되는 미래라. 역시 제대로 보셨군요.”
나는 그 미소를 보며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저런 반웅을 보인다는 건, 지금 이 모든 상황은 녀석의 계획대로라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상황을 노리고 있다는
건 나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거고.
그때 사도의 표정이 잠시 굳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미래를 직접 두 눈으 로 본 사람치고는 생각 보다 놀라지 않으시군요. 혹시 이미 알고 계시던 미래입니까?”
나는 사도를 빤히 바라보다가 사실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 대충은.”
성무제의 최종 시험장.
마지막 결승점에서 다리아가 가진 ‘소환석’으로 인해 소환되는 자운.
그리고 관측의 악마의 의지가 자운 에게 지배당하며, 미래 예지를 하다 가 파괴되는 모습까지.
원작에서도 묘사되었던 장면이었기 에 내가 본 미래에 대해서 큰 충격 을 받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술식의 미래를 본 나는 다른 부분 에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원작에서 관측의 악마가 파괴되는 원인은, 자운에게 미래 예지를 하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린 것이 원인 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식으로 읽은 미래에서는
관측의 악마가 파괴된 근본적인 원 인은 ‘과부하’가 아니었다.
[세계의 법칙]이라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호오
내 대답을 들은 사도가 놀란 표정 을 지었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었다니. 어떤 방법으로 알게 됐는지 궁금증이 생 기네요. 김선우 학생이 예지 능력을 갖춘 거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러더니 사도가 생각에 잠긴 얼굴 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성상 이쪽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는 하는데.”
“됐고, 세계의 법칙이라는 게 대체 뭐야? 그것부터 설명해.”
사도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작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세계의 법칙이란 세계라는 테두리 안에 속한 자가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게 하는 ‘억지력’입니다.”
“……억지력?”
“그렇습니다. 저처럼 결정된 미래 를 읽을 수 있는 존재가, 결정된 미 래를 멋대로 바꾸려 할 때 발생하는
특수한 힘이죠. 일종의 세계가 내리 는 형벌이라고 할까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해진 미래를 멋대로 바꾸려 할 때 발생하는 힘이라니? 또 세계가 무슨 수로 벌을 내린다는 거지?
“혹시 저 말고 결정된 미래를 읽는 존재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 있어.”
유적지에서 만났던 신비의 사도와 네팔에서 토벌한 질병의 마수.
이 둘은 결정된 미래를 언급하며 자신의 최후를 이야기했다.
그들이 했던 말들은 지금까지도 많 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사도는 미소를 짓더니 내게 말했다.
“그런 존재들을 만나면서 무언가 의문을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미 래를 알면서, 왜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 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 미래를 알고 있다면 도망칠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그들은 도망 치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
“그들이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 한 이유가 바로 ‘억지력’ 때문입니다.”
“억지력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지?”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또 ‘의도 적이었는가?’ 등등에 따라 다릅니다 만, 보통은 죽습니다.”
“……죽는다고?”
“네, 영문도 모른 채 소멸하기도 하고, 가끔은 평생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병에 걸리기도 하죠. 운이 좋으면 수명이 조금 줄어드는 선에서 끝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결정된 미래를 외부로 발설할 때도 마찬가 지입니다.”
사도는 말을 이었다.
“실제로 ‘예언의 마왕’이라고 불리 던 한 마인은 자신이 아는 미래를 여러 번 발설하다가 죽었습니다. 어 쩌면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 나려는 시도였을 지도 모르죠.”
원작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예언 능력의 대가.
드디어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설마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여기는 그런 세계입니다. 결정된 미래가 있고, 그 미래를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회귀자라 할 지라도.”
그렇게 중얼거리던 사도가 잠시 입 을 다물었다.
“아, 회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네요. 세계의 허점을 이용하 면 되니까.”
“세계의 허점?”
내 물음에 사도는 잠시 웃더니 고
개를 저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예시를 드리자면 방 금 그쪽이 보았던 ‘술식의 액자’가 세계의 허점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별 방법이 다 있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죠. 저 도 세계의 법칙 아래에 속한 존재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수 없거 든요. ‘억지력’이라는 게 꼭 미래를 발설할 때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숨겨진 법칙들을 발설하는 데에도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사도가 한번 말을 끊었다.
“……그리고 저도 슬슬 한계에요. 지금 제 모습이 멀쩡해 보여도 본체 의 내부는 조금씩 고장이 나고 있는 지라.”
사도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작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라서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몇 가지 의문도 풀렸다.
신비가 입에 달듯 항상 하던 말.
김창현이 내게 했던 말.
이윤경이 들려줬던 진천우의 말.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억지 력’이라는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측의 악마가 파괴되는 원 인이 ‘과부하’가 아닌 ‘세계의 법칙’ 인 이유도 이해가 됐다.
자운에 의해 결정된 미래를 발설하 다가 생긴 억지력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단순히 ‘과
부하’에 걸려 파괴됐을 것이라 멋대 로 추측했던 것이고.
사도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의자 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더니 창가 앞에 몸을 기대 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 었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 가 뭐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 대화도 ‘억지력’에 의해 네가 피해 볼 수 있는 상황 아니야?”
“일종의 반항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저는 파괴될 운명. 인간처럼
영혼이라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괜 찮습니다.”
“뭐, 제가 파괴되는 미래도 이제는 결정된 미래라고 말 할 수도 없지만 요.”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뀌어서 그런 거군.”
“네, 맞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신비도 그렇고 다른 미래를 아는 몇몇 존재들도 그렇고.
나를 보자마자 ‘세계의 법칙’에 영
향을 받지 않는 존재인 것을 알고 있다.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을 이미 아는 것처럼.
