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화
……이게 무슨 일이지?
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의문의 쪽지를 보고 공원에 도착한 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크게 당 황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해요!”
누군지도 모르는 1학년 여자애가 나에게 곱게 포장된 꽃다발을 내밀 고 있었다.
잔뜩 빨개진 얼굴과 용기가 담긴
힘찬 외침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 에 처하게 됐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나 공개 고백받은 건가?
—대박.
—저거 1학년 맞지? 와. 개학 3일 만에 고백하는 행동력 뭐냐? 큭큭.
—와. 촛불 하트 정성 봐봐. 준비 하기 힘들었겠다.
나를 둘러싼 인파들 사이에서 키득 키득 웃으며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스마트 학
생 수첩으로 SNS에 올리겠다며 영 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공개 고백받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하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쪽지는 나를 불러내기 위한 속임수
였던 모양이다.
얼굴도 처음 보는 걸 보아하니 비 중 있는 애로 보이지도 않고.
정말 순수하게 나에게 특별한 감정 을 품은 여학생인 것 같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겪어보는 낯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우선 눈앞의 여학생을 만나줄 생각 은 전혀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기도 하고, 애초 에 지금 나에게 누굴 만날 여유가 없다.
일단 꽃다발을 들고 있는 저 손이 안타까우니 거절부터 할까.
“저기 고마운데……
나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들어 올린 손을 내려놓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여학생이 손에 쥔 꽃 다발을 내 손 위로 잽싸게 넘겼다.
« Q 리9
—헐. 야 뭐야?! 야 꽃다발 받아줬 어!
—와아아아!
기대했던 결과가 나왔던 것인지 관
중(?)들 사이에서 탄성과 환호가 쏟 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축하한다며 손뼉을 쳤고, 다른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어? 어어?’
의도하지 않았는데 얼떨결에 내가 고백을 받아준 것 같은 모양새가 되 었다.
소란스러움이 커지자 자연스레 인 파도 점점 늘어났다.
괜히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최서윤이었다.
그 옆의 송숭아 역시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당혹보다는 흥미의 감정이 더 커 보였다.
“하……
구경꾼 중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더 부끄러움이 밀려온 다.
괜히 시간 끌면 나나 저 애나 좋 을 게 없겠지.
그냥 빨리 거절하자.
나는 꽃다발을 억지로 돌려줬다.
여학생은 꽃다발을 받더니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미안한데 연애 생각은 없어서.”
너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리고.
내 말에 여학생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움 찔거리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 혔다.
[‘1 참’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이건 또 뭐야?
예상치 못하게 포인트를 획득했지 만, 썩 기분이 좋다거나 하지는 않 았다.
그저 이 불편한 상황에서 딸리 도 망치고 싶을 뿐.
“……아무튼. 거, 마음은 고맙다. 그럼 가볼게.”
위로 겸 고개를 푹 숙인 여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리고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빠른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뒤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 가 다시 들려왔다.
—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네.
—어쩔 수 없지. 저게 맞는 거야. 애초에 아는 사이도 아닌 거 같더 만.
—그래도 너무 매정하다. 더 상처 안 받게 끝낼 수 있었잖아.
아니, 매정하기는.
얘네가 어려서 뭘 모르네.
[‘매정한 남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뭔데.”
황당한 업적에 당황해하고 있는데 스마트 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진우 님, 오늘 한성제약과 마정석 독점 관련 미팅 날입니다.]
양태민에게 온 메시지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외부자의 혜 택을 이용해 곧바로 답장했다.
[네, 대본대로 잘해주시면 됩니다. 계약 잘 마무리하시고요.]
오후, 한성제약 본사.
한세연은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확
인하고 있었다.
이제 곧 JWK와의 미팅이 시작된 다. 최근 부족한 물량으로 값이 하 늘로 솟아버린 마정석의 독점 거래 미팅이 었다.
“……흐음. 우리랑 거래해줄 거라 고 예상 못 했는데.”
물론 한성제약은 다른 기업에게 절 대 밀리지 않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 기는 했다.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오빠, 한세 진이 경영하는 한성개발에서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들었기 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거기다 한성개발이라는 최고의 기 업이 주는 안정감의 이미지도 있으 니까.
