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역시 여기서 말했던 아지 트를 조사해야 하는 건가?”
그때 였다.
꼬르륵.
어디선가 허기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피식 웃고는 이서준에게 시선 을 돌렸다.
이서준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 아니야.”
“......웅?”
나는 은설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설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 저예요……
범인이 수줍게 자백했다.
고개를 푹 숙이는 게 엄청 부끄러
웠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지 나긴 했구나.
“뭐라도 하나 시킬까? 나도 슬슬 배고프긴 하네.”
“배달? 좋지. 근데 여기도 배달되 려나?”
“당연히 되겠지.”
그때 은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배달 음식이요?”
“어, 왜? 싫어?”
“아뇨. 할머니 때문에 배달 음식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은설아가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배달 음식 한번 시켜본 적이 없다 니. 인생을 크게 손해 보고 살아왔 구나.
“이번에 한 번 먹어봐. 뭐 먹고 싶 은 거 있어?”
“어…… 음……
은설아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 고민에 빠졌다. 저 입에서 어떤 음 식 이름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배달은 어떤 음식을 시킬 수
있는데요?"
“ 아.”
거기부터 알려줘야 하는구나.
식사를 마치고 이리저리 방을 정리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9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휴식 겸 바람 좀 쐬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후우.”
시원한 밤바람을 쐬니 머리가 상쾌 해지는 것 같다.
나는 난간에 기대 눈앞에 풍경을 바라봤다.
오목조목 붙어있는 작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살던 현실의 달동네와 다른 게 없어서 뭔가 정겨우면서도 그리 운 기분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그때 였다.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바지 주머니가 아닌, 상의 주머 니에서 진동이 울렸다는 건 스마트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는 이야기다.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 해 진동의 정체를 확인했다.
[진우 씨 뭐해요?]
한세 연이었다.
지금 시간이 9시니까. 연락 올 때 가 되긴 했구나.
괜히 피식 웃다가 답장을 보냈다.
[잠시 바람 쐬는 중입니다]
[거거전화해도 돼요?]
전화?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흠. 상관없겠지.”
답장 대신 한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 폰이 아닌 외부자의 혜 택 기능이었다.
뚜루루…….
[여보세요?]
한세연의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들 려왔다.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한세연 씨.”
[와. 목소리 오랜만에 듣는다.]
“그러게요. 저도 오랜만에 듣네요.”
[요즘 뭐 하고 지내요? 예전엔 뉴 스 기사에 자주 보였는데 요즘은 잘 보이지도 않고.]
뉴스 기사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 김진우 활동이 뜸해지긴 했구나.
이래저래 학교 일로 바빠서 말이 지.
“그냥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한세 연 씨는요?”
[저야 뭐. 늘 똑같죠. 알잖아요.]
한숨 섞인 한세연의 말에 쓸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나는 한세연과 최근 주고받 지 못한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또 신 약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또 아버지, 한대현의 건강 상태는 어떤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작만 보았을 때는 한세연이 이렇 게 수다스러운 사람인지 몰랐는데.
내가 그만큼 그녀에게 편안한 존재 라는 걸까.
[아 참, 우리 안 본 지 너무 오래 되지 않았어요?]
“오래되긴 했죠.”
마지막에 본 게 한 달인가 두 달 전이었으니까.
[어…… 그럼 내일 저녁에 볼래 요‘?]
내일? 내일은 은월 가문 일정으로 바쁜데.
“어…… 내일은 좀 힘들 거 같아 요.”
[아, 그래요? 엄청 바쁘신가 보네.]
귀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주 주말은요?]
다음 주는 잘 모르겠다. 은월가 일 정이 다음 주까지 이어질지도 모르 고, 환영 결계 문제도 해결해야 했 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시간을 잘 쪼개면 되지 않 을까.
그리고 어차피 내일 은월가 일정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긴 해야 하 니까.
“괜찮으시면 내일 밤에 잠깐 볼 수
는 있을 거 같아요. 밤 9시 이후 로.”
[어? 정말요? 그럼 내일 봐요. 저 도 그때 맞춰서 시간 비울게요. 그 럼 오랜만에 술 한잔?]
한세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사이에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 도 커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술 좋죠.”
[알았어요. 그럼 내일 만나요. 장소 는 내일 아침에 말씀드릴게요.]
“네. 그래요.”
[헤헤. 그럼 늦었으니 푹 쉬어요. 이만 끊을게요.]
“네.”
뚝
전화가 끊겼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고 무언가 쓸 쓸한 기분이 들었다.
“후우.”
그래도 잠깐 사이에 마음에 작은 평온이 생긴 기분이다.
내일 기대되네.
그때 였다.
[5,562명의 사람이 당신에게 강한
기대를 가집니다.]
[보상으로 2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뭐야 이건.
갑작스럽게 2만 포인트를 획득했다. 대체 뭘까 생각하는데, 잠시 뒤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메시지가 울렸다.
[뉴스 캡처 사진]
[선배님, 마인 토벌하셨다면서요?]
최서윤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유망주’, 김 선우. 오늘 오후 1시경 도시에 등장 한 A등급 마인 토벌……」
“벌써 기사가 떴구나.”
그렇다고 해도 단순한 마인 토벌로
2만 포인트나 획득하다니.
김진우 신분일 때와는 포인트 수급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아무래도 프로 마법사로 알려진 ‘김진우’보다는 아직 학생 신분인 ‘김선우’에게 걸린 기대감이 더 커 서 그런 거겠지.
사람들이 내게 갖는 ‘감정’은 포인 트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기사 뜬지도 몰랐네]
[기사보니까 이서준 선배님이랑 같 이 있었다던데. 두 분이서 오늘 뭐 했어요?]
