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오면서 잠시 잊고 살았 지만, 병이 생기고 혼자 있는 시간 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 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자식인 한세진과 한세연을 보 고 있으면 마치 과거, 자신에게 있 었던 일이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한대현은 품 안에서 김진우의 연락 처가 담긴 종이를 바라봤다.
“김진우……
스스로 감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생기는 힘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 그리고 통찰력에서 나온다.
한대현 역시 감이 좋은 남자였다. 그가 한성 그룹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그 감이 한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감은 김진우가 조금 특별하다고 판단했다.
한대현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조만간 다시 만나지. 날짜는 내가 잡겠네.]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다른 곳에서 지냈으니 사 홀 만에 오는 기숙사다.
“웅애.”
내가 돌아오자 그레텔이 나를 반겼 다. 나는 웃으며 그레텔은 안아 들 었다.
슬쩍 머리의 나뭇가지를 보는데 3 일 사이에 열매가 제법 형태를 갖추 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빨리 익었으면 좋겠네.
꿀꺽. 입맛을 다시자 그레텔의 표 정이 굳었다.
“......응애?”
그러고선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본다. 나에게 열매를 따이던 그때를 떠올린 모양이다.
달래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스마트 폰이 진동을 울렸다.
나는 그레텔을 내려놓고는 메시지 를 확인했다.
[조만간 다시 만나지. 날짜는 내가 잡겠네.]
“호 ”
생각보다 일찍 연락이 왔다. 설마 헤어지자마자 연락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나는 곧바로 답장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자 다시 메시 지가 왔다.
[오늘 미안했어요. 술은 다음에 제 가 살게요.]
한세 연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장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나름 즐 거웠거든요.]
그렇게 답장을 하고는 몸을 깨끗이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그때 였다.
[등장인물 ‘한대현’에게 당신에 대 한 관심도가 상승합니다.]
[등장인물 ‘한대현’의 당신에 대한 관심도 Lv : 1]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등장인물 ‘한세진’에게 당신에 대
한 관심도가 상승합니다.]
[등장인물 ‘한세진’의 당신에 대한 관심도 Lv : 1]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한성가의 관심을 받는 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야 이건?”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174화
수요일 오후.
나는 멍하니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 하고 있었다.
은월 가문, 환영 결계 해제, 던전 공략, 기말시험 등등……
바빠도 너무 바쁘다. 이것들만으로 올해의 일정이 거의 꽉꽉 채워져 있 는 수준.
이러다 과로로 죽는 게 아닐까 싶 을 정도다.
거기다 개인 훈련도 해야 하지, 포 인트도 벌어야 하지.
신경 써야 할 게 산더미다.
“ 에휴.”
“뭘 그렇게 한숨을 쉬어?”
마법사관학교 뒷산의 던전 훈련장 앞.
내 옆에 선 유아라가 나를 바라보 며 물었다.
“그냥 정신적으로 좀 피곤해서.”
“좀 피곤해 보이긴 하네. 전부터 느꼈는데 너무 몸을 막 굴리는 거 아니야?”
몸을 막 굴린다라.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쉬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돌아다니 긴 했으니까.
게다가 수면 시간도 줄어들어 오르 골의 효과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훈련 시간올 좀 줄여야 하나?
“자, 이제 던전 입장을 하겠습니다. 조는 6인 1조입니다. 공략 시간과 팀원 보정 제도에 따라 점수가 부여 됩니다.”
오늘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늘 훈련은 마법사관학교에서 매 달 정기적으로 하는 던전 공략 훈 련.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6인이 한 조가 되어 진행된다는 점이다.
조는 나와 유아라. 그리고 잘 모르 는 엑스트라 4명이 되었다.
“잘 부탁해!”
“오. 유아라에 김선우? 최소 2둥은 하겠네.”
조원들은 나와 유아라를 보며 싱글 벙글 웃었다. 이제는 내 이미지가 일정 성적 이상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보중 수표가 된 모양이다.
이런 반응도 이젠 익숙해졌기에 크 게 신경 쓰진 않았다.
번쩍!
그렇게 우리는 훈련용 포탈을 타고 던전에 입장했다.
어두운 동굴로 공간이 바뀌자 나는 모두에게 통보했다.
