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오후 3시의 훈련 센터.
나는 오후 훈련인 ‘1:1 괴수 대전’ 을 마치고 대기실 바닥에 앉아 휴식 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 상대한 몬스 터는 ‘거대 흡혈
박쥐’였는데 부피도 큰 주제에 가죽
이 얇아서 손쉽게 처치할 수 있었
다.
사실 그것보다는 최근 워낙 강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런 훈
련용 몬스터가 상대적으로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흐아아암……
유적지 공략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거친 훈련을 했더니 정신적으로 피 로하다.
크게 하품을 하다가 다른 학생들의 훈련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 는 거대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 를 이용해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오른쪽 모니터에서는 유아라가 화 끈한 화염 구체를 뿌리며 거대 홉혈
박쥐를 불태우고 있었고.
그 옆 모니터에서는 최서윤이 얼음 의 창과 얼음의 방벽을 구현하며 상 대하고 있었다.
은설아는 은월가 출신답게 환영 마 법진을 구현해 박쥐에게 혼란을 주 는 방식의 전투를 보였다.
그 후, 속박 마법으로 박쥐의 목을 조르는데 예비 1학년이라는 걸 생각 하면 믿기 힘들 만큼의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평소에는 엄청 낯을 가리 더니 전투할 때는 눈빛부터 달라지 는구나.
그렇게 학생들의 모습을 관람하는 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인기척은 내 옆으로 다가와 털 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 피곤해……
이마에 삐질삐질 땀을 홀리고 있는 이서준이었다.
이서준은 크게 하품을 하더니 힐끔 나를 곁눈질 했다.
“……넌 어째 멀쩡해 보인다? 안 피곤해?”
“안 피곤하겠냐? 당연히 피곤하 지.”
“……하긴. 괜히 미안하네. 나 도와 준다고 잠 못 잔 거잖아.”
“그렇긴 하지.”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지 만 괜히 생색을 내보았다.
이서준은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입 을 열었다.
“다음 일정은 어쩔래? 강령술 재료 가 몇 개 남았는데.”
“특훈 끝나면 하나씩 찾아봐야지. 재료 중 두 개는 다른 사람이 소유 하고 있잖아.”
“마정석 드림캐처는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있다고 했지?”
“맞아.”
내 대답에 이서준이 생각에 잠겼 다.
“……근데 박물관에서 대여도 안 해준다는데 교환이 되려나?”
“저번에도 말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가? 거절 못 하는 제안이 라…… 뭐가 있지?”
이서준이 등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 다.
“종류야 많지. 드림캐처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면 될 테니까. 그리고 드림캐처만 구한다면 남은 신비들은 솔직히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 아. 핵심 물건은 다 구했잖아.”
강령술에 필요한 재료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모성 재료들이 다.
예를 들면 영혼의 가루라던가.
이런 것들은 경매로도 충분히 구할 수 있기에 얻는 데에는 그렇게 어려 운 것은 없다.
“방학인데 더 바쁜 것 같네. 다음
주에 고.”
수련의 방 티켓도 사용해야 하
“ 아.”
맞다. 다음 주에 수련의 방 티켓도 써야 하지. 잠시 잊고 있었다.
진짜로 할 일이 태산이네.
“수련의 방 전까지 모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모아보자고.”
“그래.”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 피곤해애.”
그때 이현주가 힘없는 움직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눈이 퀭한 것이 함께 밤을 새웠지 만 얘는 며칠은 더 밤을 새운 것
같다.
하긴, 나와 이서준과 달리 이현주 는 육체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당 연한 걸지도 모르겠네.
이서준은 이현주를 보더니 옆에 앉 으라는 둣 살짝 자리를 비켰다.
이현주는 털썩 이서준의 옆에 앉았 다.
“피곤하면 다른 애들 훈련 끝날 때 까지 좀만 자."
“으음……. 그럴까?”
“어, 좀 쉬어.”