[뭐 조사할 게 있어 가지고.]
[조사요? 무슨 조사요? (호기심 많 은 고양이 이모티콘)]
고양이 이모티콘이 궁금증에 찬 얼 굴로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멍한 눈으로 고양이를 바라 보았다.
은은한 갈색빛이 묘하게 최서윤이 랑 닮았다.
[몰라도 된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포탈 게이트를 타고 다시 은월가로 돌아왔다.
내부로 들어서자 은혜수가 평소와 다른 경쾌한 발걸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설아야!”
“할머니!”
은설아는 은혜수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은혜수를 힘껏 안더니 말했다.
“저, 병 완전히 나았어요.”
은설아의 말에 은혜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양손으로 은설아의 양 뺨을 콱 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 았는지 그녀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그게 정말이냐?!”
“네에. 제 몸이랴 알 수 있어요.”
은혜수의 손 때문인지 은설아가 뭉 개진 발음으로 대답했다.
은혜수는 은설아에게서 떨어지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해낼 줄이야. 어제 마인을 처치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 만.”
은혜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김선우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정말로 고맙다.”
은혜수가 내 손을 꽉 잡으며 떨리 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대로 이서준과 같이 네게 가 문의 비전 마법을 익힐 기회를 주겠
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메인 스토리에 더욱 크게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진천우는 은월가의 환영 결계를 이 용해 몇 가지 장치를 숨기곤 했으니 까.
“그리고.”
은혜수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 을 이었다.
“은월 가문은 널 가문의 은인이라 판단하고 앞으로 네 모든 일에 전폭 적인 지원을 해주마.”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은월 가문의 은인’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172화
은혜수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마치고. 약속했던 은월가 의 비전 마법 전수가 시작되었다.
“ 따라와라.”
나와 이서준은 은혜수를 따라 은월 가의 훈련장에 도착했다.
훈련장은 무술 도장 같은 분위기였다.
은혜수는 우리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희가 은월가에서 얻고자 하는 건 마법사관학교 뒷산에 설치된 환 영 결계를 지나갈 수 있는 보호 마 법이겠지?”
“네, 맞습니다.”
이서준의 대답에 은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 결계에는 은월가의 환영술과 진천우가 준비한 신비의 힘이 함께 깃들여 있다. 그 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은월환절’ 을 익혀야 한다.”
은월환절.
은월가의 비전 마법 중 하나로 환
영 마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 는 최고의 보호 마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꼭 얻어야 할 마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월환절을 완전히 익히려 면 평균적으로 10년의 시간이 필요 하다. 너희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녀석들이라면 5년 정도로 단축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 역시 너희에게 만족스러운 시간이 아니겠지.”
이서준과 나를 묶어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내 재능은 이서준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서준이라면 5년 이내로 은월환절 을 익히겠지만 나라면 10년 이상은 걸릴 테니까.
“하지만 굳이 5년, 10년을 소모해 서 배울 필요는 없다. 조금, 아니 많이 위험한 방법이지만 편법을 이 용하면 된다.”
“편법이요?”
이서준의 물음에 은혜수가 팔짱을 끼었다.
“은월가의 보물이자 은월가의 정수 가 담긴 ‘영혼석’을 이용하면 된다.”
“……영흔석?”
은혜수는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함 을 꺼내 열었다.
그곳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작은 보 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것이다.”
영혼석.
‘개념’이나 ‘마력’ 등을 저장하는 신비가 담긴 유물 아이템이다.
이 영혼석을 이용하면 돌에 담긴 몇몇 특수한 ‘개념’을 손쉽게 획득 할 수 있었다.
그런 편리성 덕에 유명 명가나 소 수 일족은 영혼석에 비전 마법을 담
아두기도 했다.
물론 쉽게 파손될 수 있다는 단점 이 있어 보관에 유의해야 한다.
“영혼석은 ‘개념’을 저장하고 누군 가에게 손쉽게 주입시킬 수 있는 물 건이다. 물론 편리한 기능을 가진 만큼 정신이 파괴되거나 오염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신 파괴.
영혼석에 담긴 개념을 얻기 위해선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 지 않았다.
영혼석에 담긴 신비의 의지가 사람
을 가리기 때문이다.
만약 사용자의 수준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정신을 파괴시 켜 폐인으로 만든다.
“내일 학교 일정 때문에 다시 서울 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 간이 부족하니 오늘은 시련을 대비 해 환영에 대한 적응력부터 익힐 것이다. 영혼석을 사용하는 건 다음 주다.”
그렇게 말을 끝낸 은혜수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나와 이서준이 서 있는 바 닥에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빛이
뿜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환영 마법의 적웅 력을 키우도록.”
마법진의 빛은 순식간에 나와 이서준을 집어삼켰다.
번쩍!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고민하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환영 마법의 저항력을 키 우기 위해 은월가에서 만든 특별한 공간이다. 영혼석의 시련과 홉사하 니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은혜수의 목소리였다.
귀에 들리는 음성이 아니라, 마치 ‘의지’처럼 머릿속에 울리는 느낌이 었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결계에서 빠 져나올 생각은 하지 마라. 훈련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적응’이니까. 그 러니 그 안에서 반나절 지내면서 환 영 마법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그 말을 끝으로 은혜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흐음.”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 상황은 원작에서도 묘사가 된 적이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거나 하 지는 않았다.
아마 곧 어둠 속에서 여러 환영 마법이 시전되며 정신 공격이 들어 오겠지.
그때 였다.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주변의 색 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서서히 노란 빛으로 바뀌더 니 물감처럼 두 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난해한 이 광경을 바라보는 데 귀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