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원반격을 보여주냐는 내 말에 최일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한번 보여줘 봐라.”
최일현의 말에 나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마법사관학교 공터에서 불필요한 마법사용은 금지되어 있지만, 원반 격은 공격 마법이 아니니 크게 상관 없다.
나는 곧바로 원반격을 구현했다.
푸른빛의 마나가 내 손바닥 위로 휘몰아쳤다.
이내 마나는 동그란 원형을 이루더 니 복잡한 술식이 담긴 마법진의 형 태로 변하였다.
마법의 첫 번째 단계인 ‘구현’에 성공한 것이다.
“......허허.”
원반격을 완성하자, 최일현이 헛웃 음을 흘렸다.
“저번에 이론만 가르쳤을 때도 마 법진의 구현을 습득하더니, 진짜로
완성해버릴 줄이야.”
최일현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구현만 겨우 완성하는 수준이에 요. 제 마력 제어 능력으로는 마법 진을 제대로 발동하는 게 어려워서 요.”
“‘발동’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익힐 수 있을 거다. 애초에 원반격 을 익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구 현. 마법진의 구현은 재능의 영역이 라 시간을 줘도 못 하는 녀석들이 대다수야.”
최일현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보더니 다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습득한 거 지?”
“운이 좋았죠. 예전부터 마법진이 나 술식 해석에는 자신이 있기도 했고.”
외부자의 혜택 덕이라고 말하기에 는 조금 그래서 적당히 지어냈다.
그러자 최일현은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원반격은 단순한 운으로 익힐 수 있는 마법이 아니야. 아무래도 너에 게 술식 해석의 천부적인 재능이 있
는 것 같다.”
천부적인 재능이라.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자의 혜택의 술식 해석 능력은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 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술식 해석 능 력이 전보다 더 상승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특히 마력의 폭우를 익힌 기점으로 더 그렇다.
이전에는 술식의 해석과 풀이에만 자신 있었다면, 지금은 작성과 구현 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
물론 구현된 마법진을 마력 제어술 을 이용해 작동시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이 정도면 그냥 술식 학자로 전향 해야 하는 수준 아니냐? 아니면 보 조계로 주특기를 바꾼다거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발현계가 맞아요.”
보조계의 모든 마법이 마법진을 사 용하는 건 아니다.
즉, 보조계로 갈아탄다고 해도 내 가 익힐 수 있는 마법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최일현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더 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그런 재능을 썩힌다는 게 아 깝긴 하네. 그 정도 재능이면 술식 계의 발전에 큰 기여할 수 있을 텐 데 말이야.”
최일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요. 책상에 앉아서 술식 연구 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아직 네가 어려서 술식의 중요성 을 모르는 거다.”
최일현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 졌다.
“술식은 세계를 구성하는 일종의 코드다.”
“그 정도는 압니다.”
술식에 담긴 신비함은 마법사관학 교에서 수도 없이 배우는 내용이니 까.
술식은 일종의 수학이자 언어이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 연의 법칙을 기술할 수 있고, 또 신 비와 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힘 역시 술식으로 기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들을 어떤 형태의 술식으 로 기술해야 하는지 인류는 알아내 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이 술식으로 기술되기에 누군가는 만물의 근원이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류가 발전하는 것도 또 새로운 마법이 발견되는 것도 전부 오랜 술 식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야. 특히 신비를 연구하다 보면 더더욱 술식 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지.”
뭐라 할 말이 있었는데 최일현의 말투가 너무 진지해져서 가만히 입
을 다물었다.
“위대한 마법사라고 불린 마법사 중에 술식 연구를 안 한 마법사를 한 명이라도 대봐라. 심지어 진천우 도 신비 연구하다가 중간에 잠깐 때 려치우고 술식 연구에 매달리기도 했다. 웅‘?”
최일현의 입에서 진천우까지 나올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했던 말이 최일현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다.
“알았어요. 방금 말 취소할 테니까 진정해요.”
