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 (228/535)

229화

시험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흐아암……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몸을 굴렸더니 피로가 장난 아니다.

육체의 피로는 ‘체력 회복’ 효과가 있어 그나마 덜하지만, 정신의 피로 함은 특성으로 회복되지 않아 죽을

맛이다.

그리고 정신의 피로는 육체에도 어 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휴식 시간 때 잠 좀 잘걸.

“김선우!”

그렇게 복도를 좀비처럼 걷는데 뒤 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준이었다.

이서준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옆 에 나란히 걸었다.

“으. 피곤하다. 벌써 새벽 4시야.”

이서준의 말에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0대 상대로 진짜 가혹하게 굴려대는구나.”

내 말이 웃겼는지 이서준이 나지막 이 웃었다.

“그래도 지금부터 오후 5시까지 자 유시간이잖아.”

“야. 이렇게 굴려대는데 그 정도 휴식 시간은 당연히 줘야지.”

“그런가?”

이서준이 다시 한번 작게 웃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 을 벌렸다.

“아 참. 선두에 오른 거 축하해.”

“축하는 무슨. 이제 첫날이야. 아직 시험 5일이나 남은 거 몰라?”

내 말에 이서준이 놀란 반응을 보 였다.

“와…… 아직도 첫날이구나. 체감 상 3일은 지난 거 같은데.”

이서준이 황당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정확히는 12시가 지나서 두 번째 날이기는 하지. 개최식과 친목회를 포함하면 세 번째 날이고.”

“그러네. 이제 절반 가까이 지난 건가……

생각에 잠긴 이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음 시련은 뭐 하려 나?”

“종일 굴렸으니 아마 다음 시험은 조금 가볍게 진행하지 않을까?”

“가벼운 거?”

내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갸웃했

“예를 들면 필기시험이라던가. 술 식 풀이라던가.”

원작에서는 그랬으니까. 아마 달라 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애초에 성무제에서 전통적으로 하던 시험이 기도 했으니까. 그럼 네가 또 1둥 하겠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내 입으로 당연히 1둥이지라고 대 답하기에는 조금 민망해서.

그렇게 계단을 올라 서로 가는 방 향이 달라졌다. 나는 이서준을 흘겨 보았다.

“그럼 간다.”

“웅, 내일 봐.”

나는 이서준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는 개인실로 향했다.

끼이익.

개인실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 왔다.

동시에 몸의 긴장이 확 풀리며 피 로가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듯 드러누웠다.

푹신한 감촉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눈이 솔솔 감기고 잠이 쏟 아진다…….

그렇게 잠이 들려는 찰나의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씻고 자야지……

샤워는 안 하더라도 양치 정도는 하고 자자.

새벽 4시 50분.

모든 학생이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할 때.

베르너는 텅 빈 계단을 오르며 저 택의 4층에 도착했다.

4층은 시험관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학생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베르너는 복도를 지나 4층의 어느 방 앞에 섰다.

똑똑.

“들어오세요.”

방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은 백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창밖의 밤하늘 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방은 ‘관측의 사도’가 사용하는 개인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선 베르너는 방을 둘러 보았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벽장까지.

인간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가구 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방에는 그녀가 지금 앉고 있는 의자 하나와 구석에 놓인 또 다른 의자. 그리고 벽을 장식하는 여러 개의 액자뿐이었다.

베르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액자에는 복잡한 술식이 길게 나열 되어 있었다.

“……이런 걸 장식이라고 놔두다 니. 취향 한번 특이하군.”

“인간과 저는 보는 세상이 다르니 까요.”

사도가 밤하늘을 올려보며 대답했다.

베르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네 눈에는 세상이 이렇게 보인다 는 건가?”

“비슷합니다.”

“ 흐음......

그녀의 말에 베르너가 액자 속 술 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술식 분야에도 뛰어난 이해력을 가 진 그였지만 어떤 정보가 담겨있는 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형태만 보면 공간이나 시간과 관련 되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이건 어떤 술식이지?”

“비밀입니다.”

베르너는 눈을 찌푸렸다.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주제에, 알 려주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너는 너의 창조주가 인간인 걸 모 르는 거냐?”

사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베르너는 다시 답답함을 느끼다가 이내 포기했다.

“……됐다. 오늘 도플갱어 시험에서 김선우의 도플갱어가 왜 이상증 세를 보였는지나 설명해봐.”

“단순한 오류입니다.”

“.…”오류?”

사도가 순수하게 오류라고 인정할 줄은 생각 못 했기에 베르너는 살짝 당황했다.

“무슨 오류지?”

“세계의 모든 진리를 깨우치지 못 한 저의 한계라고 하죠.”

“미안한데 너랑 말장난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술식의 정보를 이해한 네가 모르는 게 어디 있다는 거지?”

“말장난이라뇨? 달리 표현할 방법

이 없어서 그렇게 대답한 건데.”

베르너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 녀석은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

“……그래. 이만 가보마.”

그렇게 베르너가 뒤를 돌며 방 밖 을 나가려는 때였다.

“베르너 님.”

사도의 부름에 베르너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았다.

사도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밤하늘 을 올려보고 있었다.

“시험에 너무 깊게 개입하는 건 좋

지 않습니다.”

베르너는 그 대답을 듣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녀석은 자신의 계 획을 전부 알고 있다.

“……재수 없는 놈.”

베르너는 굳은 얼굴로 방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인기척이 느 껴졌다.

“베르너 님?”

고개를 돌리자 자신과 함께 성무제 특별 시험관으로 활동하는 제임스가 서 있었다.

평소에는 선글라스와 정장을 입은 딱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

은 면티와 반바지를 입은 편안한 모 습이다.

