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화
기말시험이 끝난 뒤 대기실.
각 팀끼리 모여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승자인 B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와. 진짜 김선우. 반전이네.”
“그러게. 앞에서 지시를 내려서 뭔 가 했는데 다 이유가 있던 거더라.”
그리고 그 담소의 내용 대부분은 김선우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B팀의 치명적 인 약점으로 꼽히던 광역마법의 부 재를 김선우 혼자서 상쇄해버렸으니 까.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의 엄 청난 광역마법을 선보이며 말이다.
그렇게 각자 시험의 감상을 나누던 사이.
이서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 를 찾고 있었다.
찾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 지 않았다.
B팀 대기실 구석에. 누군가를 중심 으로 눈에 띄게 많은 학생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서준은 곧바로 그곳으로 걸어갔 다.
“김선우.”
“어, 왔냐?”
김선우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에 있던 한 여 학생이 김선우의 어깨를 흔들며 말 했다.
“아니, 그래서 그 마법 어떻게 익 혔냐니까?”
“그냥 어쩌다 익히게 됐다고 몇 번 을 말해.”
김선우가 귀찮다는 듯 어깨에 얹은 손을 떼어내었다.
“아! 그게 말이 되냐고!”
“그러게. 그거 말해주는 게 어렵 나?”
이번에는 왼쪽의 한 남학생이 팔짱 을 끼며 중얼거렸다.
이서준은 그런 김선우를 보며 쓴웃 음을 지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질문 공 세에 당하는 모습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질문하는 학생들의 입장
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정작 본인도 김선우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있었으니.
그래도 오늘은 김선우의 활약으로 평소 자신이 받던 관심이 줄어들어 조금 편한 감이 없잖아 있긴 했다.
‘……근데 그 광역마법은 진짜 어떻게 한 거지?’
오늘 김선우가 보여주었던 폭우 형 태의 마법을 이서준은 다시 떠올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런 형태의 광역마법은 하루 이틀 연습한다고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최소 3년 이상의 연습 시간이 필요하겠지.
대체 얼마나 연습했으면…….
아니, 이건 연습만으로 되는 게 아 닌데.
“……천재네.”
“응? 방금 뭐라고 했냐?”
이서준의 작은 중얼거림에 김선우 가 반응했다.
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뭐, 그래.”
김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주변 학생들의 질문이 김선우 에게 쏟아졌다.
김선우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 에서 일어났다.
“어? 야. 김선우 어디가? 질문에 대답은 해줘야지!”
“나 지금 뭐 좀 생각해야 할 게 있 으니까 혼자 좀 내버려 둬라.”
“생각할 게 뭔데?”
“몰라도 돼.”
김선우는 그렇게 툭 말을 던지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지막에 보인 그의 기분은 정말로 안 좋아 보였기에 남은 학생들은 그 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다.
그렇게 김선우가 사라지고. 이서준 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주변의 관심 때문에 그런 것 같지 는 않은데.
“홈……
이서준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장소 를 이동했다.
문을 열고 대기실 밖 복도로 나왔다.
복도를 쭉 걷는데 우연히 우울한 모습으로 벤치에 앉은 익숙한 얼굴 을 발견했다.
“유아라.”
이서준의 부름에 유아라는 고개를 들고 이서준을 바라보았다.
“……이서준.”
유아라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마법사관학교 내에서 그 누 구보다 경쟁심이 강했고, 패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게다가 이번 대장전은 광역마법에 특화된 유아라에게 유리하다는 평이 많은 시험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녀가 이번 시험에서 1둥 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녀 역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패배했다.
심지어 그녀의 특기라 할 수 있는 ‘광역마법’ 분야에서도 김선우에게 밀렸으니 아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겠지.
이서준은 그런 그녀가 안쓰럽게 바 라보다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너 괜찮냐?”
“……위로하지 마. 전혀 도움 안 되고 오히려 더 비참해지기만 하니 까.”
이서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위로해줄 생각으로 그녀의 옆에 앉은 게 아니다.
그는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거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 고 싶어서.”
“거점?”
“웅.”
거점이 생성되고 난 뒤부터 계속 궁금했다. 거점 안에는 어떤 이벤트 가 있을까?
사실 이서준은 거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순간부터 자신이 거점에 입 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거점 공략에 관한 관심도 많았고, 각 팀의 최고 실력자를 뽑아서 입장 하는 것이었기에 더 욕심이 나는 것 도 있었다.
하지만 김선우의 만류로 거점 외부 에 남았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팀을 위해 그 는 김선우의 지시를 따랐다.
“거점이라……
유아라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입 을 열었다.
“거점이야 뗀하지. 미로 탈출하고, 함정 피하고. 수호 몬스터 처치하 고……
이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다른 것이 궁금했다.
“그런 거 말고. 듣기로는 거점 내 부에서도 이벤트가 있다고 들었는 데.”
“이벤트? 한 번 있기는 했어. 거점 점령 직전에 열린 이벤트였거든.”
유아라의 말에 이서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이벤트인데?”
“미로 같은 곳에 거점 참가 인원들 을 모아서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사 람이 숭리하는 이벤트야.”
생존 이벤트.
이서준의 머릿속에 대충 그림이 그 려졌다.
