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파앙!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마력 을 머금은 빛줄기 하나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땓었다.
그리고 빛줄기가 내 손에 닿으려는 그 순간, 원반격을 구현했다.
우우웅!
동시에 손바닥 위로 떠 오르는 푸
른 빛의 작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빛줄기가 마법진에 만나는 순간, 궤적이 왼쪽으로 꺾이며 벽을 크게 강타했다.
콰아아앙!
[‘마력의 방향 이동’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됐다!”
서울의 사설 마법 훈련장.
12번의 시도 끝에 원반격을 성공 시켰다.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을 바 라보았다.
아직도 통증으로 욱신거린다.
원반격의 타이밍을 맞추는 연습을 하다가 11번이나 맨손바닥으로 마 법에 맞았기 때문이다.
훈련용 마법 발사기의 강도를 크게 낮추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내 손 바닥은 피를 철철 홀리고 있겠지.
“생각보다 어렵네.”
이론상으로는 0.5초의 타이밍에 맞 춰 사용하는 것이 쉬워 보였지만 직 접 해보니 아니었다.
마법진의 구현과 발동하는 시간을 정교하게 컨트롤 하는 것이 생각보 다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계속 연습하다 보면 성공률이 늘어 날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당장 실전에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천천히 연습하면 되겠지.”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외부자 의 혜택을 발동시켜 오늘의 훈련 결 과를 확인했다.
[전기속성 제어술][등급:0(92%)]
오늘은 원반격의 타이밍 훈련을 제 외하고도 전기속성 숙련도 훈련을 진행했다.
상승 폭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훈련 덕에 완전 습득까지 약 8%가 남았다.
슬슬 다음 속성을 궁리할 때이다.
“……뭐가 좋으려나.”
내 생각에는 가장 무난한 건 얼음
속성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에게 화염 속성은 메리트 가 없었고, 얼음 속성이 가진 유틸 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써먹기 좋기 때문이다.
아니면 5대 속성을 제외하고 비주 류의 속성을 익히는 것도 괜찮을지 도 모른다.
예를 들면 ‘바람’이라던가 ‘땅’이라 던가.
바람은 보통의 마법이 가지고 있는 ‘폭발력’은 없지만, 마법으로 구현하 기 힘든 ‘날카로움’과 ‘예리함’을 구 현할 수 있다.
절단력이 있기 때문에 근거리 전투 에서는 다른 마법에 비해 더 특출나 다는 장점이 있다.
땅은 단단함이 특징이다. 특히 ‘벽’ 과 같은 방어형 마법을 사용할 때 빛을 발한다.
‘물’ 속성도 유틸적인 부분에서 쓸 만하기는 하지만 전투에는 영 쓸모 가 없다.
“그래도 얼음이 가장 좋긴 하겠 지.”
불, 얼음, 빛, 전기, 무(無).
5대 속성이라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다른 속성에 비해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고 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일단 얼음 속성은 마력을 고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웬만한 단점이 정 부 상쇄된다.
뭐, 아직 전기속성의 완전 습득까 지 8%나 남았으니 천천히 궁리해도 되긴 하겠지.
슬슬 속성의 ‘시너지’도 생각해볼 때가 되었으니까. 예를 들면 불과 땅 속성을 합쳐서 용암을 만든다든 지 말이다.
띠링!
그때 주머니 속 스마트 학생 수첩 에서 알람이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 로 어떤 메시지인지 눈치챘다.
[네팔행 출입국 게이트 : 금일 오 후 1시]
“슬슬 가볼까.”
나는 훈련장 구석에 미리 챙겨놓은 짐들을 챙겼다.
드디어 겨울방학의 메인 에피소드 가 시작되었다.
오후 12시 40분.
필요한 짐을 가득 챙기고 인천의 출입국 센터로 향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외여행의 설렘 을 가득 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저들과 같이 해외 방문에 설렘을 느끼고 싶었지만 앞으로 어떤 위험한 일을 겪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아 그저 두려울 뿐이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자 익숙한 얼굴 을 발견했다.
건물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스마트 학생 수첩을 내려보고 있는, 두꺼운 잠바를 입은 남성.
