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1/535)

222화

“자자, 여러분. 오늘 일정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인천 출입국 게이트.

성무제에 참가하는 15명 앞에서, 오늘따라 곱게 꾸미고 온 이희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먼저 성무제 참가하는 여러분들은 현지 적웅을 위해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위젠으로 이동할 겁니다.”

이희영의 말에 학생들은 조용히 경

청했다.

“위젠에 도착하고 나면 연구소 견 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후, 간 단한 개최식을 치릅니다. 거창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 긴장하거나 하시 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 녁 9시에 각국의 학교와 위젠의 주 요 인사들이 모이는 친목회가 열립 니다.”

“ 친목회요?”

친목회라는 말에 몇몇 사교성 좋은 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특히 특출난 사교성을 지닌 신영준 이 그랬다.

이서준은 자신에게 쏠릴 관심을 예 상한 듯 살짝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 비쳤고, 유아라는 벌써 귀찮은지 대 놓고 싫은 기색을 보였다.

은설아는 걱정 반, 기대 반의 오묘 한 표정을 지었다.

“네, 성무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각국 학교의 교류를 위한 친선 행사 니까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친선 행사는 무슨.

겉은 참 번지르르하다.

친선보다는 각 국의 경쟁과 갈등을

심화 시키는 용도로 변질 된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성무제의 본격적인 시험은 그다음 날부터입니다. 자! 그럼 설명을 마 쳤으니 바로 포탈 게이트로 이동하 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게이트에 발을 내디 뎠다.

번쩍!

장소에 도착하자 은은한 바닷냄새 가 풍겨왔다.

주변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유럽 식 건물들이 있었다.

쭉 걸어 나오자 3개의 대륙이 감

싸는 바다, 지중해가 눈에 들어왔다.

“와아. 이탈리아 오랜만에 와보네.”

“난 처음 와보는데.”

주변에서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트로 이동 수단이 편리해진 이 세계에서도 해외 방문은 언제나 설 레는 경험이다.

“여러분, 위젠은 테러 방지를 위해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지금 부터는 배로 이동해야 합니다.”

“아, 배 타기 싫다.”

“나도.”

배를 탄다는 말에 어디선가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트라는 편리한 이동시설에 익 숙해진 우리에게 배를 타고 이동하 라는 건 조금 번잡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희영은 우리를 거대한 배가 있는 장소로 이끌고는 힘차게 외쳤다.

“자, 여러분. 배에 올라타세요!”

우우우웅

거대한 선박이 푸른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갑판 위 난간에 몸을 걸친 채, 뱃멀미로 괴로워하는 최서윤의 등을 두들기며 먼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마력을 담자, 작은 섬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섬 위에 올라온 거대한 건물들.

연구 도시라는 설정답게 도시의 느 낌이 물씬 풍겨왔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시의 건물과는 외형이 조금 달랐다.

영화 속에서 온갖 떡밥을 숨기고 있는 ‘비밀 연구소’ 같은 느낌이라 고 해야 하나?

“너 근데 괜찮냐?”

몸을 숙인 채 괴로워하는 최서윤에 게 시선을 돌렸다.

안개의 섬에 갈 때도 온종일 멀미 에 시달리더니 오늘도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네에. 괜찮…… 이 아니라 저, ……보지 마세요…… 읍……

최서윤이 내 옷깃을 꽉 잡았다.

나는 다시 말없이 최서윤의 등을 두들기고는 다시 바다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굳이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좋은 것만 보고 싶으니까.

“고생하네〜”

그때 이서준이 내 옆에 불쑥 나타 났다. 나는 다시 최서윤을 힐끔 보 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젠 적웅됐어. 처음도 아니거든.”

내 대답에 이서준이 나를 따라 웃 더니 나를 따라 난간에 몸을 걸쳤

다.

“기분이 어때?”

“무슨 기분?”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성무제에 참가하게 됐잖아. 150위에서 1년 만 에 5위에 오를 만큼 열심히 해서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 무언가 이상한 기 분이 들었다.

150위에서 1년 만에 5위.

작년의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글쎄. 기분이라……

솔직히 말해서 걱정밖에 없다.