그리고 방금 씻은 듯 머리카락에 물기가 느껴졌다.

“사도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까?”

“네, 이번 도플갱어가 보인 이상행 동의 원인이 궁금해서요.”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도가 뭐라고 대답하던 가요?”

“단순한 오류라고 하더군요.”

“오류라……

제임스가 생각에 잠겼다.

베르너는 그런 제임스를 빤히 바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전 피곤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임스 님도 남은 시간 푹 쉬 시죠.”

그렇게 제임스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베르너 님.”

뒤에서 제임스가 그를 불렀다.

베르너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 았다.

«.

“혹시 이번 도플갱어 시험이 진행

될 때 어디 계셨습니까?”

제임스의 물음에 베르너가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려고 시험장 근

처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후 5시.

성무제 중간지역 ‘저택’의 지하 강

당에는 사그락거리는 필기 소리로 가득했다.

“으…… 오랜만에 풀려니까 머리

아파 죽겠네.”

“거기 릴리 로즈 학생, 정숙 해주 시길 바랍니다.”

제임스의 말에 릴리가 푹 고개를 숙였다. 몇몇 학생은 그 모습을 보 고는 킥킥 작게 옷었다.

지금 우리는 성무제 세 번째 시련, ‘마법사의 기본 소양’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격 중명’과 ‘도플갱어 사냥’ 시 련 때와는 달리 순수히 ‘개인전’으 로 진행되는 시련이다.

‘마법사의 기본 소양’은 이론 시험 의 점수로 등수를 나열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부터 개인 포인트 를 지급한다.

이렇게 모은 개인 포인트들은 나중 에 개인전, ‘최종 시험장’에서 중요 한 역할을 하기에 벌어놓을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한다.

쓰쓰

—I .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이론 시험은 자신 있을 수밖에 없는 분야 이다.

외부자의 혜택이 알려주는 답안지 를 그대로 작성하면 되는 거니까.

“......됐다.”

시험지 안에 정답을 빼곡히 써두고

는 자리에서 탁 일어났다.

동시에 강당에 있는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특히 구석에 앉아 머리를 꽁꽁 싸 매던 릴리 로즈가 휘둥그레진 눈으 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손에 쥔 펜을 책 상 위로 떨어트렸다.

오바가 심하네.

나는 시험지를 들고 제임스가 서 있는 단상 위로 걸어갔다.

시험지를 제출하자 뒤에서 목소리 가 들려왔다.

“……뭐야. 쟤 벌써 다 푼 거야?”

“한국 마법사관학교 6연속 이론 만 점이라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빠른데?”

소란이 느껴 지려 하자 제임스가 다시 말했다.

“자자, 정숙하세요. 한 번만 더 소 리 내면 제 권한으로 탈락 처리하겠 습니다.”

탈락이라는 말이 들리자 강당 내부 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제임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

시험지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서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선우 학생, 제대로 푼 거 맞습 니까?”

“네, 제대로 풀었습니다.”

제임스는 불신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시험지로 시선을 돌렸다.

“흐음.”

무표정한 눈으로 시험지를 읽던 제 임스의 표정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내 그의 표정이 경악으로 번졌다.

“……이게 무슨.”

“시험관님, 이만 가봐도 될까요?”

“어…… 아, 네. 남은 시간은 자유 입니다. 편히 쉬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당 밖으 로 나왔다.

남은 시간 숙소에서 다시 편안하게 쉴 생각이었다.

그렇게 복도를 걸으려는 때.

“김선우 학생?”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총 시험관님?”

성무제 총 시험관, ‘관측의 사도’였다.

사도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역시 1등으로 시험을 마치셨네 요.”

마치 전부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 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 여유 있으시면 저와 대 화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사도는 나를 시험관 전용 공간인 4충으로 안내했다.

원래라면 내 신분으로 입장할 수 없는 공간이었기에 괜히 찔리는 기 분이 들었다.

“자, 들어오시죠.”

사도가 안내한 방은 의자밖에 없는 텅 빈 방이었다.

원작에서는 다뤄진 적이 없던 공간 이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거주하는 방입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조금 휑하죠?”

휑하기는 하다.

빈방에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 니 사람 사는 공간 같지도 않고.

물론 사도가 인간처럼 잠을 잔다거 나 다른 여가 생활을 하지 않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근데 밖에서 대화하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서?”

“이 공간에서는 모든 외부의 감시 를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사도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흐음.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감 시까지……

내 물음에 사도가 작게 미소를 지

었다.

그 미소를 본 나는 홈칫 몸을 떨 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짓는 미소 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짓 는 듯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관측의 사도’에게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사도가 내밀어준 의자에 앉았 다.

사도 역시 내 맞은편에 의자에 앉 아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 생활은 어떠십니까?”

“일정이 빡빡한 걸 제외하면 만족 스럽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사도가 다시 한번 웃었다.

저 미소를 마주 보고 있으니 이상 하게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벽에 걸린 액자들 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온갖 술식이 복잡하게 나 열된 기괴한 그림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진을 구성하는 술식 과는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때 였다.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술식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 공간, 차원, 신비, 마력, 인과 율, 억지력…….

“......윽!”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머릿속으로 밀려오는 너무나 방대 한 정보량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두 통의 괴로움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 었다.

“김선우 학생, 괜찮으십니까?”

사도는 가만히 앉아서 태연한 목소 리로 내게 물었다.

“크윽

나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시간이 지나 두통은 점차 잦아들었다. 내가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는 지 사도가 다시 물었다.

“혹시 저 그림에서 무엇을 보셨습 니까?”

나는 사도를 바라보았다.

방금 보았던 장면과 지금 눈앞의 사도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깊은 혼

란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네가 세계의 법칙을 어기고 파괴되는 미래.”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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