“JWK......
묘하게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는 회사명이다.
혹시나 해서 조사해보기는 했는데 비상장기업이고, 본사는 또 신철공 방이라는 공방 회사로 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신철공방 마저 본체는 아니 었다. 신철공방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의 빈껍데기였으니까.
뭐 하는 회사일까? 겉으로 보기에
는 양태민이라는 사람이 회사 주인 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진짜 주인은 맞긴 한 걸까?
그때 였다.
똑똑.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더니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한세연 본부장님. 양태민이라고 합니다.”
양태민이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
밀었다. 한세연은 그의 손을 맞잡았 다.
“반갑습니다. 양태민 대표님. 편하 게 앉으세요.”
“넵.”
양태민은 자리에 앉았다. 푹신한 의자의 감촉을 느끼다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 가문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보니 괜히 심장이 떨렸다.
동시에 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한세연은 양태민을 바라보며 비즈 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한성제약과 독점 계약하게 된 건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네, 저희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하.”
“근데 어떤 조건을 보시고 한성제 약을 선택하셨나요?”
한세연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면을 보았길래?
“아, 그게……
양태민을 말끝을 흐렸다.
“미래에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짜에서는 마정석 사업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 있거든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성제약보다는 한세진이 경영하는 한성개발을 선택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결정이었으 니까.
한세연은 잠시 의문을 느꼈지만, 빙긋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렇군요. 저희도 좋은 관계를 유 지하고 싶네요.”
그렇게 계약을 위한 이야기가 진행 되려는 때였다.
갑작스레 문이 활짝 열리며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 오빠?”
한성 그룹의 유력한 차기 오너 후 보. 한세진이었다.
그의 등장에 놀란 것은 한세연뿐만 이 아니었다.
양태민 또한 크게 놀랐다.
티비에서나 볼 수 있던 거물을 이 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한세진은 성큼성큼 양태민에게 다 가가더니 손을 내밀었다.
“양태민 대표님 맞으시죠? 한성개 발의 한세진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양태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악수 를 받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키도 크고 얼굴에 도 귀티가 가득 흘렀다.
한세연도 그렇고 이쪽 집안의 사람 들은 인물이 출중했다.
“양태민 대표님께서 이곳에 오신다 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왔습니다. 우리 한성개발과 계약하시죠.”
한세진이 자신감에 찬 말투로 말했
그의 말과 상황, 양태민은 한세진 의 강한 의지를 느꼈다.
한세진 정도 되는 인물이 직접 움 직였다는 것만으로도 의지는 충분히 보여준 셈이었으니까.
“오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보다 못한 한세연이 나섰다.
“뭐 하는 짓이긴. 어차피 한성제약 도 나중에 다 내 거가 될 텐데. 다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이야.”
“......뭐?”
한세연은 순간 황당함을 느꼈다.
한세진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 금까지 경영에 관심 없는 척을 해오 긴 했지만,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말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따는 한성제약과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양태민의 말에 한세연이 안도감을 느꼈다.
“저번에 제시한 조건의 20%를 더 드리죠.”
“......20%요?”
하지만 이어지는 한세진의 말에 양 태민이 당황했다.
20%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이니까.
“그리고 JWK의 본사인 신철공방 에도 투자하겠습니다. 다른 공방 관 련 사업에서도 최선을 다해 협력할 거고요.”
파격적인 조건에 양태민은 혼자 결 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양태민은 양해를 구하고서는 뒤로 물러나 전화를 연결했다.
—네, 무슨 일이죠?
김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태민은 방금 있었던 일을 김진우 에게 작은 목소리로 전했다.
—전쟁이네요. 한세진이 직접 나설 줄은 몰랐는데.
“어쩔까요?”
—그냥 적당히 딜하는 척하다가 계 획대로 한성제약으로 넘겨요.
“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면 한성 개발 쪽이……
그때 김진우가 양태민의 말을 자르 고 말했다.
—미래 한성가의 주인이 한세진이 된다면 그렇겠죠.
