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화
“거점의 신비가 너한테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나 보네.”
김창현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내 게 말했다.
먼저 신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본인도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지만 말투나 행동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거점의 신비가 네게 뭐라고 했 지?”
“네게 근본이 보이지 않고 친근함 이 느껴진다고 했어.”
“그래?”
김창현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 아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무 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나는 가만히 김창현을 바라보았다.
김창현.
3학년 1위라는 뛰어난 실력을 갖 췄음에도 원작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등장하지 않은 인물.
엑스트라처럼 자연스럽게 비중이 사라진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김창현에게는 원작에 알려지지 않 은 특별한 설정이 있었다.
이게 없던 설정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설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없던 설정이 생겨난 것이라 면 이건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커다란 걸림 돌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는 김창현에게 ‘인물 간파’를 사 용했다.
이름 : 김창현
나이 : 19
종족 : 인간 상태 : 긴장 마력 등급 : A-관심도 : 0
인물 간파 속 김창현의 상태창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19살, 인간, 마력 둥급 A-.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인물 간파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는 건, 지금 내 눈앞에 보이 는 김창현의 정보는 틀리지 않다는 이야기다.
대체 정체가 뭘까?
“말해. 네 정체가 무엇인지.”
김창현이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체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김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말해줄 수 없어.”
“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해주고 싶어도 말 못 해준다는 게 맞는 표 현이겠지.”
말해주고 싶어도 말을 못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제약이라도 걸린 건가?
“어째서지?”
“나는 너처럼 자유롭지 못하거든.”
알쏭달쏭한 말에 눈이 찌푸려졌다.
“나처럼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무 슨 소리야?”
김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
나는 혼란을 느꼈다.
알려주기 싫으면 알려주기 싫다고 하면 될 것을 말해줄 수 없다고 대 답하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김창현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그 때.
“……후우. 슬슬 한계네.”
김창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뭔가 싶어 김창현을 바라보니 어딘 가 아프기라도 한지 안색이 창백했다.
“이만 가봐야겠어.”
“갑자기 어딜 튀려고?”
“말했잖아.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야!”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저렇게 궁금증만 심어주고 그냥 가 버린다고?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말인데 나 찾을 생각하지 마. 만약 날 찾는
다고 해도 내가 해줄 말은 없으니 까.”
그렇게 말하던 김창현이 뒤를 돌았 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그 말을 끝으로 김창현은 신체를 마력으로 강화하고는 어디론가 빠르 게 달려 나갔다.
발현계 마법사가 보여준 움직이라 고 하기엔 강화계 못지않은 빠른 움 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마법을 최대한 압축 구현해
김창현을 향해 쏘아냈다.
파앙!
그러나 김창현의 몸 주변에서 강렬 한 장막이 펴지며 내 공격을 막아냈 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의 마법과는 차 원이 다른 단단한 형태였다.
이 정도 수준의 장막이라면 S등급 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멍하니 김창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대로 김창현은 실력을 숨
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어디론가 달려가는 김창현의 움직임은 내가 쫓아가기에는 너무나 도 빨랐다.
그렇게 온갖 의문에 빠져있는 사 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숭합니다.]
“......뭐야?”
인과율이 왜 올라?
김창현과의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하루 사이에 워낙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피 곤했다.
“응애.”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레텔이 나를 반겼다.
기말시험으로 3일간 못 봤더니 엄
청 반갑게 느껴진다.
“잘 지냈어?”
내 물음에 그레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에 위치한 그레텔 전용 쓰레기 상자에 소시지 껍질이 쌓여 있는 걸 보아하니 내가 없는 동안에도 잘 먹 고 지낸 모양이다.
그리고 3일 사이에 머리에 달린 열매의 노란빛도 더 진해졌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열매가 완전히 익을 것 같다.
설렘에 침이 고였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피곤할 텐데 빨리 자.”
그레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이불이 깔린 곳으로 걸어가 벌러덩 드러눕고 잠들었다.
나는 그런 그레텔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냈다.
내일은 휴일이니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겠지.
털썩.
소파에 앉고는 맥주를 한 모금 마 셨다.
“후우.”
시원한 맥주가 목을 넘어가자 피로 가 확 가시는 기분이 든다.
그와 동시에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김창현.”
정체가 뭘까?
신비는 김창현을 보고 나와 같이 근본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혹시 나와 같이 다른 세계에서 온 빙의자라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가 더 아파진 다.
이 세계에 내가 아닌 다른 빙의자
가 있다고?
“……아닌데.”
김창현은 원작에 비중이 거의 없다 시피 하지만, 등장인물은 맞다.
만약 빙의자라면 이 세계에 없던 ‘김선우’라는 인물이 생겨난 것처럼 원작에 없던 인물이 생겨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나와 같은 다른 세계의 인물이 김 창현에게 빙의했을 가능성도 있는 거니까.
“근데 신비가 친근감을 느낀다는 건 또 뭐지?”
흐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다.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신비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가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기 에 결론이 돌출되지 않았다.
신비가 만들어낸 인간이라던가. 혹 은 신비의 힘이 주입된 인간이라던 가.
당장 몸 안에 신비가 담겨 생기는 ‘신비 열병’이라는 병도 있으니까 불가능한 건 아닐 테지.
“……그걸 사용해볼까.”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권 능’을 살펴보았다.
[권능]
차원 관측[인과율 10]
—당신이 경험한 모든 차원, 시간 대를 잠깐 관측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분명 한 지금. 이제는 사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걸 사용한다면 세계의 비밀 하나 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관측 시점은 회귀 전, 이서준이 죽 던 시점으로.