최일현이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아씨.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류 의 발전을 위해서 술식 연구는 꼭 필요하다는 거야. 괜히 술식을 완전 히 이해하는 순간, 세계의 법칙을 인간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잖냐.”
“네, 알고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보조계를 익히는 것도 한번 생각 해볼게요.”
“……야이. 너 내 말 이해 못 했 지?”
“이해했어요. 방금 말은 술식을 떠
나서 그냥 개인적으로 보조계에 발 걸쳐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어서 한 얘기에요.”
“……뭐, 그렇다면 할 말 없고. 그 리고 네가 원하면 보조계 잘 아는 선생님도 붙여줄 수 있다. 성격이 조금…… 아니, 많이 괴팍하기는 하 지만 내가 아는 보조계 마법사 중에 는 그 여자만 한 사람이 없거든.”
최일현이 누구를 말하려는 것인지 눈치챘다.
보조계 계열 마법 길드, [깨달음의 룬]의 주인인 정윤슬을 말하는 거겠 지.
참고로 정윤슬은 내가 사는 아파트 의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마주칠까 봐 무섭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볼게요.”
지금 당장은 정윤슬과 엮여서 좋을 게 없다. 그리고 은근 김진우와 김 선우의 관계를 의심하는 거 같기도 했고.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아! 맞다. 그리고 너 요즘 이서준이 랑 같이 다니지?”
“이서준이요?”
뜬금없이 이서준은 왜 물어보지?
“그 녀석, 요즘 자기 과거 찾는다 면서 여기저기 들쑤시는 것 같아서 물었다.”
“아.”
진천우의 흔적을 쫓는 일을 말하는 모양이다.
“제가 가끔 걔 도와주고 그러기는 해요.”
도와준다기보다는 혹시 모를 사고 를 대비해서 감시하는 쪽이 맞는 표 현인 것 같지만.
최일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
“그 녀석, 적정선은 지키게 해라. 보니까 꽤 많은 걸 알고 있는 모양 이던데.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많 은 것을 알려고 하다가 안 좋은 일 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서준이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 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최일현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을 테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그거 이서준 걱정하는 거예 요?”
장난식으로 최일현에게 물었다.
최일현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내가 걔를 왜 걱정 해?”
여러 복잡한 사건이 있었던 개학 3일 차가 지나고 5일 차인 금요일.
“흐랴아압一!”
“와! 대박!”
마법사관학교 운동장에서 이서준이 높게 점프하자 커다란 환호성이 터 져 나왔다.
“이서준, 1등!”
압도적인 거리 차이.
강화계를 주특기로 삼은 이서준이 제자리 멀리 뛰기 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 후우......
이서준은 예상했다는 듯 만족스러 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몇몇 여학생들은 설 렘에 찬 눈빛을 보냈다.
“다음, 김선우!”
교사의 부름에 나는 그늘에서 나왔다.
내가 등장하자 주변 학생들의 시선 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이서준 때처럼 설레는 눈빛들은 없 었지만, 그래도 동경 어린 시선들은 꽤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운동장 그늘에서 체력 훈련을 받는 1학년 무리가 눈 에 들어왔다.
쭉 둘러보는데 이틀 전 나에게 고 백했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살짝 당황해서 시선을 피하는데 이 번에는 은설아와 눈이 마주쳤다.
은설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희 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
며 인사했다.
나도 따라서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 자 은설아 옆에 친구들이 놀란 표정 을 지으며 은설아와 떠들었다.
입 모양을 보아하니 ‘친해?’라고 묻는 거 같은데 괜히 민망해서 신경 을 껐다.
“자, 시작해라.”
천천히 심호홉하고 교사의 지시에 맞춰 크게 점프했다.
“흐읍!”
후웅!
타악!
“와아!”
이서준만큼은 아니지만, 꽤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 정도면 2위 아니면 3위쯤 하겠 지.
오늘 수업을 듣는 학생 대다수가 강화계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만 족스러운 기록이라 할 만하다.
