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시험이 시작되고 1시간.
기말시험 첫날인 오늘은 비교적 평 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본격적인 팀 이벤트가 다음 날인 두 번째 날과 그다음 날인 세 번째 날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가장 큰 이벤트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투는 마지막 날인 세 번째 날에 이루어진다.
그런 이유로 전투 역할보다는 각자
새로운 역할을 맡아 일을 하기 시작 했다.
정찰, 경계, 식량 공급. 등등.
내 역할은 정찰이었다.
참고로 정찰 역할은 내가 스스로 지원했다.
아무래도 대장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 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흐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산을 오르 고 있다.
목적지 없이 이 넓은 곳을 돌아다
니는 것보다는 고지대에 올라서 한 눈에 살피는 것은 여러 이점이 있었 으니까.
“후! 공기 좋구만.”
가상 세계였음에도 자연환경이 현 실의 그것처럼 구현되어 있었다.
맑은 공기에 몸까지 정화되는 기분 이 든다.
공기를 들어 마시다가 산꼭대기에서 주변 풍경을 쭉 내려보았다.
넓은 초원과 숲. 그리고 그 사이사 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현대적인 건 물들.
마치 SF영화 속 비밀 연구실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쭉 주변을 둘러보는데 간간 이 많은 사람이 뭉쳐져 있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A팀과 C팀이었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 게 찾을 수 있었다.
“……다들 식량부터 구하네.”
마법을 사용해 주변 동물을 잡고 그것을 나르는 모습이 무슨 원시 부 족을 보는 것 같다.
‘합동 대장전’의 컨셉 자체가 이런 원시 부족의 전쟁을 모티브로 만들 어지긴 했지만.
그때 내 시야의 끝에서 여러 사람 에게 둘러싸인 한 남성의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3학년 1위, 김창현이었다.
“홈......
손가락을 꼼지락 움직이며 잠시 갈 둥했다.
김창현은 A팀의 대장.
암살할 수 있다면 굳이 대규모 전 투를 하지 않아도 A팀 전체를 탈락 시킬 수 있다.
거기다 A팀 생존자 수에 비례해 엄청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기도
하고.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 이곳에서 김창현을 암살할 자신도 있었다.
마력 은폐의 비약을 마시면 S등급 의 마법사라 할지라도 내 기습 공격 을 피할 수 없고, 마력을 깊게 압축 한다면 이 정도 장거리-위력은 서 서히 약해지겠지만-에서도 충분히 맞출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가상 세계에서 진행되는 시험은 모 두 실시간으로 외부에 생중계되고 있다.
조금의 욕심을 위해 마력 은폐 능 력을 사용한다면 더 까다로운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
“……쩝.”
다음 기회를 노리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럼 슬슬 이벤트 준비나 할까.
첫날에는 팀 단위 이벤트가 없지 만, 그렇다고 이벤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개인과 소규모 합동 이벤트가 있 다.
곧 일어날 첫 번째 이벤트는 ‘몬스 터 헌터 타임 어택’.
첫 이벤트답게 획득할 수 있는 포 인트 자체는 그렇게 짭짤하진 않지 만, 1둥 상품 중 하나가 내게는 꽤 중요했다.
종합 순위 5위를 달성하기 위해서 는 꼭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바로 ‘1:1 콜로세움 소환권’.
원하는 상대 한 명을 소환해 1:1 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티켓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대장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 큰 문제가 되
지 않는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종합 5위의 경쟁자인 ‘박인환’이니까.
내가 종합 5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박인환의 조기 탈락이 필수였기에 반드시 얻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3분 뒤, 첫 번째 이벤트가 시작됩 니다.]
때마침 이벤트를 알리는 음성이 들 려왔다.
[첫 번째 이벤트는 2인 팀 이벤트, ‘몬스터 헌터 타임어택’입니다. 상위 10명에게 보상으로 개인 포인트가 주어지고, 1둥에게는 특별 상품인 1:1 콜로세움 소환권이 주어집니다.]
몬스터 헌터 타임 어택은 준 보스 형 몬스터를 2:1로 가장 빠르게 처 치하는 쪽이 승리하는 이벤트이다.