“그래야겠다. 오면 깨워줘.”
이현주는 그대로 대기실 바닥에 드 러누웠다. 남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쿨함이다.
나는 이서준을 보며 말했다.
“너도 피곤할 텐데 조금 자.”
“아냐. 괜찮아. 너나 자. 피곤할 텐 데.”
“나야 체력 좋은 거 너도 알잖아.”
이렇게 말하니 뭔가 이서준보고 체 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네.
이서준은 나를 흘겨보더니 입을 열 었다.
“……네 체력이 이상할 정도로 좋 기는 하지.”
이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잠깐 눈 좀 붙여야겠 다.”
이서준은 이현주 옆에 벌러덩 누웠다.
오후 8시.
2일 차의 특훈이 모두 끝나고 자
유시간이 찾아왔다.
피곤함에 당장이라도 숙소에 들어 가 숙면을 취하고 싶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정확히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최 근 남몰래 진행하던 계획과 관련하 여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이 다.
8시 30분쯤 연락해준다고 했었는 데.
“하아암.”
차가운 겨울바람이라도 쐬면 피곤 함이 조금이라도 사라질까 싶어 숙 소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할 때만 해도 하늘이 타 오르는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는 데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다.
바다의 풍경과 밤하늘을 보며 감상
법도 했지만 피곤해서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벤치가.
아, 찾았다.
숙소 앞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았 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주변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잠 깨려고 나왔는데 어째 분위기
때문인지 더 잠이 오는 거 같네. 자면 안 되는데 솔솔 눈이 감긴다.
번뜩 정신을 차렸다.
피곤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깜빡 졸았다.
취객도 아니고, 밖에서 잠들어 버 렸네.
그렇게 눈을 뜨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너 거기서 뭐하냐?”
“선배님,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요.”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최서윤이 양 손에 스마트 학생 수첩을 꼬옥 쥔 채 말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양 뺨에 붉은 기가 감돌았다.
“……너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냐.”
“어…… 한 5분 정도요.”
잠깐 잠든 거 같은데 5분이나 지 났다고? 그럼 지금이 몇 시지?
나는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8시 20분.
20분이나 잠들었다.
“자는 거 봤으면 깨워주지.”
“그러려고 했는데……
최서윤이 말끝을 흐리다가 말을 삼 켰다.
그러곤 헤헤. 어색한 웃음을 흘리 더니 스마트 학생 수첩을 겉옷 주머 니에 집어넣었다.
“너무 편하게 주무시길래 못 깨웠 어요.”
최서윤이 가벼운 몸짓으로 일어나 더니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크게
하품했다. 짧게 잠들어서 그런지 아 직도 잠기운이 남아있다.
“근데 오늘 이서준 선배님도 피곤 해 보이시던데. 두 분 다 밤에 안 주무셨어요?”
“......어.”
지어내서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 했는데요?”
“주변 좀 돌아다녔어. 유적지나 던 전 같은 게 없을까 해서. 강원도잖 아.”
강원도에서 마법사들이 던전이나 유적지를 찾는 것은 아주 혼한 일이
기에 최서윤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찾았어요?”
“그건 몰라도 돼.”
“아 진짜 치사하네.”
최서윤이 귀엽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근데 왜 들어가서 안 주무시고 취 객처럼 여기서 졸고 있어요. 설마 술 마셨어요?”
“야. 학생이 무슨 술이야.”
“……선배님 술 마시잖아요.”
최서윤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
다. 그 말에 할 말을 잃어 입을 다 물었다.
“……홈홈. 잠깐 기다릴 게 있어서 여기 있는 거야.”
“누구요? 이서준 선배님은 아까 주 무시러 가던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최서윤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설아?”
설아라면 은설아를 말하는 건가?
“은설아는 아닌데. 근데 걔는 갑자 기 왜 나와?”