“김선우. 2cm 차이로 아슬아슬하 게 3위다.”
“……아깝네.”
아무래도 2위는 신영준인 모양이 다.
강화계이면서 3학년 전체 3위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김선우~ 2위 할 수 있었는데 아 깝네? 흐흐.”
신영준이 놀리듯 실실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자 이서준이 끼어들 었다.
“야. 선우는 발현계잖아. 너랑 별 차이도 없던데 뭐가 자랑이라고.”
“아, 맞다. 김선우 발현계였지?”
발현계와 큰 차이가 안 났다는 사 실에 신영준이 부끄러움을 느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다른 학생들을 놀리러 어 디론가 사라졌다.
“ 에휴.”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다시 그늘에 앉았다. 이서준도 나를 따라 내 옆 에 앉았다.
시원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그렇게 몸을 쓴 것도 아니었지만, 방금 소모된 체력이 회복되는 기분 이 들었다.
그때 였다.
띠링!
외부자의 혜택에서 메시지 알람음
이 울렸다.
……누구지?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 해 메시지를 확인했다.
[특무팀 후배한테 부탁해서 선현 가문의 실험 위치를 찾고 있어. 비 밀문서 열람에는 허가가 필요해서 시간이 걸릴 거 같아.]
유아연에게 온 메시지였다.
나는 며칠 전 유아연과의 만남 이 후로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
하는 사이가 되었다.
유아연이 왜 나와 협력 하려 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이서준 과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유아연에게 선현 가문의 실험 이 이루어졌던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가 봐야 진천 우와 김창현의 연결고리에 대한 힌 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이다.
그렇게 뭐라 답장해야 할까 고민하 고 있는데 이서준이 내게 말했다.
“다음 일정은 어떻게 할래?” 뜬금없는 말에 이서준을 바라보았
다.
“다음 일정?”
“진천우의 흔적 찾는 거 말이야.
너 더 도와줄 생각이잖아.”
“진천우의 흔적 찾는 거 말이야. 너 더 도와줄 생각이잖아.”
그 말에 김선우의 표정에 작은 변 화가 생겼다.
당황. 그리고 고민.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삼 스럽게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서준은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감지했다.
“어, 도와야지. 나도 개인적으로 진 천우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그럴싸한 대답이었지만 이서준은 그 말이 꾸며진 말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김선우는 자신올 돕는 게 아니다.
김선우에게도 나처럼 진천우를 쫓
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선현 가문을 조사했 다는 건, 분명 그런 의미가 담겨있 는 걸 테니까.
그렇다면 김선우는 대체 언제부터 진천우를 쫓았던 걸까?
감히 추측하는 건데 아마 나보다 더 빠른 시기가 아닐까 싶다.
김선우는 자신이 진천우에 대해 관 심을 가지기 이전부터 자신의 실력 을 숨기는 둥, 수상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까.
그렇다는 건, 김선우도 유아라처럼 진천우의 피해자라는 걸까?
하지만 이것도 몇 가지 앞뒤가 안 맞는 몇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김선우.”
“어 왜?”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도 고민 있 으면 나한테 말해.”
“고민은 무슨……
김선우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생길 거 아니야. 그때 말하라고.”
“됐고, 다음 일정은 성무제 끝나고
생각하자. 성무제까지 얼마 안 남았 잖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성무제구나.
일정이 정확하게 나온 건 아니지 만, 1차 중간시험 이전에 시작한다 고 하니 3주 내로 시작할 확률이 높다.
“그러는 게 좋으려나?”
“어, 너도 다른 일은 다 잊고 일단 성무제에 집중해.”
이서준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김선우는 예전부터 성
무제에 참가하는 것에 집착했다.
김선우가 자신의 실력을 모두에게 드러내는 시점 역시 성무제에 참가 하려는 목표가 생겼을 때로 알고 있 으니까.
이서준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성무제에 꼭 참가해야 할 이유 라…….
조만간 알게 되겠지.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