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화
귓가에 들려오는 남성의 말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도적한테 도망친 일반인인 줄 알았 는데 알고 보니 도적이었다.
그것도 마법을 구현할 줄 아는 도 적.
뜬금없는 상황에 잠시 당황해하고 있는데 남성이 내게 마법을 방출했다.
파앙!
나는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고개 를 꺾으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뒷발 차기로 남성의 가슴을 강타했다.
“컥!”
가슴을 가격당한 남자는 뒤로 날아 가더니 그대로 나무에 처박히며 기 절했다.
내 빠른 대처에 놀란 다른 두 명 의 도적 일행은 잠시 당황하더니 각 자 자신의 마법을 사용하며 나를 공 격하려 했다.
하지만 마법을 다룰 수 있다고 해 봤자 도적.
마법의 수준 자체는 낮았기에 다시 가볍게 발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쉽 게 한 명을 기절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한 명이 남았다.
이놈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전의 두 놈처럼 기절시킬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작게 마법 구체를 구현하여 녀석의 어깨에 쏘아냈다.
파앙一!
“끄악!”
남자가 괴로움이 섞인 비명을 내질 렀다.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고통 을 호소하더니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끄흑! 흐흐흑! 사, 사, 살려줘어!”
나는 남성 앞에 쪼그려 앉아 가만 히 바라보다가 샤키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샤키아는 나를 보더니 마치 도적이 라도 마주친 듯 홈칫 어깨를 떨었다.
“얘네 어떻게 할까요?”
내 물음에 샤키아가 긴장된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유심히 남자의 얼굴을 살 폈다.
“……이 사람들.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지명 수배자에요. 강도 살인을 저지른.”
나는 남성의 얼굴올 바라보았다.
별거 없어 보이는데 나름 악명 높 은 녀석들이었다.
샤키아는 남성을 바라보더니 네팔 어로 물었다.
“®%@#!”
외부자의 혜택의 해석에 따르면 ‘남은 일행은 어디 있고, 네 몸의 피는 무엇이냐?’였다.
남성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와 샤키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도, 동료의 피야…… 주, 죽었어. 악마. 악마 놈들이 동류의 팔과 다 리를…… 크흐흐……
“ 악마?”
샤키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라…….
나는 본능적으로 저들이 말하는 ‘악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마 자운올 말하는 것일 것이다.
자운 또한 질병의 마수 토벌 에피 소드에 등장했었으니까.
그나저나 자운을 마주치고도 용케 도 살아있네.
하긴, 피도 눈물도 없는 자운이지 만, 가끔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살려두는 때도 있다고 듣 긴 했다.
고약한 악취미인 거지.
그때 이서준이 내게 다가왔다.
“지명 수배자면, 저 몸에 묻은 피 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 생겨난 건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 들어보니까 동료들의 피라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이서준이 신기해하는 눈으 로 나를 바라봤다.
“……너 네팔어도 할 줄 알아?”
“ 대충은.”
그렇게 대답하고선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계속해서 괴로운 신음을 내
고 있었다.
중간중간 실성한 듯 혼자 웃는 데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인 다.
단순히 자운과 마주쳐서 저러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이 녀석들 설마.
그때 이서준이 남자에게 다가가려 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재딸리 손을 뻗어 이서준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다가가지 마!”
내 단호한 말에 이서준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이서준이 뒤로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는 손끝에 마력 구체를 구 현해 남성의 상의를 잘라내었다.
치이이익……
이내 옷에 숨겨져 있던 검은색 피 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염자?”
이서준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남성의 피부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원작과 뉴스를 통해서만 들었는데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생각보다 훨씬 끔찍했다.
단순히 피부가 변색 된 것뿐만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나는 네팔어로 남성에게 물었다.
“검은 마수를 마주쳤나?”
“그, 그래. 마주…… 마주쳤어…… 검은 마수……
“언제 마주쳤지?”
“악마, 악마 녀석들한테…… 겨우 도망치고 10분 정도 후에……
“지금으로부터 몇 분 전인지 말 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크흐 흐..
나는 착잡한 눈으로 남성의 피부에 들러붙은 피를 바라보았다.
아직 피에 온기가 느껴지는 걸 보 아하니 그렇게 오래전에 겪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운이 나쁘면 이곳에서 자운을 마주 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네.