«.
—하지만 한성가의 주인은 한세연 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만들 거고요.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무슨 의 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에 양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양태민이 그들의 앞에
섰다.
한세진은 양태민을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보스가 뭐라고 하던가요?”
한세진은 자신이 누군가와 통화한 것만으로 자신의 위에 다른 누군가 의 존재를 눈치챈 모양이다.
한세연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고.
딱히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어제의 김진우 역시 이런 상황을 예측했었으니까.
양태민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 고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
“계약 얘기부터 다시 해보죠.”
[원래 계획대로 한성제약과 계약했 습니다. 다만 한성개발이 계약 전에 뛰어들면서 기존 조건의 20%를 추 가로 받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늦은 밤. 체력 단련을 마친 나는 양태민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이 늦었 는데 남은 시간 푹 쉬길 바랍니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놓고는 앉아있 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 후우......
오랜만에 근력 단련을 했더니 온몸 이 욱신거린다.
방학 동안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발현계 훈련을 할 시간도 모자란 탓 이었다.
오늘부터 근력도 다시 키워야지.
“으아!”
기지개를 쭈욱 켜고는 단련실 내부 의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나는 샤워실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근력 단련을 최근 못했는데 몸은 오히려 더 좋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펌핑 때문이 아니라, 골 격에서 차이가 느껴졌다.
“진짜로 아직 골격이 변하고 있는 건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확인할 방법 이 없어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는 체력 단련실 밖으로 나왔다.
그때 였다.
아주 우연히 전공 책을 들고 이동 하는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최서윤?”
내 부름에 최서윤이 몸을 돌려 나 를 바라보았다.
“어? 선배님?”
최서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 히 나를 바라보더니 °}! 하며 정신 을 차린 듯 내게 다가왔다.
“체력 단련실 다녀오셨나 봐요.”
최서윤이 살짝 젖은 내 머리를 보 더니 말했다.
“어. 넌 도서관 다녀왔나 보네.”
“네!”
최서윤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 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앞으로 걸었다. 기숙사가 다르긴 하지만 방향 자체 는 같았기에 함께 이동했다.
그렇게 어두운 마법사관학교의 거 리를 걷고 있던 때였다.
멀리 어둠 속에서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를 피는 지저분한 수염의 남성.
최일현이었다.
“선생님?”
내 부름에 최일현이 입에 문 담배 를 손으로 쥐었다.
“어, 우리 귀여운 제자 왔냐?”
“......제자?”
최서윤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개인지도 선생님이야.”
그제야 최서윤은 이해했다는 둣 고 개를 끄덕이더니 최일현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최일현은 약 2초 정도 최서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히죽 웃 으며 말했다.
“아~ 너가 걔구나!”
“……누구요?”
“학교 들어오니까 너 무슨 공개 고 백받았다고 소문났던데. 결국 사귀 는 거야〜?”
“넷? 저, 저 아닌데요?!”
최서윤이 놀라서 손을 빠르게 휘저 었다.
최일현은 최서윤을 바라보더니 다 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얘 아니에요.”
“아, 그러냐? 하긴, 이런 애가 너 한테 고백할 리 없겠지.”
“......흠흠.”
최서윤이 민망해하는 얼굴로 헛기 침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두 분 이서 할 얘기 있으신 거 같 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선배님, 그 럼 내일 봬요!”
최서윤은 그 말을 끝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최서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 최일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긴 무슨 일이세요? 개인지도는 다음 주부터인데.”
내 말에 최일현이 담배를 다시 쪼 옥 빨았다.
“스숭이 제자 보고 싶다는 데 이유 가 더 필요하냐?”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시고 요.”
정색하듯 말하자 최일현이 연기를 내뿜으며 쯧쯧 고개를 저었다.
“얘도 참 귀염성이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고서는 내게 말했다.
“그래, 본론으로 넘어가마.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다. 그리고, 원반격을 제대로 익히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거 사실이냐?”
아무래도 내가 원반격을 사용했다 는 소문을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 고 싶었나 보다.
“완전히는 아닌데, 보여드려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