룰 자체는 아주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함께 시험에 참여할 사람만 있다 면.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이벤트에 함께 참여할 ‘파티원’을 추가해 스 마트 학생 수첩으로 참가 신청을 하 시면 됩니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 학생 수첩으로 이서준에게 파티 신청을 보냈다.
그리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신청받아라.]
그리고 약 10초 뒤.
[‘이서준’님이 파티를 수락했습니다.]
이서준이 파티를 수락했다는 메시 지가 떠올랐다. 군말 없이 바로 수 락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벤트, ‘몬스터 헌터 타임어택’
시작까지 2분 남았습니다.]
이벤트에 참가하기 전에 나는 내
몸을 점검했다.
체력, 마력. 모두 만족스러운 상태 였다.
가장 큰 이벤트가 일어날 3일 차 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1일 차 인 오늘은 내 마음대로 날뛰어볼 생각이다.
마지막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건 내일이면 충분하니까.
내 목표는 1일 차인 오늘, 최대한 많은 개인 포인트를 벌어내는 것이다.
[10, 9, 8, 7……]
[3, 2, 1……]
[이벤트 장소로 입장합니다!]
강한 마력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눈 부신 빛이 눈앞에서 번 쩍했다.
번쩍!
눈앞의 빛이 사라졌을 땐 새로운
장소에 있었다.
새하얀 공간.
마치 비밀이 숨겨져 있는 실험 공
간을 보는듯했다.
—크르르…….
어디선가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메 아리처럼 들려왔다.
이전 삶에서는 개인 이벤트에 참가 하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 하나하나 가 낯설게 느껴졌다.
“김선우.”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돌리니 이서준이 반가 워하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어. 왔냐?”
“어어. 근데 대장전에 이런 2인 이 벤트도 있을 줄은 몰랐네.”
이서준이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 러보며 말했다.
“다들 선공은 안 하고 눈치 게임만 하니까 지루하지 말라고 해둔 거겠 지.”
“그러네.”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철장.
그 뒤로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는 거대한 늑대가 눈에 들어왔다.
대충 보는데도 서 있는 키가 2m는 넘어 보인다.
저 늑대의 이름은 ‘거대 붉은 외눈 늑대’.
외눈이지만 거대한 덩치와 날카로 운 이빨. 그리고 단단한 가죽을 지 녀 상대하기 까다로운 A등급의 몬 스터였다.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눈앞의 몬스터를 빠르게 처치한 순서대로 순위가 정해집니다!]
—드르르륵!
철장의 문이 올라가고 어둠 속에서
늑대가 침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침착하게 외부자의 혜택을 발 동시켜 늑대의 약점을 찾아내었다.
“미간을 노려.”
“뭐?”
“미간이 약점이야. 그쪽이 상대적 으로 가죽이 약해.”
이서준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약점을 어떻게 알고 있나. 정확한 정보는 맞나. 그런 것들을 물어볼 법했지만, 이서준은 묻지 않았다.
“미간이라. 오케이.”
이서준의 검에서 새하얀 빛의 마나 가 뿜어졌다.
[타임어택을 시작합니다.]
콰앙!
거대한 외눈 늑대가 거대한 화염에 휩쓸리며 쓰러졌다. 그 여파로 바닥 에 강한 진동이 울렸다.
“ 후우......
승리했다는 안도감에 유아라는 숨 을 푹 내쉬었다.
유아라의 파티원이자 c팀의 대장, 최서윤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방금 좀 괜찮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1둥 충분히 노려볼 만할 것 같은데.”
최서윤의 말에 유아라는 고개를 끄 덕였다. 확실히 방금 호흡은 처음 맞춰본 것 치고는 상당히 좋았다.
이서준과 김선우가 조금 신경 쓰이 긴 했지만 마법사관학교의 온갖 기 록을 갈아치우는 그 둘이라고 해도
이번에는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유아라는 만족스럽게 외눈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다가 힐끔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방금 있었던 전투를 복기했다.
방금 최서윤이 보여준 마법 전투.
그녀는 자신과 정반대의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자신은 타고난 마력의 체급과 파괴 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스타일 이라면, 최서윤은 정교한 마력 제어
능력과 센스로 다양한 형태의 얼음 을 구현해 상대를 천천히 압박하는 스타일이었다.
다수보다는 1:1에 특화. 즉, 김선 우와 상당히 흡사한 스타일이라 할 수 있었다.