원작을 통해 성무제에서 어떤 사건 이 일어나게 될지는 이미 알고 있으 니까.

물론 나의 개입으로 세계가 변화한 만큼 내가 예상한 사건이 그대로 일 어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원작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 랄 뿐이다.

“그냥 별생각 없어.”

“......그래?”

내 대답이 이상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이서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웅…….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배가 목적지 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내리자.”

최서윤에게 휴지와 물을 넘겨주고 는 배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해안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과 수많은 빌딩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도시의 외곽을 두르는 거대

한 방벽이 보였다.

딱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하와이 와 비슷했다.

위젠은 연구소의 역할도 하지만, 초대한 손님들에 한정해서 관광지의 역할도 하니까.

“와……

최서윤은 언제 회복됐는지 평소의 활기를 되찾은 채 주변 경관을 즐기 고 있었다.

“아, 맞다. 선배님 덕분에 살았어 요. 근데…… 혹시 저 멀미한 거 보 신 건 아니죠?”

“더러워서 안 봤으니까 걱정 안 해

도 돼.”

최서윤이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게, 멀미약 좀 챙기지.”

“저번 아틀란티스에 탔을 때는 괜 찮아서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어 요……

최서윤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그야 아틀란티스에는 회복의 신비 가 있으니까 그러지.”

“아, 그래서 그때 괜찮았던 거구

나.”

최서윤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반갑습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학생 여러분.”

그때 흑발의 백인 남성이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이며 우리 앞에 나타 났다.

검은 복장에 선글라스, 마치 영화 속 특수 요원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었다.

“한국의 보물이신 여러분들을 인솔 하게 될 위젠 보안팀장이자 연구팀

소속인 제임스라고 합니다.”

“어? 제임스?”

제임스의 소개에 몇몇 학생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비교적 혼한 이름이었지만, 이름과 위젠의 보안팀장이라는 직책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A등급 마법사, 마탄의 제임스.

이 세계에서는 혼치 않은, 총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보조계 마법사였다.

등급은 A지만, 전투 능력으로는 S 등급 마법사에게 밀리지 않는 것으 로 유명하다.

애초에 협회에서 지정해주는 ‘마법사 등급’이라는 게 단순히 마법 실 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이루어낸 업적과 주변의 평가.

그리고 마법 실력 등을 종합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단순히 등급의 높 낮이로 전투 능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자,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연구소를 두르는 거 대한 방벽으로 이동했다.

“반갑습니다. 보안을 위해 입장권 을 확인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받았던 입장권 을 내밀었다.

직원은 마도구를 이용해 초대장을 스캔했다. 그러자 입장권에 숨겨진 복잡한 술식이 빛을 내뿜었다.

“입장권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확인을 하겠습니다.”

직원이 벽에 걸린 투박하게 생긴 직사각형의 마도구에 마력을 주입했다.

동시에 마도구의 끝에서 빛이 뿜어 지더니 내 얼굴에 방사되었다.

저 마도구의 이름은 ‘인피면구 탐 지기’.

전 세계에 5개 밖에 없는, 이름 그 대로 인피면구를 감지하는 신비였다.

“네, 본인확인 완료되었습니다. 입 장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본인확인을 모두 마치고서 야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오오……

위젠의 내부는 겉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달랐다.

마법사, 연구자, 일반 관광객을 포 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평범한 생 활을 누리고 있었다.

제임스는 신기해하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먼저 호텔로 이동하겠습니다.”

호텔에서 모든 짐을 푼 우리는 밖 으로 나오자마자 바쁜 일정을 보냈 다.

성무제의 시험이 치러지는 경기장 견학부터 시작해서 개최식 리허설까 지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 지친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슬슬 불만이 나 오기 시작했다.

민심을 파악한 제임스는 우리에게 휴식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야외 연구 시설들을 구경하 며 휴식을 즐기고 있던 때였다.

“어? 저기 러시아 팀 아니야?”

신영준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 리 켰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도도한 발걸음으로 이동하는 작은

무리를 발견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있었다.

다리아 타란.

실제로 보니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활력이 넘치는 릴리 로즈와는 반대 로 차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때 내 시선을 느꼈는지 다리아의 녹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리고 이내, 나를 향한 눈에서 강 한 의지와 묘한 살기가 느껴졌다.