나는 남성에게 떨어진 뒤 이서준에 게 시선을 돌렸다.
“이서준. 여기 검은색 부위에서 마력 느껴지지?”
“웅. 미세하게 느껴지네.”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까 이건
병이 아니라 저주의 일종인 거 같 아.”
“저주?”
이서준의 물음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검은 마수를 상대할 일 이 있으면 근접전은 최대한 피해. 알고 있으라고.”
내 조언에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이 사람들 어떻게 할까?”
나는 남성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놔둬야지. 괜히 접촉했다 가 우리한테 감염될 가능성도 있으 니까.”
이서준은 이 상황이 영 탐탁지 않 은듯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이놈들 지명 수배자야. 아마 많은 사람을 죽여 왔겠지. 동정심 가질 필요 없어.”
“저 사람들한테 동정심을 느끼는 게 아니야. 그냥, 이런 괴질이 이 나라에 돌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서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샤키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죠?”
“아, 거의 다 왔습니다. 이 정도면 아마 15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15분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가죠.”
같은 시각, 네팔의 정글 어딘가.
—꿰에에엑!
마력으로 이루어진 전기의 창에 몸 이 꿰뚫리며 검은 멧돼지가 쓰러졌다.
이내 검은 멧돼지의 사체에서 검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백은성은 검은 마력을 구경하기 위 해 한 발짝 다가갔다.
“야야. 백은성! 뒤로 떨어계’’
“나도 알아. 신기해서 구경만 하는 거야.”
백은성이 멧돼지 앞에 쪼그려 앉으 며 말했다.
그때 뒤에서 가방을 뒤적거리던 나 타샤가 양손에 장갑을 착용하더니 주사기 형태의 마도구를 손에 쥐었다.
“백은성 비켜봐. 질병의 마력 추출 하게.”
“어어.”
백은성이 자리를 비켜주자 나타샤 가 멧돼지의 사체에 가까이 다가갔 다.
푸욱!
주사기의 바늘이 멧돼지의 사체에 꽂혔다. 이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마력이 주사기의 안에 가득 차 올랐다.
이 주사기의 이름은 ‘마력 추출기’.
각종 연구에 사용되는 마력 추출 도구였다.
“오케이. 일단 재료는 얻었고.”
“이거로 이제 질병의 백신을 만들 면 되는 거지?”
“웅. 정확히는 백신이 아니라 저주 를 속이는 약이지만.”
나타샤는 주사기에 담긴 검은 마력
을 물이 담긴 투명한 플라스크에 주 입했다. 이내 물은 검게 물들더니 검은색의 액체가 되었다.
나타샤는 그 액체 안에 알약 하나 를 집어넣었다.
검은 액체가 알약에 흡수되며 플라 스크 안이 텅 비게 되었다.
“완성~ 이걸 먹으면 몸에 저주의 마력이 풍기게 돼서 다른 저주를 속 일 수 있어. 그럼 먼저 먹을 사람?”
“음. 나는 양보할게.”
백은성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도 양보할게. 소중한 동료가 우 선이니까.”
진도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스카도 눈치를 보더니 허허 웃으며
손으로 X자 표시를 지었다.
나타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들 을 바라봤다.
검증되지 않은 약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괜히 실험의 희생양이 되 고 싶지 않으니 저렇게 내빼는 것이 고.
“ 에휴.”
나타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알약 을 입에 털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검은 마력이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다.
“오오.”
주변에서 신기해하는 얼굴로 그녀 를 바라봤다.
“몸에 이상은 없어?”
“없어. 애초에 마력 추출기로 마력 의 형태만 뽑아낸 거라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게 바뀐 거야.”
“흐음.”
나타샤는 손을 탁탁 털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한시가 급하니까 딸리 다음 마수 나 찾자. 협회보다 빠르게 레어 (LairX 찾아야 하잖아?”
1시간 뒤.
히말라야의 하늘 위에서 푸른 빛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새 한 마 리가 하늘 위로 비상했다.
“조사해본 결과 ‘검은 마수’는 감 염된 몬스터나 마수가 아니야.”
동료의 소환수인 새 위에 올라탄
유아연이 통신 마도구에 대고 말했다.