“빠르게 진행할 거니까 잘 따라 와.”
던전 공략은 팀원 보정 점수라는 게 있다.
팀원의 순위 평균을 나누어 점수를 더 많이 주거나 혹은 더 짜게 주거
나 하는 제도인데 우리 팀에 유아라 와 내가 껴 있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해있었다.
즉, 보정 점수에서 불리함이 있기 에 압도적인 1등을 노려야 한다.
“이럴 틈 없어. 1등 하려면 바로 출발해야 해.”
승부욕 강한 유아라 역시 그걸 아 는지 나서서 한마디 했다.
“가자.”
우리는 빠르게 던전을 공략해 나갔 다.
광역 전투에 특화된 유아라가 던전 의 몬스터들을 처치해 나갔고, 나는
가끔 등장하는 던전의 함정이나 결 계를 빠르게 해제하며 공략의 가속 도를 올렸다.
쾅! 쾅! 콰아앙!
—끼에에엑!
퍼어어엉!
—끼엑!
“……쟤네 둘 미쳤다.”
“호홉 장난 아니네.”
“진짜 최상위권은 급이 다르구나.”
뒤에서 나와 유아라를 향한 감탄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는 신경 쓰 지 않고 던전 공략을 진행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던전 공략을 마쳤다.
던전 밖으로 나오자 장안철은 나와 유아라를 보더니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5조. 압도적인 1등이다.”
“와아!”
“김선우 유아라 버스 달달하고.”
조원들은 자신들의 성적에 제자리 에서 뛰며 기뻐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던전 상황판을 보았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서준 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우리가 20분 전에 공략 하던 스테이지를 공략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보정 점수를 생각해도 1등은 확정이겠네.
다시 생각해도 던전에서 나와 유아 라의 조합은 꽤 나쁘지 않다.
거기다 승부욕 강한 성격도 마음에 들고 말이지.
“수고했어. 1등 확정인 거 같다.”
유아라에게 툭 던지듯 말하자 유아 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늘 그렇듯 이서준보다 높은 성적을
달성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거 겠지.
“웅. 너도 수고했어.”
학교의 모든 훈련과 수업이 끝나 고.
나는 이서준과 함께 서울의 마법사 협회로 향했다.
2차 중간시험 때와 지난주에 처치 한 마인과 관련해 표창 수여식이 있 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리도 멀고 표창 따위 안 받아도 그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그게 곧 포 인트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니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귀찮네.”
혼자 중얼거리자 이서준이 피식 웃 었다.
“돈 준다고 하니까 참아.”
“에이, 그거 줘봤자 얼마나 준다 고.”
“8천만 원인가?”
“……뭐? 8천만 원‘?”
“어. 엄청 많이 주지?”
“오호.”
꽤 큰 돈이 들어온다. 처치한 마인 의 등급이 높아서 그런가?
B등급 마인 포상금이 1,500만 원 정도였는데 A둥급 좀 섞여 있다고 8천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수십억, 수백억의 돈을 모아본 나 지만 그래도 8천만 원이라는 돈은 아직도 큰돈이었다.
“도착했다.”
끼이익.
협회 본사의 강당 문을 열자 수많
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협회 직원도 있었고 기자 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는 얼굴도 몇몇 있었다.
특무팀의 김덕현이라던가. 정현수 라던가. 그리고 저기 구석에 있는 기자 양반은 마법사관학교에서도 몇 번 봤다.
아무래도 오늘 협회에서 마법 교육 과 관련해서 행사가 있다고 하니 그 것 때문에 모인 모양이다.
아마 이곳에서 굳이 표창 수여식을 하는 이유도 나와 이서준을 학생 대 표로 참가시키려는 목적도 있을 거
“서준 학생! 소감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서준이 등 장하자 기자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 리기 시작했다.
이서준은 웃으며 하나하나 그들을 상대했다.
나에게도 꽤 몰리긴 했다. 대다수 는 이서준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기말시험 때 이서준을 어떻게 상대 할 것인가.
최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많은데 어떻게 친해지게 됐는가. 등등.
솔직히 말해 별 쓸모없는 질문들이 었다.
[수여식올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나와 이서준은 진행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단상 위로 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수많은 카메라가 나와 이서준을 촬 영했다.