“……뭔가 아까운데.”
인과율 10.
내가 보유한 인과율을 거의 다 소 모해야 했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힘 들게 모은 인과율이었기에 망설여지 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으..”
어쩔 수 없다.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괜히 아끼다가 더 큰 사고가 터지 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 다.
나는 곧바로 차원 관측을 발동했다.
[인과율 10을 소모합니다.]
[권능, ‘차원 관측’을 사용합니다.]
우우우웅…….
권능을 사용하자 내가 모르고 있 던, 새로운 에너지가 신체와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뒤, 내 몸 안의 마나 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권능 사용에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 은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는 않았다.
“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나가 빠 져나가는 속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룬의 속박과 마력의 폭우를 동시에 사용한 것보다 소모
량이 많을 정도다.
그리고.
“컥!”
당연하겠지만 이 정도의 마나 소모 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 니었다.
스으으으!
결국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주 체하지 못한 나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마력 탈진 현상에 빠졌다.
[마력이 부족하여 ‘차원 관측’올 중 단합니다.]
[인과율 10을 돌려받습니다.]
“아씨. 이게 뭐야?!”
큰맘 먹고 인과율을 사용했더니 전 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튀어나왔다.
설마 마력이 부족해서 실패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마나가 빠져나가는 속도만 보면 대 자연의 심장과 투쟁심을 함께 사용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차원 관
측을 사용할 수 없다.
“와. 진짜 어이가 없네.”
이럴 거면 권능은 왜 있는 거야? 인과율은 또 왜 있는 거고?
황당함에 멍하니 있자 잠에서 깬 듯 그레텔이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혼자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깬 모 양이다.
“미안. 자고 있어.”
시간이 홀러 월요일.
2학기 마지막 시험인 기말시험이 끝나고 첫 주가 시작되었다.
당연하겠지만 학교의 모든 시험이 끝나자 학교 분위기는 놀자판이 되 었다.
1학기가 끝난 뒤에도 그랬지만 2 학기는 학년이 끝나는 것이기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야. 이서준. 3학년 졸업식에 김창 현선배님 안 나오신다는데 진짜 냐?”
신영준의 물음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걸? 아까 방학식 때문에 선생 님이랑 대화 나눴는데 안 오신다고 들었어.”
“그러냐? 오늘 등교도 안 했다는 데.”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는 척 이서준의 대화를 엿들었다.
나와 있었던 일의 영향인지 김창현 은 오늘 등교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김창현은 이대로 졸 업까지 나오지 않을 모양이다.
“근데 상관없기는 하지. 이미 졸업 확정 지었는데 굳이 나올 필요는 없 으니까.”
“그래도 3학년 대표인데 이미지 관 리를 위해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 은데.”
나는 둘의 대화에서 관심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유시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뛰 어노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창틈 사이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솔 솔 느껴졌다. 어느덧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회귀하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다 보 니 어느새 한 학년이 거의 끝이 났 다.
‘곧 겨울 방학이네.’
나는 천천히 이번 겨울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떠올렸다.
저번 여름방학과 같이 이번 겨울 방학에도 꽤 큼지막한 사건들이 터 진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2가지.
그중에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사건도 있다.
그것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절로 깜 깜해진다.
아니, 그 사건들을 해결하기 전에 다른 일들도 꽤 쌓인 것 같은데.
“ 에휴.”
이걸 언제 다 처리하지?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네.
“뭘 그리 한숨을 푹푹 쉬어?”
그렇게 앞으로의 미래에 눈앞이 아 득해지던 그때, 유아라가 웬일로 내 게 말을 걸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유아라는 나를 흘겨보더니 내 옆자
리에 앉았다.
“너 성무제 확정 기사 떴더라. 학 교에서도 확정 오피셜 얘기해 줬 대.”
“그래?”
아직 성적표가 나오진 않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놀라지는 않 았다.
그런 활약을 했는데 성무제에 참가 못 하는 게 이상한 거니까.
“그리고 1위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 어.”
1위라. 이것도 잘하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다.
물론 마지막에 마력 탈진으로 쉬고 있던 사이, 이서준이 가장 많은 포 인트를 주는 대장들을 상대로 꽤 큰 활약을 해버려서 어떻게 될지는 모 르지만.
……잠깐.
나랑 이서준이 1위나 2위를 먹는 다고? 그렇다면……
“그럼 네가 3위겠네? 이번이 처음 아니야?”
“……뭐, 뭐래?”
유아라가 당황하더니 찌릿 나를 노 려보았다.
그러곤 잠시 후 유아라가 뭔가 할 말이 있는지 힐끔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너 기말시험에서 쓴 폭우 형 태, 그거 동시 구현을 응용한 거야? 아니면 분산 형태를 웅용한 거야?”
유아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갑자기 말을 거나 싶더니 이게 목적이었네.
시험에서 패배했지만, 배울 건 배 우자는 학구열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이용한 거야. 동시 구현을 발판으로 해서 여러 개로 분산하는 거지.”
내 대답에 유아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해?”
“어. 가능해.”
나도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포인트 를 쓰니 되더라고.
어느새 유아라는 진지한 얼굴이 되 어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동시 구현 이후, 분산 형태를 사용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하 는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뒤, 잘 풀리지 않았는 지 그녀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한 거지?”
그게 쉽게 되겠냐.
무려 12만 포인트짜리 능력인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