“이서준!”
멀리서 내가 크게 부르자 이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의 시선 역시 나를 향해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서준’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
이서준의 얼굴을 확인한 몇몇 사람 은 연예인이라도 본 마냥 놀란 표정 을 지었다.
“……김선우. 5분 지각이야.”
내가 다가오자 이서준은 눈을 가늘 게 뜨며 말했다.
시간 약속에 그렇게 엄격한 스타일 은 아니긴 했지만, 워낙 날씨가 춥 다 보니 짜증이 난 모양이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뭐 보고 있었냐?”
이서준에게 다가가서 손에 쥔 스마 트 학생 수첩의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는 네팔과 관련된 기사가 띄 어져 있었다.
“네팔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
한 모양이더라고.”
“네팔 정부에서 나 같은 학생한테 도움 요청하는 거 보면 말 다 했지. 인력이 많이 부족한가 봐. 질병 때 문에 마법사들이 파견 오는걸 기피 하는 모양이더라고.”
내 말에 이서준이 잠시 생각에 잠 기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들이 이번 사태를 기피하는 것도 맞기는 한 데. 그것보다는 네 마법이 상황을 타개하기 좋아서 그 런 걸 거야. 마수의 수가 몇천 마리 는 넘는다며.”
지금 네팔의 마수 습격 사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몇 달 전의 ‘아프리카 괴물 메뚜기 떼 습격’ 사건 때와 비슷한 느낌이 기는 했지만, 위험성을 생각하면 그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정체불명의 ‘질병과 오염’은 마법사들도 대처하기 힘들었고, 또 이번 사태를 일으킨 마수는 메뚜기 처럼 지능이 낮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지적 생명체인 ‘용’ 이니까.
“그래도 네 덕에 귀찮게 유적지를 찾아다닐 일은 없어져서 다행이네. 네팔 대사관에서 마수 사건 도와주
면 신비를 주기로 했다며?”
“맞아.”
3일 전, 나는 네팔의 대사관에 갑 작스러운 연락을 받게 되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기말시험에서 사용한 마력의 폭우 를 이용하여 마수들을 처치해달라 고. 그리고 학생 신분인 만큼 안전 은 최대한 보장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원작의 흐름에 따라 이서준 과 네팔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 사건 에 엮이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혹시 모르니 대가로 프랑스의 ‘마정석 드 림캐처’와 비슷한 가치의 신비를 요 구했다. 그리고 이서준과의 동행 이야기도 꺼냈다.
솔직히 말해 네팔이 내 조건을 수 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 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네팔 정부 는 내 조건을 수락했다.
아무래도 기사에 뜬 상황보다 네팔 의 현 상황은 더 심각한 모양이다.
하긴, 원작에서도 꽤 끔찍한 일들 이 많이 벌어졌으니 이런 상황도 어
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아무튼 원작의 내용처럼 네팔의 숨 겨진 유적지를 찾으러 귀찮게 돌아 다니지 않아도 됐다.
나로서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서준이 몸을 웅크리더니 내게 말했다.
“으, 춥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 단 넘어가자.”
한편, 자운의 일행은 네팔의 넓은
초원 어딘가를 걷는 중이었다.
“뭐부터 할 거야? 테벨라로 바로 갈 건 아니잖아.”
“우선 마수의 질병을 피할 방법부 터 찾아야지.”
백은성의 질문에 베르트가 대답했다.
질병의 마수가 부리는 ‘검은 마수’ 에 접촉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질병 에 걸리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 다.
그 질병은 인간의 피부를 검게 물 들게 하고 또 온갖 잡병에 걸리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그들도 적극적 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약의 제조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까. 재료부터 구하자고.”
그렇게 넓은 초원을 걷던 그들은 덩굴과 나무가 우거진 정글에 도착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대기에 흐르는 자 연의 마나가 느껴졌다.
마법사들은 이런 자연의 마나에 감 싸지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특성 이 있다.
이들은 자연의 마나를 만끽하며 기 분 좋게 정글 안을 걸었다.
그때 였다.
멀리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자운 일행을 향해 걸어왔다.