아마 마지막까지 생존하기 위해 눈 치싸움을 하다가 서로를 죽이는 그
런 형태가 되었을 거다.
“보상은 뭔데?”
“이게 보상이 엄청 쌔. 다음 충으 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티켓이 주 어지거든.”
“다음 충‘?”
다음 충으로 넘어갈 수 있는 티켓 이라. 층을 올라가야 하는 거점의 특성상 엄청난 보상이기는 했다.
거점의 마지막 층이 5충이니까, 웬 만해서는 이벤트에 승리한 사람이 거점을 점령할 확률이 높겠네.
“그럼 이벤트에서 김선우가 승리했 나 보네.”
“그러겠지. 걔가 거점을 점령했으 니까.”
“흐음.”
생존 이벤트라면 1:2의 상황이라 상당히 불리했을 텐데 잘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김선우도 대단하네. 혼자인데 끝 까지 살아남고. 혼자서 두 명을 상 대한 건가?”
“그건 아니야.”
“그럼?”
유아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
을 열었다.
“김선우는 마지막에 등장했어. 처 음에는 나랑 김창현 선배가 싸우고 있었거든.”
“그래?”
각 학년 최고의 발현계 마법사인 유아라와 김창현의 대결이라.
어떤 살벌한 공방이 이어졌을지 이서준은 궁금증을 느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 꼭 챙겨 봐야지.
“그래서 1:1로 싸우다가 김선우가 끼어들어서 걔가 이겼다는 거야?”
“맞아. 그리고 나는 김창현 선배랑 싸우느라 조금 지친 상태였거든. 그
래서 김선우가 끼어들자마자 난 바 로 탈락했어.”
밤 11시의 늦은 밤.
이서준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기숙 사로 돌아왔다.
이틀간의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그 의 발걸음에는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이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그리고 오늘 시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김선우.”
진짜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사실 김선우의 실력에 대해 긴가민 가한 게 있었지만 이번 대장전을 통 해 확신이 생겼다.
마법사관학교에서, 김선우는 자신 의 본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자신 의 능력을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단순히 겸손해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지 않아서. 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 2학년에 들어서부터 갑작스럽 게 실력을 보였다는 점이 그 중거였다.
만약 김선우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 하고 싶지 않은 게 이유였다면, 이 번 시험에서도 조용히 넘어가려 했 을 테니까.
“1학년 때는 숨겼지만, 2학년 때는 드러내야 하는 이유라……
이서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러다 문뜩 김선우가 깊게 관심을 두 던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성무제……
김선우는 성무제에 참가하는 것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이번 2학년 시험에서도 엄청난 실 력을 보인 이유 역시 성무제에 참가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성무제에 원하는 게 있는 건가?”
성무제에 참가해서 얻을 수 있는 거라…….
이서준의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답 을 찾아낼 수 없었다.
성무제와 관련된 정보들은 공정성 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보안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정보라고 해봤자 내년 봄에 시작되고 각 학교의 5위권 학생들만 이 참가할 수 있다는 것 정도.
또 하나 있다면 매년 성무제에는 ‘특별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도 있다.
“상품이라……
하지만 어떤 상품이 걸려 있을지는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흐음.”
이서준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단서가 부족하다.
부족한 단서로 억지로 추리해봤자 소설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서준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스마 트 학생 수첩을 켰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자 동시에 ‘김선우’에 관한 기사가 수도 없이 떠올랐다.
이서준은 대충 기사를 훑어보다가 이번 기말시험의 ‘거점 시험 영상’ 을 클릭했다.
짙은 어둠이 드리운 밤.
한 남성이 적막한 마법사관학교 내 부의 공원을 혼자서 고고하게 걷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공원 내부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성은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30분.
시간이 꽤 늦었다.
남성은 시계를 보던 손을 다시 내 려놓고는 남자 기숙사가 있는 방향 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기숙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피융!
남성의 등 뒤로 푸른 섬광이 번쩍 였다. 이내 마력이 담긴 의문의 투 사체 하나가 그의 등을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남성은 곧바로 반응했다.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손을 휘두르 며 장막을 펼쳐내었다.
동시에 강한 굉음이 울리며 주변에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콰앙!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남성은 침착하게 구현 한 장막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기습한 어둠 속에 숨은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 무언가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남성을 향해 걸어왔다.
뚜벅뚜벅.
거리가 가까워지자 공원의 작은 조 명이 어둠 속에 가려진 무언가의 얼 굴을 천천히 비추었다.
18-19세쯤 되어 보이는 외모.
검은 혹발.
남성은 눈앞 무언가의 맨얼굴을 보
고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무감정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때 무언가가 남성에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그 목소리에는 의문, 두려움, 분노.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남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마치 관찰이 라도 하는 듯 상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해!”
무언가는 다시 한번 손을 뻗으며
푸른 빛의 마법을 쏘아냈다.
그러나 남성은 이번에도 침착하게 장막을 구현해 마법을 막아내었다.
남성은 장막을 다시 풀어내고는 눈 앞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김선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무언가. 아 니, 김선우는 이를 악물었다.
“김창현. 너 뭐 하는 놈이야?”
김선우의 물음에 김창현은 지금까 지 지켜오던 무감정한 얼굴을 풀어 내고는 히죽 웃었다.
“거점의 신비가 너한테 이야기를 했나 보네.”
쓸데없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