[감염된 게 아니면 뭔데?]
“소환수야. 소환수보다는 사역마라 고 하는 게 맞겠지.”
[……사역마라고?]
통신 마도구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 리가 들려왔다.
“웅. 직접 눈으로 확인했어. ‘질병 의 마수’가 검은 마력을 사용해서 검은 마수를 소환하는걸.”
[와. 그 많은 마수가 전부 사역마 였다니. 재앙급 몬스터는 확실히 다 르긴 하네. 그럼 본체를 죽여야 해
결되나?]
“그럴 거 같아. 문제는……
유아연이 하늘 위에서 지상에 모인 검은 마수를 내려보았다.
“저 많은 마수를 처치해야 본체에 다가갈 수 있는데 그게 힘들다는 거 지.”
[본체는커녕, 다음 침공을 막는 것 도 힘들어 보이는데.]
검은 마수 떼의 마을 침공은 총 4 번 이루어졌다.
그중 2번을 유아연이 혼자서 막아 냈다.
하지만 지금 새로 생겨난 검은 마 수들은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수가 많았다.
아무리 최정상급의 광역 마법사인 유아연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저 많 은 마수를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계가 얼마나 유지되려나.”
지금 히말라이산맥 주변으로 강한 결계가 치러져 있었다.
협회에서 파견된 50명의 고등급 결계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초거대 결계였다.
바로 이 때문이었다.
[누나, 그 외에 다른 정보는 없 어?]
“음. 다른 정보라면, 레어를 발견했 어.”
[……레어라면 드래곤 레어?]
“웅. 발견한 레어의 개수는 총 4 개. 내 생각에는 질병의 마수가 계 속해서 이 주변에서만 활동하는 게 레어를 지키려고 하는 거 같아.”
[흐음. 레어라…….]
통신 마도구에서 고민에 잠긴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레어는 용의 은신처를 말한다.
보통 용은 레어에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기 때문에 레어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협회에서는 정체불명의 ‘질 병’이 사실은 병이 아니라 저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잖아?”
[어, 그렇지.]
“나도 질병이 아니라 저주가 맞다 생각해. 그리고 어쩌면 저주의 핵이 레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합리적인 의심이기는 하네. 일단 알았……]
쿠우우우우응一!
그때였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주변에 커다란 진동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아연은 놀란 눈으로 지상을 내려보았다.
동시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 의 압박감.
협회의 결계사들이 힘을 합쳐 만들 어낸 대결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 O O O.
검은 마력이 새하얀 산맥 위를 뒤 덮었다.
눈이 붉게 물든 지상의 마수들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엑!
어디선가 용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 오더니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질병의 마수’ 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게 날갯짓을 하자 거대한 돌풍이 불어왔다.
유아연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검은 마수의 침공이 다시 시작되었
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과 테벨라는 상당히 거 리가 있는 상태.
광역 마법사인 그녀가 부재한 지 금, 테벨라에게는 마수의 침공을 막 을만한 힘이 없었다.
“돌아가자!”
유아연의 외침에 새는 빠른 속도로 테벨라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거대한 새의 움직임보다 테 벨라를 향해 달려드는 마수의 움직 임이 훨씬 더 빨랐다.
유아연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마수의 침공에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절망감에 휩싸여 있을 때.
우우우우웅!
유아연의 머리 위에서 작은 마법진 하나가 떠올랐다.
이내 마법진의 위에서 마력의 기운 이 느껴지더니 마법 구체 하나가 빠 른 속도로 떨어졌다.
파앙!
소환수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이동 하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 다.
하지만 공격을 피해낸 자리에 새로 운 마법진이 다시금 구현됐다.
이어서 하나 더.
주변에 하나 더.
마법진은 마치 번져가는 물감처럼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내, 마치 폭우가 쏟아지 듯, 수백 개의 마법이 지상을 폭격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마력의 폭격에 유아연 은 당황하며 빠르게 소환수를 이끌 어 도망쳤다.
위험한 상황이 수십 번 있었지만
어찌어찌하여 겨우 마법진의 영향권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유아연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재앙이라고 불리는 검은 마수들이, 하늘 위에 쏟아지는 재앙에 휩쓸리 며 죽어 나가고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