“……어제오늘 보니까 꽤 친해 보
이시길래. 아, 그리고 선배님이 설아 병 고쳐 줬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병을 고친 건 아니……
순간 강한 바람이 불었다. 최서윤 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지 며 내 얼굴을 찰싹 때렸다.
«o »
三「...
“……앗!”
최서윤이 놀라며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다 이 상황이 웃긴 지 흔자 쿡 쿡 웃는다.
입술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는데 주머니 속 스마트 폰에서 작 은 진동이 느껴졌다.
“어? 나 할 일이 생겨서 이만 가 봐야겠다. 추운데 너도 빨리 들어 가.”
“네? 갑자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서윤이 뒤에서 나를 불렀지만, 뒤를 돌아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한 뒤 최서윤의 시선을 피해 가까운 사 각지대로 이동했다.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해 스마트 폰 알람을 확인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회사 설립 완료했고, 마공학 기계 는 전부 세팅 완료했습니다!]
[사진]
“오호.”
보내온 사진 속에는 마정석을 채굴 하고 있는 수많은 기계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진에는 ‘JWK’라는 이름의 회사가 걸려 있었다.
나는 최근 양태민과 동업을 시작했다.
양태민은 내가 원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고, 나는 양태민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갖고 있었다.
서로의 뜻이 맞았기에 별다른 갈등 없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과 동업한다는 건 조금 위험한 일일 수도 있지만, 원작의 양태민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냥 믿고 맡겼다.
나와 양태민이 설립한 회사, ‘JWK’는 공방과 마정석 채굴 외에 도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을 예정이 다.
회사가 커진다면 마법적 능력이 아
니더라도 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테지.
참고로 회사의 지분은 내가 90%. 양태민이 10%다.
그러나 회사의 대표로 활동하는 건 양태민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너무 바빠서 회사 일 에 신경 쓰는 건 불가능하니까.
[아, 그리고 이번에 채용공고로 온 이력서입니다.]
[사진]
나는 이력서의 사진들을 살폈다. 고연봉을 걸었더니 꽤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이력서만 보면 모두 범죄경력 없 고 성실해 보이네요. 일단 모두 면 접은 보기로 하는 게 어때요?]
[저도 그게 좋아 보입니다.]
[네, 그럼 맡기겠습니다.]
[넵!흐흐]
연락을 끊었다. 고작 3분 정도의 의견을 나누기 위해 여태 잠을 못
잤다는 게 조금 억울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나는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 고는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갔다.
최서윤은 아직 벤치에 앉아서 스마 트 학생 수첩을 내려보고 있었다.
누구랑 문자라도 하나 싶었는데 손 가락이 멈춰있는 걸 보아하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최서윤.”
내 부름에 최서윤이 불시에 옆구리 를 찔린 사람처럼 크게 놀란다.
“흣?!”
“……뭐 이리 놀래?”
“아, 아뇨. 갑자기 부르면 당연히 놀라죠!”
최서윤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 복했다. 그러고서는 어색한 손짓으 로 스마트 학생 수첩을 주머니에 집 어넣었다.
……뭔가 수상한데. 표정이나 행동 이나 떨림.
모든 게 어색하다.
마치 도둑질하다 들통난 사람처럼.
그러다 문득 어떤 가설이 떠올랐
“……너 설마. 또 그거냐?”
“네? 또, 또라됴?”
“스마트 학생 수첩 봐봐.”
“왜, 왜요?”
최서윤이 크게 당황했다.
“너 저번처럼 협박 문자 온 거 아 니야?”
예전에도 최씨 가문에 악감정을 가 진 인물들이 그녀에게 협박 메시지 를 보낸 적이 있었다.
최근엔 그런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또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겠지.
최서윤은 눈을 깜빡였다.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럼 뭔데?”
“정말 갑자기 불러서 놀란 거라니 까요?”
협박 메시지는 아니라는 듯 말투가 단호해졌다.
“……그러냐?”
내 대답에 최서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고. 추운데 빨리 들어가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