“.…”뭐야.”

아무래도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 다.

하긴, 성무제 참가하는 사람 중에 나를 모를 사람이 있겠냐만은.

나를 향한 감정이 심상치가 않았 다.

괜히 무섭네.

아무래도 그녀의 목적을 위한 방해 요소로 나를 꼽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리아는 약 3초간 내 눈을 마주 보더니 이내 획 고개를 돌리며 어디 론가 사라졌다.

아마 그녀와는 오늘 저녁, 친목회 때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혹시 모를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 는지 계속 지켜봐야지.

그녀는 이번 성무제 에피소드에서 가장 위험인물이 될 테니까.

러시아 팀이 사라지자 다시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다리아 실물 장난 아니다. 그치? 나 완전 압도당했어.”

“근데 표정이 진짜 차갑던데.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성격이 원래 그런 거 같은데. 릴

리 로즈 걔도 성격 괴팍하잖아.”

그런 이야기가 흐르고 잠시, 이서준이 무언가를 발견한 둣 조용한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건 뭐지?”

나는 이서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5충 건물 정도 크기의 거대한 원형 구슬이 있었다.

구슬의 생김새도 특이했는데 구슬 을 중심으로 강한 마력 에너지가 홀 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마력 방어막이 구슬을

감쌌다.

딱 보자마자 어떤 시설인지 눈치챘 다. 원작에서도 저 기계가 다뤄졌었 으니까.

“아, 저건 위젠의 50년 역사에서 최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관 측의 악마]입니다.”

제임스가 자부심에 찬 말투로 말했다.

“……관측의 악마?”

“쉽게 말해 미래를 관측할 수 있는 기계인 거죠.”

“오. 예언의 신비 같은 건가요?”

“비숫합니다. 다만…… 예언의 신 비는 신비의 ‘인과율’을 읽는 힘을 빌려 가변 미래. 즉,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관측의 악마]는 인과율이 아닌 세계를 구성 하는 술식을 읽어서 미래를 관측하 기 때문에 거대한 흐름, 즉 결정된 미래까지 읽올 수 있습니다.”

알쏭달쏭한 말에 이서준은 이해하 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임스의 말을 들은 나는 과거, 동해의 수증 유적지에서 신비 의 사도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도 사도가 저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결정되지 않은 미래와 결정된 미 래가 대체 뭐죠?”

내가 나서서 물었다.

지금이라면 사도가 했던 이야기의 의문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말 그대로입니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는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미래를 말합니다. 결정된 미래는 의 지로 바꿀 수 없는 미래를 뜻하고 요.”

“그 둘이 나뉘어 있다는 건가요?”

“그렇죠. 예언의 신비를 통해 미래 의 결과를 바꾼 존재들이 있으니까 요.”

그제서야 나는 사도가 했던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한성가라던가 마인들은 예언의 신 비를 통해 분명 자신들이 원하는 미 래를 바꾸고, 선택해 왔었으니까.

하지만 결정된 미래라는 말은 아직 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의지 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가?

그때 이서준이 끼어들었다.

“그럼 저거로 지금 저희도 미래를 볼 수 있나요?”

질문의 의도는 아마 자운의 목적과 관련된 궁금중일 것이다.

“음.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이론 상으로는 완벽한데 어떤 오류 때문 인지 기계가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작 동시킬 때마다 엄청난 마력과 전기 가 소모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결국 저건 골동품이라는 거네요.”

신영준도 흥미가 생긴듯 끼어들었

도발로 느껴질 수 있는 말이지만 제임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하. 실패에도 얻는 것이 있습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가설이 나오고, 그 가설이 또 연구를 발전시키니까요.”

신영준은 눈을 깜빡이더니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는 멍하니 기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생각한 실패의 원인은, 아 마 [관측의 악마]는 미래를 제대로 읽었지만 세계의 법칙에 발이 묶여

서 말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 에게 미래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자 유의지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도일 지도 모르고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 네.”

신영준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자리 를 피했다.

제임스는 작게 웃더니 말했다.

“자, 휴식이 끝났으니 개최식 준비 를 하러 갑시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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