그 수는 총 일곱, 얼굴에 두건을 뒤집어쓴 것을 보니 일반인은 아닌 것 같았다.
“쟤네는 뭐지?”
두건 쓴 자들은 자운의 일행을 향 해 걸어갔다.
이내 손 위로 마법의 창을 구현하 더니 자운의 일행에게 외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진 거 다 내
앞에 선 남성이 영어로 크게 소리 쳤다.
그리고 자운 일행들은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귀여운 협박 이었다.
출입국 게이트를 타고 우리는 네팔 에 도착했다.
날씨는 아열대 지역이라 그런지 따 듯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더운 건
아니고 서늘한 정도라고 해야 하나?
미리 조사해본 결과로는 지금 이 날씨가 네팔에서는 겨울이라고 한다.
나와 이서준은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친 뒤 밖으로 나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고민하는데 멀 리서 네팔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우리를 발견하더니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김선우, 이서준 학 생 맞으시죠?”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네팔 정부에서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깨
달았다.
“반갑습니다. 저는 네팔 재난부 소 속의 샤키아라고 합니다.”
샤키아라고 소개한 남성이 우리에 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와 이서준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 선우입니다.”
“이서준입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갑시다. 사실 이런 귀빈이 오시면 게이트를 이용해서 호텔로 안내해 드려야 하 는데. 사건 발생지역인 테벨라가 작 은 민간 마을이라 주변에 게이트도
없고 호텔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샤키아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차 로 안내했다.
나와 이서준은 차 뒷좌석에 앉았 다. 샤키아는 운전석에 앉더니 운전 을 시작했다.
이서준은 창밖을 바라보더니 샤키 아에게 물었다.
“상황이 어떤가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마수에게 접촉하면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마법사들의 지원도 거의 끊겼거든
요.”
“마법사 협회에서는요? 분명 지원 이 있었을 텐데요.”
“협회에서도 지원을 보내고는 있지 만,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협회 측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조사하는 게 우선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질병이라.”
이서준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차는 길을 따라 앞으로 나 아갔다.
길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평평한 초원에 도착했다. 말이 초원이지 사
막 같은 황폐함이 느껴졌다.
이 땅에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건 몬스터들이 전부 땅을 망가 트려서 그렇다.
네팔은 히말라야가 가까이에 있어 기본적으로 몬스터의 습격이 자주 일어나는 땅이니까.
차는 어느덧 거대한 정글 앞에서 멈추었다.
“여기서부터는 차로 이동할 수 없 으니 걸어가야 합니다.”
샤키아의 말에 나와 이서준은 차에서 내렸다.
“와. 자연의 마나 느껴져?”
이서준이 놀란 눈으로 정글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정글이 가진 자연의 마나는 강원도의 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 큼 진한 농도를 갖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 네.”
이서준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 용히 중얼거렸다.
“한국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첨 단 인공 시설이 많잖아.”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게 더 좋잖아.”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그냥 고개 를 끄덕였다.
“자, 제 뒤를 조심히 따라와 주시 면 됩니다.”
우리는 샤키아의 뒤를 따라 정글 안으로 들어갔다.
정글 안은 고요했지만 중간중간 몬 스터의 울음소리로 들리는 정체불명 의 음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여기는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B등급 이상의 몬스터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으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넵.”
그렇게 우리는 20분가량 정글 안 을 쭉 걸었다.
슬슬 정글의 고요함에 질리려는 그 때, 어디선가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세 사람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눈이 퀭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 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모 양이다.
“……뭐야. 피?”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샤키아는 긴장된 얼굴로 멈춰서더 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까 말씀을 못 드렸지만 요즘 마 수 사태로 혼란스럽다 보니 치안이 많이 안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 사 람들 도적들한테 당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보통은 살려 보내주지 않는 데……
“도적이라. 쯧......
이서준이 안타까운 눈으로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3명의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 더니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처럼 달 려들었다.
이내 벌벌 떠는 손동작으로 작은 마법 구체를 구현하더니 크게 외쳤 다.
“가, 가, 가진 거 다 내놔!”
«..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