최근 김선우를 의식하게 된 유아라 는 최서윤의 전투 스타일이 조금 부 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김선우를 닮고 싶어, 남몰 래 그 스타일과 마법을 연습하기도 했으니까.
“……부럽네.”
“네? 뭔가요?”
“전투 스타일. 나는 그런 센스가 없거든. 그렇게 되고 싶어서 연습하 는데 잘 안되더라.”
유아라의 중얼거림에 최서윤이 고 개를 갸웃했다.
“저는 선배님의 마법의 파괴력이 부러운데요?”
“그래?”
“넵.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잖아요.”
최서윤의 말에 유아라는 잠시 생각 에 잠겼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다른 스타일 연습하는 거, 김선우 선배님 때문이죠?”
“응?”
정곡이 찔린 유아라가 당황해하자 최서윤이 가볍게 웃었다.
“맞네. 근데 저도 그래요. 김선우 선배님 체술 섞으면서 전투하는 모 습 보면 되게 멋지더라고요. 저도 닮고 싶어요.”
최서윤의 말에 유아라는 공감했다.
발현계면서 적극적으로 체술을 섞
는 것도 확실히 멋지면서도 부럽긴 했다.
하지만 유아라는 김선우의 체술을 닮는 것까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
부특기로 강화계가 아닌 보조계를 선택할 만큼 육체 능력에 전혀 재능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니 까.
그렇게 최서윤과 대화를 나누며 이 벤트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몬스터 헌터 타임어택’이 종료되 었습니다.]
드디어 이벤트가 끝이 났다.
[상위 10팀을 발표합니다.]
1위. 이서준, 김선우(2분 22초)
2위. 최서윤, 유아라(7분 52초)
3위. 김창현, 전민기(7분 55초)
[축하합니다. 2등 보상으로 600의 개인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2”
순위표를 본 유아라와 최서윤은 당 황했다.
상대가 김선우와 이서준인 만큼 1 위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기록이었다.
1위와 2위의 기록 차이가 너무나
도 극심했다.
이 정도면 거의 3배에 가까운 차 이였다.
“……대박.”
최서윤 역시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 뭘 어떻게 싸웠길래 3 분도 안 걸려요?”
유아라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몬스터의 약점을 알고 그곳만 공략한 수준인데.
아, 김선우라면 또 가능할지도…….
“……김선우.”
유아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전 대장전에서 같은 편일 때는 엄청나게 든든했지만, 적군이 되니 역시나 까다롭다.
“……이럴 거면 중간시험 말고 기 말시험 때 같은 팀 시켜주지.”
유아라는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번쩍!
이벤트가 끝나고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지금 내 손에는 이번 이벤트의 1 등 보상 상자가 쥐어져 있었다.
드디어 얻었다.
1:1 콜로세움 소환권.
이것으로 내 종합 5위의 가장 큰 걸림돌인 박인환 조기 탈락을 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특별 보상은 한 명에게만 지급되는데 이서준에게 부탁해서 내 가 사용하기로 했다.
“흐흐.”
나는 조용히 웃고는 상자를 열었
상자 안에는 작은 티켓 하나가 있었다.
[‘1:1 콜로세움 소환권’을 획득했습니다.]
[원하는 사람을 지정해 1:1 전투를 치를 수 있습니다.]
괜히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티켓에 마나를 주입했다.
마나를 머금은 티켓은 작은 빛을
내뿜었다. 이내 귓가에 ‘의지’가 들 려왔다.
[1:1 콜로세움 소환권을 사용합니다.]
[원하시는 상대의 팀과 이름을 말 해주십시오.]
“C팀, 박인환.”
[C팀 박인환. 찾았습니다.]
[바로 콜로세움으로 소환하겠습니 까?]
“예.”
[확인되었습니다.]
[C팀 박인환, 콜로세움으로 소환됩 니다.]
다시 빛이 번쩍이더니 풍경이 바뀌 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콜로세움 이라는 이름답게, 로마에 있는 콜로 세움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풍경 이 보였다.
[콜로세움에 입장했습니다.]
[살아남은 승자만이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습니다.]
앞을 바라보자 갑작스러운 소환에 당황하고 있는 박인환이 눈에 들어 왔다.
이내 시선이 마주쳤다.
박인환은 당혹감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인환아 반갑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