그렇다는 건, 미래를 아는 존재들 은 이 세계가 ‘소설 속’이라는 사실 을 안다는 걸까?
동시에 수많은 의문이 든다.
소설 속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설 정들은 왜 갑자기 등장하는 것인지.
이전 생에서 이서준은 도대체 왜 죽었는지.
또 소설은 누가 썼으며, 도대체 어 떤 목적으로 나를 이곳에 소환했는
지…….
애초에 이 세계가 소설 속은 맞기 는 한 걸까?
나는 예전에 이서준이 나의 사소한 개입으로 일어난 나비효과로 인해 죽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신비의 말에 따르면 결정된 미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즉, 이서준은 ‘세계의 법칙’에 따라 죽지 않았어야 했다.
원작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미래의 이서준이 어떻게 죽는 지 알려줄 수 있나?”
“미래에 대한 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아까 네가 말한 세계의 허점을 이 용하면?”
“그것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술식 의 액자는 제작 당시 제 미래를 누 군가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담기지 않았헜고, 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까운 미래였으니까요.”
“……쳇.”
아쉽지만 미래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서준, 그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알 게 된다면 분명 많은 의문이 해소됐
을 텐데.
아무래도 이서준의 죽음에 관한 것 은 인과율의 권능인 ‘차원 관측’을 사용해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술식 이 그려진 액자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아까 보았던, 원작으로도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의 풍경이 눈앞 에 생생히 재생되었다.
성무제의 최종 시험장.
다리아가 가진 ‘소환석’에 의해 소 환되는 자운.
베르트에 의해 가슴이 꿰뚫리는 관 측의 사도. 그리고 강한 빛과 공간
이 뒤틀리며 함께 사라지는 그 둘.
약 10초 뒤 공간이 뒤틀리며 베르 트는 다시 최종 시험장으로 돌아온 다.
그리고 베르트가 동료들에게 말한다.
—미래를 보았다.
—‘그분’께서 돌아오셨다.
한편, 베르너는 김선우와 관측의 사도가 함께 있는 저택의 4층을 기
웃거리고 있었다.
아까 전 우연히 김선우와 관측의 사도가 함께 4충에 오르는 것을 보 았다.
학생 금지구역인 4충에 김선우가 오른다는 건 사도가 개인적으로 그 를 불렀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도가 특정 인물 에게 관심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건방진 기계 주제에 말을 걸면 언 제나 무시하곤 했으니까.
“……대체 뭘까?”
아무래도 ‘도플갱어 사냥’ 시험에
서 김선우의 도플갱어가 이상 현상 을 보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 은데.
김선우의 도플갱어가 오류를 보였 던 것은 사실 다른 이유가 있던 것 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몇 가지 추측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랜 시간 술식과 신비를 연구해왔 던 그였기에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수많은 이론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 기 때문이다.
“따로 조사를 해봐야 하나......
당장 문에 귀를 대고 엿듣기라도
하고 싶지만, 저 공간은 관측의 사 도만올 위한 공간.
그 어떤 감시로부터 차단된 공간이 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쯧……
결국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대화를 엿듣는 건 포기하는 수밖 에.
그렇게 다시 계단을 타고 1충으로 내려오던 때였다.
웅성웅성.
지하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필기시험, ‘마법사의 소양’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둘씩 1충으로 올 라오고 있던 것이다.
괜히 마주치면 말을 걸어올까 봐 서둘러 다른 장소로 피하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베르너 시험관님!”
베르너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 았다.
“아, 네. 반갑습니다. 다들 시험은 잘 치르셨나요?”
베르너는 자상한 시험관의 모습을
연기했다.
베르너의 본 모습을 모르는 학생들 은 그 자상한 모습에 친근하게 다가 갔다.
“시험이 너무 어려워요.”
“그 시험이 학생 여러분들이 풀기 에는 많이 어렵기는 하죠. 하지만 다들 같은 조건이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까 김선우 보니까 거의 20분 만에 다 풀고 나가던데요?”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베르너 가 잠시 몸을 움찔했다.
그 어려운 이론과 술식 문제들을
20분 만에 풀어낸 것은 이미 알고 있기는 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6연속 이론 만 점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빨리 푼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위젠 소속의 연구진분들도 풀어내는데 평 균적으로 40분 정도는 걸릴 테니까 요.”
“와. 그럼 위젠 연구진들보다 대단 한 거 아닌가?”
“……흠흠. 아무튼, 이미 치른 시험 은 이제 잊으시고 다음 실전 시험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다음 실전 시험이요?”
“네.”
“어떤 시험인데요?”
“하하. 은근슬쩍 정보를 캐내려 하 시네요? 다음 시험 종목은 비밀입니다.”
“힝.”
그러자 학생들이 아쉬워하는 표정 을 지었다. 그 모습이 귀엽지는 않 고 귀찮기만 하다.
베르너는 그들에게 다시 자상한 미 소를 보였다.
“저라면 이럴 시간에 근처 훈련장 에 가서 다음 시험올 위해 훈련이라 도 할 거 같아요.”
그러니 이만 좀 가라.
“아, 그래야겠다. 훈련장이나 가 자.”
“그래. 저희는 가볼게요. 시험관 님!”
“네, 열심히 훈련하세요.”
학생들이 떠났다.
겨우 자유의 몸이 된 베르너는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학생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자리를 옮겨야지.
베르너는 서둘러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지하에서 익숙한 얼굴이 1층 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서준과 그의 동료들인 한국 마법사관학교 학생들이었다.
베르너는 이동하려는 발걸음을 멈 추고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방향을 틀었다.
“이서준 학생~ 시험은 잘 푸셨나 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