“야야. 찍어.”
“이야. 요즘 제일 잘나가는 친구들 이네.”
[수여식을 진행해주실, 특별한 분 을 모셨습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언론에서 자주 본 익숙한 얼굴의 노인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살짝 놀랐다.
최강의 마법사.
세계 최악의 범죄 집단인 자운마저
두려워하는 김진철 회장이었다.
[그럼 표창 수여가 있겠습니다.]
김진철은 표창을 받더니 나와 이서준 앞에 섰다.
나는 김진철 회장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저번 주에는 한대현 회장 을 만나더니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김진철 회장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거물과의 만남에 조금 긴장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얼굴은 친근한 동네 노인처럼 생겼 지만, 옷 안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의 단단한 육신은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여기선 회장님이라 불러라.”
김진철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손에 쥔 표창장을 이서준 에게 넘겼다.
그러곤 손을 맞잡았다. 동시에 수 많은 카메라 셔터가 터지며 눈을 부 시게 만들었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김진철은 또 다른 표창장을 들더니 내 앞에 섰다.
“네가 김선우구나. 서준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다.”
김진철 회장이 내 이름을 알고 있 다니. 조금 의외였다.
“네게 궁금한 게 꽤 있었다. 일현 이 그놈이 네 개인 교사라지? 여름 방학 때 내 가르침은 무시하더니. 쯧.”
설마 그걸 담아두고 있던 건가.
“아무튼 그 소식을 듣고 꽤 놀랐
다. 일현이 그 망나니 녀석이 누굴 가르칠 성격은 아니거든.”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
최일현의 성격은 원작을 봐온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연구할 일이 있어 만나기 힘들 거라더니 요즘 통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혹시 교사 때려치우고 도망친 게 아닐까 몰라.
다른 마법사면 몰라도 최일현이라 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으 니까.
김진철은 내게 표창장을 넘기고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굳은살로 가득한 단단한 손의 감촉 이 느껴졌다.
단순히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 김진 철이 살아온 삶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흐음. 일현이가 왜 네게 관심을 두었는지 알 거 같구나. 서준이가 왜 널 의식하는지도 알 것 같고.”
“네?”
뜬금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성질의 마력 을 갖고 있어. 일현이 녀석처럼 욕 심도 아주 많은 거 같고.”
그 순간 나는 김진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그의 특성 중 하나인 ‘마력 스캔’ 이 발동된 것이다.
잠시 손에 맞닿는 것만으로 상대방 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어렴풋 이 알 수 있는 능력이었다.
“흐흐. 재밌군.”
김진철은 그 말을 끝으로 내 손을
놓았다.
다시 한번 관중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 셔터가 터지며 내 눈을 부셨다.
[이것으로 표창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
한편, 태평양 어딘가의 무인도.
괴수가 득실득실한 이곳은 신비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것
으로 알려진 ‘비의 섬’이었다.
그곳에서 한 무리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정체는 자운 일당이었다.
“아,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축축 해서 짜증나 죽겠네.”
“조용히 좀 해. 왜 이리 참을성이 없어?”
나타샤가 한마디를 하자 투덜대던 스카가 삐죽 입을 내밀었다.
“어? 여기인가 본데?”
그때 백은성이 의수로 작은 숲을 가리켰다.
비의 섬 중앙에 위치한 작은 수해 였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인 재앙급 마 수, ‘붉은 비의 마수’가 서식하는 장 소이기도 했다.
오늘 그들은 붉은 비의 마수를 처 치하면 얻을 수 있는 신비의 재료, ‘마수의 심장’을 얻을 계획이었다.
물론 재앙급 마수는 아무리 자운이 라 할지라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 는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환경의 이점을 가 진 마수는 전투 능력이 기하급수적 으로 상숭하게 되어 더더욱 쓰러트
리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마수 레이드를 위해 성유물이자 고대 병기, ‘대마 도정화기기’와 그것의 에너지가 되 는 ‘마나의 핵’을 챙겨왔다.
“야. 백은성. 근데 그 팔도 슬슬 익숙해졌나 보다?”
스카가 백은성의 왼쪽 의수를 보며 발했다. 백은성은 자신의 왼쪽 팔을 슬쩍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